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날의 백두대간은 온통 눈꽃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눈의 나라다. 내리자 말자 시꺼멓게 오염되어 버리는 도시의 눈과는 품격이 다르다.
겨울날의 백두대간은 온통 눈꽃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눈의 나라다. 내리자 말자 시꺼멓게 오염되어 버리 는 도시의 눈과는 품격이 다르다. 산골의 깨끗한 눈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마저 말끔하게 씻어 준다. 1월 하순 대한 추위가 계속되는 추운 날 영동선 눈꽃 열차를 탔다.
일상을 털어버리고 아련히 잊혀 버린 낭만이란 단어를 다시 찾아보고 싶어서다. ‘가는 길에 들어 볼 곳이 없나?’는 필자가 천연기념물을 찾아다니는 일을 시작하면서 여행계획의 첫머리 명제다. 영동선을 탄다면 제95호 긴잎느티나무가 금세 떠오른다. 나무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고, 만날 생각에 초등학생시절의 소풍 전날처럼 마음이 들떴다. 따라가기로 한 아내는 내가 강원도의 눈경치를 본다고 들뜬 줄 알지만 천만의 말 씀이다. 일편단심 천년의 영물(靈物), 삼척 도계읍의 긴잎느티나무 때문이다. 은세계에 전신을 묻어버 린 겨울나목과 푸른 솔잎 몇 가닥을 겨우 내밀고 있는 소나무가 그림처럼 차창을 지난다. 흔히 말하는 꿈 과 낭만이 서린 겨울의 추억여행으로는 영동선을 타는 것이 제격이다. 나무는 도계역에서 내려 약 10분 거 리의 도계여중 뒤 편, 도로 건너의 자그마한 제2운동장에 자라고 있다.
나무의 종류는 ‘긴잎느티나무‘라는 흔치않은 느티나무의 한 변종이다. 이름 그대로 일반 느티나무 보다 잎 이 더 길고 좁으며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특산 나무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눈에 띄게 잎이 길어 누구나 금세 구분해 낼 수 있을 만큼 느티나무와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식물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애매한 이름 이다. 과연 느티나무와 확실히 다른 나무인지 아직 논란이 있다. 자라는 환경은 흠 잡을 데가 없다. |
널찍한 안마당을 가지고 주위에는 가슴 높이의 쇠 울타리가 둘러쳐 있어 함부로 들어가지 못한다. 나무의 굵기는 다섯 아름, 세월의 풍상을 겪느라 몸뚱이 곳곳은 상처투성이다. 썩어버린 부분은 인공수지란 이름 의 충전물로 매워져 있고 살아있는 껍질은 울퉁불퉁 온통 혹투성이다. 높이는 30m, 가슴높이 둘레가 9.1m, 가지 뻗음은 동서 25.3m, 남북 23.9m에 이른다. 나이는 약 천년, 고려 초 광종 때 쯤 심겨진 나무다. 나무 밑 에는 작은 느티나무 하나가 따로 자란다. 둘레 145cm에 이르는 이 나무는 수관이 어미나무와 같이 섞여있 다.
나이는 약 천년, 고려 초 광종 때 쯤 심겨진 나무다. 수도 개경을 중심으로 나라의 기틀을 잡느라 온통 피바 람이 불 즈음이다. 머나먼 강원도 산골의 이 나무가 이런 일을 알았을 리도 없고 알 필요도 없었지만, 뒷날 조선왕조가 들어설 즈음의 또 다른 피바람을 피해온 선비들을 그는 너그럽게 감싸 준다. 고려 말, 조 선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태동되면서 권력 장악에 장애가 되는 지식인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한다. 산 넘고 물 건너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멀리 도망친 곳이 바로 이 나무가 있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때 벌써 나이가 4백년이나 되었을 이 나무 밑에서 고려의 선비들은 나라 잃은 울분을 삭였을 것이다. 영영 고 향으로는 돌아가지 못한 채 이 나무에 그들의 염원을 묻어두고, 다시 세월은 6백년을 흘러 나무는 이제 새 로운 밀레니엄을 맞고 있다. |
나무의 자람터는 선비들이 피난 왔던 곳이라고 알려지면서 지금은 입시철에 사람들이 찾아와 합격을 비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고려 선비들은 쓰라린 아픔을 접고 훗날을 기약하기 위하여 나무 밑에서 자식들의 교 육에 모든 정성을 쏟았을 것이니 치성을 드리는 나무로는 제격이다.
얼마 전 이 나무가 학교운동 장 안에 서 있어서, 서낭당나무로 제사를 올리고 치성을 드리기 불편하여 다른 나무로 바꾸려 하였다한다. 그러나 하늘의 노여움으로 천둥 번개가 쳐 바꿀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처럼 오래 사는 나 무는 신비스런 영물로 취급한다. 마을 사람들은 행복과 평안, 번영을 기원하는 서낭당 나무로 섬기고 있으 나 하늘이 점지해준 나머지 생명이 그렇게 길게 남아있지는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