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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문학예술 원문보기 글쓴이: 瑞河 이소연
아리랑의 묵시적 상징성
삼평 유경환 (시인, 문학평론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리랑 노래는 하나님의 비밀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노래라고 한다. 하나님을 찾는 찬송가라고도 한다.
아리(亞里)는 “하늘나라 마을”이란 뜻이며 또한 “아름다운”, “고운”의 뜻으로도 쓰이고, “크다”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하늘나라 마을처럼 아름답고 크다”라는 뜻이다.
현대 한국어에서는 아리(亞里)따운(아리+다운)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한편 몽골에서 아리(亞里)는 “성스럽다, 깨끗하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랑(郞)은 ‘낭군(郎君)’혹은 ‘님’이란 뜻이다. 그래서 아리랑(亞里郞)은 ‘하나님’이란 뜻이다.
아리랑 고개는 새로운 세계로 가는 고개이다. 아리령(亞里嶺)고개는 백십승의 세계로 가는 고개이다. ‘나’는 하나님의 법을 뜻하며 발병(發病)은 괴질병이 발병하는 것을 뜻한다.
아리랑(亞里郞)노래의 숨은 뜻은 하나님(上帝)의 법(法)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후천(後天)세계로 무사히 넘어 갈 수 있다. 하나님 법(法)을 버리고 가는 사람은 괴질병(怪疾病)이 발병(發病)하여 죽고 만다는 뜻이다.
아리랑은 언제 어떤 경로로 누가 지었는지도 모르지만 우리 한민족의 애국가처럼 부르는 노래이다. 아리랑은 가장 오래도록 살아 전해온 끈질긴 지속성을 간직하고 있다.
한국에 관심을 가진 외국인들은 아리랑은 Korean Folk song으로 그리고 한민족의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인정하고 있다.
2000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식장에서 조수미가 부른 노래도 아리랑이다.
그리고 2002년부터 세계 구전(口傳)무형유산의 보존 및 전승을 지원하기 위해 유네스코(UNESCO)에 신설된 상(賞)의 이름이 바로 아리랑 상(Arirang Prize)이니 이미 아리랑은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 한(韓)민족은 만년(10000년)의 역사를 지닌 아시아의 종가(宗家)집 민족이며 배달(倍達)민족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역사가 환국(桓國) B.C 7199-38
97, 배달국(倍達國)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부여, 옥저, 동예, 낙랑국, 마한, 변한, 진한, 고구려, 백제, 신라로 이어져서 무려 9200년이나 된다.
우리 한(韓)민족은 옛날부터 이(夷)족이라고 하였으며 큰 활을 잘 사용하는 민족이라는 뜻이다. 동이(東夷)족으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 한민족의 하나님을 뜻하는 언어 즉 아리랑(亞里郞)노래이다.
우리 한민족은 괴로울 때에도 슬플 때에도 아리랑 노래를 부른다.
즐거울 때에도 행복할 때에도 아리랑 노래를 부른다. 하나님(上帝)의 노래를 부른다.
아리랑 노래는 한자가 생기기 전부터 배달국 시절부터 불러져 왔으며 고조선을 거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강산 한 민족학에서)
(2016.9.4. 카톡에서)
겨레의 노래 아리랑은 찬송가였다.
‘알이랑’은 ‘알’과 ‘이랑’으로 구분된다. ‘알’은 하나님을 의미한다. 하나님이라는 신명(神名)은 처음에 ‘알’이었다. 그런데 ‘알’앞에 ‘한’이라는 관형사를 붙이고 ‘알’뒤에 ‘님’이라는 존칭명사를 붙여서‘한알님’이라고 했다. 그것이‘한알님’+ 하늘님-하느님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알’은‘하나님’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뜻하는 원시 언어가 ‘알’이었다.
유대인의 엘, 아랍인의 ‘알아’(알라)는 바로 이 ‘알’에서 파생된 것이다.
‘알라’는 아랍어로 하나님을 지칭하는 말이다. 구약 성경 하나님 이름인 ‘엘로힘’은 ‘알라’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창조주 하나님을 뜻하는 인류최초의 신명이 우리말 ‘알’이었는데 노아홍수 이후에 세대로 전해왔다.
