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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6일 주일메시지(사도행전 제 24 강 강해_아산UBF)
로마의 셋집에서
말씀 / 사도행전 28 : 1~31
요절 / 사도행전 28 : 30,31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2023년 사도행전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사도행전은 결론이 없습니다. 사도행전의 복음역사는 계속 지속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의 끝에는 보내주시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보내주시는 사람들을 잘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주의 종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28장 1,2절을 보십시오. 바울과 함께 한 사람들이 바다에서의 조난으로부터 건짐을 받아 상륙한 섬은 멜리데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키우는 반려견 몰티즈의 원산지 ‘몰타(Malta)'섬입니다. 몰타 사람들은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 건너와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난파되어 섬에 들어온 낯선 사람들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섬에 난파되어 온 사람들을 영접하여 주었습니다.
3절 전반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손수 나무를 하여 불을 피우며 함께 한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마음과 섬김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불을 피우며 성숙한 사랑으로 섬겼습니다.
3절 후반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해온 나무사이에 독사가 있었습니다. 불기운에 뜨거움을 느낀 독사가 기어 나와 바울의 손을 물었습니다. 독사는 바울의 손을 물고 놓아주지 않아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습니다. 꽉 물은 뱀의 독니에서 강한 독이 바울의 몸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독사에 물린 바울을 보고 멜리데 사람들은 인과응보라 판단하였습니다.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 멜리데 사람들도 악인이 벌 받는 것을 믿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논리를 하나님의 종 바울에게 적용하였습니다. 죄를 짓지 않았다면 왜 조난당했단 말인가? 남을 죽여 해한 죄를 짓지 않았다면 어렵게 살아난 사람이 독사에 왜 물렸단 말인가? 멜리데 사람들의 마음에는 저주와 징벌에 대한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독사에 물린 바울은 태연히 독사를 손에서 떨구어 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독이 퍼지며 사도 바울이 죽어갈 것이라며 지켜보았습니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죽기는커녕 독사에 물린 손조차 붓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 믿는 자들이 앞으로 경험할 일을 미리 예언하셨습니다. 마가복음16:17,18절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예수님 말씀대로 바울에게 믿는 자에게 임하는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멜리데 사람들은 독사에게 물리고도 해를 당하지 않다니, ‘신이다!’ 멜리데 사람들의 결론이었습니다.
7-10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예수님께서 연약한 자들을 감당해 주시고 손을 얹어 고쳐주신 것과 같이 멜리데 사람들까지 섬겼습니다. 멜리데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의 늙은 아버지의 열병과 이질을 고쳐 주었으며 섬의 다른 병자까지 고쳐주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의 능력과 그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치유의 능력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야만인에게나 동일하게 나타났습니다.
11-14절을 보십시오. 멜리데 섬에서 3개월을 거하며 겨울을 지냈습니다. 사도 바울과 275명의 사람들은 멜리데섬에서 주민들의 호의와 친절아래 겨울을 잘 지낼 수 있었으며 섬을 출발할 때는 많은 지원을 듬뿍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말씀을 전파하고 섬길 때, 그로 인한 혜택을 여러 사람들이 함께 누립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다가 혜택만 누리는 사람이 되지 말고 복음 전파와 섬김을 선제적으로 베푸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과 일행들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올라오는 곡물 수송선을 얻어 타고 로마로 향하는 항해를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수라구사에서 사흘 거하고, 레기온에서 하루를 지나고 보디올에 도착했습니다. 수라구사(시라쿠사)는 시실리 섬에 있는 항구입니다.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라고 외며 길거리로 뛰어나왔다는 곳입니다. 보디올은 나폴리 만에 있는 로마의 외항입니다. 드디어 이탈리아 반도에 도착한 것입니다. 보디올에는 예수님을 영접한 믿음의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은 형제들을 만나 7일을 함께 거하며 교제를 나눈 후 로마로 향하였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로마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로마교회를 누가 개척했는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때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영접했던 사람들 중에 로마로부터 온 사람들이 있었지 않았을까 추정합니다. 로마에 사는 유대인들이거나 혹은 유대교에 들어온 로마인들이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왔다가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영접한 후 로마로 돌아가 예수님 공동체를 이루어 로마 교회가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아시아와 유럽 각 지방을 다니며 이방인 선교에 힘썼던 사도 바울이 로마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로마의 형제들은 바울 일행을 영접하려고 왔습니다. ‘압비오 광장’은 로마에서 약 73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곳입니다. ‘트레이스 타르베네’는 로마에서 56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로마의 형제들이 이렇게 먼 곳까지 바울을 영접하러 나왔습니다. 