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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갑자
1968년 베트남파병군 보급원활
미군의 베트남에 대한 미라이학살.
4.1포항제철창립.예비군창설
국민교육헌장발표
8월 31일 - 이란 동북부에 대지진, 1만2천여 명 사망.
11월 2일 - 울진·삼척 무장 공비 침투 사건 발생
경인고속도로개통.
60년전 미국에서 재미 한국인 전명운, 장인환 두 열사가 친일파 미국 정치인 더럼 스티븐스를 저격했던 해로 잘 알려져 있었다. 오스만 제국에선 청년 장교들의 혁명으로 헌법정치가 부활하였다.
불가리아독립. - 퉁구스카 대폭발이 일어났다
여성도 보통교육받을 것을 고시.
1869년 러시아로 이주했던 최재형이 부를 배경으로 동의회가 조직되고
안중근 같은 의사님들이 동의회에 가입해서 단지동맹 결성.
1608년 광해군 즉위 대동법 실시.1608년에 네덜란드의 안경 기술자 리퍼세이가 망원경을 만들었다
점차 증가하던 증권이나 채무의 거래가 VOC 설립과 함께 폭증하자 마침내 1608년 암스테르담 보르스(Amsterdam Bourse) 즉 증권시장을 정식으로 설립
60년전 1548년 음력 2월, 다케다 신겐은 시나노 북부에 세력을 자랑하는 무라카미 요시키요(村上義清)와 우에다하라(上田原)에서 격돌한다(우에다하라 전투)
55년전 가와나카지마 전투
1553년 음력 4월, 무라카미 요시키요의 요청을 받은 나가오 가게토라는 5천의 군을 이끌고 시나노 가와나카지마로 출병한다.(제1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그러나, 하루노부와 가게토라는 서로 대치만 한 채 5월에 양군은 함께 철퇴한다.
50년전 엘리자베스 1세, 영국 여왕으로 즉위
40년전 오라녜 공 빌럼 1세가 합스부르크 왕가에 선전포고하여 네덜란드 독립전쟁이 시작됨.
30년전 영국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혼 곶과 드레이크 해협 발견
20년전 영국의 해군과 에스파니아의 무적함대가 교전
10년전 - 앙리 4세, 낭트 칙령 발표.
-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조선에 주둔하던 왜군 전군 철수.
- 노량해전. 이순신 사망.
10년후
인목왕후가 광해군에 의해 폐위되어 서궁에 유폐된다.
독일, 30년 전쟁 발발.
20년후 영국 의회 《권리청원》(Pattion of Right)를 당시 국왕 찰스 1세에게 제출하다.
샤 자한, 무굴 제국의 왕위에 오르다.
30년후일본 - 시마바라 봉기가 장기전 끝에 진압됨.
- 조선 - 조창원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임(장렬왕후)
40년후 베스트팔렌 조약 체결. 30년 전쟁 종전.
50년후 파리 외방전교회가 창설되었다.
8월 청의 요청으로 조선의 제2차 나선정벌
60년후 봄베이에 영국령 동인도회사가 설립되었다.
스톡홀름에 유럽의 첫 국영은행이 설립되었다
현종9년 8이때부터 조선의 공주들은 시집가서 아들이든, 딸이든 일체 자식을 보지 못했다. 자식이 아예 없는 경종과 순종 황제는 일단 빼고 현종, 영조, 정조, 순조의 딸들은 자식을 낳지 못했고 숙종, 헌종, 철종, 고종 황제의 딸들은 요절
1248년 십자군 6차 원정,이집트 공격 실패 징기스칸 3남의 장남 귀위크의 대칸 즉위 이후 바투 와의 대립은 더욱 격화되어 1248년에는 전쟁 직전까지 치달았지만 그 해 3월/4월에 귀위크가 사망하여 무산됐다. 그 이후 바투는징키스칸4남 툴루이의 왕비 소르칵타니와 손 잡고 다시 우구데이계 와 분쟁했다. 바투는 1251년에 쿠릴타이를 통하여 툴루이의 장남 몽케 가 대칸에 오르도록 도왔다.
