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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선용으로 총리되기
창 40:1-23
‘
여가선용으로 총리되기’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여가를 잘 선용하면 총리가 된다.. 매끄러운 말 같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엄청난 모순이 있는 말입니다. 총리가 되는 일이 어떻게 여가를 선용하는 것으로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여가선용이라고 말을 붙여도 좋을 만큼 총리가 되기 위하여 정말 눈꼽만큼도 힘을 쓰지 않았던 요셉이 꿈 해석을 세 번하고 총리가 됩니다.
요셉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믿음의 백성들, 그냥 믿음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말고, 믿음의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어떤 삶의 방식이 도대체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을 본문 창세기 40장을 통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요셉이 이 세상살이를 하는데 있어서 관계하고 있는 대상을 우리가 한번 생각을 해봅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총무가 되어서 온 집안 일을 다스릴 때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을 하지 않습니까? 그 유혹을 뿌리치는 장면 속에서 요셉이 한 말을 우리가 다시한번 기억을 해봅니다.
보디발 주인이 모든 걸 다 내게 맡겼으나 오직 보디발의 아내인 당신에게 대해서만큼은 그런 권한을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내가 어찌 여호와 하나님 앞에 죄를 지리일까...
보디발의 아내를 범하면 그게 하나님께 죄를 졌다고 생각하기 전에 눈에 보이는 보디발에게 죄를 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은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총리대신이 되는데 그 결과적으로 총리대신이 된 자리와 요셉의 관계를 또 한번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에 대한 관계, 보디발에 대한 관계 그러니까 요셉의 삶의 환경에 대한 관계,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자기가 도달하게 될 총리대신에 대한 관계 이제 비교를 해봅니다.
보디발과 보디발의 아내 그리고 주변 사람들 또 자기를 팔아먹은 형님들과의 관계 주력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을 만났고 모든 사람과 관계할 때 요셉은 실상 그 사람들과의 관계로 생각하고 그 사람들에게 행동을 하고 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사람을 만나 살고 행동하고 관계를 맺어갈 때 그 사람에게 말하고 그 사람에게 행동하게 되는 그런 말을 하게 되는 이유 그런 행동을 하게 된 동기는 언제나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꿈을 꾼다고 하는 것은 역시 마찬가지로 자기가 주어져 있는 삶의 환경 속에서 눈에 보이는 환경과 눈에 보이는 사건대로 반응을 하면서 눈에 보이는 사건과 문제들을 과제로 삼고 그것들을 잘 극복해내려는 관계에서 하는 게 아니고, 언제나 꿈을 꾸는 사람으로 표현되어지는 걸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늘 찾고 살았습니다.
환경이 주어지는 문제의식이나 현실이 주고있는 과제의식에 붙잡혀 있는 게 아니라 도대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이것을 생각하면서 살아 갔습니다.
그리고 현실은 어떻게 보느냐?
언제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이라고 보고 말씀 드린 것처럼 첫 번째로 태어나서 자기가 눈을 뜨고 세상을 사는 곳이 원래부터 노예의 자리 종의 자리 보디발의 집에서 총무의 자리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현실을 꿈꾸지 않고 그냥 살았습니다.
왜? 하나님과의 관계를 주업무로 살아가고 있는 상태에서 주어지는 현실들은 그저 하나님이 자기에게 허락하는 그런 결과물 내지는 허락하시는 삶의 장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살았습니다.
자, 이제 총리대신의 관계에서 생각해봅니다.
총리가 되기 위해서 요셉은 무엇을 했습니까? 아무 것도 안 했어요. 꿈을 세 번 해석을 합니다마는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고 떡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고 그리고 다음 장에 보면 바로 왕이 꾼 꿈을 해석을 합니다.
세 번 해석을 하는데 여기서 우리가 한 두가지 생각할 점은 꿈을 해석하는 것은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삶에 대해서 내려주시는 꿈을 해석하는 그런 전공자였습니다.
그러므로 바로 왕의 꿈 해석 또 술 맡은 관원장 떡 맡은 관원장의 꾼 꿈을 해석하는 것을 그야말로 요셉에게는 여가선용 정도 밖에는 안 되는 것이었어요. 물론 하나님이 그 지혜를 주셔야 해석할 수 있는 것이지마는 그것은 자기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하는 그런 마음 자세로 살아왔던 요셉에게 있어서는 여가선용 조차도 안 되는 그런 일거리였다는 것입니다.
