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젊은 아내의 비밀
날이 무척이나 좋았다.
휴일이기도 했으니 어디 가까운 산에라도 놀러 갔으면 좋겠다는 것이 강형사의
솔직한 심정이 있다. 하지만 실천에 옮길 수없는 이유는 그 첫째가 애인이 없다는
사실이었고,
둘째는 명왕성 그룹의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도 수사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워낙에 대기업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인 만큼
연일 비상이 걸린 것이나 진배 없었다.
강형사는 추경감이 회의에서 나오기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며 줄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어이, 강형사"
드디어 기다리던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반장님, 오늘 날씨도 좋은데 이게 뭡니까?"
강형사는 추경감을 보자마자 투덜거렸다.
"그래? 그럼 우리도 오늘 야외로 나가 보도록 하지, 뭐."
추경감은 이미 강형사의 마음을 짐작이라도 했다는 듯이 선수를 쳤다.
"아니, 정말이십니까?"
강형사가 반문했다.
"이 사람이 속아만 살았나? 상사가 하는 말을 안 믿어?"
추경감이 짐짓 역정을 내는 투로 말했다.
"무슨 말씀을! 어디까지나 확인일 뿐입니다."
강형사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그럼 어디로 모실까요? 북한산이나 관악산도 괜찮고, 도봉산도 괜찮습니다"
"산은 무슨."
"그럼 인천에라도 갈까요? 바다 구경이나 하게?"
"바다는 또 무슨."
추경감은 계속 시큰둥하게 말했다.
"반장님, 금방 어디로 나가자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했지."
"그런데 왜 자꾸 딴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야외로 가자고 했잖아? 돈 안 드는 고수부지나 가자고."
"돈이 들기는 다 마찬가지잖아요? 제 기름값 나가는데."
"그 똥차 기름값 줄여 주려고 가까운 곳으로 가자고 그러는것 아닌가."
추경감이 강형사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예, 예, 좋습니다. 아무튼 이 회색 건물로부터 탈출을 하자구요."
강형사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앞장섰다.
고수부지는 신선한 마람이 불고 그 속으로 다시 따뜻하게
만 느껴지는 햇볕이 쏟아지고 있있다. 강형사는 두 팔을 벌려 바람을 한껏 맞았다.
"유후,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멋진 일일 줄이야!"
"허허, 자네는 그래도 방안에 있었던 것은 아니잖아? 난
그 안에서 삶은 통닭이 되는 줄 알았네 그려."
그런 강형사를 바라보며 추경감도 허허로이 웃었다.
" 그 주름살이 모두 닭살로 되었으면 볼 만했겠는데요?"
"예끼 ! 이 사람!"
강형사의 농담에 추경감이 슬쩍 팔을 올리는 시늉을 하
자, 강형사는 순식간에 저만치 달아난다.
바람이 다시 그들의 읏음소리를 백사장 위에 흐트러 놓았다.
"반장님, 그런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는 많은 법이더군요."
"뭐가?"
"그 최화정이라는 여자 말입니다."
"명왕성의 안주인?"
"예."
"그 여자가 어때서"
강형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한강변을 떠다니는 유람선을 바라보았다.
"자기가 바람을 피우는 것을 합리화하는 것은 그렇다고
치고 말입니다, 그것을 남편인 고회장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보통은 아니잖아요?"
"음, 그리고?"
"그런데도 둘 사이가 원만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입니까?
세컨드나 내연의 처도 아니고 엄연히 본댁인데 한국 굴지의 명왕성 그룹의 안주인이 바람을,
그것도 수시로 아무하구나 눈만 맞으면 놀아난다는 사실,
정말 쇼킹한 뉴스가 아닙니까? 이런 것이 신문에라도 한번 때려지면 어떤 사단이 나겠습니까?"
"그래, 정말 우스운 일이지."
추경감도 한심스럽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고회장을 만났을 때 그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들었네."
"그랬습니까? 무슨 말을 했습니까?"
"앞부분의 이야기는 자네가 해준 것과 다름이 없었지.
그런데 고회장이라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어떤 면도 이야기가 되더군."
추경감은 지포 라이터를 철컥거리며 말을 시작했다.
고회장이 처음 최화정을 보았을 때만 해도 친구의 딸로서 예쁜 아이라고만 생각한
것은 사실이었다.
물론 그녀가 단지 친구의 딸로 아름답지 않았다면 자신이 그녀를 도와주
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 자신이 확신할 수 없는 일이기 는 했지만.
그 도움을 준 이후로 그 자신은 그녀의 일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코 끝이 매운 2월 어느 날 그녀가 회장실로 찾아온 것이었다.
"최화정이라는 분이 찾아왔습니다."
인터폰을 통해 비서의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최화정?"
그는 고개를 갸웃하고 물었다.
"선약이 되어 있는 분인가?"
