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카시 교본 앞쪽에 보면 G장조 왈츠 마에스토소가 있다. 여기에 얽힌 얘기를 한 번 해 보고 싶다.
30대 후반에 들어서서 겨우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하고 비로소 기본기에 대한 눈을 좀 뜨게 되었지만, 실은 내가 대학 2학년때인가 레슨을 딱 한 달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 그 지역에서 연주가로서 상당히 알려진 분이었는데, 어느 날 레슨을 받고자 찾아 갔었다.
당시 레슨은 일종의 소규모 그룹레슨이었는데, 학생 두 세명이 카르카시 교본을 연습 하고 있으면, 선생이 돌아가면서 학생 옆에 와서 연주시범을 보이고 학생의 연습한 것을 선생이 바로 잡아 주는 식이었다.
레슨 시작부터 탄현법이나 왼손자세등 어떠한 기본기에 대한 언급없이 그냥 교본에서 바로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하루는 G 장조 왈츠를 선생이 와서 연주 시범을 보이는데 악상기호가 마에스토소이므로 좀 느리게 경박하지 않게 연주해야 한다면서 내가 연습한 템포보다 훨씬 느리게 시범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미 그 곡을 제법 빠른 템포로 연습을 한 상태였고 무엇보다 템포 감각이 잡히지 않은 상태였다. 갑자기 적응이 안되었다. 처음에는 느리게 시작했으나 곧 빨라지고 말았다. 몇 번이나 지적을 받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러자 선생이 짜증을 내면서 면박을 주는 것이었다.
“너 마에스토소가 뭔 뜻이야?”
“… 자… 장엄하게요….”
“ 알긴 아네. 그런데 그게 장엄한거야? 그리고 손가락도 그렇게 꾹꾹 지판을 누르는게 아니라…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아…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를 해 줘야 할지 모르겠다.”
“…..”
“다음으로 넘어가자”
모욕감과 당혹감으로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학생은 그 다음 교본 페이지를 넘겼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학생의 문제라기 보다는 선생의 문제였다. 학생이 뭔가를 잘못하고 있으면, 그것이 고의가 아니라면, 선생은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고 바른 방법과 방향을 학생에게 제시해 줘야 한다. 그것을 제시할 수 없으면 최소한 선생은 학생의 입장에서 고민해 봐야 한다.
이제 30여년의 세월이 지나 그 때의 그 학생은 이런 생각이 든다. 자기에게 당연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가르치는 선생과 배우는 학생의 관계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 선생은 내가 왼손지판을 힘으로 꾹꾹 누르고 있는데 대해 지적은 했지만 그 해결책은 얘기해 주지 않았다.
아마도 선생 자신은 굳이 그것을 배우지 않아도 되었을 지 모르겠고 고민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또 선생은 그것이 처음부터 안되는 그가 보기에 아둔한 나 같은 학생에게 가르쳐 줄 체계적인 지도법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80년대 초반의 그 시절이 그랬으니까.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데 그 선생은 내가 템포 감각이 없음을 알았을텐데, 왜 내게 메토로놈을 사용해서 그 빌어먹을 G장조 왈츠 마에스토소를 느린 템포에 적응해 연습해 보라고 얘기해 주지 않았을까?
(나는 그 때까지 메토로놈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그 정도는 조언해 줄 수 있지 않았을 까…? 선생의 연주에 존경심을 품고 배우고자 찾아온 소심하고 숫기 없고 순진했던 한 학생을 그렇게 다룰 수 밖에 없었을까…
결국 그 레슨은 한 달 만에 - 횟수로는 예닐곱 번 정도 되었을까 - 끝났다. 내가 이후 약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도록 레슨을 받을 생각을 내지 못했는데, 그 때의 쓴 기억도 무의식 중에 한 몫을 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첫댓글 ㅋㅋ
실감나네요.
올바른 지적 입니다.
왜그런지를 알려 줘야지~~ ^^
제 말이 그겁니다.... ^^
편안한 주말 되시길.
연주를 잘 하는 연주가가 반드시 좋은 선생님은 아니죠! 아픈 추억이 있으셨네요. 저는 학교 선배가 학원에 가서 기타를 배우면 딴다라 된다고 해서 못가고, 가르쳐주는 선배는 없고, 독학할 실력은 안되고 결국 기타를 포기했었어요.ㅠㅠ
그랬었군요... 그래도 지금은 좋은 선생님 만나서 열심히 배우시니까 얼마나 다행인지요. 앞으로 얘기 많이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한 주말 되세요. ^^
눈높이 수준의 레쓴이 아니라서
상처가 될수도 있겠어요~~
고놈의 카르카시는 맨날 바이블처럼 쓰이는게
클래식기타를 더 어렵게 만드는거같아요 ㅋ
기본기에 대해서는 거의 백지상태에서 카르카시 교본만 툭 던져진 그 상황이 지금 생각해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조마조마하기도 하고 그래요. 그나마 무리하다가 손을 다치지 않은게 다행스럽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