60년전 .프랑스 국왕 필리프 2세가 잉글랜드의 헨리 2세와 휴전하고 십자군 참전을 선언하였다.
- 살라딘이 기 드 뤼지냥 등 십자군 포로들을 아이유브 왕조에 대항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석방하였다.
알폰소 9세가 레온 왕국의 왕이 되었다.
잉글랜드의 리처드가 휴전중인 프랑스 필리프 2세와 연합하여 아버지 헨리 2세를 공격하였다.
50년전 독일 십자군 대부분이 레반트를 떠났다.
만적의 난이 발발하였다.
리처드 1세와 필리프 2세간의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존이 프랑스 기사 18명을 생포하였다.
예루살렘 왕국과 아이유브 왕조의 술탄 알 아딜이 서로의 영토를 인정한다는 평화 협정을 맺었다.
하인리히 6세의 갓 태어난 아들 프리드리히가 시칠리아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40년전 서하 북부지방을 유린한 몽골제국군이 철수하였다.
칭기즈칸이 금나라 황제의 조서를 거부하였다.
오이라트가 몽골 제국에 복속하였다.
수부타이의 몽골 제국군이 메르키트 부족의 잔당을 평정하였다.
사미원이 금과의 화의를 이끈 공으로 남송의 재상으로 승진하였다.
30년전 몽골 제국이 서요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제베가 지휘하는 몽골 제국군이 쿠출룩의 서요로 진군, 종교의 관용을 베풀어 발라사군과 카슈가르에 무혈입성하여 신나이만을 멸망시켰다.
조치의 몽골군이 2차 키르기즈 원정을 나섰다.
무칼리의 몽골군이 태원과 평양을 함락하였다
20년전 무르시아가 무와히드 왕조의 지배를 거부하고 바그다드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를 떠받들며 사실상 독립하여 3차 타이파 분열기의 서막이 열렸다.
라도슬라브가 세르비아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보두앵 2세가 장 드 브리엔느의 섭정을 받으며 라틴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툴루이 임시칸
10년전 몽골군이 모스크바를 점령하였다.
몽골의 침입으로 황룡사가 소실되었다.
크메르 제국이 루앙프라방을 상실하였다.
태국의 수코타이 왕조가 수립되었다.
부탄의 토와드라 사원이 건설되었다.
10년후 훌라구의 몽골군이 바그다드를 함락하여 무차별적인 살인과 강간, 약탈을 자행하였고 지혜의 집이 소실되었다 바그다드의 압바스 칼리파 조가 멸망하였다.
베트남의 쩐 왕조가 몽골 제국에 복속하였다.
30년후 마르히펠트 전투에서 루돌프 1세의 신성로마제국과 라디슬라우스 4세의 헝가리 왕국의 연합군이 오토카르 2세의 보헤미아 왕국군을 상대로 격파하였다. 여기서 8만여명이 동원되어 중세 기사끼리 싸운 최대의 전투가 되었다.
합스부르크 왕조가 오스트리아 지배를 시작하였다.
- 안도라가 아라곤 왕국으로부터 독립했다.
40년후 교황 니콜라오 4세가 이교도 쿠만 인들을 포용한 헝가리의 왕 라디슬라우스 4세를 파문하고 그에 대한 십자군을 선포하였다.
쩐흥다오가 이끄는 베트남 군이 2차 백등강 전투에서 원나라 군대를 대파하여 후퇴시켰다
나얀의 전사 (1287.7) 후에도 이어지던 반란이 세계 최초의 권총까지 동원한 원나라 군에게 진압되었다
60년후 룸 셀주크 튀르크가 멸망하였다.
영국 에드워드 2세가 대관식을 치렀다.