하나님을 뜻하는 성경원어 엘(EL)은 바로 이 ‘알’에서 가지 쳐 파생되어 나온 말이다. ‘엘’은 “다스리는 이”, “강하신 분”이란 뜻을 가진 신명(神名)으로 셈족어에서 ‘하나님’신성의 호칭이다. 이 ‘엘’은 바로 ‘알’의 변음이다. 홍수 이전 창조주 하나님은 ‘알’이라고 불렀다.
‘알+이랑’에서 ‘이랑’은 “~와 함께”라는 토씨이며 영어의 with 와 같고 “알이랑”은 “아리랑”으로 “하나님과 함께”라는 말이다.
‘알’은 유일신 하나님으로 ‘알’은 수많은 생명을 낳기 때문이다.
(기독일보, 유석근 목사 강의에서)
쌀도 볏알에서 과실도 씨알에서 생긴다. 알은 모체요 근원이요, 시작과 같은 뜻이다.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도‘알’을 나타냈고 창조주는 만물의 모체이고 근원이고 시작이기 때문에‘알’이라 하였다.
우리 한국인은 그 ‘알’이 큰 모체이고 큰 근원이기에 커다란 시원의 의미로 ‘알’앞에 ‘한’관형사를 붙였고 그 알은 인격적 존재로 ‘알’뒤에 ‘님’이란 존칭 명사를 붙인 것이다.
지난날의 우리 신화와 전설에서 한 시조의 탄생이 난생으로 이어지고 있다. 신라의 박혁거세는 망아지가 알을 품고 있다가 그 알에서 태어났다. 고주몽도 금와도 알에서 태어났다. 한알→하날→하늘로 된 것이다. 한국인의 무덤은 동그란 모양의 봉분인데 ‘큰 알’을 뜻한다.
셈의 후손으로 ‘한알님’께 제사 지내며 생활했던 한국인의 선조들은 스스로 천손민족 ‘한알님’백성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죽음이란 ‘한알’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덤이 동그란 모양의 ‘알’인 것이다. ‘한알님’백성으로 ‘알’에서 왔으니 ‘알’로 돌아가고자 했고 한국인은 ‘알이랑 정신’으로 살고 죽는 ‘알이랑’민족이다.
아리랑 고개란 – 고대 한민족은 이란고원을 지나 파미르 고원을 넘어 천산산맥과 알타이 산맥을 넘어갔다. 실로 많은 고개를 넘었다. 5000년 역사에 950번 전쟁의 고개를 넘었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하나님과 함께 넘어간다. 아리랑은 하나님이요, 하나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갔다는 뜻이다.
아리랑은 인류 최초의 찬송가라고 한다. 창세기 10:21에 셈은 에벨 자손의 조상이다. 셈의 아버지는 노아이고 에벨의 자손은 벨렉과 욕단 두 형제뿐이다. 벨렉의 후손은 이스라엘 백성이 됐고 욕단의 후손은 동방의 산악 지대를 넘어 아시아로 갔다고 한다.
욕단 족속은 셈족의 정통성을 승계한 백성답게 ‘하나님과 함께’고개를 넘어 간다. 알이랑 고개를 넘어간다고 찬송하면서 동방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우리 한국인의 기원은 하나님의 사람‘욕단’인 것이다.
우리 한민족의 하나님을 뜻하는 언어 즉 아리랑의 노래이다.
아리랑의 뜻과 기원에 대해서 한민족의 원형사관을 연구해온 수학자 김용운은‘아라리오’하는 것은
‘신을 부르는 소리’이고, 아리랑은 ‘하나님과 함께’라는 의미라고 한다. 또 김상일도 아리랑의 뜻을 ‘하나님과 함께’라고 본다. 그는 아리랑에서 ‘알’과 ‘이랑’을 구별하여 ‘알’은 ‘하나님’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이름은 처음에 ‘알’이었는데 ‘한’이라는 관형사가 붙어 ‘한알’이 되고 여기에 존칭명사를 붙여서 ‘한알님’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랑’은 ‘갑돌이랑’의 경우처럼 ‘~와 함께’라는 뜻이다. 이밖에 ‘아리’에는 ‘곱다’는 뜻이 있고 ‘랑’은 ‘님’을 뜻하는 흥미로운 해석도 있다. 김상일은 ‘아리’가 ‘존승’과 ‘신성’의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시적자아인 ‘나’는 누구인가. 아리랑의 작사, 작곡자가 상제 조물주 하나님이라면 ‘나’는 ‘하나님’이다.
