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플래너상
최미경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상장을 하나 받아 왔다. 상의 이름도 시대에 따라 많이 변한다고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자기 주도 학습을 위한 ‘드림 플래너’ 상 공부계획을 스스로 짜게 하고 그것을 평가한 모양이었다. 아이들에게 무엇이든지 한 가지라도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주려고 하는 의도인 것 같아 고마운 마음마저 들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렇다 하게 잘하는 것이 없어서 상을 변변히 받아본 기억이 없다. 학창 시절 상중에 으뜸은 뭐니 뭐니 해도 성적 우수상이라고 생각을 했다. 공부에는 별 재주가 없는 나는 한 번도 성적 우수상을 받아 본 기억이 없다. 끽해야 개근상을 타는 것이 전부였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결석을 한 번도 하지 않고 12년을 개근했으니 그것도 귀한 상이기능 하다. 우등상을 제외한 가장 부러운 상은 영어 암송대회에 나가서 타오는 친구들의 상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긴 생머리를 자르고 단발머리 나풀거리는 중학생이 되어 우리는 영어라는 새로운 과목을 접하게 되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영어 선생님은 잘생기고 멋진 남자 선생님이셨다. 수업시간마다 구강 구조를 일일이 칠판에 그려가며 혀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발음을 무척이나 자세히 가르쳐 주셨다. 영어 시간에 첫사랑 이야기며, 미팅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우리에게 어찌나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시는지 선생님께 나는 완전히 반해 버렸다. 한 달 동안 영어 선생님께서 내주시는 숙제는 겨우 에이 비 씨 디를 펜으로 써오는 것이었지만, 연필을 사용하던 초등학교 때와 달리 중학생이 되어 펜을 잉크에 찍어서 그것도 영어를 써는 것이 대단히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교내 영어 암송대회가 있는 날은 주로 영어책의 한 단원을 정해주고 그것을 외우도록 했다. 영어책을 밤새워 외우고 또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모여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서 들어 보기도 하고 발음을 영어 선생님이 하시는 것처럼 똑같이 흉내를 내려고 유난을 떨었다. 그렇게 열심히 연습하고도 교내 대회이니만큼 담임선생님 앞에서 테스트를 받아 뽑힌 친구가 반대표로 나가게 되었다. 교실에서는 잘하던 친구가 전교생이 모여 있는 운동장의 교단 위에서는 몇 줄을 하더니 그만 멈추어 버렸다. 우리는 친구의 실력을 다 보여주지 못한 안타까움에, 반대표로 나간 친구는 응원해준 친구들에게 미안함과 속상함에 눈물까지 찔끔거린다. 교내 대회에서 수상한 친구는 학교를 대표해서 영어 선생님이 손수 써 주신 우리 고장의 자랑 ‘봉암사’를 알리는 원고를 가지고 도(道) 대회를 나가게 되었다.도(道) 대회에서 입상까지 한 친구는 전체 조회시간에 입상작품을 다시 한 번 암송한다. 얼마나 부럽고 대단해 보였던지 친구가 무척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상 받는 사람들에게 손뼉만 쳐주던 내게도 드디어 기분 좋은 상을 받을 기회가 주어졌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우연히 그동안 써놓은 글 중에 한편을 골라서 공모전에 넣었는데 이것이 덜컥 입상되었다. 응모는 해 놓고서도 설마 내 작품이 당선될까 하여 기대도 하지 않고 잊고 지냈다. ‘당선을 축하합니다. 라는 문자를 받고 입선이나 했겠지 싶어 인터넷 사이트를 열었더니 대상에 떡하니 내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소가 뒷걸음질 치다 일 치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명망 있는 문인들이 모여 있는 시상식장에서 상을 받고 내 작품을 낭독하는데 몹시 떨리고 변변찮은 작품에 큰상을 주시는 것 같아 송구스럽기까지 했다. 비록 상금의 유혹과 나의 글쓰기는 어디쯤 와 있는지 궁금해서 글을 응모했지만, 이제부터는 글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따뜻함을 전해 주고 싶다. 내 친구 중에는 남편과 같이 고향에서 민물고기를 직접 잡아서 매운탕 가게를 운영하는 친구가 있다. 친구의 남편은 어려서부터 냇가에서 물고기 잡는 것이 좋아 평생 물고기를 잡고 산다고 한다. 고기가 가는 방향만 봐도 어느 돌에 물고기가 숨어 있는지 느껴진단다. 어떤 때는 물고기가 큰 바위틈으로 들어가 바위를 젖혔는데 그만 바위에 손이 끼여 물속에서 익사할 뻔했다는 아슬아슬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친구의 남편은 학창시절 공부는 잘하지 못했지만, 남들이 하찮게 여길 수 있는 고기 잡는 일을 평생 하다 보니 ‘어신’이라는 별호도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세상의 이런 일’이라는 텔레비전 프로에까지 나오는 것을 보며 한 가지일 을 평생 꾸준히 한 그가 어느 장인(匠人)보다 멋있어 보였다. 그에게는 멋진 비전이 있었다. 문경지방에서 서식하고 있는 수십 가지의 민물 어종 연구를 위해 전문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과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물고기를 관찰할 수 있는 생태 학습관을 짓는 것이 그의 마스터플랜이라고 이야기는 모습은 정말 대단해 보였다. 방송을 보는 내내 소신껏 장인(匠人)정신을 가지고 한 가지 일을 평생 해온 그에게 주는 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잘해야 주는 우등상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상을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만들 수 있다. 나의 학창 시절보다 우리 아이가 살게 될 세상은 친구의 남편을 통해 보았듯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잘할 수 있고 그 잘하는 일을 가지고 성공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아이들에게 장점을 강점화 하는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우리 아이들은 분명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자식이 받아 온 상이 왜 내가 받은 것 같이 기쁜지 나도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의 엄마인가 보다.
2015.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