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常想/ 불기2558년 7월 초하루,백중기도5재 법문
다 같이 합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열반경에 있는 부처님 말씀을 송하여 드립니다.
<열반경>
“비구들이여! 만약비구들이
모든 것은 무상하다는 것을 깨달음을 닦고
모든 것은 실체가 없다 라는 것을 깨달아 닦고
모든 것은 깨끗함도 않고 더럽지도 안음을 깨달아 닦고
모든 생겨남과 사라짐은 법의 이치임을 깨달아 닦고
모든 것은 헤어져 떠나는 것이라는 생각을 닦고
모든 욕심을 떠나면 불법 속에 편안함이라는 생각을 닦고
모든 것은 결국 멸해간다는 생각을 닦는다면
비구들이여! 비구들에게는 번영이 기대될 뿐 쇠망은 없을 것이니라.”
합장 내리시기 바랍니다.
열반경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구들에게 설하신 말씀인데
모든 것은 무상하다는 것을 깨달음을 닦고
무상하다는 것은 무상상(無常想) 한자로는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무상하다는 생각.
항상 그대로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이 없지요.
모든 것은 실체가 없다, 라는 것을 깨달아서 닦고
실체가 없다, 라는 것은 ‘무아’입니다.
어떤 것도 나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일체의 모든 것들
그것이 생명 이였든, 또는 무생명이였든 간에 다 나라고 할 것이 없다.
무아(無我)지요.
모든 것은 깨끗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다.
우리 반야심경에 ‘불구부정’ 그러지요
그래서 불구정상(不垢淨想)
‘구정’이 없다.
더럽다거나 또는 깨끗하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상하지요.
우리들 항상 더럽다고도 하고 깨끗하다고도 하지요.
그런데 그것이 구분이 잘 안갑니다.
모든 것은 생겨남과 사라짐은 법의 이치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닦고
생멸상(生滅相) 그럽니다.
태어나고 죽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태어나는 것이 자연스럽다면 죽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지요.
모든 것은 헤어져 떠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서 닦고
별리(別離) 그랬습니다. ‘별리상(別離想)
별자는 이별한다고 할 때 별(別)자고
이(離)자는 떠날 이(離)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떠난다.
모든 욕심을 떠나면 불법 속에 편안함이라는 생각을 깨달아서 닦고
‘이욕상(離慾想)’입니다.
욕심을 떠나는 것.
이 세상 가만히 보면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고통이 얼마나 많습니까.
모든 것은 결국 멸해간다는 생각을 깨달아서 닦고
멸상(滅想)그럽니다. 한자로는 멸할 멸(滅)자.
마지막으로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만약 이와 같이 닦는다면
번영만 있을 뿐 쇠망은 절대 없을 것이다.
만약 비구들이
제가 지금처럼 읽어드린 것대로 하면 쇠망은 없다.
번영만 있다. 그랬어요.
세상에는 버려서 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석가’ ‘공자’ 그리고 ‘노자’
그의 비슷한 시대인데 석가가 조금 빠릅니다.
공자님 보다, 한 100년 정도 80년?
기록이 전부 또 달라요.
중국의 기록으로 보면
공자님이 석가보다 약 한 3~4백년 가까이 빠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 기록이라고 하는 것이 허망된 것이 많습니다.
또 중국에 다른 기록에 보면 또 비슷하기도 하고
노자도 비슷합니다.
공자님이 노나라 사람인데
노나라가 어딘가 하면 옛날에 샨동성 입니다.
우리나라하고 가깝지요.
노나라 사람인데, 키도 장대하고, 생각이 아주 곧았답니다.
생각이 곧은 사람이 처음에 직장을 가졌는데
직장이라고 해봐야 시골, 우리나라로 보면 ‘면 서기’ 정도 됩니다.
그러다가 조금 더 올라가서 과장 정도 되었지요.
그런데 면장님이나 아니면 군수나 위에 분에게, 국장에게 그럽니다.
‘국장님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만날 안 된다고 하는 것이어요.
밉습니까, 안 밉습니까?
밉지요.
안된다고 하니까.
잘렸습니다.
그래서 다른 군에 가서 한번 또 취직을 했어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안된다고 하니까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살지 마십시오.
국장님이 그렇게 하면 됩니까?
군수님이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또 잘렸습니다.
서너 번 잘리고 나서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아, ‘공부’라는 사람 저 사람 취직 시켜주면 안 된다.
똑똑하기는 한데, 입 바른 소리해서 안 된다.
가는 곳 마다 퇴짜 맞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는 것이 어떻습니까?
빈궁하지요.
그래서 빈궁하면 할 것이 뭐 있습니까?
빌어먹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공자가 어디 가면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다닙니다.
