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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사회와 근대화의 흔들리는 풍경
-소설가 정병우론
강 경 호
(시인, 문학평론가)
1. 출생과 삶
소설가 정병우(鄭炳禹)는 1925년 8월 23일(음력 7월 7일) 전남 장흥군 유치면 조양리에서 아버지 정민채(鄭玟采)와 어머니 문인암(文仁岩)의 2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1945년 3월 광주사범학교를 수료한 후 5년 가까이 장흥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해방 직전에는 일본 병사로 징집되었다가 전주부대에서 제주로 파송 중 목포에서 해방을 맞아 원대 복귀해 해산하였다. 고향에서 교직에 있던 정병우는 1955년 전주로 이거하여 <전북일보>에서의 근무를 시작으로 평생 언론사에서 일하였다. 1955년 전주에서 이금심(李今心)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1958년 서울로 이주하여 세계통신, 동화통신, 경향신문에서 일하게 되는데, 경향신문의 편집부장, 문화부장, 부국장, 논설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90년 9월 2일 기독교에 귀의하여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후 1996년 만 70세 때에 명예 집사가 되어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신앙생활에 몰두하다가 2010년 7월 30일 86세의 일기로 영면하였다.
그의 아들 정현에 의하면 아버지는 참으로 자상해 자신이 병상에 있을 때 간호하는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조차 싫어했다고 한다. 또한 아들의 기록(「우리 아버지에 대한 단상」(2010. 8. 2))에서 “아버지는 성실하시고 검약한 분이셨습니다. 아버지가 정리하신 우리집 가계도와 여러 서류들을 보면 참으로 하나하나 빠짐없이 또 분명하게 잘 기록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아버지는 병원비가 너무 많이 나오지 않을까 항상 염려하시고, 간병인을 쓰는 것도 싫어하셨습니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검약하고, 꼼꼼하고, 자상한 가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그가 아내와 둘이서 만년을 보냈던 서울 은평구 불광동의 미성아파트는 28평의 단아하고 소박한 공간과 병원에 입원했다가 집에 돌아오면 누웠던 침대와 흔들의자는 조용하고 점잖은, 그리고 검소한 그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소설가 정병우는 장흥의 현대문학을 연 작가이다. 장흥을 우리나라 유일의 문학 특구로 지정하게 한 100여 명이 넘는 작가들의 고장에서 그는 그들의 맨 앞자리에 있다.
정병우는 1954년 《현대문학》의 전신인 《문예》에 김동리·김팔봉에 의해 초회 추천받고, 이듬해인 1955년 31세 때 《현대문학》에서 추천 완료하여 문단에 나왔다. 1954년에 첫작품 「가재골」을 발표한 이래 1970년 9월 《월간문학》에 「너무나 긴 시간」을 발표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작품활동을 마감한다. 물론 10년 후인 1980년 《현대문학》에 「여신상」 한 편을 발표하지만 더 이상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실질적으로 16년 동안 작품활동을 한 셈이다. 그 16년 동안 중 10여 년 동안에 1년에 한두 편을 발표하고 이후로는 2년 또는 4년에 한 편꼴로 작품을 발표해 그의 작품활동은 초창기에 비교적 활발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에는 거의 작품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언론사 생활로 인해 문학에의 관심과 열정이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던 걸로 짐작된다.
그의 등단작인 「가재골」에서 때 묻지 않은 순박하고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후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전후 사회에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모습과 불신 사회의 건강한 인간상을 제시하기도 한다. 더불어 사회적 규범에서 일탈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그늘진 부분을 보여준다.
