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화 깊이 들여다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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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북한의 유일한 해외 예술단인 <금강산 가극단>의 공연을 보았다.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한 여성 가수가 「심장에 남는 사람」이란 노래를 불러 주었다.
인생의 길에 상봉과 리별 그 얼마나 많으랴 헤어진대도 헤어진대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못잊어.
몇 해 전 평양에 갔을 때도, 북쪽 사람들은 이 노래를 즐겨 불렀다. 이 노래가 기억에 남아, 이번 공연에서도 이 노래를 좀 들었으면 했는데,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노래를 불러 주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내게도 잠깐 만남이긴 하였지만, 그야말로 심장 속에 남은 사람이 있다. 북쪽의 누이다. 생사를 모르고 있었는데, 작년 광복 60주년 기념 8.15 화상 상봉 때 처음으로 누이를 볼 수 있었다. 북의 누이가 먼저 남쪽의 동생들을 보고 싶다는 연락을 해 왔다. 시골 이장한테 신원 조회 연락을 해 와, 이장을 통해 소식을 듣고는 우리 가족들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누이를 만나기 위해 온 가족이 며칠 동안 준비를 하였다. 누이가 보고 싶어할 만한 곳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시골집부터, 누나가 어릴 때 살았던 서울 집, 또 다니던 학교를 비롯해서, 생각나는 곳을 찍었다. 아버지 어머니 사진을 비롯해서 남쪽 식구들의 가족 사진을 다 모으고, 사촌을 비롯해서 누나가 보고 싶어할 만한 사람들 사진을 스크랩하였다. 또 화상 상봉장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식구들의 목소리를 녹음하였다. 이렇게 준비를 해서 드디어 화상 상봉이 시작되었다. 화상 상봉장에는 다섯 사람까지만 들어갈 수 있었다. 6.25 전에 태어나 누이의 기억에 남는 식구들 다섯만 들어갔다. 나와 위로 누이 둘은 상봉장 밖에 설치된 화면을 통해 상봉 장면을 보았다. 식구들이 긴장한 채 화면을 보고 있자, 이쪽과 저쪽의 화면이 열리면서 누이의 얼굴이 보였다. 누이는 진달래 빛 나는 고운 한복을 입고 있었다. 한복 오른쪽 왼쪽 가슴에는 훈장을 달고 있었다. 화상 상봉장에 나온 북쪽의 사람들은 그렇게 모두들 가슴에 훈장을 달고 있었다.
누이는 6.25를 겪으면서 북으로 넘어갔다. 그 때 누이는 서울에 살면서, 진명여고를 다니고 있었다. 서울에 인민군이 내려왔을 때 우리 식구들은 피난을 가지 않았다. 인공 치하에서 다시 학교가 열리고, 그 때 학교에 등록을 하러 간다며 나가서는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등록을 하러 온 학생들을 그대로 간호 복장을 입혀 전쟁터로 데려간 것이다. 이래서 누이하고는 소식이 끊기게 되었다. 양쪽의 화면이 열리자 북의 누이는 눈물을 흘리며 사진을 들어 보였다. 학교 다닐 때 사진과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사진을 들어 보였다. 우리들은 누이가 가족 사진은 한 장도 갖고 있지 않을 거라 생각하였는데, 그렇게 많은 사진을 갖고 있는 걸 보고 놀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누이는 집엘 한 번 왔었단다. 1.4 후퇴 때 누이는 다시 서울로 내려와 집엘 들렀다. 그 때는 식구들이 시골 강화 집으로 다 피난을 갔을 때였다. 누이는 아무도 없는 빈 집에 들러, 마루에 있던 사진틀에서 사진을 모두 빼 갔다. 그리고 나서 집 기둥에 “덕임이 왔다 간다.”고 수술칼로 새겨 놓았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누이는 북에서 김책종합대학 섬유 공학과를 나와 섬유 공장의 직장장 일을 하였단다. 친척도, 형제도, 부모도 없는 곳에서 할 일이라곤 공부 말고는 없었다고 한다. 통일이 되면 아버지 어머니 모시고 결혼을 하려고, 기다리다 그만 결혼도 아주 늦어졌다고 한다. 전쟁 때 부모를 다 잃고 자기처럼 고아가 된 같은 대학을 다니던 친구와 결혼을 하였단다. 아들 셋에 딸 하나를 두었는데, 매부는 과학자로 일을 하다 얼마 전 뇌출혈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대학은 나라에서 신발이니, 공책이니, 교복이니 다 주면서 공부시켜 주니 어렵지 않게 다녔단다. “내가 밤에 달 뜨면 야, 우리 동생도 바라보갔네 하고 얼마나 눈물도 나고 그랬는지……. 우리가 만나야 하는데, 조국이 통일이 되야 하는데, 누구 때문에 우리가 지금 못 만나고 있는 거니.” 누이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몇 년 전 평양에 갔다 온 이야기를 나는 한 마디도 쓸 수가 없었다. 여행을 하면서 보고 느낀 이야기들을 공책 한 권이 다 차도록 메모하였지만, 그 이야기를 남쪽에 와서 풀어 놓을 수가 없었다.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 나오지 못하도록 나를 억압하는 무의식의 층이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북쪽의 어린이 문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 요즘 어린이 문학 하는 사람들은 분단 현실을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 아주 어려운 문제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내 기억에 남는 작품이 하나 있다. 이 작품은 어린이 문학을 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별로 받지 않는 듯싶다. 『할아버지의 모자』란 작품이다. 어린이 문학이 대중 문예가 되면서, 이렇게 분단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는 작품에 대해서는 점점 관심이 작아져 가고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을 꼭 독자의 가벼운 취향이나, 어린이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탓을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의미 있는 작품을 독자가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다고 할 때는 거기에는 작품이 갖고 있는 내적인 진실성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인지 먼저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할아버지의 모자』는 요즘 우리 어린이 문학이 분단 문제를 어떻게 그려 나갈 것인지 고민할 때 상당히 많은 상상력을 제공해 주는, 빛이 되는 점을 많이 갖고 있다.
