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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도탁스 (DOTAX) 원문보기 글쓴이: 카론 샤펜투스
오늘은 유비의 책사들에 대해 써보려고해.
내가 쓰고자 하는 인물은
제갈량은 너무나 유명하니 Pass
일찍 단명하거나 유비의 곁을 떠나 유비의 더 큰 세력확장을 돕지 못했던 방통, 법정, 서서, 황권에 대해 써보려고함
방통
(게임상의 방통 일러스트)
와룡봉추에서 봉추로 유명한 방통이야.
보통 연의에서 와룡봉추라고 제갈량과 공명을 띄워주는건 사마휘인 수경선생인데
이 호칭을 붙여준건 사마휘가 아니라 방통의 숙부인 방덕공이 붙여준 호칭임.
방통은 처음부터 유비를 섬긴건 아니었어
초기에는 형주의 주목인 유표를 먼저 섬기고 있었어. 하지만 유표가 죽고 유종이 위나라에 항복하면서 유종밑을 떠나게 돼.
그리고 적벽대전이 끝나고 남군(게임상의 강릉)전투에서 주유와 유비연합군이 조인을 물리치고
방통은 남군태수로 임명되어 손권밑에서 잠시 일하게 돼.
하지만 이후에 형주를 유비가 다스리게 됐고 방통은 유비밑으로 들어가 일을 해
(연의와 다르게 이리저리 군주를 많이 옮겨다니며 섬김)
유비밑으로 들어가서 뇌양현에서 현령을 하는데 방통은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
(이부분은 연의와 비슷함)
방통이 일개 현이나 다스리고 있으니 오나라의 노숙이 유비에게 직접 서신을 전달해서 방통은 그런 현령이나 할 사람이 아니라고 조언해줌.
그리고 제갈량도 방통을 현령으로 시키기엔 아까운 인물이라 유비에게 간언하고 유비는 방통을 불러들여 대화를 해보고는 제갈량 못지않은 대우를 해줬다고해
(인재보는 눈만큼은 당시대 조조와 원탑을 다투는 유비가 대화를 나눠보고 제갈량에 준하는 대우를 해줬다는거보면 분명 대단한 인물이었기는 할거야)
그리고 유비가 형주에서 익주를 취하기 위해 서쪽으로 진군할때 방통은 유비를 수행해서 같이 서쪽으로 떠나.
유비는 우선 서촉에 도착하여 그곳의 민심을 얻는걸 최우선시 했어.
방통은 익주를 빠르게 취하는걸 유비에게 권했지만 유비는 인의와 신의를 이유로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어.
하지만 점차 유비와 당시 익주목이던 유장과의 관계가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방통은 유비에게 세가지 안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서 진언을 하지.
연의에서도 나오는
1안=바로 성도로 쳐들어가서 유장에게 항복을 받아낸다.
2안=양회와 고패에게 형주로 돌아간다고 거짓보고를 하면 그 둘이 유비를 마중하러 나올때 그 둘을 잡아죽이고 익주를 취한다.
3안=완전하게 형주로 물러나 때를 기다린다.
유비는 2안을 받아들이고 실행에 옮겨.
이제 유장과 유비군의 전면전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유비는 익주를 확실하게 취하기 위해 유장을 공격하기 시작해.
그리고 익주로 진격하던 도중에 방통은 화살에 맞아 사망하는데 연의에선 이부분을 꽤 드라마틱하게 각색해놨지만.....
실제론 눈먼화살에 맞아죽었어. 상당히 안타까운 최후지.
낙봉파에서 유장의 부하인 장임의 계략으로 사망했다는건 나관중이 연의에서 방통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한건지
내용을 각색해서, 낙봉파는 적군이 매복하기 좋은곳이니 유비의 말을 방통이 빌려타고 가다가 매복한 장임군에게 화살에 맞고 죽는식으로,
중국 드라마 삼국지에서는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유비가 인의때문에 익주를 자기것으로 만들기를 망설이자 자기가 낙봉파에서 죽으며
유비의 책사를 유장군이 죽였으니 명분이 생기지 않았겠냐며 유비에게 유언을 남기고 일부러 죽는식으로 나오는등
눈먼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어찌보면 너무나 허무한 최후를 맞은 유비가 가장 아끼던 책사의 죽음을 나관중은 그냥 넘길수는 없었나봐.
실제로 낙봉파라는 지명도 존재하지 않는 지명이야. 그런데 웃긴건 중국놈들은 그 낙봉파라는 관광지를 만들어 장사를 해.