2. 소박함과 긍정의 아름다움
정병우가 등단작인 「가재골」을 쓴 시기는 아직 전쟁의 상흔이 깃든 시기이다. 1954년 《문예》 1월호에 발표하였으니 6·25전쟁이 끝난 1953년에 썼을 것이 분명하다. 이 시기는 아직 전쟁의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인데, 이 작품은 주인공 경수가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대에 기꺼이 입대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에 이 작품을 심사한 김동리는 심사평에서 “진실로 아름다운 작품이다. 여기엔 물론 거짓말도 과장도 들어있다. 그러나 그 거짓말과 과장마저도 여기서는 시(詩)로써 사는 길을 틔었다. 추한 것, 부정적인 것보다 아름답고 긍정적인 것을 우리는 좀 더 소박하게 사랑할 수 있어야 되지 않을까.” 긍정적이고 소박한 작품의 정신을 높이 산다. 또한 함께 심사했던 김기진도 “「가재골은」 실로 드물게 보는 가작이다. 소집영장을 받아서 군복 입고 철모 쓰게 된 일을 생각하고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어머니를 두고 떠나는 것이 서운하여 밤새워서 가재골 논에 가서 김을 매고 돌아오는 경수를 기피자로 오해하게 되는 것이라든지, 면사무소 마당에서 트럭을 타고서 대뜸 희권(군인)이 생각부터 했다는 거라든지, 헐레벌떡 뛰어오는 어머니를 보고서 반기며 우는 목소리로, “엄니… 가재골 논이이.” 하고 외치는 것이라든지 어쩌면 이렇게 사랑스러운지 불필요한 글자 한 개 없이 필요한 말만 제대로 제자리에 쓰여 있는 이 작품은 뻗어 나가려는 순진하고 청신하고 완강하고 반투명한 이 나라의 제2세 국민의 한 국면을 우리에게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괴상망측한 망종의 청년들이 가두에 범람하고 있는 반면에 순진·청신·완강·반투명의 청년이 무수히 성장하여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라고 하여 김동리와 같은 평가를 한다.
수많은 사람이 죽은 6·25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목격한 당시의 청년들은 군대 가는 일은 죽으러 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텐데, 오히려 기꺼이 군대에 입대하는 청년의 건강한 정신을 그려냄으로써 올바른 젊은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주인공 경수가 굳이 군에 가고자 하는 이유는 순수한 애국심보다는 “양권련”이나 “몇 벌이나 걸쳐 입은 옷” “모자” “구두” “자동차 승차” 등 때문이다. 대단한 애국심의 발로보다는 지극히 사소한 것들을 누릴 수 있음에 군 입대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던 것이다. 이는 경수의 순진함에서 기인한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많은 젊은이가 꺼리는 군대에 입대하려는 경수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는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매우 반길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소박함을 돋보이는 대목은 주목된다. 소집영장을 받은 날 밤에 경수가 사라진 것에 대해 징집을 꺼렸다고 오해하는데, 실상은 혼자 남은 어머니를 위해 밤새 가재골 논에 가서 잡초를 뽑은 대목이 그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입영열차를 타고 떠나면서도 주인공 경수는 “엄니! 가재골 논이이!” 하고 울먹이며 부탁하는데 주인공의 소박함이 묻어난다.
소설작품은 필연적으로 갈등 구조를 갖게 마련인데, 이 작품은 특별한 갈등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독자들에게 재미있게 읽힌다. 이후 발표하는 정병우의 소설들은 모두 그물 같은 촘촘한 사건의 구조로 짜여지며 갈등 구조로 만들었다가 그 갈등을 해소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3. 전후 방황하는 영혼들의 초상화
6·25전쟁 직후인 1954년에 문단에 데뷔한 정병우는 자연스럽게 전후 폐허가 된 사회의 현실에 관심을 갖게 된다. 철저히 파괴되고 잿더미만 남은 참담한 현실과 정치적으로 부패한 자유당 시대의 혼란 속에서 정의롭지 못한 세상은 불신 사회를 조장한다. 이러한 시대에 젊은이들은 절망한다. 이 시기에 쓴 정병우의 소설작품으로는 「상흔기」(1955), 「배회」(1957), 「장미빛 사진첩」(1962) 등이 그것이다. 이들 작품은 한결같이 6·25전쟁 이후의 방황하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상흔기」에서 순호와 인애는 결혼할 사이였지만 순호가 전쟁터에 나가자 인애의 부모가 인애를 다른 남자와 결혼시켜 버린다. 그러나 인애의 남편도 결혼 일주일 만에 전쟁터로 나가 전사해 버려 혼자 남게 된다. 순호는 전쟁터에서 한쪽 눈을 실명하고 다리를 하나 잃은 상이용사가 되어 제대한다. 다시 만난 순호와 인애는 순호의 끈질긴 설득에도 불구하고 쉽게 하나가 되지 못한다. 인애가 자신이 기다리지 못한 것과 결혼했던 과거 때문에 순호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인애가 자신의 과거 때문에 마음을 열지 못한 것을 밝히자 순호는 인애를 받아들인다. 이로써 순호의 몸의 상처와 인애의 마음의 상처가 사라진다. 이후 순호와 인애는 함께 고아원에서 전쟁고아들을 돌보게 된다. 6·25전쟁 이후 1950년대의 사회적 풍경이 그대로 전해지는 「상흔기」는 방황하던 두 젊은이가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1957년에 발표한 「배회」는 6·25전쟁기 혼란스럽고 무기력한 현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로 이 작품은 정병우의 소설에서 유일하게 1인칭으로 서술된 작품이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혼란스럽고 무기력한 현실은 답답하기만 하다. 주인공인 ‘나’는 취직하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닌다. 그러나 ‘배회’라는 작품의 제목이 암시하듯 이리저리 돌아다니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꿀 수 없는 답답한 현실만을 보여준다.
