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천주교 그무엇을 믿던지간에 서로간에 존엄성을 알고 서로간에 존중성이 있써야 한다.
글을 잘못해석하고 잘못알고 풀이를 제멋대로 하면서 서로간에 상처를 주는일은 중동전쟁이나
아랍국가들의 전쟁이나 다를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상대방의 종교를 존중하는 일이 자신에게도 좋은일이라 생각하기에 이글을 올립니다.
오해는 없으시길 .....................승에게 시험을 자제하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白牛慧雲스님
“'荷蒔爺蘇(야소)來하면 吾道油無之燈也라'
언젠가 예수 오시면 나의 깨닳은 도는 기름 없는 등과 같다.“ 라마다경 38:8
두어 시간의 이야기를 끝내고 황당함에
이 ‘라마다경(?)-이라는 단어를 검색 하여보니 수 많은 불교 신자들이 의문을 가질듯하여
여러 사이트를 헤매이다 이글을 올린다.
여기의 이야기의 대부분은 사이트에서 빌려온글이다----
위의 사진은 순복음 교회의 김동일 장로라는 자가 자체 발간지인
'신앙계' 99년 7월호에 게재한 글이다.
'荷蒔爺蘇(야소)來하면 吾道油無之燈也라'
언젠가 예수 오시면 나의 깨닳은 도는 기름 없는 등과 같다.
라고 기술 하면서 (팔만대장경 라마다경 38:8에 석가모니 가라사대)
順天者는存하고 逆天者는 亡이니라 하늘에 뜻을 순응하는 자는 살고,
하늘의 뜻을 거스리는 자는 죽는다...라고
출처를 '팔만대장경'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孟子曰, 順天者는 存하고 逆天者는 亡이니라.
라는 구절은 맹자의 가르침으로 명심보감에서도 출처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출처가 명심보감이 아니라 팔만대장경이라?
또한 여기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면 위의 주장은 엉터리임이 금방 드러난다.
1. 爺蘇(야소)라는 말이 언제 나왔는가? 2. 팔만대장경에 라마다경이 어디에 있는가?
그러한 추궁을 하자 김동일은 팔만대장경이 아니라
스리랑카에 있는 경전이라고 둘러댔다
여기서도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면 그것도 거짓말임이 금방 드러난다.
3. 언제부터 스리랑카가 한자문화 국가였던가?
란 질문에는
라마다경은 있는데 내용이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식의 변명에만 급급하고 있다.
4. 비슷한 발음의 경이 있다. 답은 나마가경이다.
다운로드해 보시면 불설라마가경이라고 나오는데기독교인들이 말하는 라마다경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의 주장인 그런 구절은 없다.
그 후로 김동일 장로는 사과는 커녕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이 일단 기독교계에 퍼지자 아주 기발하고 재미 있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김응대 목사와 김동일 장로의 거짓말을 바탕으로한 불교 전도용 소책자가 만들어진 것이다.
* 불교! 알고 믿읍시다.
이 소책자의 내용은 성철 스님의 열반송과 라마다경에 대한 거짓말으로 만들어진
불교 전도용 책자의 내용은 가관이다.
이번엔 엉터리 불경을 만들어 내어서 라마가경 본문 전체가 공개된 사건이다.
이 글의 원 출처를 불경에서는 아직 찾지 못하고 있으며, 인터넷 기독교 사이트에서만 볼 수 있다.
38:1 如是我聞 一時佛在舍衛國 祇樹給孤獨園 여시아문 일시불재사위국
"기수급고독원" (이와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이 사위국 제타정사에 있을 때,)
38:2 與大比丘衆 千二百五十人俱 여대비구중 천이백오십인구 (스님과 신자 "1250명"이 함께 했느니라.)
38:3 舍利弗言 何時佛道終耳 사리불언 하시불도종이 (사리불이 묻되 언제 불교가 끝나나이까?)
38:4 吾道之轉也 年五百後末世也 오도지전야 년오백후말세야 (나의 도가 전한지 "오백년이 지나면 말세"가 될 것이다.)
38:5 舍利弗再言 年五百後 佛道斷而無係學乎 사리불재언 년오백후 불도단이무계학호
(사리불이 다시물었다. 오백년 후에는 불도가 끊기고 불교를 배우는 사람이 없습니까?)
38:6 其時 上首弟子 爺蘇自西來 기시 상수제자 야소자서래
(그 때 훌륭한 제자인 예수가 서쪽에서 와서,)
38:7 學而時習 而傳於大秦 학이시습 이전어대진
(열심히 배우고 틈틈이 익혀 대진[로마]으로 전할것이니)
38:8 何時爺蘇來 吾道無油之燈也 하시"야소"래 오도지유무등야
(예수가 올때에 나의 불교는 기름없는 등처럼 되었겠지만,)
38:9 爺蘇再臨 吾道中興 야소"재림" 오도중흥
(예수가 "재림"[다시 불을 붙이니?]하니 나의 도는 중흥할 것이다.) (유전: 재림 예수 = 성철스님)
38:10 汝等覺了 爺蘇之主 若佛也 여등각료 야소지주 약불야 (너희들은 확실히 알아라 예수가 말하는 "주"는 바로 "부처"이니라.)