아, 그래도 혼자 오면 밥이라도 주고 며칠 잠이라도 재워 주겠는데
제자라고 해서 네다섯 명, 여나무명, 어떤 때는 이삼십 명씩
때로 몰려다녀, 밉습니까, 안 밉습니까?
밉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공자가 되었어요.
만약 공자가 좋은 직장에서 위에서 하자는 대로 따라하고
밑에 사람 잘 못해도 ‘옳다, 옳다’ 그렇게 하고 본인도 그와 같이 따랐으면
논어는 나오지 안했습니다.
공자도 안 됩니다.
노자는 평생을 외롭게 살았습니다.
‘은둔자’ 이지요.
어디 남 앞에 얼굴을 내밀지 않습니다.
저 산속에 초막을 짓고, 차 한 잔에 만족하고 ‘도’를 즐기고 살았습니다.
제자가 구름떼 같이 몰려오지만 전부 다 거부합니다.
‘아니다. 아니다.’
어느 날 노자가 친한 친구 집에 갔습니다.
친한 친구 집에 갔는데 그 친구는 왜 친한가하면 서로 도가 통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사랑채에 가득합니다.
술도 한잔씩 나누고 가만히 밖에서 들으니까
아, 역시 선생님은 훌륭하십니다.
선생님이야 말로 도를 아시는 분입니다.
저희들의 스승입니다.
아하, 내가 친하다고 했던 저 친구는 틀렸다.
악도에 떨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자기 거소를 발길을 돌렸다고 그럽니다.
그가 노자입니다.
노자‘도덕경’에 나오는
노자라고 하는 ‘도경’이라고 하는 것은
‘덕경’은 장자가 하신 말씀이고
‘도경’은 노자가 하신 말씀입니다.
도경이라고 하는 것은 겨우 5천 여자 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2천 한 500년이 되었건만
여전히 세상 사람들은 5천여 자에 열광합니다.
무엇이 열광하게 할까요?
무엇 때문에.
만약 노자가 황제였다면 열광했을까요?
노자가 대부호 장자였다면 열광했을까요?
석가모니 부처님은 정말 탄탄한 맡아놓은 정규직이 있습니다.
‘왕’이지요.
호령할 수 있고, 누구도 거부 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를 버렸습니다.
버리고 6년 고행하시고 평생을 길에 사셨으니,
요즘말로 하면 뭐 입니까?
‘노숙자’이지요.
만약 석가가 노숙자 생활을 안했으면, 왕이었으면, 거부 장자 이었으면
오늘날 석가가 되었겠습니까?
누가 석가모니를 부처라고 하겠습니까.
그러고 보니까 이 세 분의 성인은 모든 것을 버려서 얻은 분입니다.
여러분들 가진 것 버릴 수 있습니까?
그 위에 세 분은 버렸어도 나는 그것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보니까 가진 것도 별로 없어요.
버리려면 애초에 버렸어야 되는데
자, 가진 것도 없이 버릴 것도 없으면, 버릴 것 많습니다.
‘아상’ ‘무아’ ‘생멸한다고 하는 믿음’ 내가 갖고 있던 이런 고집들
못된 생각 이것을 놓고 버리면 주변에서 뭐라고 합니다.
아, 훌륭한 보살님이야.
아, 훌륭한 거사님이야.
그 소리 듣습니다.
그 소리 들으면 내생 보장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 못 듣고 주변으로부터 못된 XX.
이 소리 들으면 내생 보장 안 됩니다.
좀 무거운 말 했나요?
낚시꾼 이야기 하나 할게요.
부산 사람인데 저 온천장에 사는 거사가 무엇을 좋아했나 하면
낚시를 좋아 했어.
친구하고 그저 주말만 기다려요.
주말만 되면 호수로 강으로 바다로 낚시를 갑니다.
낚시하는 분들이 그래요, 그렇게 재미있답니다.
우리나라에 낚시를 하는 사람이 회원이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놀라지 마십시오.
600만 명이 넘는답니다.
600만 명이 일 년에 낚시 한번 가서 고시를 10마리씩 잡아오면
몇 마리이지요?
몇 마리가 죽어야 되요?
6000만 마리이지요.
백배하면 6억 마리.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저 남해,
이젠 낚시하다가 보면 배창도 커진답니다.
배타고 나가 기도하고,
바닷가에 저 툭 튀어나온 돌에다가 배가 내려놓고 간데요.
하루 종일 그곳에 앉아서 낚시질을 하는 거야.
그런데 파도가 밀려와서 한 친구가 파도에 휩쓸려 죽고 말았습니다.
이 사람은 겨우 살아 나왔는데
그 뒤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혹시 남의 목숨을 빼앗아서 그 친구가 죽었을까.’
나도 똑 같이 낚시를 했는데, 왜 그랬을까.
그래도 낚시를 못 놓아요.
너무 좋은 거야.
그다음부터 역시 바닷가 호수 강으로 낚시를 갑니다.