지난해의 난리를 개운히 잊었는가. 엊그제부터 살구나무에 새움이 돋히기 시작했다. 봄은 분명 닥아 드는가 싶은데, 나는 늦은 아침을 치른 뒤에도 우중충한 방에서 튀어나가려곤 하지 안했다.
지금쯤 어머니는 가게를 지키고 앉았을 것이다. 반백의 머리를 이고 까딱도 않는 중에서 오직 하나 사람일 수 있는 표적으로 눈알을 말뚱말뚱 굴리고 있을 것이다. 숱하게 지나가는 행인의 스물에 열은 거들떠본다 치더라도 겨우 세 사람이나 들려주면 좋은 편이고 그중의 한 사람이라도 흥정이 되면 다행인 그 한 사람을 바라고 오늘도 진종일 못박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어머니의 눈치를 매우 꺼리고 있다. 음성만 들어도 바늘에 찔린 듯이 찔끔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아침에는 으레 한번씩 바늘끝이 내 살갗을 쑤시고 마니 말이다.
자연의 순환은 다시금 봄이 와 만물이 깨어나고 있지만 주인공 ‘나’는 “우중충한 방에서 튀어나가려곤 하지 안했다.” 일자리를 구하러 다녀도 특별한 소득이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생을 의미 없이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가게도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숱하게 지나가는 행인의 스물에 열은 거들떠 본다 치더라도 겨우 세 사람이나 들려주면 좋은 편”이다. 이러한 집안의 사정에서 나는 “어머니의 눈치를 매우 꺼리고 있다.” 위의 인용문은 이 작품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암시해주는 대목이다.
난리가 나서 어쩌다가 피난길에 발길이 머문 마을에서의 삶은 참담하다. 그런데 이 마을의 상모라는 사람은 한글 사전을 보면서 무슨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희망을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나는 피난지에서 살구꽃이 세 번 피고 지도록 특별한 일 없이 이곳저곳을 배회한다. 어느 날 법정에 발길이 닿아 재판광경을 보게 된다. 아내가 남편을 죽이려 한 사건에 대한 공판이다. 남편은 생물학적으로 고자였다. 스무 살 먹은 여자는 재취였는데 남편이 악랄하고 잔인해서 견디지 못해 죽이려다 미수에 그친 것이다. 스무 살 먹은 문자라는 이름의 여자는 징역 2년을 받는다. 나는 공판정을 출근하다시피 하다가 다방에 들러 온종일 죽치는 일까지 더하게 된다. 그러다가 문자를 면회하러 다니는 일까지 더했다. 문자는 8·15 특사로 출소하게 되고 결국은 두 사람이 아이를 낳고 살게 된다. 나는 문자와 함께 밭에서 얻은 소출이 넉넉하지는 못해도 화락하게 살아간다. 그런데 고자가 나타나 평안은 깨지고 만다. 문자가 물에 투신해 죽고 말기 때문이다. 한글 사전을 보던 상모는 마침내 중학교 서무계 직원이 되고 나는 문자가 남긴 어린아이를 먹여 살려야 할 책임이 있기에 그동안 오랫동안 배회했던 삶을 마감하게 된다.
이 작품은 지루할 정도로 느껴지는 나의 배회 생활이 ‘어린애를 책임져야 하는 아버지라는 인식’으로 인해 끝난다는 단순한 서사를 전개한다. 전후의 어수선하고 무기력한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 속에서 자신의 길을 모색하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6·25전쟁의 사회 분위기를 잘 그린 작품으로 「장미빛 사진첩」이 있다.
“전후 사회는 똑바로 쳐다보기조차 무안해.”