"아닙니다."
"그럼, 돌려 보내."
뭔가 더 말을 하려는 비서의 말끝을 잡아채며 그는 딱 부러지게 말했다.
그는 인터폰을 내려놓으며 다시 한번 그 이름이 누구인가
생각올 떠올리려 해보았다. 하지만 기억은 텅빈 어둠뿐이었다. 나도 늙었나 보군.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번쯤 들어본 이름일텐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살며시 문이 열리며 앳된 얼굴의 여인이 들어섰다.
회장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의식한 여인은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를 했다.
"안녕하셨어요? 학비를 받고 있는 최화정입니다."
고회장이 최화정을좋은 인상으로 보게 된 것은 첫마디에
서부터였다. 전일의 만남은 그녀의 당돌함도 당돌함이었지
만 고회장으로서 불운에 빠진 친구의 딸을 보았을 뿐 그이상의 어떠한 면모도
파악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 말은 자기 자신에 대한 소개뿐만 아니라 상대
방이 자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까지 알려주는 센스 있는 말이었다.
"오, 그랬군. 내가 하마터면 그냥 돌려 보낼 뻔했구먼. 이리앉아."
고회장은 최화정에게 자리를 권했다. 잠시 후 비서가 차를 두 잔 가지고 들어왔다.
"미스 배, 그렇더라도 인터폰은 다시 누를 수 있도록."
고회장은 직원에게 간단하게 말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말이 길어야 번거로울 뿐이고, 짧게 하든 길게 하든 일할 놈은 하고 안 할 놈은 안 한다는
것이 그의 신조였다.
비서 역시 예 한 마디만 하고 방을 나섰다.
"그래, 학교 공부는 어떤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최화정은 고개를 15도 가량 숙인 상태에서 말하고 있었다.
밖의 날씨가 꽤 추운지 귀 끝이 빨갛게 얼어 있는 것이 보였다.
"밖이 추운 모양이구나!"
"예, 영하 15도나 된대요."
최화정은 고회장의 말에 미리 준비나 하고 있었던 것처럼 거침없이 척척 대답했다.
"아버지는 나오셨던가?"
"예, 덕분에."
최화정의 얼굴은 여전히 숙여진 상태였는데, 고회장은 불
현듯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지?"
"어머니가 일을 나가서 그럭저럭 먹고 살 만은 합니다."
"허허, 아버지는 뭘 하시고?"
"몸이 많이 상하셔서 누워 계세요."
"저런, 한번 인사를 가야 할 것인데."
최화정은 그 말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사무실이 참 넓으시네요?"
"그저 쓸모도 없이 넓기만 하지."
"잠깐 구경해도 되겠지요?"
"응, 좋을 대로."
고회장의 응낙이 떨어지자 최화정은 몸을 일으켜 외투를
벗었다. 몸에 딱 맞는 원피스를 입고 있어 외투를 의자에
놓자 동그란 엉덩이가 고회장 앞에 고혹스럽게 노출되었다.
"밖과 이곳은 서로 다른 별천지인 것 같아요."
최화정은 배시시 웃으며 고회장을 돌아보았다. 고회장은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며 사춘기 소년 같은 설레임이 잠시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최화정은 자기가 유혹했다고 했지만,
사실은 고회장도 응큼한 속셈이 있었던 거로군요?"
강형사가 추경감의 이야기를 끊고 물었다.
"그런데 그건 꼭 그렇지도 않아. 고회장은 그 정도는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었거든.
그 자제의 선을 최화정이 무너뜨린거야."
"어떻게요?"
"이런! 갑자기 눈빛이 달라지는군."
추경감이 혀를 끌끌 찼다.
최화정은 그 이후로 가끔 고회장에게 들렀다. 대부분은
길을 가다가 우연히 들렀다는 식이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약간씩 도발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그것이 타고난 색기인지, 철저히 계산된 작전이었는지는 아직도 고회장에게 확신이
서지 않는 일이었다.
그리고 모 잡지의 인터뷰에서 고회장이 포커를 줄긴다는 것을 알게 되자 때로는
포커를 둘이서 치게도 되었다.
최화정의 포커 솜씨는 일품이어서 고회장이 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어리광 섞인 그녀의 희망 사항을 들어주어야 했다.
그것은 악세서리에서 옷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여자가 꾸
밀때 쓰이는 물건들이 있으나 어떤 경우에는 기상천외의 요구가 있기도 했다.
"나, 쓸 만한 남자 친구 하나만 구해 주세요."
한번은 최화정이 이런 영뚱한 요구를 해왔다.
"응? 남자 친구?"
"그래요. 맨날 도서관에만 톨어박혀 사니까 남자 친구도 하나 없잖아요."
"허허, 여기도 하나 있잖아?"
"회장님은 친구가 아니잖아요?"
"어? 그래?"