그런데 옛날하고 달라졌어요.
‘강태공’이 되었습니다.
곧은 낚시. 그러니까 낚시 바늘이 있어요? 없어요?
바늘이 없는 낚시 떡~ 드리우고 하루 종일 생각합니다.
이젠 집에서 보살이 보니까 언제부터인가 고기도 많이도 잡아 오고
별 고기를 다 잡아 오더니
어느 때부터 고기가 달라졌습니다.
씨알도 굶고, 그런데 자기가 먹고 싶은 고기는 안 잡아오는 것이어요.
그래서 나중에 알아봤더니
남편이 꼭 들리는 곳이 있어요.
올 때 어디에 들릅니까?
‘어시장’
자갈치 시장을 들려옵니다.
하루는 자갈치 시장에 떡 갔는데
늘 가던 집이어요.
바닷고기도 팔고 민물고기도 파는 아주머니한테 가서
‘아주머니 이 고기 주십시오. 하니까
자꾸 주인이 그랬답니다.
‘이것 가지고 가세요.’
‘아, 나 이 고기 살려니까.’
‘아니 그것 말고 이것 가져가세요.’
자꾸 고등어를 주더랍니다.
아니, 고등어를 내가 가져가면 그 보살이 속지 않는데
‘아니 조금 전에 다녀가셨어요.’
남편이 오면 이 고등어 주라고 했답니다.
이것 보살이 알고 있었습니까? 모르고 있었습니까?
알고 있었지요.
세상일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으로 짓기 때문에
마음이 변하면 다 세상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거사는 매일 같이 참선을 하는 것입니다.
출가는 못 했지만
삶과 죽음이 뭐냐?
무엇이 잘 사는 것이냐?
그래도 옛 친구를 생각하고
그런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겠습니까?
우리 불자님들이 백중기도를 귀해서 일주일에 한번씩
그래도 금년에는 참 잘되었어요.
일요일 날 되었으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 절에 와서 부처님께 참회의 절도 하고
또 스님법문도 듣는 시간 갖고
조상님을 위해서 분향할 시간을 가지니, 얼마나 좋습니까?
이런 것들이 또 쌓이고 쌓이면 훌륭한 재산이 됩니다.
어떤 분이 엊그제 저한테 아주 재미있는 동영상을 보내왔어요.
준혁이라고 하는 아이가 스님이 되는 과정인데
아마 저 사천 쪽에 사는 사람인가 봐요.
진주 쪽이나
진주 사천인데
3~4살 먹은 꼬마가 어머니가 절에 다니니까
TV한번 떡 켜니까
불교TV, BTN 켜니까
스님이 예불 올리는 것이 나오는 거야.
아이가 꼼짝도 않고 TV앞에서 뚜렷하게 쳐다봅니다.
목탁치고 절하고, 목탁치고 절하니까
자기도 따라서 목탁치고 절합니다.
엄마 따라서 절에 가서 보니까
똑 같거든
엄마가 목탁 사달라고 해서 조그만 목탁을 사주니까
자기도 TV앞에서 아침저녁으로 놀다가도 시간만 되면 똑 그 자리에 앉아서
목탁 치면서 절합니다.
네 살짜리가 그러면서 하루는 어머니한테
엄마 내가 스님인데
나한테 말 놓지 말고 함부로 대하지마세요.
무섭습니까? 안 무섭습니까?
내가 낳은 아들인데 아주 정색을 하고
그 다음부터 엄마가 ‘예 스님’ 그럽니다.
그래서 이 준혁이가 사천에 있는 어느 절로 갔어요.
가서 삭발의식을 합니다.
머리를 깎고 꼬마이니까
1년이 되어서 다섯 살 먹은 꼬마한테
옷을 맞추어서 입히고 가사 장삼도 입히고
이렇게 하니까 이 녀석이 매일 같이 좋다고
법명은 또 대승이야.
대승스님이야.
머리를 박박 깎고 거울을 보고 너무 좋아가지고
거울을 또 보고 또 보고 그럽니다.
전생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전생이 있으면 여러분들도 전생이 있겠지요.
전생이 있으면 내생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겠지요.
여러분들이 경전을 한 번 더 읽고, 깨침에 대한 생각을 더 하고
진리에 대한 생각을 한 번 더 하면
제가 장담하건데 내생에는 서울대학 가는 것은 문제가 아니고
하버드도 가는 것 문제 아닙니다.
아셨지요.
그 다음에 남을 미워하는 생각을 버리고
석가처럼, 공자처럼, 노자처럼
그런 마음을 소지 한다면
남을 위하는 생각, 남을 사랑한다는 생각
남을 돕는다는 생각 가지고 있으면
내생에는 여러분들이 평생 먹고도 남을 부가 생깁니다.
이것을 ‘재복’이라고 그럽니다.
믿습니까? (예)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