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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어서 본 ‘상윳따니까야(Saṃyutta Nikāya)’ 29강
제4장 사뚤라빠 무리 품
Satullapakāyika-vagga
사따(Sata)는 백이고, 울라(ulla)는 올라가다, 도약하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백 명씩 욕계천상 삼십삼천에 올라간 내용을 담은 품입니다.
사뚤라빠 무리의 천신들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뚤라빠까이까 데와따(satullapakāyikā devatā)는 선한 사람들을 칭송하는 무리의 천신들입니다. 이 무리의 천신들은 선한 사람들의 법을 받들어 행하며 귀의하고 오계를 지키는 등의 법을 칭송하여 천신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사뚤라빠(satullapa) 천신들에 얽힌 이야기를 주석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옛날에 상인 700명이 일주일 동안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가 중간에 무시무시한 태풍을 만났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타이타닉 영화처럼 많은 사람을 실은 배가 가라앉았습니다. 배가 가라앉게 되자 상인들은 모두 그들이 믿는 신들에게 기도를 하는 등 정신이 없었는데 한 상인은 요가수행자처럼 가부좌를 하고 편한 모습으로 명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장 다 죽어 가는데 저 사람을 뭐하고 있는가 하고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궁금해 했습니다. 이에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그렇게 앉아 있습니까? 하고 사람들이 물어보았습니다. 이 사람은 말했습니다. 나는 ‘이 배를 타기 전에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고 5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지금 죽어가지만 나는 마음이 행복합니다.
이 말을 들은 상인들은 어차피 죽을 것인데 편하게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배 안의 상인들은 이 사람을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하면 편하게 죽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귀의하고 5계를 받으면서 죽으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종아리까지 물이 닿았고 어떤 사람은 허벅지까지 물이 닿았고 어떤 사람들은 허리까지 물이 닿았고 어떤 사람들은 가슴까지 물이 닿았고 어떤 사람은 목까지 물이 닿았고 어떤 사람들은 머리끝까지 물이 닿았습니다. 이렇게 100명씩 5계를 다 주었습니다.
이들이 모두 죽어서 전부 욕계천상 삼십삼천인 도리천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계를 준 스승도 도리천에 태어났습니다. 마지막 죽는 순간에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서 아주 성스러운 훌륭한 생각들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 천상에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천신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가 이렇게 천상에 태어나서 너무너무 행복하다고 여겼습니다. 훌륭한 스승을 안 만났으면 지옥에 갔을지도 모르는데 하면서 모두들 행복해 했습니다. 죽기 직전에 스승님의 법문이 훌륭해서 우리가 천상에 태어났으니 우리가 부처님께 함께 가서 스승을 칭송하자하고 단체로 온 것입니다. 이상은 주석서에서 밝혀진 내용입니다.
삽비숫땅
Sabbhisuttaṃ
선한 자들 경(S1:31)
1. 에왕 메 수땅 에깡 사마양 바가와 사왓띠양 위하라띠 제따와네 아나타삔디깟사 아라메.
Evaṃ me sutaṃ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2. 아타 코 삼바훌라 사뚤라빠까이까 데와따요 아빅깐따야 랏띠야
Atha kho sambahulā satullapakāyikā devatāyo abhikkantāya rattiyā
아빅깐따완나 께와라깝빵 제타와낭 오바세뜨와 예나 하가와
abhikkantavaṇṇā kevalakappaṃ jetavanaṃ obhāsetvā yena hagavā
떼누빠상까밍수, 우빠상까미트와 바가완땅 아비와데뜨와 에가만땅 앗탕수.
tenupasaṅkamiṃsu,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aṭṭhaṃsu.
에까만땅 티따 코 에까 데와따 바가와또 산띠께 이망 가탕 아바시.
Ekamantaṃ ṭhitā kho ekā devatā bhagavato santike imaṃ gāthaṃ abhāsi.
2. 그때 많은 사둘라빠 무리의 천신들이 밤이 아주 깊었을 때 아주 멋진 모습을 하고 제따 숲을 환하게 밝히면서 세존께 다가갔다. 다가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어떤 천신은 세존의 앞에서 이 게송으로 여쭈었다.
삽비레와 사마세타 삽비 꿉벨타 산타왕,
Sabbhireva samāsetha sabbhi kubbetha santhavaṃ,
사땅 삿담마마냥야 세이요 호띠 나 빠삐요띠.
Sataṃ saddhammamaññāya seyyo hoti na pāpiyoti.
