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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개혁 지향의 정치칼럼 사이트 서프라이즈(http://www.seoprise.com/)에 실렸던 글입니다.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한 설득력 있는 비판이라고 여겨지는군요.
이름: 뉴요커
2003/1/16(목)
조회: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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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없어져야 한다. 그렇다고 건물이나 교수들을 모두 없애라는 것이 아니다. 학부를 폐지하고 대학원 중심의 연구기관으로 바뀌어야 된다는 뜻이다. 아니면 프랑스가 소르본느 대학을 없애고 각 국립대학교를 전공별로 제1, 제2 대학 등으로 바꾼 것처럼 서울대와 다른 국립대학을 통폐합, 한 시스템으로 운영해야한다. 그러면 당연히 서울대라는 명칭도 없어질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학부를 순수, 기초학문 위주로 개편해야한다. 취업이 잘돼 인기가 있는 경영대, 법대, 의대, 등 응용과학분야와 예술분야 학부는 없애야 한다.
이런 주장을 하면 서울대에 한이 맺힌 사람으로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비록 우수한 성적은 아니지만 서울대 중에서도 커트라인이 높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석사까지 받았다. 이제 대학원을 졸업한지 10여년이 흘러 40대 초반의 중년이 됐지만 그렇기 때문에 학부위주의 서울대학교가 얼마나 문제가 많은 지 피부로 느낀다.
이제 나름대로 그 이유를 제시하려 한다. 한국 영화의 제작 능력과 시장 규모는 세계에서도 미국을 빼놓고 가장 경쟁력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직 작가주의 영화는 발전이 더디지만(그러나 이는 우리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영화의 공통적인 추세다) 흥행영화는 막강한 경쟁력은 갖고 있다. 실제로 한때 미국 다음으로 영화 강국이었던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도 할리우드 영화에 밀려 침체에 빠져있다. 우리나라보다 경제규모가 큰 일본의 영화 경쟁력은 한심스런 수준이다.
이에 대한 원동력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서울대학교에 연극영화과가 없다는 것이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감히 주장한다.
서울대학교의 가장 큰 문제는 거의 모든 학과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데다 이들 학과에 가장 우수하다는 인재들이 모이는 것이다. 인문대나 사회학과, 공대, 의대 등은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지만 음악, 미술 등 개성과 창의성이 중시되는 예술관련 학문에도 서울대에 소위 똑똑하다는 친구들이 모두 몰린다는 것이다.
이 같은 와중에 서울대에 연극영화과가 없다는 것은 연극, 영화인들에게는 축복이었다. 정치, 경제, 사회등 다른 모든 분야에서 서울대 출신들이 인맥을 형성, 전체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가운데 연극, 영화쪽만은 그렇지가 않은 것이 발전의 에너지가 된 것이다.
영화 쪽만 보더라도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인으로 꼽히는 강우석 감독(최근에는 감독인지, 사장인지 헷갈린다)만해도 성균관대 중퇴다.(아참 나중에 명예 졸업장 받았다.)
사실 강우석 감독은 나와 개인적으로 친하다. 중학교 때부터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했던 강우석 감독은 서울대에 연극영화과가 있었다면 충분히 합격했을 정도로 똑똑한 친구다. 그러나 당시 1차에서 떨어지고 성균관대를 가더니 과감히 현장으로 뛰어들어 오늘날의 강우석이 됐다. 아마 서울대에 연극영화과가 있었으면 재수를 했을 것이며 학교로 인해 현장 진입이 늦어졌을 것이다.
이밖에도 공동경비구역을 만든 박찬욱 감독은 서강대를, 최근 가장 돈 되는 영화를 잘 만든다는 광복절 특사의 김상진 감독은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나왔다. 이밖에도 동국대, 중앙대 출신과 친구를 만든 곽경택 감독과 같은 유학파들이 서로 어우러져 한국 영화를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분야로 만든 것이다. 물론 일부 서울대 출신 영화인도 있지만 신통치 않다.
이에 반해 같은 예술분야이면서도 음악과 미술은 그렇지가 못하다. 나는 이것이 서울대에 학부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고등학교 때까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 서울대 음대와 미대에 진학한 뒤 서서히 그 재능이 사장 되어가는 것을 주위에서 많이 봤다. 서울대 출신 교수들이 서로 인맥을 형성, 예술에서는 극약과 같은 "개성 말살"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서울대에 들어가면 각자의 개성이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내가 졸업한 경영학과의 입학정원은 당시 100명이었다. 이에 따라 우리 학번친구들의 행태는 그 비율이 정확히 나온다. 이혼을 2명 했으면 이혼률 2%, 1명이 죽었으면 사망률 1%, 강남에 25명이 살면 강남 거주율 25%, 이런 식이다. 여담이지만 우리 과 동기들은 나 때문에 이민률 1%(나는 현재 미국에 살고 있다), 딴따라 1%(내가 예전에 영화관련 사업을 했다)를 기록하고 있다.
대학에 들어가서 우리 동기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 수 있었다. 나름대로 이들이 우리나라 경제의 각 부문에 분산돼 능력을 발휘한다면 전체국가발전에 큰 공헌을 할 것이라고 거창하게 예상한 적이 있다.
그러나 현주소는 그렇지 않다. 우리 동기 중 증권과 금융관련 종사자가 40%에 달한다. 우리가 졸업할 당시 불었던 증권회사 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국가적 낭비다. 많은 분야에서 인재를 필요로 하고 있는데 모두 돈벌이가 잘되는 인기직종으로 간 것이다. 왜냐면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은 회사를 골라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게 싫어서 당시에는 비인기 업종이었던(현재는 인기업종이지만) 유통업종에 입사한 바 있다. 이들이 여러 분야에 골고루 분산돼 모든 분야가 균형적으로 발전해야되는데 그렇지가 못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과 같이 법대는 하바드, 의대는 존스 홉킨스, 공대는 MIT, 경영대는 스탠포드, 디자인은 FIT, 음악은 줄리어드, 영화는 뉴욕대나 USC,등 각 최고로 평가되는 학과가 여러대학교에 분산돼 있으면 서울대 학부를 폐지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고대 법대가 아무리 노력해도, 연세대 경영대가 아무리 노력해도, 포항 공대가 아무리 투자를 해도 각 서울대를 넘어서질 못하고 있다, (이건 합격 커트라인 기준이다. 졸업생의 능력이 아니니깐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연극영화과같이 서울대에 없는 학부만 경쟁적으로 더욱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후발 주자인 한양대 연극영화과의 분전은 고무적이다. 우리와 같이 모든 분야에서 최고학부를 보유하고 있는 동경대 때문에 현재 일본이 얼마나 침체에 빠져있는가를 보면 안다.
결론적으로 서울대는 학부를 없애고 대학원만 남겨야 한다. 각 대학교에서 우수한 인재 중 학문을 더 연구해 학자가 될 재원들만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해 학문발전과 전체적인 균형발전에 기여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