대욱은 불쑥 혼잣말을 했다.
“서울에 지금 남아있는 것이 무엇일까? 사라져 간 빌딩자리에 술집이 막을 치고, 사람들은 공원 벤치에 앉아 시름시름 조는 것이 고작, 녹슬은 굴뚝, 바퀴 없는 자동차, 타다 남은 양복장, 찌그러진 장난감…….”
“지금 세고 있는 건 뭐죠?”
“종로 네거리에 뒹구는 사발 조각……. 전쟁은 지상의 많은 것을 앗아가고 꿈도 함께 싣고 갔어. 행운이 다가올까 싶지도 않으려니와 있대두 아득해. 그저 괴로워하고 몸부림칠 밖에…….”
“그게 현실이란 말인가요?”
전후 사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라져 간 빌딩자리에 술집이 막을 치고, 사람들은 공원 벤치에 앉아 시름시름 조는 것이 고작, 녹슬은 굴뚝, 바퀴 없는 자동차, 타다 남은 양복장, 찌그러진 장난감…….”만 남은 폐허뿐이다. 주인공 대욱이 전쟁터에 간 사이 그의 집과 가족도 사라졌다. 집은 폭격에 맞았는지 빈터뿐이고 창수, 창호 두 아이의 행방도 묘연하다. 아내 또한 생사를 알 수 없다.
정병우의 작품 속 인물들이 대부분 무능력한 것처럼 이 작품에서도 대욱은 군대에서 제대한 직후여서인지 무엇을 하긴 해야겠는데 특별한 일자리를 갖고 있지 못한다. 겨우 이발사를 하다가 아이를 찾기 위해 길거리에서 풍선 장수를 한다. 그러다가 분뇨를 수거하는 것이 고작이다. 이는 정병우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대부분 6·25 직후의 어수선하고 불투명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욱이 “전쟁은 지상의 많은 것을 앗아가고 꿈도 함께 싣고 갔어”라고 내뱉는 것이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처지도 6·25전쟁의 그늘이 드리워 있다. 순자 할머니는 아들 민수의 행방을 알지 못하고 있고, 언젠가 어떤 부인이 어린 여자아이 하나를 두고 가면서 아들 민수의 딸이라고 해서 키우고 있다. 순자 엄마라는 사람은 9·28 서울 수복 때 쫓겨가는 놈들의 총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소영은 남편을 전쟁터에서 잃고 전쟁고아들의 보모로 일하고 있다. 민수는 군대에서 탈영했는데 헌병들이 찾고 있다. 여자들을 끼고 살면서 개망나니 짓을 해대는데 그의 주머니에는 권총이 있다. 그 권총으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결국 죽임을 당한다.
대욱은 옛 전우의 아내인 소영과 우여곡절 끝에 가정을 꾸미는데 고아원에서 찾아낸 둘째 아들 창호와 할머니와 아버지를 잃은 순자, 그리고 소영이 낳은 씨가 다른 아이와 식구가 되어 함께 살게 된다. 참담한 전쟁의 비극을 통해 가족이 해체되고, 인정이 메마르고, 희망을 잃어버리지만,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들끼리 마치 누더기를 꿰맨 것 같은 가족을 이루게 되는 작은 희망의 메시지를 「장미빛 사진첩」은 전하고 있다.
4. 불신 사회의 건강한 인간상
정병우 작품의 사회적 배경엔 불신이 드리워져 있다. 6·25 전후 혼란스럽고, 절망적이고, 가난한 사회이기 때문에 인간의 본능인 순화되지 않은 비열한 욕망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할퀴고 물어뜯는 사회풍경을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불신 사회의 풍조를 배경으로 전개되면서도 끝내는 건강한 인간성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들은 「땀내와 더불어」, 「돼지집」, 「영도인간」, 「저류」, 「비예」, 「노루목」 등이다. 이들 작품은 불신 사회를 해학적으로 파헤친 것들로 불신을 극복하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땀내와 더불어」는 제목이 암시하듯 열심히 일하며 사랑을 키워가는 젊은이상을 그린 작품이다. 출판사 총무부장 영구는 일찍 출근하여 모범적으로 회사를 성장시키는 데 열중한다. 경리 일을 맡은 경희 역시 성실하게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결말이 보이는 진부한 이야기 전개이지만 두 사람이 회사와 사랑을 키워가는 모습에서 정직한 기쁨이 엿보인다.
