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9-04 15:46

주말에 비가 올 거라는 예보가 있어 애시당초 쾌청한 날씨에 대한 기대는 접고 출발했다. 한여름 여행에 흐린 날씨는 폭우만 아니라면 오히려 덥지 않고 지치지 않아 좋다. 여수에서 남해로 넘어가면서 조금씩 흐려지더니,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한시 바삐 해수욕장에 가고 싶은 유진이를 달래가며 들른 절, 망운산 화방사. 이름난 절은 아니지만, 이름이 독특해서 들러봤다. 일주문부터 작은 계곡을 끼고 올라가는 길이 아름답길래, '오길 잘했군!'하며 뿌듯해했다.


그러나, 막상 경내는 평이해 보였다. 게다가 대웅전 옆으로 돌가루가 날릴 만큼 최근에 세운 듯한 천불상이 그 위용을 자랑하는데, 글쎄.. 불자들은 이런 축조에 신심이 일어날 지 모르겠으나, 여행객에게는 대형 교회에 대한 거부감만큼이나 싸늘하게 느껴질 뿐이다.


응진전은 그런대로 정감이 갔다. 자그마한 크기의 하얀 목조불이며, 다양한 표정의 16 나한상을 모신 응진전은 어느 절에서나 친근하게 느껴진다.

유진이가 선택한 대웅전 뜨락에 동자승.

산닥나무 자생지로 천연기념물로까지 보호받고 있다는 있는 숲은 울창해 보였다. 망운산은 높지 않고 한려수도가 한눈에 보인다니, 산행하기에도 좋을 듯하다. 유진이는 이제 해수욕장으로 간다는 생각에 신났다.

동해에는 경포대, 서해에는 대천해수욕장이 있다면, 남해에는 상주해수욕장이라더니, 역시나 비가 오는 날씨에도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다. 민박집에 짐을 풀고, 바다로 뛰어들 무렵, 폭우에 가까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유진이는 전혀 개의치 않고, 튜브를 들고 아빠와 달려나갔다. (사진은 비 그친 후 모습을 찍은 거라 매우 양호하다.)

강원도에 살던 어린시절, 우리 가족은 여름방학마다 동해에 놀러가곤 했는데, 우리는 아빠와 함께 하루 종일 바다에서 놀았다. 근데, 이상하게도 엄마는 해변에서 책을 읽거나, 낮잠을 주무시거나, 우리가 잠깐 잠깐 쉴 때마다 복숭아를 깎아주실 뿐 바다에 도통 들어오질 않으셨다. 물론 아주 가끔씩은 물에 들어오기도 하셨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백사장에서 쉬는 때가 더 많으셨다. 폭우 속에 바다로 뛰어든 부녀를 보고 있으니, 엄마가 그때 왜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다행히 소나기였나보다. (그러고 보니, 그 뒤로 3일 동안 더이상 비는 오지 않았다.) 파라솔로 돌아와서 한차례 간식을 먹고 나서, 드디어 모래찜질 시작!


유진이가 숨을 쉴 때마다 배가 깨져서 배를 높이 높이 쌓고 있다. 저거, 꽤 무거울 텐데... 그러더니, 아빠가 뭔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뭔가 수상한데...'

무쇠팔과 무쇠(인 듯 모래)가슴을 가진 유진로봇 완성!

복수를 다짐하고 있는 유진이의 꾹 다문 입술!!

"이 시간을 기다려왔다, 크허~!"

깨어나는 유진!

"복수닷!"

가슴을 더욱 사실적으로 만들기 위해 위치 이동중! >.<

"엄마, 나 잘 했지?"

"아빠, 뭐야, 너무 쉽게 일어나잖아~!"

유진, 방학특강에서 배운 배영 솜씨를 보여주는군..
저럴 때 파란 하늘과 강렬한 태양이 비춰져야 제 맛있데!
유진이는 입술이 새파래져도 춥지 않다며, 배가 고파질 때까지 놀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