『할아버지의 모자』는 흥미로운 시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가 과학자로 북한에 가고, 주인공 나미도 학교를 쉬고 아버지가 있는 평양으로 간다. 지금 분단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현실 공간을 작품 속에 과감히 설정해 놓았다. 엄격한 통제 아래 이산 가족이 만남을 가져야 하는 이 답답한 현실 공간을 넘어서는 시공간의 확대가 이야기의 흥미를 이어 가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이런 시공간의 새로운 설정이 현실을 왜곡하는 방향이 아니라, 분단 문제를 더욱 깊이 있게 탐구하는 상상력의 결과로 보여야 할 것이다. 또 하나 이 작품이 흥미를 끄는 요소는 주인공이 북한 사회 내부로 들어가서 이야기가 풀려 나가는 점이다. 어린이 문학에서 이런 작품은 지금까지 좀처럼 보기가 힘들었다. 우리 어린이 문학사에 남는 분단의 아픔을 다룬 작품들은 많다. 이런 작품들은 대개 작가가 직접 분단을 몸으로 겪고 체험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분단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제는 분단의 문제를 다루는 작품도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분단 이후 세대, 6.25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이 몸이 아닌 상상력으로 분단 문제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분단을 몸으로 직접 겪은 1세대 작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이제는 분단을 경험하지 못한 어린이들에게는 까딱 잘못하면 그저 후일담 문학으로 치부될 수도 있는 시대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분단 문제가 중요하니 어린이들로 하여금 당위적으로 작품을 읽어 달라고 무작정 강요할 수만은 없게 된 것이다. 직접 몸으로 분단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이 분단 문제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도록 새로운 감각을 갖고 창작해 낸 작품에 대한 연구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경험을 넘어서 상상력의 힘으로 분단 문제를 풀어 가는 본보기가 되는 작품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이 『할아버지의 모자』는 여러 가지로 새로운 의미를 품고 있다.
『할아버지의 모자』는 크게 두 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나미가 북쪽에 가서 친구를 사귀는 장면이다. 어린이들 사이에 오고가는 생활 이야기들이 지루하지 않은 속도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다 2부에서는 이야기가 아주 극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 남쪽에서 살고 있는 나미의 할아버지가 북에 남긴 가족을 만나는 장면이다. 할아버지는 남으로 넘어오기 전에 북에서 결혼한 부인이 있었고, 자식 또한 있었다. 남쪽으로 내려와 재혼을 하여 낳은 아들이 나미의 아버지였다. 나미는 아버지와 같이 북쪽의 큰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할아버지는 나미가 북으로 아버지를 만나러 평양행 기차를 탈 때, 조그만 꾸러미를 주었다. 북에 있는 할머니와 헤어질 때 나눈 쌍가락지의 한 쪽이었다.
이야기가 끝으로 가면서 너무나 비극적인 장면이 이어지게 된다. 나미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서 북으로 가는 장면이 나온다. 북으로 가서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만나기 전에, 할머니는 먼저 자살을 해 버리고 말았다. 할머니의 죽음을 보고, 북으로 갔던 할아버지도 죽음을 맞고 말았다. 북에서 죽음을 맞이한 할아버지의 시신은 남쪽으로 옮겨져 장사를 치르게 된다. 이 작품에는 3세대가 등장한다. 분단을 몸으로 경험한 1세대인 할아버지와, 그 자식인 아버지 세대, 그리고 주인공 어린이 세대이다. 어린이들이 단순한 구경꾼의 자리에 서는 주변 인물이 아니라, 어린이가 작품 속의 중심 화자가 되어, 분단 문제를 이끌어 간다는 점에서도 이 작품은 주목할 만하다.