‘나’ 창조주 하나님이 어찌하여 아리랑을 작사·작곡하였는가.
영원 전부터 창조주는 성신을 생산하기 위하여 인간을 성신의 구성체로 창조하였다. 낳고 낳고 낳아서 제 1천국은 성신의 구성체로 충만하였다. 그러나 창조주의 말씀을 거스르면서 성신이 빠져 나가면서 이슬성신의 생명양식을 먹을 수 없어 마귀가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굶어 죽은 영이 제 1지옥 지구에 마귀 구성체 인간으로 심판받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시적자아 창조주 하나님은 죄에 떨어진 인생을 구원시키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따라가는 노래를 부르게 하는 찬송가를 작사·작곡하였다고 본다.
하나님을 찾게 하려고, 하나님의 신명(神名)을 ‘알’로 하였다. ‘알’은 생명의 본성(本性)이다. ‘알’에 ‘다’어미를 붙이면 ‘알다’가 된다.
‘알다’는 히브리 어원으로 sex이다. sex는 본성(本性)을 말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 ‘알’은 신성(神性)이다. 여성의 본체를 음핵(陰核),‘공알’이라고 한다. 자궁(子宮)은 아기의 집이나, 아들 자(子)는 방향으로 북쪽이요, 5행으로 물(水)이요, 북쪽의 물(水)은 천일생수(天一生水)로 하늘을 상징한다.
자궁(子宮)은 곧 천궁(天宮) ‘하늘의 집’이다. 하늘의 집을 ‘공알’이라 한다.
한국의 고어(古語)에서 ‘아리’는 다리(脚)이다. 다리와 다리 사이에 ‘공알’이 있다. 우주의 본성이 들어 있다. 인간이 엄마의 자궁을 통해서 태어난다. 자궁(子宮)이 하늘나라의 집이니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하늘나라에서 온 것으로 상징하고 있다.
‘아리랑’은 ‘알이랑’의 원형이라고 본다. 알이랑이 연철되어 아리랑이 되었다고 본다.
‘알’은 ‘하나님’이고, ‘이랑’은 ‘과 함께’란 뜻이다. ‘알이’가 연철되어 ‘아리’가 되었다고 본다.
‘아리’는 후대에 한자로 음차(音借)되어 아리(亞里)로 철학적으로 윤색되어 십자(十字)사상으로 해석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흑십자(黑十字)가 아니라 백십자(白十字)로 해석되고 십승(十勝)사상으로, 십무극(十無極) 사상으로 볼 때, 무극(無極)의 상징성은 zero, 영(零), 공(空), 무(無)이다. 수(數)에서 0(zero)의 상징은 인류의 고향이요, 어머니요, 생명의 근원이다.
인간들이 가장 바라고 소망삼고 그리워하는 이상향이다. 유토피아요, 영원영생의 세계요, 괴롬과 슬픔과 죽음이 없는 세계요,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요, 카오스(chaos)의 세계이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空)은 우주의 본체이다. 볼 수도 없고, 냄새도 없고, 맛도 없고, 소리도 없는 태극수(太極數)가 우주운동의 본체이다. 광대무변한 대우주 속에 보이지 않는 물질의 기본입자가 가득 차 있다. 물은 진공에서 생겨났다. 음과 양이 상대적으로 운동을 시작하여 만물이 처음으로 탄생하는 것을 태극수(太極水)라 한다.
태극수가 탄생하기 이전을 0(zero)로 본다.
양극과 음극으로 나누어지기 이전의 절대적인 자리요, 미분화상태의 자리다. 플러스도 아니고 마이너스도 아닌 절대 중(中)으로서 허무다. 노자(老子)는 무(無)로, 석가는 공(空)으로, 상수(象數)로는 0(zero) 또는 10이다. 5행으로 토(土)라 하고 진공상태다. 과학자들은 에테르라고 한다.
만물을 낳는 무형(無形)의 자연이요, 만물을 생성하고 능산적(能産的)이고 자연, 존재(存在)이데아, 물건 자체의 의미를 지닌 만물의 본체다.
영원히 존재하고 생성, 소멸도 되지 않고 처음과 끝도 없으며 질적으로 불변하고 변치 않으므로 시간성이 없다. 형체가 없고 우주에 편만 편재하여 없는 곳이 없고 양적으로 부증불감, 불생불멸하고 중량이 없다. 영원자존자(永遠自存者)로 불생불멸하고 무소부재(無所不在)하며 무형(無形)의 조물주이다.