38:11 佛說是經已 長老舍利弗及諸比丘比丘尼 優婆塞優婆尼
불설시경이 장로수보리급제비구비구니 우바새우바이
(부처님이 이 경을 말하자 장로 사리불로부터 여러 스님들과 신도들,)
38:12 一切世間 天人阿修羅 聞佛所說 皆大歡喜信受奉行
일체세간 천인아수라 문불소설 개대환희신수봉행
(모든 신과 악마까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며 믿고 받들어 행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많은 거짓을 발견 할수 있다.
글의 내용을 보면 상당히 불경 냄새가 많이 난다.
글의 시작 부분을 여시아문 이라는 형식으로 쓴 것등등...
근데...불경을 약간은 펴 본 사람이 만든 내용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주 엄청난 약점이 있습니다 이미 거짓말한 부분인 38:1이라는 내용은
마치 바이블처럼 장절에 번호를 열나게 붙인 것이다. 불경 냄새는 내려고 했지만,
배운 것이 거짓말이라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 황당한 것은 그 밑에 주를 달아 놓은 불교신행상담의 내용이다.
마치, 한정섭법사라는 스님이 주해를 단 것으로 교묘하게 거짓말을 하고 있고,
야소라는 부분에 대해서 팔리어 경전과 어떻게든지 끼워넣으려는
너무나 황당한 거짓말도 각주의 형식으로 붙이고 있는 것이다.
또 라마다경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겠다.
불교의 경전을 일반적으로 팔만 사천 법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는 크게 팔리본과 산스크리트어본이 있다.
중국으로 넘어와 신수대장경이라는 이름으로 번역 되었고,
우리나라에는 고려 대장경이라는 번역본이 현존하고 있다.
그런데 이 경집들중 어디에도 라마다경은 존재하지 않는디.
이 모든 것들이 불교를 음해하기 위한 기독교의 졸렬한 거짓말이다.
더욱 큰 문제는 저질스런 설교를 아직도 아무런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일반 신도들의 수준은 과연 어떨지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한 잘못의 궁극적 책임은 자체 정화력을 잃어 버린 괴독교 독존주의인 근본주의인
우리 괴독교에 있는 것이다.
이는 순복음 교회의 김동일 장로라는 자가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만든 거짓말로써뒤에 문제가 되자
그 자신도 출처를 못 밝히고 어물거림으로써 거짓말임을 자인했고,
이미 해프닝으로 끝났던 것인데, 여전히 추잡한 짓을 부끄럼없이 서슴치않고 자행하고 있다.
괴독인들이여 부탁이니 앞으로 그런 말하는 목사들이 있으면,출전 좀 가르쳐 달라고 해보라.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아무도 없느니라”(요14:6 -아멘-
어디서 줏어 들은건 있어 가지고 초기 경전 아함부 들먹이는 찌지리도 있는데,
팔리본이나 한역본이나 어디에도 라마다경이라는 부분은 없습니다.
참고로 아함부는 모두 네섯가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한역본은 장아함경, 중아함경, 잡아함경, 증일아함경이고
팔리본은 장부, 중부, 상응부, 증일부라고 부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한역본 해석판과, 팔리본 해석판이 모두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 아함경이 출전이라는 찌지리 있거든 어느 아함경이냐고 꼭 물어 보십시요
그런데도 김동호는 왜 자신의 주장이 거짓임을 인정하지 않는가?
그것은 자신이 추구하는 교회의 세력확장과 상업적 이윤의 증대에 저해가 되기 때문이다.
학식이 있는 사람들의 끈질긴 추궁에도 침묵과 무시로 일관하다 보면 언젠가는 추궁과 질타의
목소리가 사그러지다가 곧 끝날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식으로 거짓 목회자들의 잘못된 믿음과 설교는 일반신도들에게 남을 것이고 교회는 유지된다.
이러한 것이 기독교 대형교회의 현실이다.
교회 다니면서 전도를 하신 분들이라면 나마다경이라는 경전을 들어본 일이 있을 것입니다.
석가가 예수를 예언했다는 경전입니다.
그 진위을 올립니다.
1. 경전 목록에 없다.
불교에 경전이 많다고 해도 무한히 많은 것은 아닙니다. 불교 경전은 모두 대장경으로 묶여 정리되어 있는데, 대장경 목록 어디에도 나마다경이라는 경전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불교 경전에 나마다경은 없는 것입니다.