선한 자들과 교제해야 하고
선한 자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선한 자들의 정법을 원만하게 알면
더 훌륭하고 더 나빠지지 않게 됩니다.
삽비(Sabbhi)는 선하고, 참되고, 착한 사람들로서 지혜가 나서 진리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사마세타(Samāsetha)는 교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꿉베타(Kubbetha)는 해야 한다는 뜻이고, 산타와(Santhava)는 어울려야 한다는 뜻이고, 삿담마(Saddhamma)는 정법을 말합니다. 정법은 오계, 십계, 사념처 신수신법 등의 바른 법입니다. 여기서는 오계를 말합니다. 세이요(Seyyo)는 더 나은, 더 훌륭한, 이라는 뜻이고, 나 빠삐요(Na pāpiyo)는 더 나빠지지 않는다, 더 사악하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어느 날 아난다 존자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믿는 선한 자들이 승가에 절반 정도는 있어야 법이 오래오래 머물지 않겠습니까?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선한 자들이 반 정도가 아니라 선한 자들이 모일 때만 존재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법은 선한 자들에게만 어울리는 것이고 그 분들에게만 혜택이 있다는 것입니다. 선한 자는 5계, 십계 등 계를 지키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선한 자는 마음이 곱고 어질고 착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부처님까지 그런 분들과 어울리고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아타 코 에와따 바가와또 산띠께 이망 가탕 아바시.
Atha kho aparā devatā bhagavato santike imaṃ gāthaṃ abhāsi.
3. 그러자 다른 천신이 세존의 앞에서 이 게송으로 여쭈었었다.
삽비레와 사마세타 삽비 꿉베타 안타왕,
Sabbhireva samāsetha sabbhi kubbetha santhavaṃ,
사땅 삿담마만냐야 빤쨔 랍바띠 난냐또띠.
Sataṃ saddhammamaññāya paññā rabbhati nāññatoti.
선한 자들과 교제해야 하고
선한 자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선한 자들의 정법을 원만하게 알면
지혜를 얻고 다른 사람에게서는 얻지 못합니다.
여기서 첫 번째 천신은 선한 사람들과 교제하고 어울리며 정법수행을 하면 더 훌륭해지고 더 이상 나빠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 천신은 이와 똑같이 하면 통찰지를 얻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난냐(nāñña)는 다른 것 없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에게서는 얻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비유컨대 모래에서 참기름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미혹하고 어리석은 자를 통해서는 통찰지를 얻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참기름을 만들려면 참깨로 짜야하는 것처럼 지혜라는 것은 오직 선하고 착한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선한 자들의 모임이 중요하고 스승이 중요합니다. 스승이 바로 선하고 착한 자입니다.
여기서 빤냐(paññā)는 지혜, 통찰지혜, 위빠사나의 지혜가 아니고 일반적인 5계를 지키는 사람과 같이 지내면 빤냐(paññā)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빤냐(paññā)는 냐나(ñāna)로 봐야합니다. 냐나(ñāna)도 지혜라는 뜻이지만 통찰지혜가 아니고 이해하는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계율을 지키려고 해도 빤냐(paññā)가 있어야 합니다. 천신들은 5계를 지켜서 천상에 태어났으므로 행복의 개념은 있지만 아직 깨달음의 개념은 없습니다. 아직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과정의 행복은 아닙니다.
4. 아타 코 아빠라 데와따 바가와또 산띠께 이망 가탕 아바시.
Atha kho aparā devatā bhagavato santike imaṃ gāthaṃ abhāsi.
4. 그러자 다른 천신이 세존의 앞에서 이 게송으로 여쭈었다.
삽비레와 사마세타 삽비 꿉베타 산타왕,
Sabbhireva samāsetha sabbhi kubbetha santhavaṃ,
사땅 삿담만냐야 속까맛제 나 소짜띠띠.
Sataṃ saddhammamaññāya sokamajjhe na socatīti.
선한 자들과 교제해야 하고
선한 자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선한 자들의 정법을 원만하게 알면
슬퍼하는 자들 가운데서 슬퍼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천신들이 각자의 의견을 부처님께 말하고 있습니다. 소까맛제(Sokamajjhe)는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슬프다는 뜻입니다. 직장이나 가족의 일로 우울하고 슬퍼하듯이 우리는 슬퍼하는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슬퍼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가운데 착한 사람과 만나면 슬퍼하지 않습니다.
