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67)
몇 개의 이야기 12
어떤 종류의 슬픔은 물기 없이 단단해서, 어떤 칼로도 연마되지 않는 원석(原石)과 같다.
- 한강(1970- ),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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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기 없이 단단해서, 어떤 칼로도 연마되지 않는 원석(原石)과 같”은 “슬픔”은 “어떤 종류의 슬픔”일까요. 지난주에 이어 한강의 시 한 편을 더 불러낸 것은 아포리즘처럼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이 시에서 어떤 물음이 느껴져서입니다. “물기 없이 단단해서”. “어떤 칼로도 연마되지 않는”. 느껴지시나요, 이 “어떤 종류의 슬픔”! 지난주 금요일인 10월 18일 저녁에는 대구 아양아트센터 아양홀에서 <전태일 컴필레이션 콘서트 나비가 된 불꽃>이라는 공연이 있었습니다. 열한 팀의 뮤지션들이 참가한 이 공연에 앞서 지난해 이맘때쯤에는 ‘전태일이라는 시’ 『나비가 된 불꽃』(권선희 외 31명, 삶창, 2023)이라는 공동 시집 발간이 있었지요. 지난주의 공연은 이 시집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열한 팀의 뮤지션들이 이 시집에 수록된 시로 노래를 짓고 공연을 만들었지요. 그리고 이 중심에는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시절’을 살았던 대구 중구 남산동 옛집을 시민, 노동자의 힘으로 지키기 위해 2019년 설립하였고 수천여 명의 십시일반 동행으로 2020년 전태일 열사 50주기에 옛집을 매입하고 ‘전태일 문패 달기’를 하였”으며, 이어서 옛집을 ‘대구 전태일 기념관’으로 만들기 위해 앞장선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이 있습니다. 이 일에 작가들이 동참했고 “대구 중구 남산동 2178-1번지. 소년 전태일은 청옥공민학교 시절(1963년)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은 2019년 시민들의 모금으로 전태일 열사의 옛집을 매입한 후 대수선 과정을 거쳐 올해(2024년) 완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수많은 시민들의 성금과 너나없이 보탠 일손으로 이룬 기적입니다. …… 전태일을 기억하는 일, 불꽃 같은 용기로 세상을 바꾸는 길에 이번엔 대구의 음악인들이 친구가 되어 함께 걷기로”한 것이지요. “그 후 10년(2013-2022년) 동안 기업이 책임져야 할 영역 안에서 2만 명 이상 (아아!)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고, 그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팔다리가 부러지고 장기가 터지고 골병이 들었다. 또 정부가 책임져야 할 영역 안에서 대형ㆍ중형ㆍ소형 재난 사고가 거듭 발생해서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고, 2022년 10월 29일에는 서울 이태원에 놀러 나왔던 시민 159명이 경찰의 도움을 절규하다가 깔려 죽고 밟혀 죽었다. 이 모든 비명非命이 모두 일상 속에서 벌어졌으니 돌아가야 할 일상은 어디인가? 세월호는 지금도 기울어져 있다.”(「‘세월호’는 지금도 기울어져 있다」 중에서, 김훈 『허송세월』, 나남, 2024, 116-117쪽) 대구에서 전태일을 새삼 소환한 이유가 대구가 다만 전태일의 고향이어서만은 아닐 겁니다. “기업이 책임져야 할 영역 안”과 “정부가 책임져야 할 영역 안에서” “재난 사고가 거듭 발생”했고 “거듭 발생”함에도 기업도 정부도 책임을 다 지고 있지 않아서는 아닐까 생각하는 건 저 하나만의 생각은 아니리라 봅니다. 이리하여 “물기 없이 단단해서, 어떤 칼로도 연마되지 않는 원석(原石)과 같”은 “슬픔”은 “어떤 종류의 슬픔”일까, 라는 제 물음은 이런 “슬픔”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어떻게 저렇게 단단해졌을까, 로 이어집니다. (20241023)
첫댓글 대구 전태일 기념관이 서게 되네요.
원석 같은 슬픔이 기념관이 되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