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시간이면 히로시마 평화공원 어떤 비석앞에서 원폭피해자분의 설명을 듣고 있었겠네요.
안녕하세요. 중급부 1에서 막중한 조원의 책임을 담당했던 '장트라볼타'
열치매<기준성>입니다.
바로 어제일처럼 기억이 생생한데 시간이 벌써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히로시마에서 예상했던 불볕더위를 한국에서 된통 맛본 일주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작년 이맘때인가 우연한 기회에 서점에서 눈에 띄어 읽게된 연해주 이주민사에 대한 책에서부터 시작됐었습니다.
정말 잘못된 역사요. 무책임한 우리들이구나 라는 느낌만 기억한채 시간이 흘러 우연히 몽당연필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고, 몽연 카페 눈팅만 하다 소풍콘서트 부분이 눈에 들어왔었습니다.
'와~~ 저거다. 나도 가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 여기까지 와버렸네요.
장트라볼타때문에 아쉬운점도 많았지만, 행복한 기억들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일본 우리학교 방문단이 될 수 있다는 흔치않는 기회.
연예인들 카메라 플래쉬 터질때 느낌을 경험해 볼 수 있었던 찬스.
가깝고도 먼 타국에서 1000여분이 한데 모여 함께 춤추고 노래했던 모습들.
정성스럽게 준비된 히로시마, 시코쿠 우리학교 아이들의 공연속에서 가슴이 뭉클해졌던 따뜻한 느낌.
그리고 동포분들의 정성을 느껴버린 운동장 불고기 파뤼~~~
새벽까지 이어진 무용실 파뤼~~~
그리고 평소엔 만날 기회가 거의 없을 수도 있는 전국 각지에서 오신 방문단 여러분들과의 만남.
제가 모시고 있는 상무님이 이렇게 표현하시던군요.
"야, 임마! 그런 추억은 쉽지 않은거야. 어쩌면 평생 안올수도 있어. 행복해 해야되......."
맞습니다. 저도 동감합니다.
일본으로 가기전 제가 했던 상상범위을 초월했습니다.
감사할 일이지요. 이런 기회를 주신 몽당연필 주최측과 공연단분들, 그리고 일본에서
수고하신 실행위원회 분들, 그리고 동포분들...
무엇보다도 우리학교앞에 줄지어 서서 열렬히 환영해 주던 우리 아이들.
그리고 저를 연예인 기분 느끼게 해준 카메라맨~~, 촬영맨~~ 세분도 포함하여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사실 출발전부터 저는 몇 가지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왜 저렇게 긴 세월을 조선적을, 우리학교를 고집했었을까?'
'나라가 뭐고, 민족이 뭐기에, 해준게 뭐있다고 기억하고 그리워할까?'
'좀만 생각을 바꾸면 지금과는 달라지는 것 아니었을까?'
하는 물음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었습니다.
<제가 좀 속되지요~>
기회가 되면 한번 물어보리라는 마음과 함께........
그러나 막상 현지에 도착하고, 들뜬 마음과 바쁜 일정에 묻지는 못했습니다.
사실 물을 엄두도 못냈지요. 그저 바라만 보았던 것같습니다. 물끄러미~~~
그렇게 시간이 후다닥 흘러 마지막말날!
시코쿠 우리학교에 갔을 때 부터 미치겠더라구요.
제 평상시 표현대로 하면 돌아버리겠더라구요.
확실히 좀 더 시골이어서 인지 너무나도 순수한 표정, 꺼리낌없는 행동,
정말 보고 싶었다고 외치는 우리 학부형 누님들.
계속해서 눈물 글성이던 우리 학교를 지키던 우리 젋디 젋은 선생님들.
무엇보다도 공연단의 공연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두분의 칠순 남성 동포를 잊을수 없습니다.
표정하나 없이 그저 의자에 않자 구경만 하시더니,
어느 순간 조용히 눈물을 훔치시던 순간을 봐버렸거든요.