「돼지집」은 40대의 돼지집 여자와 인전이라는 가정부 소녀, 젊은 첩 등이 얽힌 이야기로, 첩이 인전이를 괴롭히자 돼지집이 혼내주는 휴머니즘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첩은 남의 남편을 빼앗은 이기적인 모습을 지니기도 하지만 슬픈 운명의 나약한 인간으로 묘사된 점이 인간의 모습을 이분법으로 바라보지 않는 작가의 모습이 돋보인다. 그래서 돼지집은 인전이에게 가끔 첩을 돌봐주도록 한다. 약한 자에게 이끌리는 돼지집의 인정이 아름답다.
「영도인간」 또한 택시 기사 병두와 양품점 점원 인애의 서로를 위한 아낌없는 사랑을 그리고 있어 작품을 읽은 뒷맛이 행복하다.
「저류」는 교도소 부인인 은희에게 감옥에서 스웨터 하나가 전해지는 것으로 아름다운 사건이 전개된다. 이 옷은 교도소에 수감자들이 직접 손으로 짠 아이들이 입을 수 있는 옷이다. 스웨터 주머니에는 쪽지가 들어있었는데 “사모님, 김치 좀 보내주세요.”라고 쓰여 있었다. 그들은 영아살해범, 절도범, 간통범, 범인 은닉범 등의 여죄수들이지만 어린아이가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어 보내는 따스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다. 흔히 교도소를 떠올리면 부정적인 이미지만을 생각하지만, 이 작품 속의 교도소 소장 부인 은희, 여죄수들을 감시하는 윤 간수, 그리고 죄수들과 교도소 소장의 마음은 부드럽고 인정이 넘친다. 겉으로 볼 때 죄수들을 감시하는 윤 간수이기에 죄수들이 싫어하지만, 슬쩍 눈을 감고 죄수들의 심부름을 하여 또 다른 스웨터를 은희에게 전한다. 주머니 속에는 “사모님이 주신 김치 잘 먹었습니다”라고 써진 메모가 있다. 역시 윤 간수가 은희가 담근 김치를 죄수들에게 전한 것이다. 교도소 소장의 딸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교도소 소장인 은희의 남편은 “윤 간수에게 내가 알고 있단 말을 절대로 말아…… 알았지” 한다. 그러면서 “도대체 왜 이런 걸 내가 알게 만들었냐 말야.” 하는 교도소 소장의 능청 또한 이 작품을 읽는 재미를 더하게 한다. 겉으로는 엄한 표정이지만 속으로는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교도소 소장과 윤 간수의 능청스러운 행동들에서 훈훈한 인정이 느껴진다.
앞에서 본 작품들이 독자들에게 훈훈한 인정을 느끼게 해 주었다면 반면에 「비예」와 「노루목에서」는 그야말로 불신 사회에 대해 저항하며 건강한 사회를 꿈꾸는 인물들의 항거가 아름답다.
삼십 년의 역사를 지닌 이 사립 중학교에서, 창립 당시부터 군림해 온 이 학교장의 위치는 절대에 가까웠다. 다소 과장된 표현으로, 백 미터 멀리서도 보이면 고개를 숙이고,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자세를 바로잡았다. “교장선생님” 하기도 우러러보며 하여야 했다. 더욱 우스운 것은 이를 뛰어난 전통이라 자랑하는 것이다. 이 전통 이 자랑을 범은 늘 보고 들어 온 사람이었다.
언젠가 범은 이런 말을 했다.
“오늘 교장실에 불려가서 보았더니, 교장이 꼭 우승컵이나 감사장과 같이 생각되거든.”
그때 상우는 범의 말뜻을 얼른 새기지 못하였다. 교장을 교장실 책상 위에 올려 놓으면 우승컵처럼, 틀 속에 넣어 벽에 걸어 놓으면 감사장처럼 보이기 알맞은 존재라고 부연해 주어서야, 상우는 고소를 씹을 수 있었다.
그만 못하나 교감의 위치도 대단하였다. 교감은 교장의 직권에 깍듯이 의존하면서, 그 직권의 한 조각을 나누어 받았음이 분명했다. 이러한 권위로서 지배되고 있는 학교의 교무실하고도 직원회의 석상에서 “교감 그리고 교장”이란 과격한 말이라는 직원들의 표정이다. 교감을 분을 이기지 못해 어쩔 줄 모르고, 교장은 어느새 돌아앉아 버렸다.