"그럼요, 좋은 직원 있으면 하나 소개해 주세요. 저도 4학년이라고요."
그 말에 고회장은 그저 웃기만 했지만 속으로는 일종의 질투를 느끼며 자신이 주책이라고
스스로 나무랐다.
"그럼 남자 친구가 하나도 없단 말이야?"
"그럼요, 없어요."
최화정은 왜 그런 것을 묻느냐는듯 방글방글 웃으며 고회
장을 바라보았다. 고회장은 슬며시 그 눈길을 피했다. 그
녀는 좀더 테이블 위로 상체를 기울였다. 검정 블라우스의
앞섶이 살짝 열리며 풍만하면서도 탄력이 있어 보이는 그녀의 가슴이 반쯤 엿보였다.
최화정이 무어라고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말을
하다가 고회장의 뜨거운 눈길이 자신의 가슴에 머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는 가슴을 가릴 생각은 커녕 좀더 몸을 기울여 가슴이 거의 노출될 정도로 만들었다.
고회장은 온 몸에 참을 수 없는 욕정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이가 비록 있다고는 해도 규칙적인 운동으로 아직 젊은 이들 못지 않다고 자부하는 그였다.
도발적인 그녀의 모습은 이미 모든 것을 허용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화정아."
그는 손을 뻗쳐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최화정은 주
인의 손길을 즐기는 고양이처럼 만족스러운 얼굴로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녀 자신도 처녀는 아니었고 오랜 시간을 남자를 느끼지 못하고 지냈다.
비록 아버지 뻘의 사람이라도 남자의 체취가 느껴지자 점차 흥분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고회장은 계속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몸을 일으켜 그녀의 옆자리로 옮겨갔다.
최화정은 그의 손길이 얼굴 구석 구석에 미치도록 얼굴을 뒤로 젖힌 상태에서 거의 무아지
경에 빠져들고 있었다. 고회장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떨리는 손을 서서히 블라우스
안으로 집어넣었다. 최화정 은 입에서 단내가 나기 시작했다.
최화정은 노브라로 있었기 때문에 고회장의 손은 아무런 저항없이 두 젖 무덤 사이를
오가며 맘 내키는 대로 가슴을 주무를 수 있었다.
손 안에 보드랍게 잡히는 가슴의 감촉에 그의 감정은 폭발 일보 직전이었다.
인터폰이 울리지 않았다면 두 남녀의 유희는 어디까지 미쳤을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회장님, 재무부 장관님이 떠나셨다는 연락입니다."
언제나 아름답게 들리던 미스 배의 목소리가 오늘만큼 듣기 싫은 적도 일찌기 없었다.
최화정도 순식간에 옷매무새를 고치고 다시 새침한 표정으로 돌아가 있었다.
"자기 딸만한 여자한데, 자기도 딸이 있는 사람이 그럴수 있는 건가요?"
강형사가 화를 내며 말했다.
"후후후, 자네가 그런 위치, 그런 처지에 놓여 있다면 자네는안 그럴 자신이 있어?"
추경감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럼 경감님은 기회가 있으면 그러실 수 있단 말입니까?"
강형사는 '나미 같은'이라는 말을 넣으려다가 꿀꺽 삼켰다.
나미는 추경감의 딸이었다.
"이봐, 나쁘게 해석만 하지 말아요. 사랑에 나이가 무슨
문제야. 고회장은 배우자를 고르고 있었단 말야."
"그럼 고회장이 그 당시에 독신이었으니까 괜찮은 것이었다 이겁니까?
내가 한번 고회장한네 물어보고 말겠어요!
영혜라는 애가 60대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지 말이에요."
"후후, 그건 경우가 틀려."
"튿리긴 뭐가 들려요? 삼베 바지에 방구 빠져나가는 것 같은 그 웃음 좀 치우십시오."
강형사가 투덜거렸다.
"자네 질투하는 것 아니야?"
"질투라니요? 마른 하늘에 벼락맞을 소립니다.
고회장 같은 경우는 미성년자 강간범이나 똑같은 거라고요."
"적당히 해 두게. 늙은이의 순정을 그렇게 매도해선 안 되네. 고회장은 파렴치한 사람이 아니야!"
추경감이 계속 웃으면서 말하자, 강형사는 공연히 혼자 흥분한 꼴이 되어 열적어했다.
"하여간 그 둘은 그 이후에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지."
"흥, 그야 당연한 것 아닙니까?
볼 것 다 보고 만질 것다 만지고 안 가까와지면 그게 이상한 것이죠."
"이상하건 안 하건 그렇게 됐어. 내 말 좀 참고 들어."
추경감은 자꾸만 삐딱하게 말하는 강형사를 달래듯이 말을 계속했다.
"그런데 바람은 언제부터 핀 것을 알았답니까?"