연의에서 나오는 조조군의 배를 사슬로묶는 연환계나, 방통이 못생겨서 유비가 쌩깠다는 이야기도 연의의 각색에서 나온 이야기들이야.
그리고 보통 나오는 방통거품설.
이건 사실 우리가 알 순 없는 부분이야. 다만 인재보는 눈이 뛰어난 유비가 처음부터 그를 중책에 기용한게 아니라는점과
유표와 손권밑에 있었을때에도 그리 큰 관직에 임명된적 없는거보면 거품인가 싶다가도
유비에게 중용되자마자 익주를 먹으러가는길에 제1 참모격으로 익주정벌에 참가했고, 거기서 여러 계책으로 유비를 도운거나, 유비와 대화를 해보고
방통이 보통인물이 아니라하여 제갈량과 동급의 직급을 준걸보면 분명 방통의 능력도 뛰어난 편이었을건 같아.
게다가 방통이 유비에게 낸 계책들의 대부분이 기습적인, 급진적인 계책들이 많아. 제갈량의 진지하고, 신중한 부분과는 꽤 상반되는 부분이기도 하고,
확실한건 방통이 살아있었다면 적어도 제갈량의 북벌에 도움이 됐거나, 형주를 잃고 관우가 죽는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았을수도 있겠지.
성도에 유비와 제갈량이 버티고 형주에 관우와 방통이 버티며, 한중에는 위연이, 파서지역에서 형주, 서촉으로 언제든 지원군을 보낼 수 있는 장비까지.
위에 열거한 인물들중 개인적으론 가장 아쉬운 인물이라 생각해. 이게 일찍죽어서 그런것도 있지만.
그리고 정사삼국지를 저술한 진수가 방통을 조조의 순욱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어.
유비에게 있어 순욱같은 존재인지 순욱에 버금가는 능력을 가진 인물이란건진 모르겠지만
법정
(게임상의 법정 일러스트)
법정은 유비가 익주를 취하면서 얻게 된 책사야.
법정은 장안 근처의 부풍군출신으로 전란으로 전 대륙이 황폐해지자 익주로 들어가 유장밑에서 일해.
근데 유장의 능력으론 대업을 달성할 수 없다는걸 알고 늘 장송과 한탄했다는 이야기가 있어.
유비가 장로의 익주침공을 막기 위해 유장은 형주에 법정을 사신으로 보냈는데, 법정은 유비와 대화를 나누고는
유비가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걸 알게 됐어.
그리고 유비밑으로 들어가 유비가 익주를 취하는데 많은 계책을 내.
이후 유비가 익주 대부분을 자기 소유로 만들고, 법정은 유장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서신을 작성해서 보내는 일을 했어.
간옹은 법정이 작성한 항복 서신을 들고가 유장을 항복시키고 유비는 형주에 이어 익주도 자기 손안에 넣게 됌.
익주가 유비밑으로 들어온 이후 법정은 유비에게 총애를 받았는데, 법정도 은근히 성깔이 좀 더러운 편이었어.
자기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자기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차없이 죽였지.
하지만 법정이 익주를 얻을때 세운 군공이나, 법정의 능력을 이유로 유비는 법정에 대한 처벌을 하지는 않았어.
그리고 법정은 백성들에 대한 법의 다스림을 조금 유하게 하여야한다는 주의였고
제갈량은 반대로 초창기에 법으로 백성들을 꽉 잡아놔야한다는 입장으로 서로 상반된 입장이었지만 제갈량은 법정의 능력을 항상 유비에게 칭찬하며
비록 그의 사람됨은 좀 못할지라도 법정이 가진 능력하나만큼은 제갈량도 인정했다고 해.
(그래서 유비도 그렇고 제갈량도 그렇고 법정의 막나가는 행동에 대해 크게 터치를 안한거 같아)
익주가 어느정도 안정된 이후 제갈량, 이적, 법정, 유파, 이엄은 촉과(촉의 법률)를 제정해.
법정의 최고 공적은 한중공방전이야.
법정은 직접 유비에게 상소를 올려서 한중은 익주땅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므로 이곳에서 조조군을 쫒아내고 차지해야된다고 진언을 하고 유비는 이를 받아들여.
유비는 한중에 위치한 정군산에 진을 세웠는데 이에 대응해 하후연 역시 진을 세우고 두 군대는 서로 싸움을 하게 됐어.
여기서 법정은 유비에게 계책을 알려서 황충을 높은 산에 위치하게 하여 하후연을 공격하게 해.
