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6월 28일 주일, 맑음.
골목길을 찾다가 사창가(The brothel, Lupanare)인 루파나르(라틴어로 매춘굴이라는 뜻)를 만났다. 사람들이 많다. 에로틱 프레스코화가 희미하다.
사람들이 하도 많이 봐서 닳은 모양이다. 다시 포룸으로 왔다. 주피터 신전(Temple of Jupiter)이다. 제우스 신전이다.
그리스의 12신중 주신인 제우스(주피터), 헤라(유노), 아테나(미네르바)를 모시고 있는 신전으로 현존하는 유적에서 가장 정통에 가까운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사제만 출입할 수 있었던 신성한 구역이었다. 폼페이에서 가장 중요한 신전이었으며 신전 안에는 제우스(주피터), 헤라(유노), 아테나(미네르바)의 동상이 있었다.
현재는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큰 식료품 시장인 마켈룸(Macellum)이 있다. 중앙 시장터다. 생선 육류가 거래되었다고 한다.
지붕을 이루고 있는 기둥 흔적이 둥글게 놓여있다. 구석에는 화산폭발로 죽은 자의 암석 바닥의 유골이 전시되어 있다. 석고상들도 전시되어있다.
로마 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스타비아 욕장, 포룸 욕장, 화산폭발 당시 공사가 진행 중 이었던 중앙욕장, 호화스런 개인 주택들의 욕장 등 도시 전역에 목욕탕이 산재해 있다.
비극 시인의 집(Casa del Poeta Tragio)은 폼페이에서 큰 거리였던 놀라 거리(Via di Nola)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형적인 기원전 2세기의 로마 저택이다.
저택 입구에 있는 '개조심(CAVE CANEM)' 모자이크로 아주 유명한 곳이다. 집을 지키는 것처럼 사슬에 묶여 있는 사나운 개의 모습을 모자이크로 만들어 놓았다.
하나씩 찾아가고 발견하고 확인하는 것이 재미있다. 골목길에는 식당이었던 화덕들이 그대로 보인다. 당시의 빵을 만들던 빵집에는 회전식 곡물 분쇄기가 여러 개 보인다.
노예나 당나귀가 돌렸다고 한다. 포룸 북쪽의 있는 벽돌 아치(명예의 아치, 또는 개선문 아치)를 통해 걸어간다. 이제 더 이상 돌아보려는 생각이 사라졌다.
너무 덥고 걷기도 힘들다. 열심히 사진만 찍었다. 사진으로라도 내 것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소중한 관광지를 갖고 갈 수 있는 것은 사진 밖에 없다.
셔터를 누를 때 기쁨이라 부르면 사진은 기쁨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다는 시구가 생각난다. 입구를 찾다가 들어가게 된 곳이 고고학 박물관(Antiquarium di Pompei)이다.
추가 요금을 더 내는 줄 알았는데, 그냥 들어간다. 폼페이 고고학 공원 입장권으로 함께 관람 가능한 것 같다. 자연스럽게 박물관에 들어섰다.
전시품을 구경하는 것보다, 일단 에어컨의 시원함이 더욱 반가웠다. 시원함이 들어오니 다시 전시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석고상도 보이고 모자이크 작품들도 보인다.
청동제품들도 당시의 삶을 추측하게 한다. 전성기에 갑자기 멸망하였으므로, 당시 로마 도시의 일상생활을 자세히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들이 발굴되었다.
그것들은 상당히 쾌락적이고 현세 향락적인 도시 생활을 하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폼페이의 많은 벽화를 통하여 유품이 적은 헬레니즘 회화를 엿볼 수 있다.
황금 팔찌의 집에서 발견된 알렉산더와 스타티라(록사나)의 결혼을 묘사한 프레스코화도 있다. 코끼리가 끄는 포차를 탄 비너스의 프레스코화도 있다.
승리의 여신 니케의 대리석 조각상도 만났다. 신화에 나타나는 주인공들의 부조상도 있다. 고대 로마의 의복인 토가(Toga)를 입은 원로원 의원의 전신 조각상은 완벽했다.
