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김 군의 유사(類似) 맹장염
선박에서 근무하는 선원들도 일반 회사와 마찬가지로 제각기 직위와 직명을 가지고 있고 서열이 있다. 유사시에는 최고 책임자의 서열도 정해져 있다. 사관(士官)들이 아닌 선원들도 직장(職掌)을 팀장으로 견습원을 최하위 직급으로 하여 순위가 매겨져 있어 침실도 이에 따라 배정이 된다.
83년 5월이다. 영불 사이의 도버해협에 있는 대영제국의 상징인 하얀 절벽, “White cliffs”를 바라보며 지나 온 Folkeston항이다.
갑견(甲見:갑판견습원) 조○수 군이 appendicitis(맹장염)이란 의사의 1차 진단으로 2차 의료기관인 Medway Hospital에 입원시키고 10시가 넘어 귀선하자마자 1갑원 김○원이 역시 맹장염 증세라고 담당 3등항해사가 보고한다. 아연하다. 심상찮은 기분이다.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날의 일기를 보자.
[다시 OS1-1 김 군을 데리고 병원. 우선 문진(問診) 증세로 보아 맹장염 같단다. 어제 만난 그 젊고 예쁜 여의사(女醫師)에게 물었다. 이런 경우가 있을 수가 있냐고? 상황은 모르겠으나 있을 수는 있다고 한다. 일단은 입원시켜 두고 떠나기로 하다. 내 스스로가 멍해지고 내 자신의 배가 스물스물 아파 오는 기분이다. 외항의 바람이 세다. 20:00시경 A-1 Buoy에 도착. Sea Pilot를 태우고 Antwerp 입항 때마다 겪는 12시간의 고역을 시작하다. 모두가 녹초가 된다.]
그런데 그 다음날 입원 시키고 온 김○원 군이 맹장염이 아니라며 퇴원했는데 하행(下行) 때 영국의Brixham 외항에서 승선하도록 조치하겠다는 연락이 대리점으로부터 왔다. 추측컨대 맹장염이 아니고, 조x수 군의 입원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으로 생긴 증후군 같다.
그 사람도 안타까운 사람이다. 좋은 집안에서 자랐으면서도 어쩌다 일찍이 길을 잘못 들어 두 형과 달리 집안에서 버려져 오다가 정신을 차리고 재생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의 삶인데…, 그것도 조 군을 꼬봉 같이 곁에 두고 스스로 위로를 받으며 허물없이 오는 편지를 읽게도 하고 보낼 편지를 부르는 대로 대필해 줌으로 겨우 재미를 붙이며 바로 잡아가는 중인데 갑견 조x수 군이 맹장염으로 입원하고 옆에 없으니 갑자기 앞이 캄캄했던 모양, 자기도 배가 아프고 맹장염 증세를 나타낸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부분이다. 이런 것을 증후군이라 했던가.
결국 재승선 했지만 조 군이 없는 곳은 이미 그의 생활의 의미를 앗겨버린 것이다. 그 심정을 한 잔 술로 달래본다는 것이 도를 넘어 선내소란 사건으로 발전했다. 이해는 하지만 여긴 그 혼자만의 세상이 아니다. 선내에서 음주소란은 보통 일이 아니다. 옛날 같으면 반란에 버금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담당항해사와 갑판장의 의견을 참고, 본인의 의사를 확인, 하선귀국 시킴으로 매듭을 지었다. 자신의 불행을 더욱 조장하는 듯한 열등의식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괴롭고 어려운 기간이었다.
5. 통신국장의 눈 수술
카사부부, 루뭄바, 촘베, 모투부, 콩고내전, 자이레, 콩고민주공화국, 콩고강 등등 우리나라의 매스컴에서도 많이 들었던 이름들이다. 70여 년 전 국민학교 시절 콩고강을 탐험하던 영국의 탐험가 리빙스턴과 미국 기자인 스텐리의 극적인 만남의 얘기를 교과서에서 배운 기억도 있다.
1970년에 집권한 모투부 대통령이 나라 이름을 ‘자이르(Zaire)’로 고치고 총 32년간 통치하던 시절이었다. 1908년부터 1960년까지 식민지 통치국인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것만은 분명했기에 내가 처음 입항했던 1986년도에도 여전히 정치적˙경제적으로 벨기에의 영향력이 막강했다. 통치국와 피지배국의 관계는 대개 비슷하지만 식민지가 독립되고 나서도 한참 동안은 여전히 막강한 지배자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했음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영국과 많은 식민지들, 네델란드가 300년 동안 지배한 인도네시아, 60년 가까이의 벨기에와 자이레, 일본이 36년간 우리나라의 통치 경우 등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대서양쪽으로 흘러드는 콩고강(Congo River)은 아프리카 중서부에서 가장 긴 강이다. 길이는 4,700km로 아프리카에서 나일강 다음으로 길다. 유역(流域)의 강수량은 남아메리카의 아마존강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으며, 세계에서 수심이 가장 깊은 강이라 했다.
콩고강이라는 이름은 강 하구에 자리했던 옛 콩고 왕국에서 따 온 것이라 한다. 콩고강을 끼고 있는 콩고 공화국과 콩고 민주 공화국의 이름도 여기서 왔다. 1971년부터 1997년까지 자이르에서는 이 강을 자이르 강이라 불렀다.