독일의 왕 하인리히 7세가 신성로마제국황제로 선출되었다.
헝가리 왕국의 앙주 - 카페 왕조가 시작되었다.
고려의 건축물인 수덕사 대웅전이 건립되었다.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가 최초의 실내 테니스 코트를 설립하였다.
888년 카를 3세, 카롤링거 왕조 출신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사망.왕국2번째 분리. 아르눌프는 887년 11월 안에 동프랑크 왕국의 동부에 있던 슬라브족 귀족들만을 티부르로 소집하여 의회를 개최, 티부르 의회에서의 형식적인 선거를 통해 동프랑크의 국왕으로 선출되었다
베렌가리우스는 887년 11월 선출되었다. 그러나 889년 1월 스폴레토 공작 귀도 3세에게 이탈리아왕위를 빼앗겼다
외드가 서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888년 향가집<삼대목>편찬 888년에는 신라에 큰 흉년마저 들었다
60년전 시라쿠사에서 아글라브 왕조의 해군이 비잔티움 제국과 베네치아 공화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청해진이 설치되었다.
50년전 신라의 상대등으로서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김명이 이홍과 함께 군사를 동원하여 반란을 일으켜 희강왕의 근신들을 살해하고 이에 희강왕이 궁중에서 목매어 죽은 김명의 난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김명이 신라의 왕위에 즉위하여 신라 제 44대 왕인 민애왕이 되었다.
웨식스의 왕 에그버트가 이끄는 웨식스군이 바이킹을 격퇴하였다.
40년전 바이킹 습격자들이 아키텐의 수도인 보르도를 점령하였다.
사라센족이 라구사를 점령하였다
30년전 애설볼드가 웨식스의 왕이 되었다.
20년전 포르투갈 왕국의 전신인 포르투갈 백작령이 성립되었다. (포르투 일대)
10년후 샤를 3세가 서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20년후 이극용 사망.
23년후 911년 프랑켄 공작 콘라트 1세가 새로운 왕으로 추대했다. 이로서 동프랑크 왕국 또는 독일 왕국은 서프랑크 왕국과 완전히 단절되게 된다.
30년후 918년 콘라트 1세가 아들없이 죽자 당시 유력자였던 작센 공작 하인리히 1세가 콘라트 1세의 지명을 받은 후 공작들의 선출을 거쳐 왕이 된다(919년).
40년후 동프랑크는 헝가리.폴란드.체코지역을 평정하고 자리집는다.
60년후 나이지리아의 은리 왕국이 세워졌다. (~1911년)
528년 북위(北魏) 효명제(孝明帝) 13년 / 효장제(孝莊帝) 원년
당시 북위는 효명제가 독살당하는 등 혼란을 휩싸였고 그 사이 6진의 난의 진압과정 중 대군벌으로 성장한 산서성 삭현 지방의 흉노족 이주영(爾朱榮)이 군대를 이끌고 낙양(洛陽)에 들어오면서 옹립되었다.
이주영은 528년 태후와 후계자를 황하에 던져버리고, 승상 이하의 대신 1,000명을 처형하는 하음의 변을 일으켜 반대파를 제거하였다.
이차돈의 순교(527년)를 거쳐 불교를 국교로 정한(528년)다
플라톤의 철학개념을 인용하여 연옥설을 만들었다. 그 후 교황 그레고리는 528년 이것을 교리로 인정 하여 교리로 만들었다.
60년전 서로마 제국의 황제 안테미우스가 군대를 보내 사르데냐를 탈환하고 시칠리아에서 반달족을 축출하였다.
튀니지의 캡본에서 가이세리크가 이끄는 반달족 군대가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의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반달족의 함대가 로마에 상륙, 도시를 약탈하였다
40년전 테오도리쿠스 대왕이 이탈리아의 왕을 자칭한 오도아케르를 공격하라는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제노의 명을 받고 동고트군을 이끌고 북부 이탈리아로 진군하였다.