이 정군산 전투에서 하후연은 황충에게 전사하고 이 하후연의 전사소식을 들은 조조는 법정의 계책에 대해 매우 칭찬을 했다고 해
(하후연을 황충이 죽였는지, 황충의 군대와 싸우다가 병사들에게 전사한건지는 정확히 모름. 연의에선 일기토로 황충이 하후연을 죽였다고 묘사함)
그리고 하후연의 전사소식을 들은 조조는 직접 한중으로 친정해서 유비와 한중공방전을 벌이나 여기서 패배하고 한중을 유비에게 내주고 본인은 본거지로 돌아가지.
유비가 한중왕에 오르고 법정은 상서령으로 승진해.
한중공방전이 끝난 1년뒤인 220년에 법정은 사망해. 유비 생전에 유일하게 시호를 받았어(심지어 1년전에 죽은 관우조차 유비 생전에 시호는 받지 못했어)
이후 223년 이릉대전이 일어났고 유비는 육손의 화공에 의해 참패를 하고 백제성에 머무르는데
제갈량이 이때 법정이 살아있었다면 이릉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거고 설령 전쟁이 일어났다해도 크게 패하지는 않았을거라 아쉬워 했다고 해.
제일 처음 서술한 방통이 유비를 형주와 익주를 취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면
법정은 익주를 취한 유비가 그토록 벼뤄왔던 조조와의 대규모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큰 계책을 냈던 인물이야.
이릉대전에서 법정이 있었다면 이건 조조의 곽가에 대한 립서비스와 비슷한 느낌도 있지만 분명 유비도 인정했고 제갈량도 인정했던 인물이니 만큼
이릉대전에 참가했다면 유비의 대패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는 해.
서서
(게임상의 서서 일러스트)
개인적으로 삼국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야(다만 내가 좋아하는 서서의 묘사는 철저히 연의에서의 서서이지만)
서서는 유비가 신야에 있을때 유비를 섬기는 인물로, 자는 원직이고 개명전의 이름은 서복이라고 해
서서는 연의와 정사의 내용이 꽤 많이 다른인물인데, 연의에서는 제갈량의 등장전 유비가 그동안 만난 책사중 가장 훌륭한 인물이지.
서서는 어릴때 학문보다는 격검술에 흥미가 있었고, 주변인의 원수를 갚기위해 다른인물을 죽인적이 있어.
하지만 이내 관리에게 붙잡혔지만 서서의 동료들이 서서를 풀어줘서 서서는 살아남을 수 있었어.
이후 서서는 검을 버리고 학문의 길로 들어섰다고 해.
그리고 형주에서 공부하면서 석도, 방통, 제갈량, 최주평, 맹건과 같은 인물들과 동문수학하지.
제갈량은 늘 자기를 관중(관이오 - 제나라의 명재상)과 악의(전국시대 연나라의 명장)에 비교를 했는데
누구도 그에 동의를 하지 않았지만 서서와 최주평만은 그말이 옳다고 제갈량을 높이 평가했다고 함.
서서는 유비가 신야에 머무는 시절에 유비를 섬기게 돼는데, 유비는 서서를 매우 중히 여겼다고 해.
서서는 유비에게 제갈량을 추천하면서 필히 데려와야 될 인물이라 말하고, 유비는 그럼 니가 데려오세요 했는데
서서는 제갈량은 주공께서 직접 찾아가셔야 합니다 해서 유비는 제갈량을 찾아가 세번째에 만나서 데려왔지(삼고초려)
이후 형주의 주목인 유표가 죽고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하자 유비는 군을 이끌고 조조를 피해 남하하기 시작해.
그리고 이때 서서와 유비는 헤어지게 되는데 그 유명한 장판파전투에서 헤어져.
유비를 따라 10만명의 인구가 같이 피난을 가는데(이 10만명의 인구가 피난가는건 연의의 각색이 아닌 정사에 나오는 기록이다)
조조의 최정예부대인 호표기가 피난민들을 따라잡았고, 서서의 어머님이 호표기 부대에 억류돼.
결국 서서는 유비를 찾아가서
당신을 섬긴건 내 가슴이 시킨 일이지만 당신을 떠나는것도 내 가슴이 시키는 일이라고 절을 한 뒤에 북쪽으로 떠나 조조를 섬기게 돼.
조조를 섬긴 서서는 이후에 우중랑장(중랑장은 황궁경비대라 이해하면 편함)에 오르고 이후에 어사중승이라는 관직으로 진급을 해.
