천리포 수목원
- 임준수 글|류기성 사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 김영사, 2005.
류인혜
사물에 대해서 집착하여 일부러 시간을 드리고 노력을 하며 가지려고 애를 쓰지 않는다. 사람이건 물건이건 또 다른 무엇이든지 자연스럽게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대신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던 것이 가까이 오면 얼른 챙긴다. 오랜 기다림이 실현될 때의 기쁨은 내밀한 것이다. 아무도 그런 감정을 짐작하지 못한다는 데에서 누리는 즐거움이 크다.
천리포수목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막연히 그곳을 생각하고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생명의 숲」에서 신입회원들을 데리고 천리포수목원으로 간다는 광고를 보고 얼른 그 단체에 가입을 했다. 그런데 날씨가 좋지 못하여 수목원에 가는 계획이 무산되었다. 비바람이 불면 들고 간 도시락을 먹을 장소가 없다는 이유였다. 다음해부터는 신입회원이 아니라서 영영 가지 못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큰며느리가 천리포수목원에 관한 책을 보내주었다. 평소에 선물한 다른 물건보다 반가워서 마음씀씀이가 예쁘게 여겨졌다. 천리포는 기다림의 대상이 되어 있는데 책으로나마 그곳 나무 식구들을 대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수식어가 과장된 표현이 아니고, 빈말이 아니도록 관심을 가지고 꼼꼼히 읽어 보았다. 우리나라에 많은 수목원이 있지만 천리포수목원이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조건이 여럿이다. 서해안 어느 곳에 조성된 작은 수목원이 세계적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 것은 그곳을 가꾸기 시작한 사람의 안목과 앞선 생각에 의해서다. 남보다 앞선 생각을 한다는 것은 모험이다. 그 모험심이 좋은 일을 이루는데 큰 조건이 된다.
책의 내용은 차례를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그리고 관심이 더 가는 부분을 앞으로 조금씩 정리해볼 것이다.
1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 - 아시아의 큰 별/ 생명의 정원 천리포/ 수목원의 파수꾼/ 연못이 준 선물/ 낭새들이 돌아오기를 꿈꾸며/ 쓰라린 시행착오/ 세계의 나무를 천리포로/ 천리포수목원의 메카 '분원'/ 사시사철 목련 동산/ 호랑가시와 동백/ 돈이나 권력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
2 나무사랑 반세기 - 나무 사랑의 첫 걸음/ 씨앗 받을 땐 조심조심/ 나무 키우기는 기다림의 연속/ 나무의 주인 노릇을 하지 말라/ 자연은 영원한 창조자, 인간은 영원한 파괴자/ 남다른 생태계 사랑/ 대뱅이 섬의 비극/ 늦깎이 나무 공부/ 호랑가시와의 인연/ 나무 경매/ 꿈에도 나무 /사람을 키우는 즐거움/ 나무의 거름이 되고 싶다
3 나의 전생은 한국인 - 첫눈에 반한 코리아/ 펜실베이니아 민씨/ 한복과 한옥을 더 좋아한 서양인/ 비싸도 태안에서 사야 해/ 고서점 주인부터 한옥 목수까지/ 어머니 나무/ 단지 좋아서 했을 뿐/ 다시 태어나면 개구리가 되고 싶어/ 한국에 바치는 마지막 선물/ 에필로그
미국인 칼 밀러(Carl Ferris Miller)는 25살에 연합군 중위로 해방 직후 한국에 첫발을 디뎠다. 그는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한국인의 순박한 모습에 반해 이듬해 1946년 제대하고 미군정청 정책고문관으로 지원해 한국에 남았다. 그는 천리포 땅과 첫 인연을 맺은 후 1979년 민병갈이라는 이름으로 귀화하였다.
1962년 당시 한국은행 고문직에 있던 민병갈은 동료를 따라 만리포 해수욕장을 자주 찾다가 딸 혼수비용을 걱정하는 한 노인의 딱한 사정을 듣고 6,000평을 사게 되었다. 별장이나 지을까 해서 바닷가 구릉지를 샀던 것이 현재 18만평의 규모로 늘어났다.
차츰 땅을 넓히면서 1970년께부터 방풍림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나무를 심었다. 이들 지역은 하나로 묶여있지 않고 여러 덩어리로 흩어져 7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이는 민 원장이 10여 년에 걸쳐 토지를 조금씩 매입했기 때문이다. 이중에서 일반인에게 개방된 것은 수목원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는 본원 6만6천 평방미터(2만평)뿐이다.
1979년 재단법인으로 공식 출범한 천리포 수목원은 한국 최초의 민간수목원이다. 본원 입구에 있는 초가집형 건물의 2층 사무실로 통하는 계단을 오르다 보면 건물 벽에 붙어있는 동판 기념패가 있다. 이 동판은 2000년 국제수목학회가 아시아 수목원으론 처음으로 수여한 명예훈장이다. 상패의 문구는 천리포수목원이 원예학적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잘 가꿔진 수목원임을 국제기구에서 공인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민병갈은 이를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해석하여 수목원의 홍보책자에 활용했다. 또 미국호랑가시학회가 수여한 '공인 호랑가시 수목원' 인증패도 함께 걸려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을 읽으면서 나무도 경매를 통해서 구입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지금은 이 땅에 살지 않은 사람이지만 천리포수목원에 가면 틀림없이 민병갈 님의 자취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을 위한 수목원이 아니라 나무를 위한 수목원이라는 그곳의 아름다운 나무들을 언제 만나게 될 지 그날이 기다려진다. 그곳에 다녀온 후에야 이 원고가 마무리 될 듯하다.
류인혜
《한국수필》 1984년 봄호 수필 <우물>로 추천완료. 국제PEN한국본부 자문위원.
수필집: 《풀처럼 이슬처럼》, 《움직이는 미술관》, 《순환》. 수필선집: 《마당을 기억하며》.
시집: 《은총》. 나무수필집: 《나무이야기》, 《나무에게 묻는 말》.
인문서: 《아름다운 책–류인혜의 책읽기》. 8인 수필집: 《뿌리는 내리는 사람들》
수상: 제18회 한국수필문학상, 제23회 PEN문학상, 제11회 한국문협작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