아리(亞里)의 아(亞)가 백십승(白十勝)으로 무극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는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이시여”로 해석된다. 알알이요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요, 생명을 찾는 것이라고 신(神)을 애원하는 마음으로 부르는 것이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는에서 ‘아리랑 고개’는 고비, 고난, 고통, 절정, 갈림길, 광명세계, 분수령, 여성상징, 죽음, 생명, 진리를 상징한다. 고개는 ‘인간구원’, ‘인간해방’의 목표치를 뜻한다. 피안(彼岸)의 안식처요, 유토피아요, 낙원의 세계, 제 2천국으로 들어가는 고개를 뜻한다. 죽음의 세계를 벗어나 영원영생의 세계를 향하여 가는 인생목표를 뜻한다.
사력(死力)을 다하여, 만번 죽음의 사선(死線)을 넘는 고통과 고난의 고비 고비를 뜻한다. 그러나 그 고개는 힘으로도 못하고 능으로도 못하고 오직 삼위일체 여호와의 성신으로만 가능하다는 고개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보다 더 힘든 고개이다. 하나님의 특혜가 아니면 불가능한 고개이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으니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하나님의 품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죽음의 고개를 넘어 영원 생명의 광명세계로 통과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하고 만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 나온다” 시적자아 ‘나’는 하나님을 말한다. 하나님과 굳은 언약을 맺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자유율법을 지키지 못하여 구원의 목표를 상실한 채 하나님을 져 버리고 다시 마귀와 짝궁이 되어 버린 자를 ‘가시는 님’으로 노래하고 있다. 시적자아 하나님을 ‘나’로 볼 때, 가시는 님은 생명길을, 진리의 길을, 구원의 길을 버리고 지옥의 길로 가버리는 인간을 의미한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는 것을 묵시적으로 해석해 보면 십리(十里)는 무극세계, 영원한 진리의 세계, 광명세계, 하나님이 함께하는 세계를 뜻한다. 안식처요, 하나님의 궁전이요, 이상향, 유토피아를 뜻한다.
‘못가서’는 조건과 환경을 전제조건으로 하여 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씨+밭=새끼의 원리로 볼 때, 씨 뿌리는 비유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를 ‘못가서’로 본다.
말씀의 씨를 뿌리는데 심령이 딱딱한 길바닥 같아 하늘나라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여 악한 자가 와서 마음속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가 버린다. 길가에 뿌려진 말씀의 씨로 열매를 맺지 못하니 천국에 못가는 조건이다.
말씀의 씨가 돌무더기와 같은 심령에 뿌려지면 하나님 말씀을 기쁘게 얼른 받아들이나 믿음의 뿌리가 없어 오래가지 못한다. 말씀 때문에 어려움이 생기고 박해를 당하면 곧 넘어가는 심령으로 열매를 맺지 못하니 천국에 못가는 사람이다.
가시덤불 같은 심령에 하나님 말씀이 떨어지면 말씀을 듣긴 들으나 세상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가로막아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해서 천국에 못가는 사람이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가 열매를 맺듯이 심령상태가 좋은 사람은 성신의 9가지 열매를 맺어 천국에 들어간다.
9가지 성신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오래 참음, 자비, 착함, 성실, 온유, 절제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못가는 사람은 육체의 욕망의 열매로 음행, 더러움, 음란, 우상섬기기, 마술, 미움, 다툼, 질투, 화내기, 이기심, 편 가르기, 분열, 시기, 술 취하기, 흥청거리는 잔치와 같은 것들이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발병난다는 것은 심령의 질병이 난다는 것이다. 심령의 병은 죄짓는 것을 말한다.
아리랑 노래의 주제는 「인간해방, 인간구원」을 노래 밑바닥에 깔고 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늘나라에 들어가자고 노래한다.
태산을 넘어 협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듯 하나님과 함께 아름다운 세계로 가자고 노래한다.
하나님을 져버리면 갈 수 없고, 심령의 질병이 생긴다는 것이다. 문학의 본질과 기능으로 본 아리랑의 작품적 가치를 규명해 볼 때, 아리랑은 수천 년에 걸쳐 이어져 온 노래로 한국인의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시킬 뿐 아니라 세계적인 노래로 심화 확대되어 한 국민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시켰다고 본다.