어사중승은 감찰기관으로 삼공(三公)이라는 국가 최고기관 중 하나에 속하는 어사대부 바로밑에 속하는 관직으로 높은 관직이지.
그리고 서서는 이때까지 이름을 서복으로 했으나 이 어사중승에 오른 이후에 이름을 서서로 개명했고, 이게 우리가 아는 서서라는 이름이지.
위에 서술한것처럼 서서는 유비에게 군략이나 계략을 조언하는 군사, 참군의 개념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정치에 능한 관리타입의 인물이야.
다만 제갈량의 등장을 더욱 더 맛깔나게 살리고, 동시에 실제로 유비가 서서와의 이별을 아쉬워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있으니
서서의 캐릭터를 제갈량에 못지않은 계략에 뛰어난 인물로 설정을 해놓고, 이렇게 뛰어난 인물이 자기보다 더 뛰어나다고 추천한 인물을 제갈량으로 잡아
제갈량을 연의 최고의 모사, 전략가로 등장시키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고 보면 될거야.
조인의 팔문금쇄진을 깨고 유비를 위기에서 구한것 역시 연의의 각색이고, 정욱을 통해 서서의 모친을 억류해놓고 서서를 어쩔 수 없이 찾아오게 만드는건
연의의 악역인 조조에 대해 독자들이 더욱 더 분노를 느끼게 하려는 나관중의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어.
개인적으로는 서서가 유비의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 남아있었더라면, 제갈량의 북벌시 믿고 맡길 수 있는 내정담당관이 서서였지 않았을까 싶어.
혼자 내정돌보고 북벌까지 해야하다 과로사에 가깝게 숨진 제갈량을 생각해보면 서서가 유비밑에 남아있었다면 내치에서 훌륭한 제갈량의 서포터로 자리잡지 않았을까?
실제 당시 제갈량이 겸했던 업무를 요즘식으로 표현하자면, 제갈량 혼자 도맡은 임무가 국방부장관, 국무총리, 기획재정부장관, 대법원 판사, 국회의장, 검찰총장 등등
조금 과장해서우리가 익히들었던 유명한 장관직이란 장관직은 거의 제갈량이 겸임했다고 쳐도 될 정도이니.
황권
마지막으로 소개할 인물은 황권이야.
위에 나열한 인물들에 비해 연의에서의 이름값이 좀 부족한 인물 아닌가 싶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뛰어난 인물이라 평가해서 같은 라인에 넣고 써보는거임.
황권은 익주에서 유장밑에서 일하던 인물로, 유장이 장로를 막기위해 유비의 입촉을 원할때 단호하게 거부하던 인물이야.
그에 빡친 유장은 황권을 주도 밖으로 쫒아내 태수직에 박아넣지.
유비가 익주를 취하고 성도를 포위했을때 황권에게 투항을 권유했지만 황권은 투항하지 않았어.
이후 유장의 항복소식이 들려온 후에 황권은 유비에게 투항하고 귀순하지.
(이 과정을 중국 드라마 신삼국에서는 좀 더 특별하게 각색하는데, 유장밑에서 가장 유능한 대신으로 나와.
그리고 낙봉파에서 방통을 죽이는것 역시 황권의 계책으로 나오고, 자신의 책사를 죽인 유비는 황권에게 대노하지만
방통의 유언에는 자신을 죽이는 계책을 황권이 만들었을거라고하며, 절대 그를 미워해선 안되고 중용해야 한다며
자기가 죽어도 황권을 얻는다면 더 좋은일이라는 식으로 황권을 엄청 띄워주지. 그리고 역사처럼 황권은 처음엔 유비를 섬기지 않으려 하지만
유비가 황권에게 방통의 유서를 보여주고 황권은 유비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식으로 드라마는 각색해놨더라)
이후에 유비의 한중공방전을 법정과 같이 참모로 전쟁을 수행해.
황권은 군사를 움직여서 당시 파군 일대를 수비하던 두호와 박호를 격파하고 그 지역을 차지하는 공을 세워.
법정과 같이 계책을 내서 당시 한중주둔 총사령관인 하후연을 죽일 계획을 준비하지.
위에 법정이야기때 어떤 전략으로 하후연을 죽인것인가 자세하게 서술하지 않았는데 그건 여기서 적으려고 그랬던거야.
법정과 황권은 계책을 세웠는데, 우선 하후연이 주둔해있는 주둔지의 오른쪽을 위나라의 장합이 지키고 있었고,
유비는 병사 1만명을 10개의 부대로 나눠서 야습으로 장합을 공격해.
