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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의 대화 스크랩 추상화를 어떻게 읽을까?, 애호가로 가는 길 -13
wave/임현 추천 0 조회 206 08.10.15 20:5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미술애호가로서 추상화 읽기

 

나는 가끔 아는 큐레이터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다. 마음에 둔 작가와 작품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지만, 우리나라 미술의 흐름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들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만나본 큐레이터 중 일부는, ‘추상과 구상이 섞인’ 작품이 앞으로 한국 미술을 이끌어갈 큰 흐름 중 하나라고 전망했다. 어떤 큐레이터는 완전한 추상 쪽에 더 무게를 두기도 한다. 세계 미술의 흐름이 추상이니 결국 그쪽으로 갈 거라는 얘기였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후 전시회나 화랑에 가서 그림을 보니,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추상과 구상의 경계에 반추상과 완전한 추상 작품이 의외로 많이 보였다. 역시 그림은 관심이 있는 만큼 보이는 모양이다.

 

보이는 대로, 이해되는 대로

 

 

황용진, <나의 풍경 0832>, 캔버스에 유채, 73.5×60.5cm, 2008.

 

메마른 산언덕에 책이 떠 있고, 푸른 산이 아니라 황톳빛 언덕이다. 이 작품은 추상과 구상의 경계에 있는 반추상으로, 보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정서가 메마른 시대에 살고 있으니 책을 읽으라는 뜻일까?

 

책들 가운데 가장 두꺼운 『생각의 탄생』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파블로 피카소, 마르셀 뒤샹, 버지니아 울프 등 여러 분야 천재들의 생각하는 방법을 13가지로 나눠 설명한 책이다. 창조성이 소수 천재들만의 전유물은 아니기 때문에, 상상력을 학습하고 자기 안의 천재성을 일깨우면 후천적 천재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피카소에 대해서는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본 것을 그렸다, 추상화는 곧 단순화다, 추상화의 본질은 한 가지 특징만 잡아내는 것이다, 움직임도 추상화가 될 수 있다, 분야간 경계는 추상화를 통해 사라진다, 추상화는 중대하고 놀라운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과정이다”라고 설명했는데, 이 대목이 바로 이 그림의 설명일 수도 있다.

 

책 아래로 펼쳐진 풍경은 화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의 모습이다. 황용진 화백은 그의 화집(畵集)에 쓴 글에서 “나는 어릴 때 우리집 앞뒤로 있던 언덕 모양의 들판을 좋아한다. 그 순수함을 머금고 있는 땅! 가만히 보고 있으면 때로는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풍경, 또한 밝고 경쾌한 풍경이 아닌 새벽이나 해질녘에 보이는 어둑하고 조용한 그런 풍경”이라고 했다. 풍경 속에 “현재의 내 존재를 둘러싸고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다양한 사물을 병치함으로써,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는 나 개인과 더 넓게는 현대인의 서사를 표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작가들의 화집이나 수필책을 보면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지석철, <어느 부재의 사연>, 석판화, 1997 39 x 45cm, 1995

 

몇 겹의 돌덩이 위에 의자가 있다. 분명히 의자를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작품의 제목은 ‘의자에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은 이유’다. 의자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그린 작품인 것이다. 화가는 자신에 의해 창조된 초현실적 공간에 돌덩이를 쌓고 그 위에 의자를 올려놓았다. 돌덩이는 차갑고 쓸쓸한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일 것이다. 의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부재의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은 ‘보는’ 사람의 몫이다.

 

작가는 빈 의자를 통해 보는 사람들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다. 의자가 뿜어내는 쓸쓸함과 고독감이 외면할 수 없는 강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나는 이것이 바로 지 화백의 작가적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 빈 의자는 내가 떠난 자리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구가 떠난 자리일 수도 있다.

 

생각을 바꿔, 의자가 ‘나’라고 느낄 수도 있다. 적막하고 쓸쓸한 공간은 나를 고독하게 만드는 사회적 환경이라고, 아무도 없는 풍경이 아니라 내가 앉아 있는 풍경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부재’는 ‘존재’로 변한다. 이 또한 작가의 의도일 것이다.

 

의자는 또 내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불특정 다수 중 한 명, 사회에서 소외된 수많은 사람 중 한 명,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어떤 상황 속에 갇힌 누군가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러면 ‘부재의 이유’가 아니라 ‘고독의 이유’, ‘그 상황의 이유’, ‘소외의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추상과 반추상의 해석은 끝도, 정답도 없다.

