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작시선/ 한강문학 7호 여름호
백열전등
최 충 식
나는 아직도
내방에 백열전등을 켠다
형광등보다 몇 곱이나 밝고
전기도 적게 들어가는 LED로 바꾼다고 들 하는데
그 불빛 속에 들면
왜 차갑게 느끼는지 모르겠다
문명이란 밝음이 분명한데
왜 침침한 곳으로 내려앉으려는 것일까
흐릿한 촉수에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계
나는 그렇게 은밀해져 갔고
무슨 생각도 거기서 무르익고 있었다
꼬마전구 포장마차에서 마신 술이
얼마인지 몰라도
눈빛을 읽기에 충분하였고
등잔불 밑에서도
불그레한 여인을 족히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밤이 깊을수록
촉광을 더 낮춘다
내 영혼의 필라멘트가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습성
강아지 한 마리 들였다
예쁜 집도 사들고 와서
폭신하게 자리를 깔아주었지만
들어가지 않고
음침한 구석으로 파고들어
영 나오지를 않는다
붙잡아 밀어 넣어 보아도 속수무책
잠시 생각해 보니
강아지의 입장에선 전혀 다른 것 같다
사람의 눈이 즐겁게 만든 장치이지
무섭고 귀찮은 게 분명하다
집요하게도 싫다는 목욕을 시키고
치장을 하여
안고 다니는 그런 일
위한다고 오히려 학대를 하는 것은 아닌지
멀찌감치 집을 치워놓고
안정을 시킨다
그래 네 맘대로 편하게 살아라
나도 내 맘대로 사는 게 가장 편하다.
대취
얼마나 마셨나
저승길인가 싶었다
무주 공간을 알몸으로 둥둥 떠다녔는지
나 하나 어떤 이유인가
깨닫기라도 한 듯
헛일만은 아닌가 싶다
숙연하게 돌아와 머리를 짚으며
인연이란 게
어떤 조건 같지만
속에 있는 건 맑은 술과 같다고
취해야 어떤 여인도 아름다워 보이고
그 슬픔 속으로 함께 들 수 있다는 사실
자신만의 벽이
너그럽게 허물어지고 있었다
찌근찌근 흔들며
다시 살아온 듯
하찮은 일도 새롭게 보이는 아주 맑은 아침이다.
최충식 프로필
1988<시와 의식>지로 문단 데뷔. 한국문인협회 이사 역임. 국제 펜 한국본부이사와 충남지역 회장역임. 충남 펜 문학상, 충청남도 문화상, 대한민국 향토문학상 수상. 시집으로
<그리운 것을 더욱 그리워하면>외 다수. 현 국제 펜 한국본부 자문위원, 한국문학신문 충남본부장. 홍성도서관 <문예 아카데미> 출강. 다음 카페 <銀河의 뜰> 운영 . enha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