아마도 그 순간부터 감정조절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 한 순간에서 긴 70여년의 세월이 느껴졌다고 하면 과장이겠지요.
거기에 다같이 합창을 하라니.......
점점 감당이 안되서 조용히 뒤로 빠졌습니다.
그렇게 후다닥 버스에 올라 공항에 가서 또 한번 분위기 싸해지는것에
또 조용히 뒤로 빠져서 비행기에 올랐었네요.
그리고 지금은 한국에 있구요.............
지나고 보니 아쉽습니다.
좀 더 다가가지 못했던 것을.
머리보다는 마음으로 느끼려 노력하지 못했던 것을.
우리라는 생각, 함께 한다는 마음가짐이 부족했던 것을.
방문단분들 일일이 인사나누지 못했던 것을.
장트라볼타를 적극적으로 조기 진압하지 못했던 것을.
분명 다시 한번 기회가 있겠지만, 히로시마/시코쿠 와는
다를 거 같다는 생각에 참 아쉽네요.
아직 궁금중이 해결되지도, 더구나 우리 학교 학부형분들은 무엇을 아이들에게
기억시키려는 것일까는 질문만 추가되었지만, 그 건 점차 해결해보기로 하고
앞으론 생각만 하기보다는 좀 더 할 수있는 일이 있다면 하면서 생각해야겠습니다.
생각만 하다가 동포들 외롭겠어요. 저 하나 더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이렇게 한명한명 알려나가면 되겠지요. 머~~~~
요즘들어 잊지말아야 한다고, 기억해야 한다고 많이들 이야기합니다.
근데 그게 참 어려운 일이더라구요.
그냥 자꾸 잊어먹어요. 그게 우리의, 저의 일상이구요.
근데 70여년을 기억하고 지키고 있었습니다.
저 먼 타국에서
그게 참~~~~~~
우리 학교, 우리 동포 화이팅!!!!!!!
아! 마지막으로
"재특회" 이새끼들.
영상보니까 니들 엄청 치사하더라.
그것도 떼로 몰려 다니며.
그거 엄첨 비겁한건지는 아냐?
확~ 쌍욕을 퍼버주고 싶은데.....
암튼 조심해라...
내가 되었든, 누가 되었든
밤길 어딘가서 대기하고 있을수 있으니까.....
하고 싶은 얘기 있으면 말로 하란말이야.
이 ~~쌔끼들아!!!!!
첫댓글 첫 방문의 기억은 첫사랑처럼 평생 오래 가겠죠
동포를 만난 기쁨처럼 기준성을 만난 것도 감동이고 지속적으로 잉
항상 좋은 말씀 감사함다. 단장님~~^^
좀 더 다가가지 못했다는 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이 반성하고 있지요.
시코쿠초급학교에 뵌 70대 어르신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합니다.
칠십년 살아오시면서 처음 겪는 일이라고... 어르신들 찾아 뵙고 지켜주셔서 고맙다는 말씀드리고 일일이 다 인사 드렸어야 하는데 그냥 꾸뻑만 하고 와서 많이 아쉽습니다. 맘 속에 다짐을 합니다....꼭~~
항상 본이 된시는 분~~ 저도 다짐합니다~~
@열치매(기준성) 내게도 어르신이 꿈만 같다 하시네 그들에게 우린?
첫 방문의 첫사랑을 소중히 간직하셈~ 고생 많았고 고맙고! ^^
글게~~ 그 첫사랑과 바람날 방법 고민중~~
@열치매(기준성) 근디..첫사랑 바람이 여러명이 겹칠 것 같아 걱정이유. 문어발 다리 걸치기도 괜찮을까유?
@동천(장병길) 괜찮아유~~^^
준성씨. 많은 공부를 하고싶다는 약속, 더 알고싶다는 다짐. 무겁게 받아안고 일하겠어요. ^^
안무거울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