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2023년 7월 16일 제84회 방송으로 힐링인문학 방송은 회향하게 되었습니다.
2021년 11월 16일 시작하였으니, 햇수로는 3년이고, 만 21개월 간 순항하였습니다.
기회를 주신 TBN 경북교통방송과 박정우 기자피디님, 두 분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들어 주시고, 문자 보내 주시고, 녹음해 주시는 등 많은 사랑을 보내 주신 청취자들과 열행 도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원고지로 1,700매 이상의 방송원고가 축적되었습니다.
'열린행복'에서 공부한 동서고금의 회통의 인문학이 여기 있습니다.
향후 출판의 인연이 지어지기를 서원하면서 우선 여기에서 인사 올립니다.
((열행 합장))
【 TBN 경북교통방송 행복상담소 / 2023.07.16. 힐링인문학 제84회 / 박희택 】
13. 관계에 지칠 때
Q. 저는 여성이지만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친구도 많고 모임도 적지 않아요. 지금보다 젊었을 땐 친구도 모임도 더 많았답니다. 그런데 30대 후반이 되고 보니 이 많은 관계가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싶은 회의가 문득 들어요. 이런 회의가 들기까지 관계에서 오는 아픈 기억이 몇 차례 있었기는 해요. 그저 젊음으로 자신도 세상도 모르고 겁 없이 살았던 것 같아요.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지 듣고 싶어요.
A.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실존들이 임과 같이 관계의 회의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전통농경사회에서는 공동체문화가 기본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관계가 진정성이 있고 깊이가 있었지만, 정보기술사회에서는 관계도 속도와 변화(speed & change)의 흐름을 타기 마련이어서 경박성과 얕음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SNS로 연결된 수많은 관계가 되려 관계의 회의를 촉진시키는 측면도 있습니다.
많은 경우 관심과 관계가 사랑과 안온함이 아닌 신경증과 노이로제를 불러온다면 그 관심과 관계에 대해 리셋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설사 그 관심과 관계가 아주 가까운, 가족과 절친이라 하여도 그렇습니다. 가깝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관계임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고 삽니다. 어쩌면 가족관계가 가장 어려운 관계인지도 모릅니다. 가족이기에 절친이기에 상대의 기질과 체질을 잘 살피지 않고 일방적으로 상처를 주기 쉬운데, 그것이 어떻게 아름다운 관계라 할 수 있겠는지요.
사랑이란 상대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고 배려이니까요. 리셋의 첫 번째는 ‘거리두기(distancing)’입니다. 거리두기는 코로나 국면에서만 필요한 것(사회적 거리두기)이 아니라, 건강한 관계를 위해 늘상 요구되는 것(심리적 거리두기)이라 하겠습니다. 개별 자아가 가지고 있는 심리적 경계선을 넘어오는 것은 불편함을 초래하기에 편안함을 확보하기 위해서 적당한 거리를 확보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은 수치로 표현한 바 있습니다. 가족 및 연인과는 20㎝, 친구와는 46㎝, 회사 사람들과는 1.2m 정도가 가장 적합하다는 것입니다(김혜남, 「당신과 나 사이」, 메이븐, 2018, 제4-6장).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관계가 끊이지 않고 오히려 관계를 건강하게 지속시킬 수 있게 됩니다.
30대에 난소암에 걸린 가수 양희은이 두 차례의 수술과정을 거치면서 인간관계에 대해 자각하여 심플하게 살아왔듯이, 김혜남 박사는 2001년 파킨슨병을 앓기 시작하고부터 온데간데없어진 지인들을 겪어보고 거리두기의 의미에 관해 책을 썼고, 이 책에서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사람을 대할 때는 불을 대하듯 하라. 다가갈 때는 타지 않을 정도로, 멀어질 때는 얼지 않을 만큼만”이라는 조언도 전해 주고 있습니다.
리셋의 두 번째는 ‘수용하기(accepting)’입니다. 이것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거리두기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하여도 침묵하고 싶을 때가 있는 법입니다. 이때는 그 점을 자신이 쿨하게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연연해서는 안 됩니다. 맹자는 이렇게 갈파하였습니다. ‘왕자불추 내자불거’의 명언입니다. 비슷한 표현이 「장자」 산목편과 「순자」 법행편 등에도 나옵니다.
가는 사람은 잡지 말고 오는 사람은 막지 않는다(往者不追 來者不拒). (「맹자」 진심하편 제30장)
리셋의 세 번째는 ‘기다리기(waiting)’입니다. 자신을 위한 거리두기에도, 상대를 위한 수용하기에도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긍정하고, 자신과 상대의 긍정적 변화를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건강한 관계를 위해 자신의 선택을 긍정하고, 상대의 선함을 신뢰하면서 자연스럽고 편안한 연결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 상대가 가족이든 지인이든 누구든 그의 선함을 믿고 조급증을 내지 않고 기다려 줄수록 관계는 좋아집니다. 자식도 결혼을 하면 거리두기-수용하기-기다리기의 관계론을 새삼 인식하여 대하여야 합니다. 보고 싶다고 무시로 찾고, 맛있는 반찬을 만들었다고 마냥 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칼릴 지브란은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고 관계에 있어서 아주 핵심적인 말을 했습니다. 나와 너의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둘 것입니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도 그대들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예언자」 제3장).
✱ 오늘의 힐링송 추천 : 바람기억(나얼) : 너와 나의 평화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