카바드 1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30년전 소보권이 남제 6대 황제가 되었다.
10년후 동고트 왕국 - 부르군트 연합군이 리구리아를 공격, 약탈하였다. (~539년 3월)
백제의 성왕이 도읍지를 웅진에서 사비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었다
20년후 후경이 이끄는 양나라군이 동위의 장군 모용소종이 이끄는 대군에게 대패하였다.
후경이 수양에서 간신들을 죽인다는 명분을 내걸며 반란을 일으켰다.
후경이 양나라의 수도인 건강으로 진격하였다.
비잔틴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이탈리아의 벨리사리우스를 다시 본국으로 불러들인다
30년후 힐데베르트 1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프랑크 왕국의 영토가 그의 형제인 클로타르 1세에게 돌아가게 되었고, 클로타르 1세가 프랑크 왕국을 재통일하게 된다.
아바르족과 슬라브족이 발칸 반도의 판노니아 일대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발호로 인하여 기존에 이 지방을 차지하고 있었던 랑고바르드족이 북부 이탈리아로 점차 이동하게 된다.
40년후 랑고바르드족이 북부 이탈리아에 랑고바르드 왕국을 세웠다.
황초령,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가 세워졌다.
50년후 신라가 위덕왕의 백제를 알야산성을 공격하였다.
신라의 진지왕이 중국의 진(육조)에 사신을 보내 수교하였다.
60년후 바흐람 추빈이 이끄는 1만 2천명의 사산조 페르시아군이 돌궐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북부 이탈리아에서 랑고바르드족의 군대가 군트람이 이끄는 부르군트 왕국의 침략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수의 양견은 돌궐이 자주 침입하자 장성을 세운 뒤에 성 수십 곳을 쌓아서 장성 이남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했고, 이후에 화친을 맺어 북방을 안정시켰다.
이후 혈연으로 맺어진 귀족들의 저항과 반감을 극복하고자 남벌을 진행하여 개황 7년(587년)에 후량을 공격하여 멸망시켰고 589년에는 진을 공격하였다.
168년 후한(後漢) 환제(桓帝) 21년/후한(後漢) 영제(靈帝) 원년영제 즉위 바로 다음 해부터 두무(竇武)와 진번 등이 환관들을 배척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그 계획은 들통나, 환관들은 역습을 하여, 환제 시대의 외척들과 거기에 합류했던 진번과 이응(李膺) 같은 사대부들을 몰아내고, 조절, 후람, 왕보 같은 환관들이 권력을 잡았다.그 후로도 청류파(?流派)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환관들과 거기에 내응하는 사람들을 탁류(濁流)라고 부르며 저항했지만, 당고의 옥이라고 불리는 사건에 의해서 진압되었다.
고구려 신대왕168년에 후한(後漢)의 현도태수가 침공해 들어와 항복
60년후 가정 전투의 패배로 제갈량의 제 1차 북벌이 실패로 끝났고, 지휘관 마속은 처형당하였다.
촉나라의 승상 제갈량이 위나라를 치는 제 2차 북벌을 전개하였다(진창성 공성전). 촉나라군은 진창성을 공격하였으나 학소의 진창성 수비에 가로막혀 북벌이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자 철수하였다.
사산 왕조의 아르다시르 1세가 이란 북부의 파르티아잔당을 일소하였다.
주 영왕 19년은 BC 553년이다. 공자가 탄생한 해가 주 영왕 21년 BC 551년이니까 안징재가 니구산에서 2년 기도하여 공자를 낳았다
중원갑자
1788년 1월 1일 - 타임스(The Times)가 처음으로 발행됨.
12월 15일 - 미국의 첫 대통령 선거가 시작됨. 이 선거는 1789년 1월 10일 까지 진행.
카를로스 3세 스페인왕 죽고 카를로스 4세즉위
60년전 덴마크 태생의 러시아 제국의 항해가 베링이 베링 해협을 항해하였다.
