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탄주공아파트를 떠나며
매탄1동의 매탄주공아파트가 지난 10월 20일부터 이주가 시작되었다. 여타 다른 재건축단지에 비해 빠른 이주율을 보이며 11월 22일 기준으로 매탄주공아파트 5단지의 55%의 주민이 이주를 했다고 한다. 지지부진했던 사업이 빠른 진행으로 반갑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거주하며 많은 추억을 남긴 공간을 떠나는 이들의 아쉬움도 많다. 이 곳에 22년을 거주하다가 떠난 고석자 씨를 만나 매탄주공아파트에서의 추억을 들어보았다.
고석자 씨를 만나기로 한 곳은 523동 앞이었다. 이사를 했지만 아직 집이 폐쇄처리 전이라며 선뜻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비가 내려서 우중중한 날씨와는 다르게 빈 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온기가 가득했다.
“이사하고 나니깐 허전하네요. 내년 2월 19일까지 이사하면 되는 데, 내가 괜히 빨리 결정을 해서 이사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통장이거든요. 실은 오늘도 통장회의하고 저소득층에 나눠주는 쓰레기봉투를 방문 전달하고 오는 길이에요. 이천으로 이사했는데, 이주 전까지는 활동을 마무리 지어주고 싶어서 오가고 있어요.”
이사를 했음에도 애정으로 가지고 이천과 수원을 오가고 있다는 고석자 씨의 눈빛에서 아쉬움이 묻어났다. 2000년 5월 8일. 매탄주공아파트로 이사 온 날이라고 한다. 어버이날이라서 정확하게 이삿날을 기억한다는 고석자씨는 어떻게 이 곳에서 22년이나 되는 긴 시간동안 살았을까?
“처음 집을 보러왔을 때 아파트 단지가 나무가 많아서 좋았어요. 특히 이 집을 고르게 된 건 앞베란다에서 보이는 게 아파트 벽이 아니라 동과 동 사이라서 나무도 보이고 하늘도 보여서 좋아서 ‘이 집이다’ 했거든요. 살다보니 계절에 따라 변하는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게 좋았어요. 그리고 주변의 좋은 인프라 덕분도 있죠. 관공서, 은행, 뉴코아, 광교로 옮겨간 갤러리아 백화점, 효원공원까지 도보거리에 편의시설이 많아서 불편함을 모르고 살았죠.”라고 말했다.
20년이 넘게 살아오며 늘 편안한 날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30살의 젊은 나이게 자가면역질환이 발병하여 고생했고, 남편과 친정엄마를 먼저 떠나보내는 이별의 시간도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큰 탈 없이 살아온 것이 기쁨이란다. 재건축 완공 후 돌아오지만, 마지막으로 지금의 집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 지 물어보았다.
“잘 지내다 떠난다. 그동안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