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1장 1~13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인 두 증인이 이 세상에서 화급히 복음 전파의 사명을 수행하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그 복음 전파로 인하여 오는 순교적인 고난을 기록하고 있다. [1] 척량 운동(계 11:1~2) 사도 요한은 10장에서 작은 책을 먹어 버리라는 환상을 보았다. 그는 또 다른 환상(Vision)을 보게 된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요한에게 무겁고 굵은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었는데 이는 치수를 재는 자(尺) 막대기와 같았다. 그것을 가지고 일어나서 성전을 척량하라고 명령하였다. 1. 척량기는 무엇을 뜻함인가? 여기 척량기는 지팡이 같은 갈대이다. 요한계시록 11장 1절에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이라고 하였다. ‘지팡이 같은 갈대’는 곧은 갈대를 이용하여 만든 자 막대기를 의미한다. 갈대는 요단강 계곡에 흔한 식물이다. ‘척량’이란 구역 경계를 재는 것으로서 소유의 회복이나 확보를 의미한다. 소유된 경계의 보호나 관지를 의미한다. 요한에게 주어진 척량기인 갈대 지팡이는 무엇을 의미함인가? 1) 하나님의 표준을 뜻한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께서 정하신 가치 기준이다. 하나님 자신이 정하신 표준치를 의미함이다. 말하자면 하나님 자신이 정하여 사용하시는 막대기 자(尺)인 것이다. 사도 요한이나, 어떤 다른 인간이 만든 기준치의 자를 사용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에스겔 40장 3절에는 「삼줄과 척량하는 장대」가 나온다. 모두 하나님 자신이 정하여 놓으신 표준치를 사용함을 뜻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주권 의지의 표현이다. 2) 하나님의 보호 영역을 뜻한다. 요한계시록 11장 1절 중에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라고 하였다. 척량기 사용은 안에 들어가는 자가 누구인가를 가리키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보호 구역을 설정하기 위함이다. 하나님 자신의 관할 구역이 정해져 있음을 뜻하고 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뜻한다. 요한계시록 11장 1절 중에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척량하되」라고 하였다. 여기 ‘척량’(메트론, me,tron)은 척도, 양, 말, 수, 표준, 범위 등을 뜻한다. 이것이 ‘갈대’(칼라모스, ka,lamoj)의 뜻이다. 그것은 어떤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자신의 최고 표준인 말씀, 곧 로고스(lo,goj)이다. 그 로고스(lo,goj)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신구약 성경 66권은 하나님이 쓰시는 지팡이 갈대이다. 성경을 표시하는 구분에 두 가지 말이 있다. 참성경을 정경이라 하는데 이것은 캐논(Canon)이라고 부른다. 캐논(Canon)은 헬라어 카논(κανών)에서 유래된 말인데 그것은 ‘곧은 막대기’를 의미한다. 옛날 헬라 사회에서 목공이나 석공들이 물건을 척량하거나, 어떤 물건의 크기를 계산해 보는 데 쓰던 기구였다. 이것이 후대에는 잣대(Measure)라는 말이 되고, 다시 규칙, 규범, 표준 등으로 사용되었다. 교회사적으로는 주후 325년에 열렸던 니케아회의에서는 이 말을, 정통교리를 표명하는 명사로 사용하였다. 그 후 4세기 중엽에 가서는 이 말이 생활 규범을 뜻하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이 정경(Canon)과 대조되는 개념을 가경(Apocrypha)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66권 외의 문서들에 붙여진 것이었다. 그렇다면 여기 지팡이 같은 갈대, 곧 갈대 지팡이란 바로 하나님 자신이 그의 백성과 교회의 양육과 보호 안전을 위하여 우리에게 계시하신 신구약 성경을 의미한다. 그 성경의 중심 내용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은 십자가이다. 그렇다면 지팡이 같은 갈대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인 것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록한 것이다. 십자가는 모든 개인과 교회와 역사의 분기점이 아닌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고 하였다. 결코 헬라의 철학과 지식이, 유대의 이적이, 로마의 권력이 우리 삶의 표준이 될 수가 없다. 개인과 역사의 표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고전 1:23~24). 