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광반야바라밀경_68. 무진품(無盡品)
이때 수보리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모든 부처님의 도는 크고 매우 깊은 것이다. 나는 차라리 세존께 여쭈는 게 낫겠다.’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어떻게 다할 수 없는 것입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허공과 같이 다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은 다할 수 없는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마땅히 어떻게 반야바라밀 가운데 들어가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5음이 다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보살은 마땅히 이렇게 들어가야 한다. 6바라밀이 다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보살은 마땅히 이렇게 들어가야 하며, 나아가 살운연 또한 다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보살은 마땅히 이렇게 반야바라밀에 들어가야 한다.
또 수보리여, 어리석음이 허공과 같이 다할 수 없는 것처럼 보살은 마땅히 이렇게 들어가야 한다.
지은 행(行)이 허공과 같이 다할 수 없는 것처럼 마땅히 이렇게 들어가야 한다.
식(識)이 허공과 같이 다할 수 없는 것처럼 마땅히 이렇게 들어가야 한다.
명색(名色)이 허공과 같이 다할 수 없는 것처럼 마땅히 이렇게 들어가야 한다.
6쇠(衰)가 허공과 같이 다할 수 없는 것처럼 마땅히 이렇게 들어가야 한다.
각(覺)이 허공과 같이 다할 수 없는 것처럼 마땅히 이렇게 들어가야 한다.
애(愛)가 허공과 같이 다할 수 없는 것처럼 마땅히 이렇게 들어가야 한다.
유(有)가 허공과 같이 다할 수 없는 것처럼 마땅히 이렇게 들어가야 한다.
생(生)이 허공과 같이 다할 수 없는 것처럼 마땅히 이렇게 들어가야 한다.
노(老)ㆍ병(病)ㆍ사(死)ㆍ우(憂)ㆍ비(悲)ㆍ근(勤)ㆍ고(苦)가 허공과 같이 다할 수 없는 것처럼 마땅히 이렇게 들어가야 한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렇게 반야바라밀 가운데 들어가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12연기를 이와 같이 관한다면 어리석음을 버리게 될 것이고, 모든 법에 들어감이 없음을 따르게 될 것이다.
보살이 이와 같이 12연기법을 관한다면 곧 앉을 도량을 얻을 것이며, 이렇게 관하면 곧 살운연을 얻을 것이다.
수보리여, 만약 어떤 보살이 허공이 다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아서 6바라밀을 행하고 12연기를 관한다면, 끝내 나한ㆍ벽지불지에 떨어지지 않고 곧 삼야삼불지를 얻을 것이다.
수보리여, 모든 선남자ㆍ선여인이 보살도를 행하지만 물러나게 되는 것은 모두 반야바라밀을 염(念)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고,
12연기가 허공과 같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구화구사라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아뇩다라삼야삼불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또 수보리여, 모든 보살이 물러나지 않는 것은 모든 구화구사라로써 반야바라밀 가운데 들어가기 때문이다.
허공이 다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아서 이렇게 반야바라밀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지어 12연기를 관하면,
인연 없이 생하는 법을 보지 않으며,
항상하여 생하고 멸하지 않는 법도 보지 않는다.
짝하지 않음이 없는 법도 보지 않으며,
또한 나와 남과 수명이 있음을 보지 않는다.
또한 지견(知見)이 있음을 보지 않고,
또한 무상(無常)도 보지 않으며,
무아(無我)도 보지 않는다.
또한 깨끗함도 보지 않으며,
깨끗하지 않음도 보지 않는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마땅히 이와 같이 지어서 12연기를 관해야 한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그때에는 5음에 항상함이 있다거나 무상함이 있다거나 괴로움이 있다거나 즐거움이 있다거나 아(我)가 있다거나 아가 없다거나 깨끗함이 있다거나 깨끗함이 없다거나 하는 것을 보지 않으며,
나아가 살운연도 보지 않는다.
또한 법에도 항상함이 있다거나 항상함이 없다거나 괴로움이 있다거나 즐거움이 있다거나 아가 있다거나 아가 없다거나 깨끗함이 있다거나 깨끗함이 없다거나 하는 것을 보지 않는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가지고서 반야바라밀을 볼 수 있는 법이 있음도 보지 않으며,
나아가서는 도(道)에서 또한 가져서 도를 볼 수 있는 법이 있음도 보지 않는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한다면 모든 법에 의지하는 것이 없게 된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의지하는 것이 없을 때에는, 마왕 파순은 근심하여 즐거워하지 않는다. 비유하면 사람이 처음 부모를 잃은 슬픔과 같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단지 이 세간에 있는 마군만 근심하는 것입니까?
삼천대천찰토 가운데 마군도 또한 근심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삼천대천찰토 가운데 마군 모두가 크게 근심하고 괴로워하여 각각 있는 그곳에서 스스로 편안할 수 없다.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할 때는 모든 천신과 마군들은 편안함을 얻을 수가 없다.
수보리여, 보살이 아뇩다라삼야삼불을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한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운다면 곧 모든 바라밀을 구족하게 될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어떻게 6바라밀을 구족하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6바라밀을 행하되, 살운연을 위하는 생각으로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