그나마도 우리가 이 꿈 해몽에 관계된 것으로 두 번 째 생각할 것은 요셉은 총리대신이 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꿈을 해석해 본 적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물론 술 맡은 관원장에게 당신이 잘 되면 나를 기억해주시는데 그 이유는 내가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 그럴 만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다 라는 사실을 좀 아려주면 좋겠다 라는 이야기를 했을 뿐입니다. 총리대신이 될 것을 꿈 꾼 적이 없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총리대신이 됩니다. 총리대신이 된다는 그 사실과의 관계에서는 요셉이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었다는 것이에요. 그냥 꿈 해석 세 번 한 것은 자기가 늘 하나님에 대해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주 업무와도 같게 된 그 일에서 늘 행하던 일에 그저 여가선용 정도로 잠깐 남의 꿈을 해석해 준 것 뿐인데 총리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의 삶의 태도,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그렇게 얘기합니다. 특히 요즘 더 그런 말들이 많아집니다. 대가를 지불하라. 그것도 주로 어떤 대가냐 하면 이 세상에서 총리되는 거 다시 말해서 세상에서 높아지는 거, 세상에서 큰 일을 하는 거..
목회자들끼리도 비전을 가져라 그리고 큰 목회, 성공하는 목회 그걸 우리가 소위 부흥이라고 말합니다마는 그런 수 적인 부흥의 목회를 꿈꾸면서 우리가 서로가 서로에게 말하고 또 큰 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는 목사님들이 앞서간 경험들을 얘기할 때도 흔히 듣는 얘기, 대가를 지불하라.
여러분, 이거 정말 조심해야 될 말이에요. 이 말 자체가 기독교적 사상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대가를 지불해서 이 세상살이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꿈과 소원을 이루어간다. 그리고 그 대가를 지불하는 과정 중에 하나님이 끼어 들어옵니다.
마치 요셉이 하나님에 대한 관계를 주 업무로 살아가고 있는데 총리대신이 끼어 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꾸로 우리가 이 세상살이에서 총리대신과 같은 그런 꿈을 이루기 위해 대가를 지불해가는 인생의 과정 중에 하나님이 끼어 들어오신다는 얘기입니다. 이거 거꾸로 된 것 같아요.
왜 세상살이를 허락해주셨습니까? 제가 언젠가 그런 말씀 드렸어요. 신혼여행 같은 거다..
신혼여해을 갑니다. 안내자를 따라서 관광을 다닙니다. 그러면 생전 처음 보는 풍물과 접하게 됩니다. 그러나 생전 처음 보는 풍물을 접한다고 노트를 갖고 가서 그 새로운 풍물 앞에서 그것을 베끼고 연구하고 공부하는 사람은 없어요. 신혼여행을 가서 그렇다면 좀 이상한 것이지요.
신혼여행의 목적은 새로운 풍물을 배경으로 상대방, 즉 신부면 신부 신랑이면 신랑을 그 배경에 세워두고 보려는 것입니다. 멋진 호텔에서 맛있는 과일을 놓고 샴페인이라도 터트립니다.
왜 그래요? 새로운 환경에서 신부에게 집중하고 신랑에게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둘이서만 있는데 배경을 바꿔 가면서 그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과 애정을 표현해내는 그런 목적이 신혼여행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주어지는 이유가 뭡니까?
이 세상에서 총리로 비유될 수 있는 그런 인생의 성공, 이 세상살이의 성공을 위해서 달려가는 것이 인새의 주 업무고 주 과제입니까?
그리고 하나님은 그 주 과제를 이루기 위하여 동원되시는 분이십니까?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신혼여행간 신랑과 신부처럼 이 세상살이와 바뀌는 환경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이 인생살이의 목적이라는 것이에요.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바른 마음을 가질까, 어떻게 내가 좋아하는 하나님에게 기쁨을 드릴까 이 하나님에 대한 애정 표현의 계기로서 삶이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살이에서 총리 자리조차도 결국 그러한 하나님에 대해서 내가 올바르게 “하나님이 좋아하는 걸 해야지. 나 하나님만 좋아요. 하나님 사랑해요. 하나님 없으면 못 살아요” 라고 하는 이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해나가는 과정 중에 저절로 떨어지는 결과물이지 그것이 주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우리가 얼마나 거꾸로 살고 있는지 몰라요.