하나님은 인류 역사의 옳고 그름을 십자가의 잣대로 척량하신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척량기, 곧 갈대 지팡이를 받은 것이다. 2. 척량령의 의미는 무엇인가? 척량령은 곧 복음 전파 행위이다. 요한계시록 11장 1절에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라고 하였다. ‘척량’이란 말은 잣대로 재는 것을 말한다. 사도 요한은 자기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척량기인 갈대 지팡이로 척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이 명령 수행을 위하여 ‘일어나야’ 했고, 그 ‘척량기’를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 ‘척량기’를 사용해야만 했다. 사도 요한이 ‘척량기를 사용한다’ 함은 곧 복음 전파 행위를 뜻함이다. 그가 척량기를 받음은 십자가의 복음 사명을 부여받음이다. 그가 ‘일어남’은 곧 복음 전파를 위하여 활동함을 뜻함이다. 사실상 이 척량기는 요한계시록 10장에서 받은 ‘작은 책’인지 모른다. 척량함은 척량기를 사용함인데, 그것이 바로 우리의 복음 전도 행위인 것이다. 우리의 전도 행위는 척량기를 사용함이다. 이 전도 행위로 말미암아 택자와 불택자가 구별되고 마는 것이다. 그 척량기에 들어맞는 자와 맞지 않는 자가 있다. 척량기 안으로 들어오는 자는 아버지께서 그 아들 예수에게 주신, 택한 하나님의 양인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양이 아닌 것이다. 그것을 아는 방법이 척량기 사용이다. 곧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함이다(고전 1:23). 십자가의 척량기는 마치 자석과 같은 것이다. 그것이 전파되는 곳마다 하나님의 택자들은 그에게로 유도를 당하여 끌려오고 마는 것이다. 실로 신기한 생명의 척량기인 것이다. 그 십자가의 복음을 듣는 자는 살아나고 마는 것이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버리고 마는 것이다(요 5:24~29). 척량령은 명령사이다. 그것은 절대성을 띠고, 무조건 순종을 요구하는 지상의 명령이다. 3. 척량기 사용의 범위는 어떠한가? 사도 요한에게 주어진 척량기 사용은 제한되어 있다. 1) 하나님의 성전을 척량하라고 하였다. 요한계시록 11장 1절에 「하나님의 성전과」라고 하였다. 여기 ‘하나님의 성전’은 무엇을 의미함인가? ‘척량하라’는 말 ‘메트레오’(metre,w)는 ‘척량하다’, ‘평가하다’, ‘재다’라는 뜻에서 온 말이다. 이것은 절대성이다. ‘하나님의 성전’을 척량하라고 하였다. 여기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의 그 성전’(to.n nao.n tou qeou)으로 예루살렘의 성전이다. 여기 성전은 지성소를 의미함인데 곧 신약 시대의 교회를 의미한다. 그 교회는 성령이 내주하는 성도 개인 개인의 심령을 의미한다. 신자는 하나님의 성전이요, 성령이 거하는 전이다(고전 3:16). 성령의 전이라고 하였다(고전 6:19). 하나님의 성전이 성령의 전인 참된 교회를 의미함은 성경의 교훈이다(고전 3:16~17, 엡 2:21, 고후 6:16~17). 척량기가 이렇게 하나님의 교회를 상대함은 택자 양육과 보호와 안전과 확인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의 복음이 성전을 재고 있음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2) 제단을 척량하라고 하였다. 요한계시록 11장 1절에 또 말하기를 「제단과」라고 하였다. 여기 ‘제단’(qusiasth,rion)은 ‘그 제단’, ‘그 번제단’을 의미한다. 번제단은 번제물을 잡아서 올려 놓고 불살라 태우는 곳이다. 곧 희생의 제물을 말한다. 그렇다면 여기 ‘제단’은 바로 순교적 신앙의 제물들을 의미한다. 요한계시록 6장 9절에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다」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과 그 증거 때문에 죽음까지 각오하고 움직이는 순교적 신자들을 관계하고 있는 갈대 지팡이인 것이다. 그러한 자들을 척량하라 함은 바로 절대적인 하나님의 보호와 안전과 상급을 보장하고 있음을 뜻한다. 순교적 신앙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척량기 안에 들어가는 자이다. 3) 예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라고 하였다. 요한계시록 11장 1절은 또 다시 말하기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라고 하였다. 여기는 예배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요한계시록 7장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맞고 구원이 확보된 자들이다. 성령 안에서 저들의 갈 길과 목적이 굳게 정하여져 있는 자들이다. 신본주의 삶을 고수하는 자들이다. 이제 척량기 사용의 범위는 명백해졌다. 요한계시록 11장 1절의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이란 택자를 나타내는 다른 표현들이다. 