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시편 21편은 다윗이 암몬의 랍바를 점령한 후 부른 승리의 노래입니다. 랍바는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를 치열한 전투에 배치하게 하므로 죽게 만들었던 곳입니다. 충성스런 이스라엘의 장군 우리야의 피가 적셔진 그곳을 다윗이 밧세바와의 간음의 죄를 회개하였을 때 큰 승리를 안겨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기도 응답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차지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인격과 나의 인격의 부딪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딪힘’을 영어로 encounter라고 합니다.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했습니다. 영어로 ‘ask whatever you wish’라고 하였는데 내가 원하는 것, 바라는 것을 모두를 담대하게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므로 하나님의 인격과 나의 인격이 부딪히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이 부딪힘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제가 신학을 공부할 때 한 분은 엉뚱한 발상을 했습니다. 그것은 학교에 올라가는 길옆에 큰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그것이 뽑혀 바닷물에 빠지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 근거를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 17:6)는 말씀에 두었습니다. 3년을 오르내리면서 기도했다고 하는데 졸업한 지 35년이 지난 지금도 그 느티나무는 뽑히지 않았고 그 자리에 있습니다. 여기서 어떤 문제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요한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에서 동기의 순수성을 강조했습니다. 기도를 자칫 오용(誤用)하는 예도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우선으로 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응답이 먼저가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며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여 그 뜻에 자기를 쳐 복종하는 것이 바람직한 기도의 모습입니다.
느티나무가 뽑혀 바다에 던지기를 기도했던 숨은 동기가 무엇이었겠습니다. 말씀대로 성취되는지 알고 싶은 것 아닙니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도 시험을 받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내 기도를 응답하시는지를 알기 위하여 자신을 돌아보지는 않았다는 말입니다.
아르헨티나의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목사님이 저술한 책 중의 하나인 <우리의 기도의 대부분은 하늘나라에서 잡동사니 우편물처럼 취급당합니다.>가 있습니다. 그 책에서 주장하기를 “이제 기도만 하지 말고 하나님께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여쭙고, 행동할 것을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종교인은 기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종교와 다른 근본적인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종교인들은 자기의 기도를 받는 신의 뜻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의 소원과 욕구가 우선입니다. 이에 반하여 기독교의 기도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것은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에 이런 기도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여타 다른 종교의 기도와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오늘의 말씀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는 구원입니다.
1절에서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크게 즐거워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은 일방적인 하나님에 의하여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구원을 얻기를 소원하는 사람에게 베풀어 주시는 최상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하여 소원을 들어주시는 것은 아름다운 복과 순금 관으로 머리에 씌우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생명을 얻되 더 풍성하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얻어지는 영원한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대적자들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일3:8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이미 마귀의 일을 멸하셨습니다. 그 승리를 믿음의 성도에게 안겨주어 오직 믿음으로 이기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8절에 “왕의 손이 왕의 모든 원수들을 찾아냄이여 왕의 오른손이 왕을 미워하는 자들을 찾아내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성도들과 함께 대적자들을 물리치시고 함께 영광과 기쁨을 나누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악한 대적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권세 앞에 힘을 쓸 수 없습니다. 그분의 권세가 바로 우리들의 권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기도는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뜻에 나를 복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직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13절에서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라는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