옛날에 사리뿟따 스님과 같이 생활하는 대중 스님(사띠 위하리)중에 상낏짜(saṃkicca)라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상낏짜(saṃkicca)스님은 당시 사미였는데 어느 날 아디뭇따라는 스님이 상끼짜 스님에게 비구계를 주려고 나이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사미 스님이 나이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가서 부모님께 나이를 물어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고향에 가는 중간에 500명의 도적들이 모여 사는 숲을 지나가야 했습니다. 거기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도둑들은 때리고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고 죽이고 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을 도둑들은 다 죽였습니다. 자기들의 정체가 세상에 알려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 사미 스님은 숲을 넘어가다 도둑들을 만났습니다. 이 도둑들은 숨어서 살기 때문에 만난 사람들 다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면 잡혀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미 스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사미 스님은 아라한과를 얻은 스님이었습니다. 스님이 생각하시길 이 사람들이 아라한인 나를 죽이게 되면 과보를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도둑들과 상의를 합니다.
나는 비구계를 받기 위해서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그러면서 옛날이야기를 합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산에 와서 토끼를 죽였다. 다른 동물들이 죽은 토끼를 보고 ‘나도 여기 있으면 죽겠구나’하고 모두 그 산을 떠났다. 그래서 그 산에 살던 사람들이 다 굶어 죽었다. 다 동물들이 죽었기 때문에 하루 만에 온 숲이 먹을 것이 없는 곳이 되듯이 당신들에게도 나를 죽이면 불이익이 돌아온다. 불이익이 오지 않도록 나를 놔주라고 말했습니다. 도둑들은 대신 우리가 여기 있다고 애기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약속을 지키기로 하고 집에 가서 부모님 만나고 사원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사미 스님 가족들이 도둑들 소굴 앞 숲을 지나가다가 도둑들에게 붙들렸습니다. 당신들은 왜 여기에 왔느냐고 물으니 “우리는 아디뭇따 스님의 어머니 아버지 동생이고 형제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스님은 우리한테 당신들이 여기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왔습니다. 그래서 도둑들은 약속을 지킨 스님에게 감동을 받아 스님이 한 법문을 모두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미 스님을 찾아가서 출가를 시켜달라고 했습니다. 스님은 나는 아직 비구가 아니라서 출가를 못 시킵니다. 비구계를 받고 출가 시키겠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도둑 500명과 가족들이 모두 출가했습니다.
아디뭇따 스님은 아라한인데도 나이를 몰랐습니다. 아라한도 모든 것을 다 아는 아라한이 있고 오직 탐진치를 다 버린 아라한들이 있습니다. 스님은 아라한이기 때문에 비구계를 받든 안 받든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상가의 규율이 있기 때문에 비구계를 받아야 했습니다. 스님은 비구계를 받은 후 나이를 먹습니다. 아디뭇따 스님은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슬퍼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적고 있습니다.
5. 아타 코 아빠라 데와따 바가와또 산띠께 이망 가탕 아바시.
Atha kho aparā devatā bhagavato santike imaṃ gāthaṃ abhāsi.
5. 그러자 다른 천신이 세존의 앞에서 이 게송으로 여쭈었다.
삽비레와 사마세타 삽비 꿉베타 산타왕,
Sabbhireva samāsetha sabbhi kubbetha santhavaṃ,
사땅 삿담마만냐야 나띠맞제 위로짜띠띠.
Sataṃ saddhammamaññāya ñātimajjhe virocatīti.
선한 자들과 교제해야 하고
선한 자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선한 자들의 정법을 원만하게 알면
친척들 가운데서 빛이 납니다.
네 번째 천신은 친척들 가운데서 빛이 난다고 하였습니다. 인도에서는 친척들에게 무시당하면 같이 못삽니다. 코끼리들도 말을 잘 안 들으면 왕따를 시킵니다. 그러다 나중에 큰 코끼리와 싸우게 만들어서 큰 코끼리와 싸우고 나면 맞고 다치고 혼자 떨러져 삽니다. 이렇게 혼자 다니다가 나중에 기가 죽어서 들어옵니다. 그래서 혼자 다니는 코끼리는 무섭습니다. 스님들도 말을 잘 안 들으면 왕따를 시킵니다.