척량기의 사용 효과는 택자들을 상대한 것이다. 그 택자들은 ① 하나님의 집, 곧 교회가 있는 자들이요, ② 순교적인 신앙의 제물들이요, ③ 구원이 확보되어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사도 요한에게 주어진 척량기는 이러한 택자 초대와 구원을 목표한 것이다. 하나님의 척량기, 곧 십자가의 복음(말씀)은 택자를 상대하고 주어진 것이다. 저들은 어떤 시대에 살든지 사람이든지 간에 척량기 표준에 들어온 자들이었다. 4. 척량기 사용이 제외된 성전 밖 마당이 있다. 요한계시록 11장 2절에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고 하였다. 척량기 사용이 제외된 곳이 어디인가? 성전 밖 마당이라고 하였다. 1) 성전 밖 마당은 이방인의 뜰을 의미하였다. 예루살렘 성전의 경우 ‘성전 밖 마당’은 이방인들이 예배하는 곳으로 지정된 곳이다. 2) 영적 의미로는 불택자를 의미하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의 성전 밖 마당의 이방인은 혈통적인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함이 아니다. 이것은 신령한 구원 은총에서 유기된 자, 제외된 자를 의미하였다. 누구인가? 예컨대 ① 예수를 보고 들으면서도 믿지 아니했던 불신앙의 유대인들일 수 있다. ② 성전은 출입하면서도 참 성전의 뜰을 밟지 못했던 예수 당시의 유대 교권주의자들일 수 있다. 저들은 화 받은 자들이라고 정죄되었다. ③ 이방 세계 안에서 복음의 초청에 제외된 자들이다. 이 말은 전도를 받거나 듣지 못함이 아니고, 듣고 초청을 받았음에도 복음의 진리를 몰라 구원 초청에서 제외된 자를 이름이다. ④ 이방인들에게 내던져 버린 자들이다(계 11:2). 유대인의 경우 구약이나 신약시대에 이방 강국에 침략을 당하여 고난을 겪은 사실을 이름이다. 저들은 예루살렘이 로마의 침략을 당하였을 때 그 지배하에 들어가 고난을 겪었다. 영적인 경우 세계에 산재하는 불신자들이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그리스도 밖에서 악을 자행하고 있다. 그 기간은 ‘사흘 반=한 때와 두 때와 반 때=3년 반=1,260일=마흔두 달=전 복음 운동 기간’이 된다. 5. 마흔두 달(1,260일) 요한계시록 11장 2절 중에 「마흔두 달」이 나온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11장 3절에 나오는 「일천이백육십 일」이다. 여기 마흔두 달(1,260일)은 예수 강세부터 시작하여 예수 재림 시까지를 나타내는 신약 전 시대의 복음 운동 기간을 의미하고 있다. 1) 불택자가 복음 운동의 초청에서 제외되는 어간이다. 요한계시록 11장 2절에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고 하였다. 2)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적기독 권력)이 활동하는 기간이다. 요한계시록 13장 5절 중에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고 하였다. 3) 두 증인이 예언하는 기간이다. 요한계시록 11장 3절에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고 하였다. 4) 여인이 낳은 아들(교회)이 보호를 받고 있는 기간이다. 요한계시록 12장 6절 중에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고 하였다. 이 상징적 표현인 마흔두 달, 곧 1,260일은 분명히 양극이 활동하는 시기이다. 짐승(사단)이 복음 운동에서 제외된 자와 합세하여 교회를 박해하는 기간이다. 반대로 교회(두 증인)는 택자 구원 운동을 위하여 예언하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기간이다. 5) 이것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도 표현하였다. 요한계시록 12장 14절에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라고 하였다. ‘한 때’(1년)+‘두 때’(2년)+‘반 때’(6개월)=3년 6개월이다. 여기 ‘여자’는 교회이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교회가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승리하는 기간이다. 교회가 양육과 연단을 받는 기간이다. 이 기간을 1,260일이라고 하였다(계 12:6). 6) 이것은 사흘 반을 의미하기도 한다. 요한계시록 11장 9절에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라고 하였다. 이는 교회가 큰 환난과 핍박과 극에 달하는 수치와 멸시를 받는 어간을 의미한다. 여기 사흘 반은 3년 반, 곧 42개월, 1,260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마흔두 달은 신약 교회 시대 전 기간을 의미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척량 운동은 예수 재림 시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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