스코틀랜드 사람 체임버스가 체임버스백과사전을 간행하였다.
- 조선에서 이인좌의 난이 발생하였다
4국 동맹전쟁(1717 ~ 1720년)
헤이그 조약
러시아-사파비 전쟁 (1722 ~ 1723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조약
영국-스페인 전쟁 (1727 ~ 1729년)
세비야 조약
50년전 스위스의 수학자 베르누이에 의해 베르누이의 정리가 세워졌다.
오스만-사파비 전쟁 (1730 ~ 1735년)
콘스탄티니예 조약 (1736년)
폴란드 왕위 계승전쟁 (1733 ~ 1738년)
빈 조약
6차 러시아-튀르크 전쟁 / 7차 오스만-합스부르크 전쟁 (1735 ~ 1739년) -> 니스 조약 / 베오그라드 조약
40년전 몽테스키외가 저서 법의 정신을 출간.
조선 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하였다.
폼페이의 유적지가 재발굴되기 시작하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을 종결짓기 위한 강화회담이 엑스라샤펠에서 개최되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전쟁 (1740 ~ 1748년)
아헨 조약
30년전 루이스버그 전투가 일어났다.
청나라가 유목제국 준가르를 멸망시켰다.
린네가 이명법을 고안하였다
프렌치 인디언 전쟁 (1754 ~ 1763년)
7년 전쟁 (1756 ~ 1763년)
파리 조약
1후
1788년 여름에 참담한 폭풍우가 프랑스 전역에서 상당량의 곡물들을 완전히 못쓰게 만들었다
영국의 속주로 전락해있던 네덜란드는 통치국 영국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일으켰다. 블랙 리벨리온이라고 명명된 그 내란은 네덜란드의 패배로 막을 내린다
8차 러시아-튀르크 전쟁 (1787 ~ 1792년)
이아시 조약
러시아-스웨덴 전쟁 (1788 ~ 1790년)
8차 오스만-합스부르크 전쟁 (1788 ~ 1791년)
시스토바 조약
10년후 나폴레옹이 카이로를 점령.
호레이쇼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해군이 나폴레옹 원정대를 수송해 온 프랑스 해군을 격파. 이로써 나폴레옹 원정대는 이집트에 발이 묶이게 된다
폴란드-러시아 전쟁 (1792년)
프랑스 혁명 전쟁 (1792 ~ 1802년)
아미앵 조약
코시치우슈코 반란 (1794년) vs 러시아
1차 이탈리아 원정 (나폴레옹, 1796 ~ 1797년)
캄포 포르미오 조약
이집트 원정 (나폴레옹, 1798 ~ 1801년
20년후 프랑스군이 바티칸을 점령. - 이베리아 반도 전쟁: 마드리드의 시민들이 프랑스군에 대항하여 봉기를 일으킴. 다음날 프랑스군에 의한 대량 학살이 자행
영국-덴마크 전쟁 (1801년)
나폴레옹 전쟁 (1803 ~ 1815년)
오스트리아 전쟁 (1805년) -> 프레스부르크 조약
독일·폴란드 원정 (1806 ~ 1807년) -> 틸지트 조약
9차 러시아-튀르크 전쟁 (1806 ~ 1812년)
부쿠레슈티 조약
30년후 다산 정약용이 목민심서를 저술.
- 칼 14세 요한이 스웨덴의 국왕으로 즉위. 베르나도트 왕조가 시작되다.
- 칠레가 스페인에게서 독립을 선언.
- 미국 의회에서 토론 끝에 새로운 주가 연방에 편입될 때마다 성조기에 별을 추가할 것을 결정
미국과 영국간의 국경 합의가 이루어져서 북위 49도가 국경으로 정해짐.