"고회장도 머리가 빈 사람이 아닌 바에야 결혼을 하려면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소홀히 취급했겠나?
그녀의 뒷 조사를 한 것은 물론 기우는 집안과의 결혼이란 소리 듣지
않으려고 아예 그 집안의 회사를 다시 찾아주었다 이거야."
"어휴, 난 그런 처가 하나 못 가져 보나?"
"어렵쇼. 그게 부러워?"
"농담입니다."
강형사가 속을 내보인 것 같아 손을 흔들면서 변명했다.
"아무튼 조사에서 최화정은 수상한 점이 하나도 나타나지를 않았던 거야."
"사람은 살아봐야 안다니까요."
"그런 셈이었지. 일단 손 안에 든 것은 귀해 보이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
신혼의 단꿈 같은 시절이 지나자 고회장은 사업가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다시 찾기 시작했더란 말야."
"자연 가정에 소홀해지고, 안 그래도 불만이 점차 쌓이던
신부는 그 보상 심리로 길을 나서게 되었다는 신파조의 이야깁니까?"
"바로 맞혔어. 자네 강력계가 아니라 민원계 쪽으로 자리를 옮겨야겠구만."
"어이구, 그거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제발 그래 주십시오."
강형사가 추경감의 농담을 재치있게 받아치자, 추경감은
말을 못 잇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를 한참 바라보았다.
"자네, 그거 진정인가?"
"원, 천만에요. 농담입니다. 기동도 불편하신 반장님을 두고 제가 어디로 갑니까?"
"뭐, 기동이 불편해?" 추경감이 쌍심지를 돋웠다.
"기동이 불편하지요. 제가 가버리면 차도 한 대 없는 것 아닙니까?"
"허, 그건 그렇네."
추경감이 졌다는 표시로 손을 올리며 말했다.
"바람 피우게 된 사건으로 돌아가지요?"
강형사가 채근하자 추경감은 다시 말을 시작했다.
집안에 들어온 지 1년이 지나자 최화정도 집안의 분위기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 가장 이상한 일이기는 했지만,
그것도 생각하에 따라서는 운신하기에 그지없이 편안한 것이었다 나가고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도 누구 하나 챙기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전처의 소생들, 그중에는 최화정보다 나이가 많은 이도 있었지만 아무도
그녀가 집안의 새로운 안주인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표시하지 않았다.
그것이 아버지에 대하여 층성심을 표시하는 것으로써 유산 분배에 있어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에 서려고 하는 철 저한 계산 속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그녀가 안 것은
조금 시간이 흐른 뒤였다.
고회장과 갖는 침실 속의 관계도 괜찮았다. 그녀 자신은
불만족스러웠지만 고회장은 최소한 그 순간만은 그녀의 치마폭에서 행복한 것 같았다.
"아, 이게 뭐예요!"
그녀가 최초로 침실의 문제를 가지고 화를 낸 것은 2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몸만 잔뜩 달아오르게 해놓구요."
그녀는 뾰루퉁하게 말하며 고회장으로부터 등을 돌려 누웠다.
그러나 고회장은 그녀를 끌어 안으려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그는 지칠 대로 지쳐서 눈만 멀뚱거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을 뿐이었다.
"혼자 그러고 지내요!"
최화정은 벌컥 소리를 지르고 손님이 오면 묵는 다른 방으로 옮겨갔다.
고회장은 그제서야 상반신을 일으켰지만 여전히 그녀를 부르지는 않았다.
으레 부리는 투정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냉전은 생각보다 오래 갔다. 식구들 앞에서는 웃으며 말을 하고 있었지만,
밤이 되면 각 방을 쓰는 생활이 몇 달이나 계속되었다.
그것은 고회장이 직접 찾아가서 사정을 해도 영 해결이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러던 하루 그녀가 고회장의 침실로 건너왔다.
둘은 말이 필요 없이 격렬한 정사를 나누었다. 고회장으로서는 자기가 최화정을
만족시켰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자신은 무아경을 몇번이나 오르락거렸던 멋진 정사였다.
그러나 무슨 일로 그녀의 마음이 돌아섰는지 고회장은 벌컥 의심이 들었다.
대기업가의 날카로운 직감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뒷조사를 시켜 보자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런데 그대로 내버려 두었단 말입니까?"
강형사는 황당하다는 투로 말했다.
"문제를 삼으면 치부가 외부로 드러나게 되지. 고회장은
그런 일로 세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보다 자신이 암덩어리를안고 사는 길을 택한 것이지"
"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범인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 추경감도 동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그 양반은 다르게 생각했다는데 어쩌겠나? 그리
고 최화정이 비록 바람을 피운다 해도 그것이 자신이나 가족에게 누로 작용하지 않고,
또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처리하고 있으니."
"정말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군요."
강형사가 한강을 바라보며 심난하게 대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