2. 경전 출처 표현 형식도 근거 없습니다.
나마다경 38-8 이런 식으로 출처를 밝혔는데, 경전 이름 뒤에 숫자를 붙이는 경우는 팔리어로 기록된 경전을 팔리텍스트소사이어티(PTS : Pali Text Society)에서 분류하기 용이하도록 숫자를 붙인 것입니다만.... 팔리경전은 한문으로 된 경전이 아니므로 한자로 되어 있는 뒤에 숫자가 붙어있는 것은 우습기조차 합니다. 마치 무슨복음 38장 8절 이런 느낌을 주는군요.
3. 쪽지의 형식으로도 경전 서술과 맞지 않습니다.
불교 경전은 "석가가 말하기를" 이런 표현이 결코 없습니다. "석존께서 이르시되", 부처께서 이르시되... 즉 석가왈(釋迦曰)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불고(佛告) 이런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석가라는 표현도 말하는 주체로는 절대 쓰지 않습니다.
바가반, 불, 여래 이런 표현들이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쪽지에 기술된 것은 형식적으로도 불교 경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4. 한자의 해석은크게 다릅니다.
형식적으로는 불교 경전에 들어있는 것이 아니니
누군가가 한문 문장을 만들어서 불교를 깎아내리고자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만,
이번에는 한문 해석을 해 보겠습니다.
석가가 말하기를 何時爺蘇來 吳道無油之燈冶 (나마다경 38-8)
(하시야소래 오도무유지등야) ( 언젠가 예수 오시면 내가 깨달은 도는 기름없는 등과 같다)
이러는데 시중에 유통되는 상당수 쪽지는 何時耶蘇來 吾道無油之燈也 이렇게 세 번째 글자를 어조사 야(耶)자를 쓰고,
뒷문장 첫번째 글자는 나 오(吾), 제일 마지막 글자는 문장 종결형인 어조사 야(也)를 씁니다.
뒷문장은 '오나라 길은 기름없는 등불과 풀무질이다'이렇게 해석되므로 너무 잘못 적힌 것입니다.
위의 수정한 한자를 써야지만 '나의 도는 기름이 없는 등불이다'이렇게 해석이 가능합니다.
전통적인 쪽지를 해석하자면 何時耶蘇來 吾道無油之燈也 하시야 : 언제인가? 하와 야는 모두 의문형이면서 야는 문장의 종결어미(문장을 끝내는 글자)로 쓰입니다. 그래서 하시야에서 문장이 끊어집니다. 언제인가, 언제일 것인가? 이런 뜻이 되구요
소래 : 소가 오면, 소는 깨어나다는 뜻이니 불교의 깨달음을 의미합니다. 소래는 '깨달으면' 이렇게 해석되구요
오도무유지등야 : 나의 도는 기름없는 등불이다. 나의 도는 진리의 길이 아니라 중생의 삶, 윤회의 길입니다. 깨달음이 오면 기름없는 등불이 되어 꺼져버릴 것은 중생의 삶, 윤회의 삶인 것이죠.
어떻습니까? 한문 문장으로 볼 때는 좀 불교 경전 문장 같기는 합니다만...
그래서인지 근래에는 의문형 종결어미로 쓰이는 어조사 야(耶)자를 아비 야(爺)자로 바꾸었더군요. 결국 그 쪽지의 내용이 불경에 근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자꾸 바뀌는 것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한문 문장이 한글 해석과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마다경은 근거 없는 것이구요
한문 문장도 잘못 만들어진 것입니다
다른곳에서 또 빌려온글.....<중략>...
한 개신교계 장로가 월간지 ‘신앙계’ 7월호에 석가모니와 예수를 비교하며 불교를 폄하하는 글을 실어
물의를 빚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김모 장로는 이 잡지 기고문을 통해
‘출처불명의 경전을 근거로 “석가는 마지막 설법에 ‘하시야소래(何時耶蘇來) 오도무유등(吾道無油燈), 즉 언제라도 야소(예수)가 이 땅에 오시면 내가 깨달은 도(진리)는 기름이 없는 등불‘이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종교편향대책위(위원장 원혜, 현진)는
이에 대해 예수의 한문표기인 ‘야소(耶蘇)란 단어가 18세기 이후 사용된 점을 들며,
출처도 불분명한 경전을 예로 들어 불교를 비하한 사실을 조목조목 따져 언론매체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알려나갈 방침이다. 이같은 방침은 자칫 불교계와 개신교간의 갈등으로 비쳐지는 것을
막고 여론을 통해 불교비하를 막자는 조치이다.