부처님은 다른 스님들한테 찬나(Channa)와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벌을 주셨습니다. 찬나(Channa)에게 내가 누구라는 아상을 깨주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부처님도 석가 족에게 처음에는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왜 도망간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하느냐면서 부처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신통력을 보여주자 석가 족들이 인정했다고 합니다. 이때 불과 물이 동시 솟아오르는 신통력인 쌍신변을 보여주었습니다.
6. 아타 코 아빠라 데와따 바가와또 산띠께 이망 가탕 아바시.
Atha kho aparā devatā bhagavato santike imaṃ gāthaṃ abhāsi.
6. 그러자 다른 천신이 세존의 앞에서 이 게송으로 여쭈었다.
삽비레와 사마세타 삽비 꿉베타 산타왕,
Sabbhireva samāsetha sabbhi kubbetha santhavaṃ,
사땅 삿담마만냐야 삿따 갓찬띠 숙가띠띠.
Sataṃ saddhammamaññāya sattā gacchanti suggatinti.
선한 자들과 교제해야 하고
선한 자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선한 자들의 정법을 원만하게 알면
중생들은 선처에 태어납니다.
다섯 번째 천신은 착한 자들과 함께 하면 ‘중생들은 선처에 태어납니다’라고 했습니다. 삿따(Satta)는 중생으로 욕계, 색계, 무색계의 존재를 말합니다. 이때의 중생은 유정으로 마음이 있는 생명입니다. 보디삿다(Bodhisatta)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중생입니다. 그래서 삿다(Satta)는 존재를 말합니다. 숙가띠(Suggati)는 행복한 세계, 천상, 좋은 세상을 뜻합니다. 좋은 세상에는 인간 세상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천상을 말합니다. 숙가(sagga), 숙가띠(suggati), 수가띠(sugati)는 모두 천상을 말합니다. 두까띠(Dugati)는 악처입니다. 가띠(Gati)는 가다, 진행, 다른 존재로 감, 운명, 행위, 윤회, 집착 등 사양한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제 아제 바라아제’라고 하는 말은 ‘가자 가자 건너가자“는 뜻입니다. 건너가자는 말은 피안으로 건너가자는 뜻입니다. 피안은 괴로움이 없는 열반의 세계를 말합니다.
공덕 회향의 목적은 죽은 사람이 좋은 세상에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좋은 세상은 대부분 천상을 의미합니다. 여기서는 해탈은 모르니 천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천신들은 운이 좋아서 천상에 올라갔는데 너무 기분이 좋아서 자랑하는 것입니다.
7. 아타 코 아빠라 데와따 바가와또 산띠께 이망 가탕 아바시.
Atha kho aparā devatā bhagavato santike imaṃ gāthaṃ abhāsi.
7. 그러자 다른 천신이 세존의 앞에서 이 게송으로 여쭈었다.
삽비레와 사마세타 삽비 꿉베타 산타왕,
Sabbhireva samāsetha sabbhi kubbetha santhavaṃ,
사땅 삿담마만냐야 삿따 띳탄띠 사따딴띠.
Sataṃ saddhammamaññāya sattā tiṭṭhanti sātatanti.
선한 자들과 교제해야 하고
선한 자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선한 자들의 정법을 원만하게 알면
중생들은 안락하게 지냅니다.
여섯 번째 천신은 정법을 정확하게 잘 알아서 안락하게 지낸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정법은 5계로, 5계를 지켜서 천상에 태어나서 행복하게 잘 지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8. 아타 코 아빠라 데와따 바가완땅 에따다오짜.
Atha kho aparā devatā bhagavantaṃ etadavoca.
8. 그때 어떤 천신이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깟사 누 코 바아과 수바시딴띠.
kassa nu kho bhagavā, subhāsitanti.
세존이시여, 누구 말이 잘한 말입니까?
바가와(Bhagavā)
세존
9. 삽바상 보 수바시땅 빠리야예나 아삐 짜 마마삐 수나타.
Sabbāsaṃ vo subhāsitaṃ pariyāyena, api ca mamapi suṇātha.
9. 그대들 모두 방편으로 좋은 말을 하였다 그러나 나의 말도 들어보시오.
수바시땅(subhāsitaṃ)에서 수(su)는 잘, 이라는 뜻이고 바시땅(bhāsitaṃ)은 말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수바시땅(subhāsitaṃ)은 잘 말했다, 라는 뜻입니다. 빠리야예나(pariyāyena)는 방편으로,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천신들에게 ‘너희들 말도 좋은데 내 말도 좀 들어라’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삽비레와 사마세타 삽비 꿉베타 산타왕,
Sabbhireva samāsetha, sabbhi kubbetha santhavaṃ,
사땅 삿담마만냐야 삽바둑타 빠묵짜띠띠.
