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박재묵 논설위원 | | |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임지순 교수가 포스텍으로 옮겨간다는 사실이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됐다. 보도 경위를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뛰어난 석학을 모셔가는 대학 측에서 홍보를 위해 보도 자료를 배포한 것으로 짐작된다. 경위가 어찌됐든 간에, 일견 개인사로 보이는 한 과학자의 거취가 公器인 언론에 보도됐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것은 전혀 없다. 보도 내용에서도 언급됐듯, 임 교수는 우리나라 과학자 중에서 ‘노벨상 수상에 가장 근접’한 탁월한 과학자라는 점에서 그의 직장 이동은 이미 개인사의 수준을 넘어선 사회적 관심사가 됐기 때문이다. 임 교수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의 거취에 관한 보도를 접하면서 그가 왜 정년퇴직을 불과 6개월 남겨두고 있는 시점에서 대학을 옮겼을까 의아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의문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보도 내용을 종합해 보면, 결국 임 교수는 종전에 해오던 수소저장물질에 관한 연구를 정년에 의해 중단되는 일 없이 70세까지 지속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포스텍을 선택한 것으로 정리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와의 산학협력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언급되기도 했지만, 아마도 연구의 지속이라는 이유에 비하면 부차적인 사유일 것이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뭔가 가슴에 찡하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임 교수처럼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지 못하고, 정년이라는 딱딱한 규정에 묶여 학문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중요성을 지닌 연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학자가 지금까지 얼마나 있었을까. 학자 개개인의 연구가 갖는 의미와 중요성을 평가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안타깝게’ 중단된 연구의 숫자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 수가 결코 적지는 않을 것이다. 인문·사회과학분야에는 그나마 연구에 필요한 공간, 장비, 연구비, 연구조직 등의 여건이 연구 수행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퇴직 이후에도 지속할 수 있는 연구가 일부 있지만, 이공계에서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짐작컨대, 이공계의 경우에는 정년퇴직이 곧 연구의 중단을 의미한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안타깝게’ 중단되는 연구를 줄이기 위해서는 교수 정년제도에 융통성을 부여하는 것이 절실하다. 정년제도에 융통성을 부여하자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뚜렷한 성과가 기대되는 연구를 수행하는 교수들에게는 65세 이후에도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임용기간을 적정수준으로 연장해주자는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수명이 연장된 고령화 사회에서는 생물학적 연령이라는 단일 요인만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을 정하는 기존의 정년제도는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마땅하다. 여기에서는 우선 이러한 근본적 변화에 앞서서 두드러진 사회적 기여가 기대되는 일부 교수들만이라도 연령에 구애됨이 없이 연구를 지속함으로써 학문과 사회에 기여할 수 있게 해주자는 것이다. 임 교수를 모셔가는 대학을 비롯해서 이른바 국내에서 잘 나가는 극소수의 대학에서는 이미 이러한 융통성 있는 정년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국립대학은 말할 것도 없고 대다수의 사립대학들도 아직 65세 정년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다. 이상한 일은 다른 대학에서 정년퇴직한 교수들은 다양한 명칭의 비정규트랙 교수로 단기간 임용하는 사례는 거의 보편화돼 있는데도, 원래 근무했던 대학에서 계속해서 일할 수 있도록 정년을 연장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유능한 교수들까지도 다른 대학으로 옮겨가야만 연구를 지속할 수 있다면, 사태를 그렇게 만든 우리 식의 경직된 대학 교수 정년제도는 크게 손을 봐야 할 것이다. 박재묵 논설위원/충남대 명예교수·사회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