이베리아 반도 전쟁 (1808 ~ 1813년)
제2차 오스트리아 전쟁 -> 쉔브룬 강화
러시아 원정 (1812년)
영미 전쟁 (1812 ~ 1815년)
겐트 조약
40년후 1848 혁명의 해이다.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의 열망이 폭발했지만 서유럽과 동유럽에서 운명이 극명하게 교차했다. 1991년까지 140여 년 동안 세계를 풍미하게 되는 공산주의 운동의 시발점인 <공산당 선언>이 발표되었다.
김정희 유배풀림
10차 러시아-튀르크 전쟁 (1827 ~ 1829년)
아드리아노플 조약
폴란드 11월 봉기 (1830 ~ 1831년
50년후 보통선거를 요구하는 차티스트 운동이 영국에서 거세지다. 인민헌장이 발표되다.
- 미국 정부에 의해 체로키 족이 강제로 이주당하다. (눈물의 길)
- 빅토리아 여왕의 대관식이 거행되다
60년후 전 유럽을 뒤흔든 1848 혁명의 해이다.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의 열망이 폭발했지만 서유럽과 동유럽에서 운명이 극명하게 교차했다. 1991년까지 140여 년 동안 세계를 풍미하게 되는 공산주의 운동의 시발점인 <공산당 선언>이 발표되었다
잉글랜드는 1428년 샤를 7세의 거점인 오를레앙을 포위하였다. 샤를 7세는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아직 그는 정식 국왕도 아니었다. 랭스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거쳐야 했으나 잉글랜드군 때문에 그러지 못한 것이다. 오를레앙은 1년여를 버티고 있었지만, 희망은 별로 없어 보였다. 샤를 7세는 오를레앙을 구원할 힘도 갖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프랑스는 전황의 불리함 때문에 병력 동원도 쉽지 않았다. 용병이 주였던 이 당시에 프랑스의 불리한 전황은 용병을 모으기 어렵게 하는 조건이었다.
이와 같이 불리한 전황을 승전으로 전환하게 한 것은 잔 다르크의 출현이었다. 그녀는 적은 수의 프랑스 병사로 오를레앙의 잉글랜드군을 격파하였으며, 그 뒤 항상 선두에 서서 잉글랜드군을 격파하였다.
60년전 주원장이 중국 대륙에서 원을 축출하고 명나라를 건국하였다.
원나라가 중국 대륙에서 밀려나와 몽골 고원에 터를 잡아 북원이 성립되었다.
알바니아 공 카를 토피아가 나폴리 왕국군을 축출하고 두러스를 점령하였다.
티무르가 사마르칸트의 왕이 되었다.
50년전 보자 강 전투에서 모스크바 공국 드미트리 돈스코이가 킵차크 칸국 군을 격파하였다.
- 촘피 봉기군 사이의 내분에서 승리한 미카엘 란도가 피렌체의 정권을 장악하였다. (~ 1382년)
- 폰디에서 프랑스의 추기경들이 우르바노 6세의 선출을 무효라고 선언하며 대립교황인 클레멘스 7세를 선출하게 되었고, 그는 아비뇽 교황청에 거처하며 로마의 교황과 서로를 파문하는 서방 대분열이 일어났다. 이는 1418년 콘스탄츠 공의회에 의해서 정상화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백년 전쟁 2기 (카롤라인 전쟁, 1369 ~ 1389년)
Leulinghem 조약
40년전명나라 장수 남옥이 이끄는 15만 대군이 부이르 호수에서 원평종을 습격하였다. 이후 평종은 카라코룸으로 탈출하다 투울 강 근처에서 이수데르 조리그투에게 살해당하며 쿠빌라이 계열의 원 황실은 단절된다.
- 위화도 회군이 벌어졌다
.4차 베네치아-제노바 전쟁 (1377 ~ 1381년)
포르투갈-카스티야 전쟁 (1383 ~ 1385년)
30년전 조선 태조가 양위, 정종이 왕이 되었다.
- 델리 전투에서 티무르가 투글루크 왕조군을 대파하고 델리를 파괴하였다. 10만 이상의 포로, 민간인이 학살되었다.