 

지석철 화백은 20년이 넘도록 의자 작업을 해왔다. 1982년 파리비엔날레의 참가를 계기로, 한국적인 사고와 세련된 한국적 표현에 대해 고민하면서 대나무로 다양한 모습의 의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설치․유화․판화를 넘나들며, 큰 의자, 작은 의자, 하나의 의자, 두 개의 의자, 수십 개의 의자를 만들거나 화폭에 담았다.

 

작가가 그린 것과 내가 본 것 사이

 

이우환, <무제>, 종이에 목탄, 53 x 36.5, 1996.

 

흰 종이 위에 짧은 선만 다섯 개 있다. 선이 아니라 점일 수도 있다. 이우환 화백의 이런 작품을 보며 당혹해하는 이도 있고, 의미를 찾아 화폭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이도 있다. 작품이 좋다는 이도 있고, 점 하나 혹은 몇 개짜리 작품이 왜 그렇게 비싸냐며 점 하나에 얼마인지 계산하는 이도 있다. 물론 이 직품은 목탄으로 그린 드로잉이기 때문에, 유화 작품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내가 이 작품을 벽에 걸었을 때, 아이들은 “그럴듯하지만 뜻은 모르겠다”고 했다. 막내는 지렁이를 그린 거냐고 물었다. 아내는 “글쎄, 이게 뭘까?”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역시 이 그림을 화랑에서 처음 봤을 때 ‘뭘 그린 걸까?’ 생각하며 30분을 바라봤다. 그리고 ‘바람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인연을 맺었다.

 

이 화백은 정말 ‘바람 같은’ 삶을 살았다. 자신의 책 『여백의 예술』에서 “나는 고독하다. 어디에도 마음놓고 쉴 곳이 없다”고, 떠돌이의 삶을 살아가는 심정을 표현했다. 미술사학자인 김미경 교수가 쓴 책 <모노하의 길에서 만난 이우환>에 의하면, 그는대학 1학년 때인 1956년 여름, 일본으로 밀항했다. 당시에는 합법적으로 일본을 갈 방법이 거의 없어, 일본에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밀항을 하곤 했다. 그러나 그는 부모형제를 만나기 위해 밀항을 한 게 아니었다. 병든 숙부에게 집에서 보내는 약을 전해주기 위해서 일본에 갔고, 숙부의 권유로 눌러앉았다. 그는 일본어를 배운 다음, 니혼대학교 철학과에 들어갔고, 1958년부터 미술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는 1962년 명동화랑에서 첫 국내 개인전을 연 후, 한국을 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1974년에 왔을 때는 중앙정보부에 체포되어 일주일 동안 고문과 취조를 받았다. 남북통일운동 모금을 목적으로 풍경화를 그려 출품하고, ‘우장흥’이라는 필명으로 『남북한 해방문학 20년사』를 썼다는 이유였다. 만약 그가 일본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굳힌 화가가 아니었다면, ‘재일유학생간첩단’ 조직책의 한 명이 되어 오랫동안 조국에서 감옥생활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삶에는 이렇게 운명적인 요소가 많았다. 그래서 그는 “늘 쓰라린 지점에 서 있다. 곧 어디서나 내쳐지고 위험분자처럼 여겨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도망자로, 다른 쪽에서는 침입자로 공동체 밖에 세워져 있다”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기도 했다.

 

『여백의 예술』에서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단순하며 동시에 복잡하다”고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작품이 무한성을 띠는 것은 여백으로서의 공간의 힘에 의한다.” “나의 미니멀리즘은 작품이 생생하게 돋보이기보다 공간이 생생하게 살아주기를 바라는 바의 방법이다.” “내가 시도하는 시점은 표현의 기원을 묻는 일이다.” “종이는 점의 언저리에서 바다가 되어 퍼지고, 점을 섬으로 바꾸어 거기 떠 있게 한다.” 추상이란 이렇다. 작가는 섬을 그렸지만, 보는 사람은 바람을 느낀다.

 

봄비와 겨울비가 함께 흐르는 창

 

 

박서보, <묘법(ecriture) No 1-06, No 2-06>, 종이부조 판화, 각각 76×55.5cm, 2006.

 

종이부조로 만든 판화라 입체감이 살아 있고, 손으로 만지면 물감이 묻어날 듯 색상이 잘 표현되어 있다. 박서보 화백의 ‘묘법 시리즈’ 중 점이다. 작품에 표기된 ‘ecriture’는 프랑스 말로, ‘문자나 표기법 등 폭넓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풀이되어 있다. 박 화백은 ‘묘법(描法)’이라고 번역했다. ‘그리는 법’이라는 뜻이란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한다. “나는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고, 그리는 법만 표현했다”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그림의 기본 요소인 선과 색만 표현해 그림을 만든 것이다.

