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유식학에서는 네 가지 지혜를 취급함에 있어서 8식이 반드시 전환해야만 네 가지 지혜가 성취될 수 있다는 입장이 통설입니다. 그러나 육조스님은 그러한 통설에 따르지 않으면서도 독특하고, 오히려 타당할 수도 있는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즉 육조스님은 여덟 식을 전환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여덟 식의 자성이 본래 청정한 것을 바로 깨달으면 여덟 식 그대로가 네 지혜[四智]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육조스님의 4지송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대원경지는 자성이 청정한 것이며,
大圓鏡智는 性淸淨이요
대원경지는 제8식(第八識)의 자성이 청정한 것을 말합니다. 제8식을 끊고 제8식을 전환하여 대원경지를 증득하는 것이 아니라 제8식의 자성이 청정한 그대로가 대원경지인 것입니다. 자성을 '청정하게 한다'고 하면 이것은 육조스님의 뜻과는 정반대가 되어버립니다.
육조스님의 입장에서 볼 때는 대원경지의 성품은 본래 청정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청정하게 한다고 다시 반복하여 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평등성지는 마음에 병이 없음이며,
平等性智는 心無病이요
이것도 대원경지와 마찬가지입니다. 평등성지는 바로 제7말나식에 병이 없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제7식에 미혹과 집착의 병이 없는 상태가 바로 평등성지인 것입니다.
묘관찰지는 공용이 없음이며,
妙觀察智는 見非功이요
묘관찰지는 무루(無漏)의 제6식을 말합니다. 제6의식이 경계를 대하여 힘쓰는 것[功用]이 있으면 곧 집착을 일으킵니다. 이런 공용이 없는 것을 비공(非功)이라 하고 곧 무심(無心)을 의미합니다. 무공용이 되면 제6식 그대로가 묘관찰지가 되는 것입니다.
성소작지는 대원경지와 같으니라.
成所作智는 同圓鏡이로다
성소작지는 청정한 전5식을 뜻하는데 이것은 대원경지와 같습니다. 전5식은 제8식을 의지하여 존재하기 때문에 제8식이 청정하여 대원경지가 될 때 그것도 더불어 성소작지가 됩니다. 즉 5근(五根)으로 행하는 일체가 대원경지의 작용이 됩니다.
전5식과 제8식은 과상(果相)에서 전환하고 제6식과 제7식은 인중(因中)에서 전환하나,
五八六七이 果因轉이나
5·8과 6·7은 각각 전5식·제8식·제6식·제7식을 말합니다. 제6식은 무상정인 제7지에 들어갈 때 완전히 없어지므로 인중에서 전환하고[因中轉], 제7식도 멸진정에 들어갈 때 없어지므로 역시 인중에서 전환합니다.
그러나 제8식은 금강도(金剛道) 후에 이숙식(里熟識)이 공하게 되므로 등각의 최수심이 모두 다 끊어진 묘각을 성취하는 완전한 과위(果位)에서 전환되기 때문에 과상(果)에서 전환한다고 합니다.
단지 전환이라고 말할 뿐 참성품은 없느니라.
但轉名言이요 無實性이라.
과상에서 전환하고 인중에서 전환한다는 것은 단지 말로서만 전환이라고 할 뿐으로 실성(實性)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실지로 전환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교가에서도 '이름을 바꾸었을 뿐 그 체를 바꾼 것은 아니다[改名不改體]'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제8식을 전환해서 대원경지가 되었다고 하는 것도 실은 이름만을 바꾼 것이지 제8식 자체를 바꾸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제8식이 청정한 그대로가 곧 대원경지로, 제8식의 자성이 청정한 것 외에 따로 대원경지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환한다는 것은 단지 이름만을 바꾼 것에 불과한 것으로 그 체는 언제나 그대로입니다.
만약 전환하는 곳에서 정념을 두지 않으면,
若於轉處에 不留情이면
이는 제8식이 대원경지로 전환하고 제7식이 평등성지로 전환하는 등 전환하는 곳에서 일체의 분별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분별이 없다는 것은 심층의 무분별까지 없음을 뜻하는 것으로, 전체적으로 제8아라야의 미세한 분별까지 없다는 것입니다.
흥성하게 영원히 나가정(那伽定)에 머무느니라.
繁興永處那伽定이로다.
나가(那伽)라는 말은 용(龍)을 뜻하는데 부처님이 선정에 들어 자유자재하심이 마치 용이 허공이나 바다에서 자유자재하게 노니는 것과 같음을 비유하여 나가정(那伽定)이라고 한 것입니다.
누구나 집착을 버리고 자신의 자성이 청정함을 바로 자각하면 그대로 나가정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는 식을 끊고 전환하여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본성이 저절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