좋은 대학을 간다, 좋은 직장을 구한다, 좋은 아내와 좋은 남편 배우자를 만난다 이런 모든 일들이 이 세상살이는 다 결과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냥 주어지는 것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24시간 노력해야 될 것은 지금 내가 바이어를 만나고 있는데 하나님이 보실 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좋아하실까, 어떻게 하면 내가 사랑하고 내가 좋아하는 저 하나님에게 조금이라도 기쁨을 드릴 수 있는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을까입니다.
바이어와의 대화의 주 토픽은 주로 뭡니까? 거래입니다. 무역을 성사시키고 주문을 받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주문을 받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 바이어와 함께 물건을 교역하기 위한 그런 과제를 놓고 얘기하는 중에 내 마음의 무게중심은 어디 가 있느냐? 하나님이 내가 하는 말과 내가 쓰는 마음가짐을 볼 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좋아하실까, 내가 사랑하는 내 하나님에게 기쁨을 드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이것을 생각하는 중에 거래가 성립이 되든 안 되든 그것은 결과물이라는 것이에요.
목사가 설교를 합니다. 이왕이면 교인들이 다 폭발적인 감동을 받고 은혜 받았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물이 되어야 해요.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하고 씨름하는 과정을 털어놓는 것이 설교예요.
예를 들어 목사도 가정이 있습니다. 아내와의 관계를 해나가는데 그 아내 앞에서 도대체 하나님이 어떻게 내가 말과 행동을 해야 좋아하실까를 생각하면서 사는 삶의 결과물로 설교가 나오는 것입니다.
교인들과의 관계에서 주어지는 설교는 설교라는 것을 수단으로 삼아서 좋은 목회를 한번 해보자 라는 마음을 먹는 게 아니라 설교는 결과물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순간입니다. 그러나 인격적인 관계에서는 하나님과 맺는 관계가 주 업무가 되어서 그 결과물로 나타난다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서 총리대신이 된 요셉을 생각해보고 김영삼 대통령을 한번 생각해보지요.
김영삼 대통령이 세종대왕 같은 그런 업적을 남긴 것도 없고 정치적인 면에서 세종대왕은 백성을 위해서 한글도 만들고 좋은 일을 많이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당나라의 태종처럼 정관의 치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정치세계에서 획기적인 무엇을 만든 것도 아닙니다.
제 3자 입장에서 그 분의 인생을 뉴스나 보도자료를 통해서 알고 있는 그런 지식 안에서 그 분의 삶을 보면 그야말로 대통령 되기 위해 일생을 사신 것 아닙니까?
말단 사원으로 들어가서 최고 경영자 자리에 선 사람이 은퇴하고 나서 내가 뭘 했나 싶어서 한심해하는 그런 고백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게 목표였거든요.
우리가 목표로 삼고 우리가 주 과제로 삼고 사는 것은 그런 거 아니에요.
이 세상에서 무엇을 벌자, 얼마나 벌자, 어떻게 되자 이게 우리 과제가 되어서도 안되고 우리의 목표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의 목표는 지금 주어지는 이 현실과 이 환경에서 내일이면 또 달라질것이고 또 내일이면 달라질 것이에요. 아니면 같을 수도 있어요. 같으면 같은 대로 달라지면 달라지는 대로, 사람들이 보기에 좋으면 좋은 대로 안 좋으면 안 좋은 환경인 대로 어떻게 합니까?
그 환경과 지금 내가 상대하고 있는 일과 상대하고 있는 사람과 이 현장을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데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내가 어떻게 말하면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실까 이것만 생각하면서 사는 겁니다.
그러니까 일평생 수백 수천 수만 명을 만나도 실제로 내가 관계하는 것은 단 한 분이라는 것이에요.
평생을 자식을 기릅니다마는 그 자식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자식이 성장하고 자라는 것은 그냥 여가선용처럼 주어지는 결과물입니다. 그 자식 앞에서 하나님은 도대체 내가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면 좋아하실까를 생각하면 되는데 우린 과제를 거꾸로 생각해요.
