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강화 수필
<6> 낙지와 모시조개 맑은 국
어저께 학부모가 낙지를 잡아 놨다고 선생님들 초대가 있었다. 낙지 철은 이제 거의 끝날 즈음으로 낙지는 제법 새끼 문어만큼이나 커졌고, 알도 잔뜩 들었는데, 요 낙지가 요즈음 알을 낳고는 죽는다고 한다. 한 코(20마리)에 10만 원 정도이다.
낙지를 한 솥 삶고, 또 거기다가 모시조개까지 넣어 삶아서 내놓았는데 보기만 하여도 배가 부르다.
낙지는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모시조개의 고 뽀얗고, 시원한 맑은국 맛이란.... 정말 환상이다.
시원한 평상 위에 앉아 먹었는데 낙지는 먹어도, 먹어도 계속 나오고, 모시조개 말국도 원 없이 실컷 먹었다.
아~! 황제의 밥상도 이에 더하지는 못하였으리... 너무나 환상적인 그 맛이 주는 감동에 눈물이 찔끔 날 뻔했다. 불룩해진 배를 쓸어내리며 돌아오는 길에 근처에 있는 우리 직원 집에 들러 밤이 이슥하도록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한적한 밤길을 차를 달려오는데..... 차창으로 넘쳐 들어오는 상큼한 밤바람, 희미한 초승달, 요란한 개구리 소리...
한적한 시골, 초여름 밤의 은밀한 속삭임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모르리...
<7> 키 큰 아카시아의 추억
나는 아카시아 꽃의 향기가 좋다. 집사람이 쓰는 향수 갑을 열어보면 스무 개 정도의 작은 향수병이 나란히 들어 있는데 이따금 차례로 병을 열고 냄새를 맡아보곤 한다. 그중에서도 달짝지근한 향기를 풍기는 아카시아 향수 냄새가 나는 가장 좋다.
아카시아는 주로 흰 꽃이 피지만 신기하게도 빨간 꽃, 노란 꽃이 피는 아카시아도 있다.
하얀 아카시아 / 빨간 아카시아 / 노란 아카시아 / 키 큰 아카시아
내가 근무하던 강화의 화도초 사택 앞에 엄청나게 키가 큰 늙은 아카시아가 한 그루가 있었다.
밑둥은 이미 썩는 부분이 생겼는데도 그 무성한 가지들과 하얀 꽃이 사택 지붕을 덮을 정도였다.
6월이 되면 그 무성한 이파리들 사이로 아카시아 꽃이 주렁주렁 매달리고 그 은은한 향기가 온통 방안까지 스며들어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에 젖고는 했었다. 고즈넉한 초저녁, 커피잔을 들고 창가에 서서 아카시아 향기를 맡고 있노라면 아련히 떠오르는 고향 마을, 아카시아 꽃으로 하얗게 뒤덮이던 언덕과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가슴이 설레고는 했다.
강릉의 내 고향 학산(鶴山)마을, 학교 가는 길에 고모네 과수원이 있었고, 그 울타리에 아카시아를 겹겹이 심었는데 엄청나게 키가 커서 고개를 젖히고 쳐다보아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꽃이 활짝 필 때면 아카시아 향기에 취하여 꿈길을 가듯 학교 길을 오가곤 하던 생각이 난다.
이따금 가시를 피하며 그 무성한 가지들 사이로 살그머니 비집고 들어가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하얀 꽃송이들이 볼에 와 닿고, 꿀벌들이 눈 앞에서 윙윙거리는데 코끝에 스미는 짙은 향기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푸른 이파리들 사이로 내다보면 눈부신 초여름의 햇살 속에 끝없이 펼쳐진 파란 밀밭은 바람에 일렁이고 높은 하늘 위에는 종달새가 날개를 퍼득이며 한 자리에 정지하듯 떠서 조잘거리는데 밀밭 너머 아지랑이 속으로는 아득하게 대관령 굽이 굽이가 꿈결처럼 아른거렸다.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이 정지된 한 장의 사진처럼 너무도 또렷이 눈앞에 나타나는 고향의 정경(情景)이다.
학교 사택 앞, 고향의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던 그 키 큰 아카시아가 어느 날엔가 밑둥부터 싹둑 잘려 없어져 버렸다. 사택에 그늘이 지고, 쓸모없는 나무라고 교장 선생님이 어느 날 갑자기 잘라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왕벚나무 몇 그루를 대신 심어 놓았다.
우선은 사택 창문으로 햇볕이 잘 들어서 좋고 또 왕벚나무가 자라면 좋은 꽃을 볼 수는 있겠지만 어쩐지 꿈을 빼앗긴 것 같은 허전함과 벌거벗고 거리에 나와 앉은 듯 헛헛한 기분이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제 눈을 감아도 어린 시절 고향의 모습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지금쯤 고향의 그 키 큰 아카시아와 오솔길은 어떻게 변하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