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홍구 - 시인
시집:《사랑 하나에 지옥 하나》, 《그 사람을 읽다》 외 10권 그 사람의 됨됨이를 꼭 찝어 내어 시어詩語로 풀어내는 인물시의 대가 허홍구 시인, 심리학 기초 정도는 벌써 뛰어넘은 경지! 두 발로 걸어서, 두 눈으로 보고, 두 손으로 쓰는데∽ 청진기도 없이 진찰을 한다. 그리고 처방전을 척 써 준다. 그런데, 기가 막 히게도! 테라피 효과가 크다. 그리하여 “개똥같은 이 세상”을 “살 맛 나는 이 세상”으 로 바꿀 “전천후 처방전”까지 기대하게 됐다. 문단에서,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결국은.(《한강문학》 3호, 회상기) |
한강문학 제36호 · 2024년 가을호 -권두시
유쾌한 부고訃告
그 선배는 꼭 밤늦은 시간에 전화했다
이미 꼭지까지 오른 취객의 목소리
홍구야, 내 서울 와서 술 한 잔하고 있는데 나오너라
술만 취했다 하면 버릇처럼 날 찾는 고향 선배
한동안 소식을 주고받지 못했는데
오늘은 그 선배 부인의 전화다(나는 형수라 부른다)
홍구씨!
누군교?
동수 형 마누라구마.
선배는 어디 가고 형수가 뭔 일로요?
형님은 죽었구마!
그 무슨 소린교?
세상에 천날만날 술만 먹고 날 애 먹이디만
며칠 전에 죽었구마!
그기 무슨 말인교? 어쩌다가요?
세상에 술 먹고 나를 그렇게 애먹이더니
가실 때는 마누라가 불쌍했는지 남들이 가는
병원 응급실에도 한 번 안 가보고요
요양원 신세도 안 지고요
자기가 좋아하는 술 한 잔 걸치고
목욕탕에 가서 몸도 깨끗이 씻고요
거기에서 쉬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구마!
이어지는 말씀이 유쾌합니다
형님 전화기에 살펴봤더니 그 많은 이름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은 홍구씨 뿐이라 이제 전화 했구마
좀 섭섭하고 불쌍하긴 해도 마누라 애 안 먹이고
자기 기분 좋게 가셨으니 슬픔은 잠깐이고
아이쿠, 이 양반 복도 많구나 했었구만요
그카고보이 복은 받았네요
오줌똥 안 싸고 그렇게 가고 싶은데
내게도 그런 복이 있을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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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교?(누굽니까)
*마누라구마(부인이라는 말씀)
*그 무슨 소린교?(그 무슨 말씀입니까?)
*천날만날(언제나)
*날 애 먹이디만(나를 애 먹이더니)
*죽었구마!(죽었다는 말)
*했구마(그렇게 했다는 말)
*그카고보이(그렇게 말하고 보니)
*있을랑가(있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