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울다> : 그 여자와 그 남자의 사랑이야기
어디선가 본 듯했다. 그래서 익숙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식상하기보다는 재밌었다. 아마도 오랫만에 간절함이담긴 순수한 사랑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래리 양 감독은 뉴욕에서 자라고 영국에서 공부한 신세대 중국 감독이다. 그런 그가 현대화 대형화된 중국 영화계에서 장예모 감독 등에 의해서 한때 유행했던 중국전통토속문예물을 만든 것은 이례적이다.
영화는 첩첩산골 오지에서 발생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영화가 천착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 중에서도 인간의 이기적 폭력성과 그것에 대항하는 이타적 사랑이 영화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한총은 산골마을에서 녹두를 갈아 파는 노총각이다. 그는 동네 이혼녀와 그렇고 그런 사이다. 어느 날 라홍이라는 남자가 젊은 아내와 딸 둘을 데리고 마을에 왔다. 다리를 저는 그는 어린 아내에게 폭력적이다. 그의 어린 아내는 벙어리인데 무표정하다.
어느 날 라홍은 한총이 산짐승을 잡기 위해 놓아둔 덧에 다리가 잘리는 사고를 당한다. 집으로 옮겨진 라홍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을 맞게 되고....
라홍의 죽음을 계기로 한총은 시나브로 라홍의 아내 홍시아를 사랑하게 된다. 홍시아 또한 한총에게 마음의 문을 연다. 그런데 이들의 순수한 사랑은 곧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홍시아의 남편 라홍으로 인해서 발생한 위기는 벗어날 수 없는 덧이 되어 그 둘을 불행으로 빠뜨린다.
홍시아의 과거, 기억의 편린들이 되살아나고, 그제서야 관객은 남편의 장례식 때 보여줬던 그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이해하게 된다. 그녀의 어머니를 죽이고 나이 어린 그녀를 납치하여 목젖을 잘라 벙어리로 만든 남자, 어린 나이의 그녀에게 아이 둘을 낳게 하고, 늘 협박과 폭행을 일삼은 남자, 그녀의 남편 라홍은 그런 남자였던 것이다.
그녀에게 가해지는 마을사람들의 협박에 한총은 그녀와의 결혼을 선언하고 그녀를 위해 자수하겠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한총의 자수를 만류하고 그녀를 마을에서 추방하려고 한다. 현장검증하던 날, 홍시아는 자신이 남편 라홍의 살인범임을 밝히고 한총 대신 수갑을 찬다.
처음 홍시아가 산골 마을에 왔을 때 그녀의 옷은 푸른색이었다. 남편이 죽었을 때 그녀의 옷은 흰색이었다. 한총을 사랑하면서부터 그녀의 옷은 붉은 색이었다. 수갑을 차고 경찰의 호송차릁 탈 때 그녀의 옷은 그녀가 납치당하던 날 입었던 옷, 오랫동안 서랍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던 붉은색 옷이었다.
영화의 마지막에 홍시아가 높은 곳에 올라서 세숫대야를 치면서 환하게 웃는 모습이 나온다. (세숫대야 밑이 너무 많이 때려서 뚫렸다. 그걸 보고 더 치는 그녀, 얼마나 좋았으면....) 그때 그녀는 처음으로 목놓아 소리친다. 그녀에게 남편 라홍의 죽음은 기나긴 악몽에서 벗어나는 시작인 것이고, 남편의 장례식날은 축제의 날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홍시아에게 있어 한총과의 만남은 오랜 암흑에서의 벗어남이고, 그녀가 라홍을 만나기 이전의 행복했던 시절로의 회귀이다.
영화를 보면서 멍해진 장면이 있다. 한총이 쫓겨날 위기에 처한 홍시아를 위해 마을 사람 전체를 등지면서도 사랑한다고 결혼하자고 하는 장면, 마을 사람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홍시아를 보호하기 위해 온몸으로 감싸는 장면....
영화에서는 흔한 장면일 수도 있고 그래서 식상한 장면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 장면들이 제일 가슴에 와 닿았다. 진실한 사랑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냥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식상하고 진부하다 말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사랑을 아름답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용기가 없는 것이다. 이기심으로 포장된 나약함이 그렇게 해야함에도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나니 원작을 읽고 싶어졌다.
이 영화의 원작은 중국 산서성 출신인 껀수이핑이다. 껀수이핑은 실화를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는 이 작품으로 제5회 루쉰문학상을 탔다.
감독의 역량은 원작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원작의 틀을 극복하느냐에 있다. 그래서 원작이 더 보고 싶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