심범이라는 교사가 송시민이라는 학생을 퇴학 처분을 내리는 것에 분개해서 “우승컵이나 감사장과 같이 생각되”는 교장선생과 교감선생에서 과격한 표현을 한다. 이 말은 단순하게 반말 조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대하는 말투만이 아니다. 심범이 학교에서 언제나 우월감으로 우쭐대며 교사들과 학생들 위에 군림하는 교장과 교감의 거짓 권력에 항거하는 소리이다. 교사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감히 빼 들 수 없는 칼을 빼 든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창립당시부터 군림해 온 학교장의” “절대에 가까”운 권력과 “교장의 직권에 깍듯이 의존하면서, 그 직권의 한 조각을 나누어 받았음이 분명”한 제2인자 교감의 권위를 순식간에 파헤쳐버린 이 항명은 심범이 교사직과 맞바꾼 사건이다.
자신보다 낮은 자들을 보살피고 마음을 써주던 심범이 끝내는 불신 사회, 돼먹지 못한 불량한 사회에 한 알 밀알이 되지만 끝내는 죽음에 이르고 만다. 심범이라는 교사의 죽음이 슬프지만, 교무회의 석상에서 모두가 교장과 교감의 눈치를 보며 머리를 조아리고 있을 때 내뱉은 그의 “교감 그리고 교장”이라는 과격하고 불손한 말은 더 나은 우리 사회를 위해 던지는 경종과 같은 것이었다.
「노루목에서」는 갖지 못하고 낮은 자들의 등을 처먹는 비열한 사회의 그늘을 파헤친 작품이다.
상훈은 저수지 축조공사장에서 아내를 잃었다. 자신의 논도 물속에 잠겼다. 현장감독 허정두는 회사에서 나온 장례비 삼만 원을 떼먹고 여전히 젊은 여자들에게 수작을 건다. 마을 사람들은 보상비 문제로 회사 측과 옥신각신 싸운다. 이때 상훈은 죽기 위해 저수지에 뛰어든다. 이를 달례가 말린다. 여산영감과 마을 사람들이 달려와 상훈과 달례를 구해낸다. 그런데 여산영감이 보이지 않는다. 물에 빠져 죽은 것이다. 이때 양녀인 권자는 허정두와 자동차를 타고 빠져나간다.
이 작품 역시 비극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보여주는 이 작품 속의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는 아직도 유효하다. 가난하고 못난 사람들의 등을 처먹고도 희희낙락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5. 사회적 규범의 일탈, 이에 대한 성찰
정병우가 1960년대에 쓴 작품 중에서 「여인주택」, 「축도의 날에」, 「너무나 긴 시간」 등은 남녀 간의 사랑을 매개로 한 것들로 제약된 사회규범을 일탈하며 나름대로 삶의 방식을 탐구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린 것들이다. 이들의 일탈한 모습을 통해 흔들리는 성(性)도덕을 보여준다.
「여인주택」의 세 자매 선이, 선아, 선애는 한집에서 살고 있다. 가장 큰 언니인 선이는 남편과 사별해 혼자 돈놀이하며 살고 있고, 둘째 선아는 최근 이혼해 혼자된 몸이다. 셋째 선애는 막내로 이들 세 자매는 이성과 성(性)에 대해 비교적 자유로우며 관대하다. 선이는 하숙생과 성을 나누다가 동생들에게 들켰지만 아무렇지 않다. 선아도 진호와 밀회를 하고 다닌다. 선애는 고궁에 나갔다가 우연히 만난 김 선생과 연애 중이다. 김 선생은 선애에게 호감과 신뢰를 주기 위해 4만 원을 맡겨놓는다. 그런데 이 돈을 동생 선애는 둘째 선아에게 빌려준다. 그러니까 이 돈은 맨 처음 큰언니 선이에게서 김 선생인 진호에게 빌려준다. 진호는 그 돈을 막내 선애에게 맡겨놓는다. 그러자 선애는 그 돈을 둘째 선아에게 빌려준다. 이렇듯 진호를 축으로 해서 세 자매는 돈을 매개로 자신들도 모르게 삼각관계에 빠진다. 이성 간의 건강한 사랑이 아닌 돈을 매개로 한 그들의 사랑은 쾌락과 사회적 금기를 넘은 것이어서 마침내는 서로에게 불신만을 갖게 되고 사랑은 파탄에 이를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다음의 두 작품 「축도의 날에」와 「너무나 긴 시간」은 1970년에 발표한 작품들로, 정병우가 초기기에 보여준 혼란과 불안한 전후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 것에 반해 위의 두 작품은 1960년대의 산업화로 성장하는 경제성장기에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회현실을 보여준다.