Sataṃ saddhammamaññāya sabbadukkhā pamuccatīti.
선한 자들과 교제해야 하고
선한 자들과 어울려야 하고
선한 자들의 정법을 원만하게 알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난다.
삽바둑카(sabbadukkhā)는 모든 괴로움이고, 빠뭇짜띠(pamuccatī)는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선하고 착한 자들과의 교류와 그들이 실천하는 계정혜를 닦으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6명의 천신들이 그 동안 계속 천상의 행복을 얘기 했는데 부처님께서는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며 마지막에 열반을 얻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0. 이다다마오짜 바가와. 앗타마나 따 에와따요 바가완땅 아비와데뜨와 빠닥키낭
Idamavoca bhagavā. Attamanā tā devatāyo bhagavantaṃ abhivādetvā padakkhiṇaṃ
까뜨와 땃테완따라아윙수띠.
katvā tatthevantaradhāyiṃsūti.
10.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천신들은 마음이 흡족해져서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뒤로 물러갔다.
이상이 선한 자들의 경에 대한 내용입니다.
어떤 천신은 부처님과 대화 후 그냥 떠나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천신들이 절을 하고 경의를 표하고 물러난 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이해되어 신심이 일어난 것입니다. 어떤 신은 계율의 중요성을 말하고 어떤 신은 보시의 중요성은 말합니다. 우리들은 주로 들은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천신들은 본인이 경험한 세계를 많이 말합니다.
< 묻고 답하기 >
(질문 1) 경전에 동의어 반복이 많습니다. 부처님 시대의 언어습관인가요?
(답변 1) 인도 전통은 반복이 많습니다. 어떤 행사를 하면 10명 정도 얘기하는데 사람들이 10명이 반복해서 한 이야기를 다 듣습니다. 아빈항(abhiṇhaṁ)은 자주, 반복한다는 뜻입니다. 빳짜웩카나(paccavekkhaṇa)는 관찰. 되돌아 봄. 반조라는 뜻입니다. 인도의 문화도 반복이 많지만 불교의 문화도 반복이 많습니다. 사실 반복이 학습효과에 최고입니다. 특히 빨리어는 문자가 없어서 암송으로 전해야 해서 반복이 필수입니다. 아울러 정신세계는 들어도 모르기 때문에 반복학습을 통해서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스님들이 출가하면 다사담마 숫따가 있습니다. 스님들이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 것을 암송하는 10가지 법의 경을 매일 아침저녁으로 반복(abhiṇhaṁ)해서 독송하고 또 실제로 경에 있는 대로 관찰(paccavekkhaṇa) 해야 합니다. 좋은 것은 잘 중독되지 않는데 나쁜 것은 잘 중독이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위대한 가르침은 반복에 있습니다. 옛날에는 문자가 없기 때문에 반복을 해서 알아듣게 합니다. 인도에 가면 길게 하는 행사들이 있습니다. 인도에는 지금도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반복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한국의 속담에 열 번 찍으면 넘어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와 같이 반복하는 교육이 중요합니다.
(질문 2) 천신과 부처님의 대화 때 아난다 존자도 같이 듣고 있었나요?
(답변 2) 부처님께서 천신들과 이야기 할 때 부처님은 방문을 닫고 혼자서 대화하셨습니다. 부처님은 밤 10시부터 4시 까지는 늘 혼자 계셨고 25년간 아난다 존자가 시봉할 동안 시자 이전 20년간의 부처님 법문과 천신과의 대화 내용을 부처님으로부터 듣고 기억하여 결집 때 송출 하였던 것입니다. 결집 때 아난다 존자도 인간이기 때문에 잘못 기억 할 수 있어서 500명의 아라한이 듣고 틀린 내용을 지적하면 정정한 후 합송하였습니다. 결집에 아라한으로 제한한 이유 중의 하나는 아라한은 아만이 없어 자기주장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2500년 동안 충돌 없이 그대로 부처님의 법이 전승된 원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암송도 반복해야 잊어 먹지 않고 잘 기억 할 수 있습니다. 경장, 율장, 논장이라는 삼장이 문자로 기록될 때까지 암송 전문 그룹인 바나까(bhanaka)들이 반복 암송을 해서 경전을 전승하였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컴퓨터등 문명의 이기 때문에 암송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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