이 강의 급류를 거슬러 70마일(약 150Km) 상류로 올라가면 이 나라 제일의 항구인 마타디(Matadi)가 있다. 강의 폭이 넓어 흐림이 완만한 곳에 곳에 부두를 만들었다. 강 하구에는 유속이 빠르고 상류에서 내려오는 사토(沙土)의 침전 때문에 항구를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
독립한지 30여 년이 지나도 여전히 옛 식민지배자였던 벨기에의 경제적 영향이 막대했으며 이의 한몫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식민지 시절부터 국영 해운기업인 CMB였다. 이 해운사는 정기적으로 벨기에와 자이레 사이에 선박항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흐름에 따라 자국선으로서는 채산이 맞지 않아 값싼 외국선을 용선하여 투입하고 있었다. 내가 승선한 홍콩 선주(船主)의 “Eastern summit”호가 바로 그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1986년 11월 21일. 이 항구에 입항 중 갑자기 선내 집단 설사환자가 발생. 파악해 보니 절반 이상인 15명이 설사증세, 탈수현상을 일으킨 자가 2명이다. 조사결과 조리장(調理長)이 현지에서 구입한 새우가 너무 싱싱하고 좋아서 초밥재료로 쓴 것이 밝혀졌다. 조리장을 불러 당분간 생새우는 절대 사용하지 말고, 모든 식기를 즉시 푹 삶아 소독하라고 했다. 아울러 좀 더 성의 있는 노력과 연구가 필요함을 일러 주었다. 자신의 경험만을 믿고 의지하는 대신 스스로 책을 찾고 연구하는 데서 자연스러운 발전이 있는 것이다. 만약 이 사실이 현지 당국에 알려지면 문제가 되는 수도 있기에 쉬쉬하며 정신없이 뒤처리를 마무리했다.
이런 판에 통신장의 눈에 다래끼가, 그것이 눈 속에서 났다. 별놈의 다래끼도 다 본다. Africa식 다래낀가? (나중에 알고보니 우리말로 '속다래끼'라고 했다). 도저히 아파서 견디질 못하겠다고 아우성이다.
일단 지역 병원에 의뢰했더니 이곳에서는 수술이 불가능하며 150여 키로 떨어진 IME(지명)까지 가야 가능한 병원이 있다하며 Dr. Zawadoshi 써준 Urgent Recommend(긴급 요청서)를 가지고 정오경 Agent가 수배한 짚차로 통신장을 데리고 출발했다.
연이은 얕은 산의 물결. 그리 넓지 않은 아스팔트 길이 군데군데 파헤쳐진 외길, 주변의 삭막한 인가(人家)들, 볼 것이라고는 그것 뿐이다. 인가들이래야 집이랄 것도 없다. 그야말로 야자수 잎으로 덮은 원시인들의 모습을 보는 듯도 했다.
구릉 위에 덜렁하게 세워진 [General Hospital] 이란 간판은 큼직하게 붙었지만 빈약하기 그지없다. 이것도 UN관계 기금으로 지어준 것이란다. 건물만 있지 내부의 시설은 병원이 아니다.
안과(眼科) 수술실이 없어 정형외과 수술실에서 해야 한다는데 들어가 보니 마치 도살장을 방불케 한다. 아마도 안과뿐만 아니고 모든 수술은 여기서 하는 듯 했다. 통신장이 울상이다. 그것도 수술 후 오늘 퇴원은 불가. 하루 밤을 묵어야 한단다.
수술이 시작되자 마취가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통신장의 아프다는 고함소리가 마치 이곳 들판 짐승의 울음소리 같이 들린다. 밖에서 기다리는 내 손에 땀이 난다. 수술을 마치고 나니 통증은 훨씬 사라진 모양이지만 정신적 안정은 되지 않은 듯 내 손목을 잡고 혼자 두고 가지 말라는 그의 간곡한 말림이 있지만, 부득히 대리점 Amiza의 직원인 Mr. Lelu를 통신장 곁에 두고 늦은 밤길을 운전사와 둘이서 귀선(歸船)길에 올랐다.
어둠 속의 Africa 내륙은 진땀이 날만큼 겁이 났다. 헤드라이트에 비친 한 가닥 길을 바라고 무지막지하게 속력을 내면서 달리는 운전기사의 팔을 잡고 제발 좀 천천히 가자고 애원했다. 어둠 이외는 아무것도 없다. 올 때는 낮이라 그런대로 바깥의 풍경이나 보였지만 밤에는 아예 보이는 것이라곤 가믐에 콩나듯 보이는 석유등 불빛 뿐이다. 바짝 신경이 곤두서고 발과 다리에 힘이 가고 손바닥엔 땀이 촉촉하게 벤다. 여기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시체도 못 찾을 것만 같다.
저녁 8시경 무사히 귀선. 마치 고향집에 닿은 기분이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다. 수고했다고 운전기사에게 Tip을 잊지 않았다. 고맙다고 했다. “아니다. 내가 더 고맙다.(입속으로는 ‘이렇게 살아 왔잖냐’고 중얼걸렸다) 내일은 당신 혼자 다녀와도 되겠지?” 그러겠단다. 그렇지 않아도 속도 입안도 타는 데 Super Cargo Mr. Waytack의 Second wife가 Kinsasha로부터 왔다고 인사차 방문을 두드린다. 가뜩이나 부글거리던 속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그래도 내 할 일은 해야 한다. 내일을 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 길이 내가 가야할 길이기 때문이다.(계속)
첫댓글 '이 길이 내가 갈 길이기 때문' 이라고요?
늑점이님은 사서 고생하는 것이잖아요.ㅋㅋ
하선해도 될 것을 오기로? 아님 젊어서 고생은 사서하기 때문?ㅋㅋ
후진국에서 병 치례라니.....ㅜㅠ
극심하게 더운 나라에서도 날 생선 초밥을 먹나요?
바람새는 여름엔 날 생선을 먹지 않는답니다.ㅎ
늑점이님은 고생한 야그인데 바람새는 원망스럽기만 하다니.....쩝
그때는 그랬지요. 여름이라고 일식집 장사 안하나요? ㅎㅎㅎ 부산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