바울은 로마의 형제들을 만나고 큰 힘을 얻었습니다. 로마의 성도들은 사도 바울이 보낸 로마서 서신을 이미 받은 바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를 개척하고 고린도 교회에 머무는 동안 로마에 있는 형제들에게 기독교 교리서라고 할 수 있는 로마서를 써서 보냈습니다. 로마의 성도들은 사도 바울이 외면적으로는 미결수의 모습으로 오지만, 그가 영적인 하나님의 종이요 주 예수님께서 쓰시는 대사도임을 알고 영접하러 왔습니다. 예전에 어떤 목자가 대전에서 천안까지 걸어왔었는데, 낮에 대전에서 출발하였는데 그날 천안에 도착하지 못해서 길에서 자고 다음 날 천안에 도착하였습니다. 로마의 성도들은 천안-대전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바울을 환영하고 영접하고자 온 것입니다. 15절 후반절을 보십시오.“바울이 저희를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로마의 성도들의 영접과 환영은 세계선교를 위하여 헌신하는 사도바울에게 큰 힘과 위로를 주었습니다. 성도들의 교제는 이런 점에서 중요한 것입니다. 업적중심인 사람은 교제를 알지 못합니다. 성과중심인 사람은 ‘교제’조차 본래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성과를 위한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균형 잡히고 전인격적인 신앙생활을 위하여 예수 안에서 성도의 교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여야 합니다. ‘교제’를 단순히 친하게 지내는 것이나 동등하게 수평적으로 여기는 것으로 단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친하게 지내면 된다고 여겨 예의와 매너를 고려하지 않으면 교제가 중단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친하고 편하다며 대놓고 막말을 하여 상처받는 일도 발생합니다. 성도의 교제이므로 서로 간에 모욕감을 느끼지 않게 배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거룩한 성도의 교제이므로 상대방이 무례하다고 느끼지 않도록 절제하는 법을 배워나가야 합니다. ‘몰라서 그랬다’ ‘그럴 의도는 없었다’ 이런 말로 설명하여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고자 하여야 합니다. 자기가 착하다는 생각, 자기가 영적이라는 생각, 자기가 더 낫다는 생각은 성도의 교제를 부담으로 만드는 원천임을 알고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으며 자신이 해오던 방식, 자신이 알아왔던 것을 기꺼이 버리고 배우며 개선하려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 중심, 말씀 중심이라는 자부심을 내려놓고 내가 예수님 말씀대로 살고 있는지 예수님의 대화하는 모습을 배우고 있는지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로마에서 바울은 엄격하고 비참한 수감자로 지내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바울은 감옥이 아닌 별도의 거처에 거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으로 찾아오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바울을 지키는 전담 병사가 한 사람 붙어 있었습니다. 원래 두 사람 병사가 지키게 되어있는데, 바울이 도주할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한 사람만 온 것입니다. 이 사람은 자연스럽게 바울에게 1:1로 성경공부를 하게 됩니다. 교대로 지키기 때문에 1:1양이 계속 교체되며 붙어 있게 되었습니다. 이 군인들은 로마 황제와 수도를 지키는 시위대 병사로 봅니다.
17절에서 25절 전반절까지 보십시오. 바울은 먼저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로마 유대인 공동체 리더들을 초청하였습니다. 바울은 유대인 리더들에게 자신이 로마에 오게 된 경위를 설명하였습니다. 로마 유대인들은 적대적인 마음도 없고, 호의적인 마음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일단 바울이 전하는 바를 들어 보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증언 하였습니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 구약성경을 가지고 예수님을 증언하였습니다. 바울은 구약의 증거대로 예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임을 잘 풀어 설명하였습니다. 24,25절을 볼 때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많은 유대인들이 영접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25-28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동참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택하신 족속이야, 제사장 나라로 살기에 합당치 않았습니다. 바울은 로마에서도 이방인 중심의 역사를 섬기고자 방향을 잡습니다.
30,31절을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바울은 이때로부터 2년 동안 자기 셋집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지키러 오는 군인이나, 호기심에 찾아오는 로마시민이나, 다녀간 군인의 가족이거나 말씀의 은혜 받은 친구의 소개로 오는 사람이거나 모두 영접하고 말씀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를 전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세상풍조를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자기감정과 솟아나는 욕심을 제어하지 않습니다. 말할 때나 생각할 때 생활하고 행동할 때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생활을 하니 죄의 열매가 맺히고, 그 결과 멸망당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는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을 영접하고 회개하여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도왔습니다. 하나님나라가 그 심령에 임하고 장차 오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 소망을 심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셋방 1:1말씀전파는 겨자씨 하나 같이 미약하였습니다. 죄수의 신분으로 셋방에서 하는 말씀전파는 확실히 미약해 보였습니다. 그에 비하여 로마의 영광은 대단하고 로마의 문화와 문명은 거대하며 막강합니다. 그러나 바울의 셋방 말씀전파로부터 시작된 복음은 자라나 313년 로마는 기독교를 공인하였으며, 392년에는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삼았습니다.