아리랑은 슬픔과 불행과 고통스러운 삶의 정서적 정화와 승화를 시켜주고 간접적으로 한(恨)풀이를 할 수 있고 고난극복을 할 수 있도록 해준 정서적 가치를 부여해주고 있는 노래이다.
아리랑은 한(恨)맺힘을 풀기 위한 한(恨)풀이의 노래로 해석되기도 한다.
‘아리’는 한국어의 고어(古語)에서 다리(脚)이다. 아리랑은 ‘다리와’로 해석된다. 다리와 다리가 함께 알다 란 사랑을 안다는 말이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란 사랑을 통과했다는 뜻이다. 서로 언약, 혼약하여 사랑의 인연을 맺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별, 생이별, 성(性)이별 상태가 되어 시적자아를 버리고 가버린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恨)맺힘을 풀어버림이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로 노래하고 있다. 나를 버릴 수 없는 전제조건으로 이별을 불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나버려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난 극복을 노래로써 승화, 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묵시적 상징으로 본 한(恨)은 무엇인가
제 1천국에서 영원무궁토록 성신을 생산하며 사랑을 할 수 있는 인간들이 범죄 하여 제 1지옥 지구에 와서 소리 쳐 살아봐야 백년도 못살고, 사랑을 하는 시간도 짧고, 만나면 또 이별을 해야 하는 찰나적 삶에 대한 인간의 한(恨)맺힘을 풀어 버릴 수 있는 노래가 ‘아리랑’이라고 본다. ‘아리랑’은 묵시적 상징으로 ‘하나님과 함께’ 영원토록 산다는 뜻이다. 인류의 절대적 소망은 하나님과 영원무궁토록 지내고 싶다는 것이다. 아리랑을 불러 현실의 삶을 무상(無常)으로 여기고 영원세계의 열망으로 극복했다고 본다.
아리랑을 불러 새로운 세계, 하늘나라 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재창조할 수 있다는 영원영생의 희망과 소망을 주는 새로운 가치관을 형성시켜 주는 노래였다고 본다.
아리랑은 문학의 정신적 가치인 쾌락의 정서를 주고, 아름다움을 주고, 미래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거룩함을 주며 하나님의 법도와 진리를 버리지 않고 참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진, 선, 미, 성의 가치를 지닌 인간이 되도록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아리랑을 통하여 지고지순한 윤리적 가치를 지니고 자유율법의 성신의 구성체로 변화되어야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교훈적 기능도 발휘하고 있다.
아리랑은 개인적 삶의 혁신과 역사의 질곡과 5000년 동안 950회의 외래 침략의 내우외환 속에 아리랑을 부르면서 새 시대를 갈망해 왔던 역사적 변혁을 가져올 수 있는 에너지가 되었다고 본다.
아리랑은 인류의 궁극적 이상향인 자유, 평등, 평화, 행복의 유토피아 이상향인 하나님과 함께 사는 하늘나라의 소망을 제시해 주었다고 본다.
아리랑은 인간을 구원시키고 인간 해방을 시켜주고 있다. 죄의 노예에서 자유율법의 화신으로 변화시켜 주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세계의 갈망은 문학과 예술과 모든 학문의 최종 목표인 「인간구원, 인간해방」이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현대인의 가치관으로 볼 때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는 것은 부정의 긍정으로 이별의 불가능을 반어법으로 노래하고 있다.
아리랑의 배경사상은 유불선(儒彿仙) 사상 가운데 선도(仙道)사상을 배경사상으로 하고 있다. 하늘세계를 배경으로 하나님과 함께 살고 싶은 소망을 담고 있다.
아리랑은 문예 시조 상으로 낭만주의로 볼 수 있다. 사랑을 열망하며, 이별을 거부한 노래이다.
문학 비평 관점에서 원형상징의 신화 비평방식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아리랑은 천신제(天神祭)에서 불려진 국풍(國風)의 노래가 민요로 전승되어 오늘날엔 수천 개의 가사로 작사 작곡되기에 이르렀다.
한국 기독교에서도 아리랑은 태초에 찬송가였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아리랑은 세계문화유산으로 그 에너지는 무한대로 뻗어 나가고 있다. 전 인류의 애창곡으로도 회자되고 있다. 아리랑의 문학적 재조명의 필연성을 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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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문학예술 원문보기 글쓴이: 瑞河 이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