장합은 유비에 대항해 맞서 싸웠지만 열세에 들어섰고, 장합은 결국 하후연에게 원군을 요청해.
장합이 이 원군을 요청하는 이 부분이 바로 법정과 황권의 계획이었던거지.
장합을 지원하려던 하후연을 산 높은곳 주요 요충지를 차지한 촉군이 직접 하후연을 공격하는 것이었고
하후연을 공격하는건 유비군의 가장 믿을만한 장수중 한명인 황충이었어. 황충은 결국 정군산전투에서 하후연을 전사시키는 큰 업적을 내지.
전체적인 전술적 지휘는 법정이 지휘했지만 대전략이라는 큰틀의 전쟁판도를 그린건 황권이라는 인물이었어.
이후에는 조조와 유비의 피튀기는 한중공방전 이후 조조가 한중을 버리고 본국으로 돌아가지.
한중공방전이 끝나고 유비가 한중왕이 된 직후에 오나라가 유비의 뒷통수를 치고 관우를 죽이고 형주를 먹어.
그리고 이릉대전때 성도를 제갈량에게 맡기고 유비는 직접 군을 이끌고 이릉으로 진출하는데 이때 황권도 유비를 따라 이릉으로 가.
다만 유비곁에서 유비를 보좌한건 아니었고 유비와 다른 루트인 장강 북쪽으로 진군해 진을 세우고 있었는데, 유비가 육손의 화공계에 대패하는 바람에
황권의 부대는 오도가도 못할 상황이 됐고, 결국 황권은 위나라로 귀순해버려.
이 황권의 귀순때문에 촉 내부에서는 황권의 가족을 죽여야 된다고 하지만
유비는 내가 황권을 버린것이지 황권이 날 배반한게 아니다라며 그의 가족에게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았어.
그리고 위로 귀순한 황권 역시 촉에 남아있는 자신의 가족이 다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유비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며 한귀로 흘려버려.
이후에 조비 이 싸이코새끼가 또 황권을 한번 떠볼려고 유비가 죽었을때 황권을 황궁으로 입궐하게 했는데 황권은 아무렇지 않게 황궁으로 들어가.
황권은 조비를 알현하고 조비는 이에 황권에게 감복해 더 큰 신임을 받았다고 해. 이후에 거기장군이라는 꽤 높은 장군직까지 올라갔다는 기록이 있어.
황권의 둘째아들은 촉한에 남아있었는데 이름은 황숭이야
(게임상의 황숭 일러스트)
황숭은 촉한을 계속 섬기다가 263년 정촉군대를 일으킨 위나라에 맞서 싸우다가 면죽관에서 전사하는 인물인데,
이 황숭이 제갈량의 아들인 제갈첨에게 음평을 넘어온 등애를 상대하기 위해 미리 요충지를 점거하고 적을 상대해야한다고 주장하는데
제갈첨이 받아들이질 않아, 결국 황숭이 눈물로 호소하니 그제서야 제갈첨이 의견을 수용했지만 이미 등애는 산을 내려와 평지에 주둔한 상태였고
면죽관까지 후퇴한 제갈첨이 끝내 등애와 싸우다 전사하니, 황숭도 자신의 수하들을 이끌고 필사적으로 싸우다가 전사해.
제갈첨이 황숭의 의견을 바로 수용하지 않은게 황권이 위나라에 투항해서라는 이야기도 있어.
아마 최훈의 삼국전투기에서도 그런식으로 묘사된걸로 알고있음.
위에 나열한 4명이 적어도 제갈량과 비슷한 시기나 조금 더 살았다고 가정하고 촉의 내부를 뇌피셜로 한번 상상해보자면,
(형주상실, 이릉대전발발, 유비사망까진 그대로 이어졌다는 가정하에)
제갈량의 북벌시, 마속이 아닌 법정을 참군으로 기용할 수 있으며, 제갈량의 내정담담업무를 서서가 대신할 수 있었을거고
제갈량의 신중하고, 진지한 군대움직임과는 달리
급진적이고 기습적인 전략에 능한 방통이 가장 그런 전략에 잘 어울릴 촉의 가장 뛰어난 야전사령관중 한명인 위연과 궁합이 잘 맞지 않았을까 싶어.
그리고 내정과 전투 두루 능한 황권까지 있었다면 더 좋았을테고,
머 어차피 가정일뿐이지만..
출처
와이고수 - 삼삼드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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