「축도의 날에」는 1960년대 젊은이들의 성과 결혼에 대한 의식을 드러낸 작품이다. 지영은 크리스천으로서의 본분을 지키려 하나 점차 성에 관대해진다. 미혼남녀가 성(性)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으며 임신이 되면 생명을 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이 변한다. 진구가 지영을 사랑하지만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을 나누는 것이 마치 결혼을 약속하는 것처럼 여기는 젊은이들의 결혼관이 배어있는 작품이다. 진구가 지영의 오빠로 남아 결혼식 날 아버지가 없는 지영의 손을 잡아 신랑에게 건네주려고 했지만, 신랑의 문란한 생활을 알고 난 후 신랑에게 신부인 지영을 인계하지 않고 식장에서 뛰쳐나온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자신의 사랑을 차지하지 못한 것에서의 배신감과 문란한 성도덕을 지닌 젊은이들 세태에 대해 성찰의 태도를 보여준다.
「축도의 날에」가 젊은이들의 성 의식을 파헤친 작품인 데 반해 「너무나 긴 시간」은 196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일어난 농촌의 해체와 가족의 해체, 더불어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사랑과 성 의식을 함께 드러낸다.
아버지가 젊었을 적에는 새벽에 떠나 서울에서 도시락을 비우고, 밤중에나 거의 절름발이가 돼 돌아올 수 있었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는, 이십 리 길을 걸어나가 거기 하루 세번 지나다니는 자동차를 얻어타고 서울을 왕래했다. 그나저나 하루 품을 들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도로가 확장되고 석달 전 시내버스가 들어와서부터, 이십분마다 뜨는 버스를 타면, 간단한 일을 보고도 세 시간 후는 거뜬히 다녀오게쯤 되었다. 이렇듯 버스 길이 열린 것이 종점에서 두 정류장 못 미친데서 들어가는 유원지의 소풍객을 위해서라는 사람이 있고 이곳을 장차 서울 지역에 편입할 계획으로 개발에 나선 때문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1960년대 서울 근교 시골이 개발되며 도시로 편입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주택이 들어서고 낯선 사람들이 마을에 들어와 살게 된다. 주변에 유원지가 생겨난다. 그러면서 도로가 확장되고 시내버스가 들어오면서 마을은 뒤숭숭해지며 동네 사람들의 마음도 변해간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상우는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중학교를 중퇴해 아버지 농사일에 끌어들이지만, 자꾸만 집을 나간다. 미스 홍은 자기 몸을 상품화시켜 돈벌이하고, 자꾸만 가출하는 상우의 여동생 미애는 기동이 아버지와 바람나 서울로 도망쳤다가 기동이 엄마에게 잡혀 온다. 선희 아버지는 가산을 정리해 서울에 갔다가 폭삭 망하고 돌아온 사람이다. 상우의 아내는 유원지 길거리에 가게를 열었다가 곁에서 좌판을 벌인 놈하고 눈이 맞아 서울로 도망을 친다. 아파트 경비원 심씨는 여자를 끌어들여 빈집으로 들어가 쾌락에 빠진다. 동구는 공사장 감독과 눈이 맞은 아내 선희를 찾아 낫을 들고 다닌다.
이 작품은 말미에서 상우가 미스 홍에게 “뭐래도 좋아, 뭐든지 할 작정이야, 사실은 당신이 포주고 나는 포주의 남편이지, 우리가 부자로 살 때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여자가 몇 사람 더 있어도 좋아, 건넌방에 재우고, 낮에는 유원지, 밤에는 마을에서……” 그리고 누군가 불을 지른 버스가 불에 타는 모습을 보며 상우는 희열을 느낀다. 아마 시골 마을이 이처럼 변한 것이 시골과 서울을 잇는 버스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근대화 과정으로 왜곡되는 농촌 마을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불신 사회와 물질문명의 폐해를 입는 농촌 마을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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