어떻게 생각하느냐? 자식 앞에 서 있으면 자꾸 자식의 행동을 문제 삼습니다. 자식의 인생을 문제 삼습니다. “네가 이렇게 하면 되겠니?”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자식이 못된 짓을 했습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들의 과제는 뭐냐?
이 못된 짓을 한 자식을 못된 짓을 했다고 판단해서 그 자식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그 못된 짓을 한 자식 앞에 있는 내가 어떻게 말하고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면 하나님이 좋아하실까 그것만 신경쓰다 보면 자식의 문제가 저절로 주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업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사업의 문제를 과제로 삼습니다. 그거 아니라는 거예요.
그 문제가 되는 사업의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을 하나님은 제일 좋아하실까 이것을 묻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는 겁니다.
그러면 사업의 성패는 결과물로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요셉은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면 하나님이 좋아하실까 그것 만을 생각했던 자입니다. 보디발의 아내 앞에서도 보디발 앞에서도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 앞에서도 그들의 꿈을 앞에 두고 하나님이 어떻게 얘기하실까 하나님이 내가 이 꿈에 대해 어떻게 얘기하면 좋아하실까 이것만 신경 썼던 것이에요.
바로 왕 앞에 가서도 결국은 그 꿈을 그렇게 해석해요. 바로 왕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왕이 꾼 꿈에 대해서 하나님은 내가 어떻게 말하는 것을 원하실꺄 이것만 생각한 겁니다. 그 결과 감옥에 있던 죄수에게 총리가 주어집니다. 그 죄수의 신분이 누구냐 하면 히브리 사람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총리가 되겠다고 마음 먹었으면 그 대가를 지불하라는 말대로 대가를 지불하려고 했다면 이 세상살이에서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대가를 지불했다면 어느 정도로 지불해야 요셉이 총리가 됐을까요?
24시간이 모자랐을 겁니다. 노력하고 공부하고 로비하고... 이래가지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세상살이는 제발 대가를 지불하지 마세요. 내가 뭘 노력하고 성실하게 뭘 해야 된다? 그러지 마세요. 그건 주어져요.
학생들이면 어떻게 합니까? 그들에게 가르칠 것은 그 자리에서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하는 것을 좋아하실까를 묻는 겁니다. 만에 하나 너 공부하지 말아라 이렇게 얘기하시면 공부하지 마세요. 그래도 총리되니까요. 총리에 준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그에게 이루어지니까요.
우리의 제일 문제가 상황이 주어지면 그 상황을 내가 판단을 해버립니다.
왜? 과재로 삼고 있기 때문에. 절대 그러지 마세요! 함부로 상황에 손대지 마세요. 함부로 상황을 판단하지 마세요.
먼저 하나님께서 나를 보신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면 제일 좋아하실까.
제일 좋아하는 것은 그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내 마음이 그 문제에 대해 제로되는 것을 제일 좋아하십니다.
첫 번째 십자가를 붙잡고 죽으세요. 손이 못에 박혔는데 내가 그 문제에 대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을 하나님은 제일 좋아하십니다. 죄인 됨을 아는 것이에요.
그리고 나면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주십니다. 주님의 보혈의 힘으로 내 죽음이 이루어져서 하나님이 나를 안아 주십니다. 평안을 누리세요.
그러다 보면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저절로 주어지는 거예요.
그대로 움직이세요!!
그 다음부터는 여러분들이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겁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다...
무엇을 해야 좋아하실지 정해져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손을 떼는 것 하나님이 최고로 좋아하십니다.
세상살이 여가선용처럼 주어지는 일이에요. 그것을 위해서 평생을 바치는 사람은 바보!
오직 수만 수천의 사람을 관계하고 살아도 진짜 관계하는 분은 하나님 한 분만 관계하며 사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세상살이 한번 해볼 만합니다. 기대에 차고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만 상대하며 하나님만 좋아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사람을 관계하고 일을 관계하고 문제를 대할 때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시고 요셉에게 허락한 총리 자리 대신에 나에게 무엇을 허락하실지 너무너무 궁금하고 너무너무 재미있고 너무너무 희망을 갖고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하루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하든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좋아하실까 그거 한 가지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총리 자리가 주어지듯 하나님의 은총이 현실화되는 놀라운 복된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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