견고해 보이던 분단의 벽은 시대가 변하면서 새로운 양상을 맞이하고 있다. 탈북 어린이들이 남쪽에 들어오면서 분단 문학에 새로운 변수가 되고 있다. 분단을 경험한 세대로부터 지난 시대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남쪽 어린이들이 이제는 직접 분단을 경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밝은 쪽으로든 어두운 쪽으로든 남과 북의 경계는 어떻게든 허물어지면서 어린이들이 직접 분단을 경험하는 폭은 넓어지고 있다. 남과 북의 경제 교류로 인한 새로운 시공간이 열리고 관광을 통한 교류, 또 여전히 탈북으로 인한 만남도 이루어질 것이다. 탈북 어린이를 통해 분단 문제를 다룬 『딱친구 강만기』는 다양한 분단 문제를 다룬 작품 가운데 하나로 주목할 만한 형식이라 해야겠다. 『할아버지의 모자』가 남에서 북으로 간 아이가 본 세상 이야기라면, 그보다 뒤에 씌어진 『딱친구 강만기』는 탈북이란 삶의 현실을 통해, 북에서 남으로 온 아이가 본 세상 이야기이다. 어떤 형식으로든 남과 북의 아이들이 직접 몸으로 겪는 이야기의 장이 새롭게 열리고 있다. 이런 작품은 단순히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가 들려주는 후일담 문학의 형식과는 다른 독특한 흥미를 준다.
이 두 작품을 읽으면서 분단 문제를 그리는 남쪽의 어린이 문학 작품에 대한 연구를 깊이 있게 해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현대 어린이 문학이 분단 문제를 어떻게 그려 왔는지, 시대를 타고 오면서 나타나는 작품의 세계관과 형상화 방법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런 연구를 통해서 분단 문제를 다루는 빛이 되는 작품을 찾아 내어, 거기에서 무얼 더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인지를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지금까지 분단 문제를 다룬 작품은 어린이 독자의 마음자리에서 보기보다는 어른이 계몽성을 너무 내세웠기에 어린이들이 읽어 내기에는 힘든 작품이 많았다. 어린이 독자론의 자리에서, 요즘 아이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다양한 형식 실험과 세계관의 탐구가 돋보이는 작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전체적인 작품의 완성도는 조금 떨어지더라도,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는 실험 요소가 들어 있는 작품을 적극 찾아 낼 필요가 있다.
남쪽에는 북한의 어린이들이 읽는 작품이 꽤 많이 소개되어 있다. 이 점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북한의 어린이 문학을 깊이 있게 연구한 연구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의 어린이 문학에 대한 연구가 시급하다. 1차 자료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고, 북한의 어린이 문학에 대한 연구가 바탕이 되어야, 통일 어린이 문학사를 써 나가는 작업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분단 문제를 놓고도 어린이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숙제는 너무나 많다. 창작을 하는 작가와 연구자 모두에게 주어진 짐은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
작년에 이루어진 화상 상봉장에서 여러 이산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이 화상으로 만나는 상봉 장면을 여럿 지켜보았다. 부모와 자식, 또는 형제 사이의 만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눈물 나는 감정을 드러냈지만, 그러나 흥분된 감정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서로 다른 체제에서 살아가면서 쌓아진 언어의 벽은 상당히 높았다.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상봉장에 나온 북의 가족들이 드러내는 집요한 체제 선전 발언과, 그런 발언을 잘 참아 내지 못하고 대응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언어는 피를 나눈 가족 사이에도 서로 녹아들기가 영 쉽지가 않았다. 깊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없는 화상 상봉이 갖고 있는 한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의식 저 깊은 곳에 스며들어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의 정을 지배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사람들이 무한정 억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어린이 문학은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내는 쪽으로 치열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오월 단오 날에는 아버지 제사를 지냈다. 이번 제사는 시간을 열 시에 맞추어 지냈다. 북에 있는 누이도 이 날 열 시에 맞춰 제사를 지내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제사를 지내고 나서도 한참 식구들끼리 누이 이야기를 하였다. 가족도 없이 북에 살면서 인생의 고비 때마다 누이는 얼마나 가족이 그리웠을까. 그 그리움에 누이는 또 얼마나 홀로 눈물을 흘렸을까.
약속된 상봉 시간이 끝나면서 진달래 꽃 무늬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누이는 일어서서 눈물을 흘리며 남쪽의 동생들에게 두 손을 흔들어 주었다. 손을 흔드는 누이는 남쪽의 동생들에게 큰 산이 되어 서 있었다. 기나긴 세월 그 산에 눈물로 물을 주며 살아온 누이의 몸은 온통 진달래 꽃으로 피어나 있었다. 눈물은 사람의 몸에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새삼 누이를 보고 알 수 있었다. 북쪽 어린이 문학 연구가 나에게는 절실한 삶의 문제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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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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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복 / 1957년 경기도 강화에서 태어나 서울교육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어린이 문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한국 어린이 문학사 정리와 판타지 동화 공부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10년 남짓 어린이들을 가르치다가, 지금은 월간 『어린이와 문학』 일을 도우며 달마다 「이야기 밥」이라는 소식지를 내고 있습니다. 대표 작품으로는 『북한동화선집』 『뚱보 방정환 선생님 이야기』 『우리 동화 바로 읽기』 『우리 동화 이야기』 『우리 동요 동시 이야기』 등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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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나온 책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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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모자 / 이산하 지음, 김성민 그림 / 지식산업사 |
딱친구 강만기 / 문선이 글, 민애수 그림 / 푸른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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