둥그런 돌 포탄도 모여 있다. 아우구스투스의 아내 리비아의 대리석상도 멋지다. 차근차근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마주한 문으로 나오니 바로 출구다.
입장할 때 들어왔던 출구가 아니고 동쪽 출구가 나오는 길로 들어선 것이다. 숲이 보이고 산책길로 이어진다. 왼쪽 언덕 위에는 아직도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 방향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단체객들은 이 방향으로 나오는 것 같다. 대형버스가 이 입구 광장에 많이 주차해 있다.
데달로스 조각상. 그리스 신화 속 장인 데달로스(Daedalus)의 조각상이 소나무 숲 속, 폼페이 유적 입구에 위치해 있다.
폴란드 출신 예술가 이고르 미토라이의 작품으로, 그는 특유의 부서지고 "손상된" 스타일로 고대 모티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신화 속 그리스 장인이자 이카루스의 아버지인 데달로가 나체로 앞뒤가 완전히 드러난 채 서 있다. 소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는다.
숙소에서 만들어 온 샌드위치다. 투박하지만 엄청 맛있다. 복숭아도 하나씩 입에 물었다. 엄청 행복한 시간이다. 어떤 아주머니가 소나무 숲속에서 솔방울을 주워간다.
솔방울을 주워보니 엄청 크다. 레바논에서 주워 온 백향목의 솔방울이 생각난다. 두 개 주워서 텅 빈 배낭에 넣었다. 이제 역으로 다시 걸어간다.
역 광장에는 베수비오 화산을 탐험하는 투어가 출발 준비를 한다. 베수비오(Vesuvio)산은 나폴리와 폼페이 중간에 있는 산이다.
화산 폭발 당시 남풍이 불었다면, 지금의 나폴리는 엄청난 피해로 본 폼페이가 되었을 것이란다. 1980년에는 화구구(火口丘)의 높이가 1,281m였으나,
대규모로 분화할 때마다 높이가 많이 달라진다. 해발 약 600m 지점에서 솜마 산으로 불리는 반원형의 산릉이 시작되어 북쪽에서 화구구를 둘러싸고 있다.
솜마 산과 원추 화산 사이에는 지간테 계곡이 있다. 베수비오 주변지역과 이 산의 아래쪽 비탈에 200만 명 이상의 주민이 거주한다.
나폴리 만 연안을 따라 공업도시들이 있으며, 산의 북사면에는 소규모의 농업 중심지들이 있다. 베수비오는 비교적 역사가 짧은 화산이다.
수세기 동안 활동을 하지 않다가 79년에 대규모의 화산 폭발을 일으켜 폼페이 시와 스타비아이 시가 화산재와 화산력(火山礫)으로 뒤덮이고, 흘러내린 진흙에 헤르쿨라네움 시가 파묻혔다.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에서 발굴된 그림들을 보면 이 산은 79년의 폭발 이전에는 봉우리가 하나밖에 없었음을 알 수 있다. <푸니쿨리 푸니쿨라>는 베수비오 화산에 있었던 관광용 철도를 홍보하는 노래였단다.
사람들이 베수비오 산이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관광을 오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요즘으로 치면 CM송까지 만든 셈이다. 그러나 정작 이 철도는 이후 사람들의 우려대로 폼페이마냥 화산폭발 때문에 결국 문을 닫았고, 노래만 남게 되었단다.
기차를 타고 나폴리로 돌아온다. 편하게 앉아서 온다. 슈퍼에 들러 레몬주스와 과일, 닭고기, 돼지고기를 사가지고 왔다. 오후는 숙소에서 쉰다.
냉커피를 만들어 먹으니 엄청 기분이 좋다. 삼겹살을 구워 라면을 저녁으로 먹는다. 상추와 올리브도 함께 먹는다. 매일 빨래를 하는 것 같다.
아들과 영상통화를 한다. 아들 가족이 모두 미국에 있다. 여름방학을 맞아서 미국으로 나와 보스턴에 머물고 있단다. 일찍 잠이 들었다.
*6월 28일 경비: 폼페이 기차 왕복 26.4, 입장료 80, 슈퍼 19.27. 계 220,000원. 누계 14,300,000원. *1유로 175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