 

‘묘법 시리즈’의 기본 작업과정은 이렇다. 먼저 한지를 물에 불려 물감에 개서 색반죽을 만든 다음, 이를 화폭에 여러 겹 두텁게 올려 판을 만들고, 그 위에 연필이나 자로 수없이 선을 그어 밭고랑처럼 만든다. 입체감이 느껴지는 이유다.

 

내가 박 화백의 ‘묘법 시리즈’에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5년 전쯤이다. 어느 미술잡지에 나온 화가들의 좌담기사에 “우리나라에서 흰색을 가장 잘 쓰는 화가는 박서보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나는 그의 흰색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궁금해서 도록을 찾아봤다. 백색 화면에 ‘밭고랑’을 만든 작품이 있었는데, 입체감과 한지의 부드러움과 어우러진 흰색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러나 5년 전에도 박서보 화백의 작품은 매우 비쌌다. 몇몇 화랑에 1호나 2호 정도의 소품이 나오면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결국 구하지 못했다. 그후 로스앤젤레스 화랑에서, 박 화백이 오래전 미국에 왔을 때 만든 대형 흑백 석판화를 구했는데, 그 작품이 내가 추상화와 맺은 첫 인연이었다. 작품은 2007년 서울에 갔을 때 강남의 화랑에서 만났는데, 지금처럼 나란히 걸려 있었다.

 

박 화백은 1967년부터 ‘묘법 시리즈’를 그렸다. 처음에는 연필묘법, 1980~90년대에는 흰색이나 검정색 묘법, 2000년 무렵에는 빨강, 파랑, 분홍, 연둣빛 등 다양한 색채묘법으로 변화했다. 묘법의 색상이 다양해진 이유에 대해 그는 “검정과 흰색을 정복했기 때문에 변화할 수 있었다. 화가들은 흔히 ‘변하면 추락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고 했다. 그의 작가정신은 이렇게 치열하다.

 

나도 이 두 작품을 화랑에서처럼 나란히 걸었다. 유리창에 흐르는 봄비와 겨울비가 연상되면서 마음이 차분해진다. 김 화백은 자신의 그림에 대해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워내는 그림”이라고 했다. 가지런히 늘어선 골 하나하나가 최소한 100번 이상 그어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이제 그의 나이 77세다. 그러나 팔순이 되는 2010년까지 전시일정이 꽉 차 있다. 가히 “그림을 위해 태어났다”고 할 수 있겠다.

 

 

 

이강욱, <Invisible Space S070710>, 캔버스에 혼합재료, 지름 40cm, 2007.

 

이뭣고? 불교의 선문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선문(禪問)에 대한 선답(禪答)은 자신의 깨달음이다. 정답은 없다. 추상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 작품을 ‘벌레 먹은 사과’라고 생각하며 구입했다. 벌레 먹은 사과를 좋아하는 특별한 사연이 있는 건 아니고, 작품의 독창성이 좋았다.

 

이 작품을 직접 보면 영롱한 빛이 난다. 햇빛을 받으면 더 반짝인다. 캔버스 위에 수많은 유리구슬(bead)이 뿌려져 있다. 젊은 작가다운 재미있는 발상이이지만 작업과정은 쉽지 않다. 먼저 동식물의 미세한 세포 형상의 이미지를 캔버스에 붙인 다음 연필과 펜으로 드로잉을 하고 비즈를 덮는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작품은 빛을 발산하며 입체감을 주고, 세포와 같은 미세한 선과 점을 통해 사과 속의 ‘보이지 않는 공간(invisible space)’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굳이 보이지 않는 공간을 보여주려고 하는 걸까? 왜 미세한 부분을 확대해서 밖으로 꺼낸 것일까? 추상작품에는 반드시 작가의 의도가 있다. 나는 내면의 상처를 밖으로 꺼내 치유하기 위해서 ‘벌레 먹은 사과’의 세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위에 유리구슬을 뿌려 세상의 밝은 빛을 받게 하는 것 아닐까.

물론 나의 이런 추측은 틀릴 가능성이 더 많다. 어쩌면 작가는 광활한 우주를 꿈꾸며 이 작품을 만들었을 수도 있고, 환상의 세계를 보여주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상처란 이렇게 밖으로 표현되었을 때 치유된다’고 믿으며 이 작품을 본다.     - 다음 주 화요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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