사도행전은 31절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거창한 결론이나 맺음말은 없습니다. 사도행전은 지금도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로마에서 말씀을 전한 것은 결말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세계선교 역사, 모든 족속으로 믿어 순종케 하는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세계선교 역사를 친히 인도하시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세계선교 역사는 내가 계획해서 내가 주도하여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며 하나님께서 인도하여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역사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만민을 죄에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자 피 흘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모든 사람과 이 은혜를 나누고자 마음을 먹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복음역사는 항상 새로운 길, 새로운 방법이었습니다. 1차 전도여행 때는 총독에게 전도하였습니다. 보행장애인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2차 전도여행 때는 자매님들에게 물가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점치는 여자에게서 귀신을 내쫓아 주었습니다. 회당장에게 전도하였으며 철학자들에게 논리적인 전도를 하였습니다. 3차 전도여행 때는 각지의 교회를 심방하고 믿음의 형제들을 격려하였으며, 두란노 서원에서 열 두 제자들을 집중적으로 가르쳤습니다.
로마에서는 찾아다니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셋방에 머물러 있었고 교대해가며 지키는 시위대 병사와 방문하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일대일, 혹은 그룹으로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로마에서 예수님을 전하는 방식은 이전과 달랐습니다. 매우 달랐습니다. 그렇지만, 이 방법은 세계의 중심 로마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이었습니다.
로마에서 사도 바울이 만나는 사람들은 로마의 Influencer들이었습니다. 함께 하는 시위대 병사가 그러하였습니다.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그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에게 매우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전도를 하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로써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대한 제국 로마를 변화시키기 위하여 거창한 포럼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일대일 성경공부와 그룹 공부를 하게 하셨습니다. 야심 많은 사람이었다면 거대한 로마제국을 생각하며 큰 이벤트를 고려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적이고 인격적으로 대화하며 예수님을 깊이 배우도록 하셨습니다.
성경을 공부하여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돕는 것을 대단히 중시하신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만드실 때, 아브라함 한 사람하고만 25년간 대화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나와 이스라엘 나라를 만드실 때, 모세 한 사람을 40년간 교육하셨고 다시 40년간 빈들에게 그와 대화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셋방에서 각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식을 전달하지 않았고 자신의 탁월함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사람, 두 사람 찾아오는 것에 대하여 조급해 하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혹은 여러 사람 숫자에 상관하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였습니다.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 역사에 귀하게 쓰임받기가 어렵습니다. 한 사람과 오래 깊이 있는 대화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길로 가기가 어렵습니다.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한 사람과 오래 대화하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가르치고 함께 배워나가는 것이 지성인들을 돕는 옳은 방법이며 오늘 성경 말씀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빨리 큰 역사 이루려는 사람, 빨리 큰 역사 이루어서 자기가 영광 받으려는 사람은 서두르고 조급하기 때문에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며, 한 사람과 오래 대화하기를 힘들어 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다 놀고 있는 것 같고, 문제가 많다고 여깁니다.
보내주시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영접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며 오래 대화하고 이해하고 섬길 때,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생명 역사가 있습니다. 제가 개척 초기 어느 시니어 목자님 모친상에 문상 갔더니 저더러 그 목자님이 한마디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큰 일 하려고 하지 말고 준석이 지연이 잘 섬겨!” 허준석 형제가 예수님의 사랑을 마음으로 믿기까지 5년 간 일대일 성경공부를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결혼하기까지 10년 걸렸습니다. 일대일 해주러 양을 찾아다니기까지 15년 걸렸습니다. 허지연 목동의 양인 이모세 목자는 믿음 갖기까지 6년 걸렸습니다. 허이삭 목자보다 1년씩 더 걸렸습니다.
2009년쯤인가 어떤 분이 상명대학교 천안캠퍼스에 교수로 부임하여 기도제목을 제시하였는데, ‘3년 내에 12제자와 12마리아를 세우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보다 앞서서 공주대학교 공과대 앞에는 누군지 모르지만 100명이 예배드릴 수 있는 센터를 얻었던 것을 보았습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바울의 셋집에 100명 200명 올 수 없었습니다. 20명, 30명 올 수도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셋집 역사는 이전보다 규모가 작았고 이전보다 더딘 것으로 보이는 역사입니다. 규모가 작고 더딘 역사로 보였지만, 보내 주시는 사람들을 영접하여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심을 가르쳤을 때, 이것은 위대한 역사였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보내주시는 적은 수의 사람들을 귀하게 영접하는 목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내게 주시는 한 사람을 이해와 사랑으로 영접하는 목자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랑으로 인내로 이해로 섬기되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주님이신 것을 전하고 가르치는 목자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일을 우리 삶을 마치기까지 해나가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아산 UBF
아산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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