참고 : 팔만대장경 목록
01. 장아함경
02. 중아함경 1 - 3
05. 잡아함경 1 - 3
08. 별역잡아함경
09. 증일아함경 1 - 2
11. 대루탄경 (외)
12. 불반니원경 (외)
13. 아라한구덕경
14. 비화경(외)
15. 불본행집경 1 - 2
17. 찬집백연경
18. 현우경(외)
19. 출요경(외)
20. 법구경(외)
21. 대반야경 1 - 20
41. 법화경
42. 화엄경(60권본) 1 - 3
45. 화엄경(80권본) 1 - 3
48. 화엄경(40권본)
49. 열반경 1 - 2
51. 대방등대집경 1 - 2
53. 대애경(외)
54. 아차말보살경(외)
55. 대집회정법경(외)
56. 현겁경(외)
57. 유마경(외)
58. 입능가경(외)
59. 정법염처경 1 - 3
62. 사분율 1 - 3
65. 선견율비바사
66. 구사론 1 - 2
68. 중론백론
69. 현양성교론(외)
70. 대승기신론소별기
71. 부휴당집(외)
72. 선문염송 1 - 5
77. 조당집 1 - 2 7
9. 전등록 1 - 3
82. 무용당집(외)
83. 백곡집, 월저당집
84. 법원주림 1 - 5
89. 경율이상 1 - 2
91. 본생경(쟈아타카) 1 - 5
96. 대보적경 1 - 5
101. 대지도론 1 - 5
106. 종경렵비담팔건도론
176. 아비달마발지론
177. 아비담심론
178. 아비달마순정이론 1 - 4
182. 아비담비바사론 1 - 3
185. 사리불아비담론 1 - 2
187.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파승사
189. 근본설일체유부니타야목득가
190. 근본설바답율섭
191. 마하승지율 1 - 2
193. 성유식론
194. 대방광십륜경
197. 해탈도론
길죠? 결국 그냥 "라마다경"은 없다입니다.
또 빌려온글 김동일 기독교 장로님께
미국의 -((송위지교수 씀))
지난 수년 동안 우리 한국인은 일부 독실한 장로님들 덕분에 아주 많은 절망을 경험했습니다.
한 분은 진짜 독실한 기독교인인데 장로 대통령으로 국민들이 그에게 나라를 맡겼더니
결국은 나라를 부도내고 지탄을 받고 말았습니다.
한 분 모 보험회사를 운영하는 그 장로님은 무슨 선교회의 후원회장을 지낼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인인데 돈을 몰래 빼돌리는 범죄를 저질렀다가 구속되어서 지내던중
아내를 시켜 소위 고급옷 로비사건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또 있어요. 귀하와 같은 교회에서 안수 집사를 하던 아주 독실한 기독교인인 어떤 이는
백화점을 운영했는데, 위에다 무거운 것을 올려놓으면 건물이 무너진다는 당연한 상식을 무시하고 돈 버는 것에만 혈안이 되다가 그만 백화점이 무너져서 500명이 넘는 사람이 죽는 참사를 저지르고 지금은 교도소에서 살고 있습니다.
장로님!
나는 장로님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장로님 같은 분은 분명 제도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장로님이 ‘라마다경’이라는, 불자들조차 생소한 경전을 인용한 것도 기가 막히지만,
‘하시야소래(何時耶蘇來) 오도무유등(吾道無油燈)’을 ‘언제라도 야소(예수)가 이땅에 오시면
내가 깨달은 도는 기름이 없는 등불’이라고, 아무리 제멋대로 번역했다지만
기독교인 입맛에 맞게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 그런 글을 그래도 역사깊은 <신앙계>라는 잡지에 버젓이 기고했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지난 백년동안 장로님이 믿는 종교는 부자 나라들의 후원에 힘입어 우리 나라에서 아주 눈부신 성장을 했다는 것은 다 아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장로님께서 나가시는 교회가 양적으로는 세계 최대의 교회가 되었지요.
그런데 장로님이 믿는 종교가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성장했는데도 이 사회는 왜 이렇게 엉망진창이죠?
교회가는 사람보다는 진리를 찾아 절로 가는 사람이 여전히 많은 것을 보고는 스스로 깊은 고뇌와 한계를 절감하신 것은 아닌지요.
그리고 그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그런 얼토당토않은 글을 쓰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겠지요. 그것이 궁극에 가서는 예수를 할퀴는 아주 못된 짓이라는 것을 모른 채 말입니다.
장로님의 논리대로라면 예수의 성스러운 제자인 ‘베드로 성인’을 베드가 침대니까 ‘침대로’라고 불러도 된다는 말입니다. 부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십시오.
당신처럼 어리석은 이는 아무리 예수라 해도 도저히 구원해 주실 수는 없으십니다.
내 이제부터 당신이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장로님, 용기를 가지고 참진리를 찾는 모습을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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