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예모 감독의 영화 ‘집으로 가는 길’엔 특히 인상 깊은 소품이 보인다. 그 중 하나는 깨진 그릇을 고치는 연장이며 또 하나는 쫀득하고 구수해 보이는 중국식 만두다. 그리고 한 남자가 후일 아내가 될 여자의 집에 처음 찾아 갔을 때 느낀 “빨간 옷을 입은 그 모습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는 대사다.
중국의 산촌에 총각 선생님이 부임한다. 18살 처녀 ‘디’는 첫 눈에 선생님에게 모든 것이 쏠려 버린다. ‘디’는 무학이며 글을 배우는데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좋아 하는 건 선생님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낭랑한 목소리다. 평생을 들어도 물리지 않은 목소리를 듣고자 ‘디’는 늘 교실밖에 서 있는다.
한 남자의 그 모든 것을 좋아하는
18살 처녀의 마음을 당신들은 짐작할런지
...그토록 사모하는 선생님이 겨울 방학이 되기 전엔 돌아오리라는 말만 남기고 도시로 가버린다
. ‘디
’는 만두를 담은 그릇을 안고 떠나는 선생님의 마차를 달려서 쫓아간다
. 선생님에게 주려고 찐 만두였다
. 마차를 쫓아 산길을 달려가던 중
‘디
’는 넘어지고 그릇은 세 조각으로 깨진다
. 깨진 만두 그릇 앞에서 그녀는 결국 울고 만다
. ‘디
’가 울고 있는 가을 산엔 단풍만 무심히 붉다
.
깨진 그릇과 만두를 보에 싸서 집으로 돌아온
‘디
’는 몹시 상심한다
. 선생님이 떠나고 첫사랑의 증표와 같은 그릇마저 깨져 몹시 낙담하고 있는 딸의 모습이 측은 한
‘디
’의 어머니는 그릇 수선하는 사람을 불러 그릇을 잇게 한다
. 여기서 나는 처음으로 그릇을 고치는 모습을 보게 된다
. 먼저 깨진 사기그릇의 단면을 솔로 깨끗하게 닦아 낸다
. 조각난 그릇을 조립하여 끈으로 전체를 묶는다
. 그리곤 수공구를 이용하여 깨진 면의 좌우에 구멍을 뚫는다
. 작은 드릴을 아쟁의 활처럼 생긴 것으로 연주하듯 하면 구멍이 뚫린다
. 그 모습이 정말 아쟁을 연주하는 모습 같다
. 깨진 면에 접착제를 바른 뒤 접합하고 뚫은 작은 구멍과 구멍사이
(구멍이라곤 하지만 완전히 관통한 건 아니고 얇은 사기그릇의 절반 정도만 홈을 낸 것이다
)를 구리로 잇는다
. 그런 홈을 수 십개를 내고 구리로 잇는 것이니 고치는 것 보다 새것을 사는 것이 훨씬 값싸다
. 또 그렇게 그릇 수선 하는 사람도 말하지만 딸을 위해선 어머니는 구태여 고치게 한다
.
작고하신 박경리 선생님이 생전에 이런 요지의 말씀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
현대는 물건이 흔하고 너무 값싸다
. 그러니 쉽게 버리고 쉽게 산다
. 물건을 쉽게 버리고 쉽게 사니 사람조차 그렇게 취급한다
. 사람마저 일회용의 시대가 되어 버렸다
. 그러니 물건을 정성스레 만들고 값비싸게 팔아야 한다
. 그렇다면 물건을 아끼게 된다
. 넘쳐나는 쓰레기가 대폭 줄어들고 세상 물건에 대한 애정이 곧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발전한다
. 장예모의 영화
‘집으로 가는 길
’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렇게 그릇을 고치는 장면이었다
. 먼 길을 걸어걸어 와서 작은 악기를 연주하듯 그릇 하나를 고치고 돌아가는 늙은 장인의 뒷모습을 장예모는 끝까지 카메라로 쫓는다
. 아름답다
. 하찮은 것을 기어이 살려 내는 묵묵한 수작업의 미학
.
스무 살 총각 선생님은 열 여덟 처녀의 집에 처음 식사를 하러 간다. 마을에서 학교를 지어 선생님을 초빙한 것이라 선생님의 식사는 집집마다 하루씩 교대로 대접하는 것이 관례였다. 맛 있게 음식을 만들어 그를 기다리는 붉은 스웨터를 입은 처녀의 그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고 훗날 선생님은 아들에게 말한다. 그럴 것이다. 마음속에 성큼 들어선 사람의 아름다운 어느 순간의 모습은 이 세상 어느 그림보다 인상적이며 아프게 저리기까지 하다.
장예모의
‘집으로 가는 길
’은 말하자면 저염식의 식사와 같이 건건하고 다소는 싱거운 영화다
. 영화로써의 극적인 요소가 적다는 말이다
. 그러나 어떤 사람의 "붉은 스웨터를 입은 모습이 가을 햇빛 아래 참으로 인상적이었다"는 느낌이 남을 만 한 영화다
. 이런 저런 곁말을 붙이기가 미안한 영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