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김은영
할아버지 제사장을 보러 같이 가자는 친정엄마의 부름을 받고 왜관 시장에 갔다. 먼저 찹쌀 수제비 한 그릇으로 배부른 점심을 먹고, 조기를 사러 어물 가게를 찾았다. 좁은 동네라 어물 가게가 몇 군데 안 되기도 하지만 엄마는 늘 정해둔 단골 가게를 찾는다. 원하는 대로 손질도 해주고 간도 딱 알맞게 쳐준다며 훨씬 규모가 큰 가게를 두고 굳이 시장 대로변 작은 가게를 찾는다.
그런데 엄마는 가게 입구에 도착하더니 “주인 여자가 없네.” 한다. 그 순간, 이 가게를 내놓았다는 소문을 얼마 전 누군가에게서 들은 듯하여 내가 “엄마, 혹시 주인이 바뀐 거 아니야?” 하니 엄마가 들어가 뭐라 뭐라 이야기를 주인과 나누더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나온다. “뭐래? 주인 바뀌었대?” 하니까 그렇다며 주인에게 동태포를 잘 뜨시냐니 “대충 뜰 줄은 압니다.” 하는 말에 못 미더워 나왔다는 엄마의 표정은 갑자기 길 잃은 아이 같다. 이제 단골 가게를 잃었으니, 제수용 조기는 어디서 사며 마음에 드는 동태포는 또 어디서 뜰 것인가. 난감한가 보았다.
단골이라는 말은 세습무에서 왔다고 한다. 아마 주치의처럼 길흉화복이 궁금할 때마다 찾던 무당을 ‘당골’이라 말하게 되면서 늘 정해놓고 찾아가는 곳을 단골이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주 들러 맛있는 시간을 즐기던 식당이 없어져 ‘이제 어디서 그 맛을 즐기지?’하는 아쉬움, 그리 예쁘지 않은 몸매 탓에 알아서 골라주는 옷을 몇 벌씩 사 오던 옷 가게가 폐점했을 때 막막함, 종종 찾아가 여유를 즐기던 서점, 혹은 카페가 없어져 갈 곳이 없던 공허감.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나의 맞춤으로 애용하던 사이트가 없어지거나 변동으로 겪는 당혹감. 이런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단골이란 말에는 푸근한 정, 무한한 신뢰와 친근함이 있다.
3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오는 미용실이 있다. 물론 나나 미용실측에서나 지역을 옮겨 다니느라 잠시 찾지 않았던 적도 있었지만, 구미 시내에 미용실이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안 이후로 쭉 나의 헤어스타일은 거기서 해결한다. 어떤 스타일인지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해준다. 이제는 까탈로운 남편까지도 함께 찾을 정도 단골이다.
가게에는 미안하지만 단골은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어 그런지 무언으로 알아서 해주는 친근함이 좋다. 물론 새로운 곳,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것도 좋겠지만, 몇 군데 정도는 나를 알고 내가 믿고 친근한 정이 있는 단골이 있어 마음 놓고 나를 맡겼으면 한다. 친정엄마도 얼른 한 가게를 정해 정을 붙여 단골을 만들기를 바란다. 마트에서 산 동태포가 영 못 쓰겠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