마자파히트 제국이 싱가푸라 왕국을 정복하였다.
튜튼 기사단이 고틀란트 섬을 점령하였다
20년전 지기스문트가 헝가리-폴란드 연합군을 이끌고 보스니아를 공격하였고, 도보스 전투에서 보스니아의 왕 트브르트코 2세가 지기스문트에게 대패를 당하였다.
1년후
이츠코아틀이 아즈텍 제국의 초대 황제에 즉위하여 테노치티틀란 건설을 시작하였다
278년만에 스페인에 멸망.
백년 전쟁 3기 (랭카스터 전쟁, 1415 ~ 1453년)
5차 폴란드-튜튼 전쟁 (1422년)
멜노 조약
5차 폴란드-튜튼 전쟁 (1431 ~ 1435년)
리투아니아 내전 (1432 ~ 1438년)
10년후 조선의 과학자 장영실이 자동 물시계 옥루를 만들었다.
최치운 등이 원나라 왕여가 편찬한 무원록에 주해를 더하고 음훈을 붙인 의서인 신주무원록을 편찬하였다.
페루에서 잉카 제국이 건국된다.
바르나 십자군 (1443 ~ 1444년)
6차 폴란드-튜튼 전쟁 (1454 ~ 1466년)
22년후 토목의 변
장미 전쟁 (1455 ~ 1485년)
30년후 - 마티아스 코르비누스가 헝가리의 국왕에 즉위하였다.
- 포르투갈의 아폰수 5세가 북아프리카의 Ksar es-Seghir를 정복하였다.
단종사망
1차 베네치아-튀르크 전쟁 (1463 ~ 1479년)
7차 폴란드-튜튼 전쟁 (1467 ~ 1479년)
40년후 세조사망.성종즉위
1차 베네치아-튀르크 전쟁 (1463 ~ 1479년)
7차 폴란드-튜튼 전쟁 (1467 ~ 1479년)
50년후 성종대 경국대전을 비롯한 동문선 등 발행.
60년후 -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희망봉(폭풍의 곶 / 카포 다 보아 에스페라나)에 도달하였다.
스코틀랜드 제임스3세사망.
1068년 북송신종 1066년에 황태자로 책봉되었고 이듬해 영종이 죽자 19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태자 시절부터 왕안석의 명성을 들어온 신종은 그를 조정에 불러들임
알타 강 전투에서 쿠만 인들이 키예프 루스 군대를 패배시켰다.
키예프에서 야로슬라비치 대공에 대한 반란이 일어났다.
정복왕 윌리엄이 콘월반도의 엑서터를 점령하였다
1068년 - 일본, 후지와라와 혈연이 없는 고산조 덴노 즉위
1068년(문종 22)에 한양에 신궁(新宮)을 창건하고 이를 남경이라 한 바 있다
60년전 사라고사 - 타라고나 토후국, 후우마이야 왕조로부터 자치 허용받음. 1차 타이파 분열기의 시작.
갈리시아 왕국, 다시 한번 레온 왕국의 왕위를 차지하며 동군연합이 결성된다. (포르투갈 - 갈리시아 - 레온 - 카스티야)
페샤와르 전투에서 마흐무드 지휘의 가즈니 왕조 군대가 힌두 연합군을 격파
무함마드 3세가 후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파로 즉위하였다.
50년전 비잔틴 제국 군대가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의 마지막 저항군 지도자를 생포하였다. (불가리아의 멸망)
- 폴란드 왕국의 볼레스와프가 페체네그로부터 키예프의 항복을 받고 공국을 재편하였다.
- 2차 칸나이 전투 비잔틴 군대가 노르만 - 롬바르드 군대에 대승을 거두었다.
- 요나라 군대가 고려를 침공하며 3차 여요 전쟁이 발발하였다.
40년전 독일왕 하인리히 3세의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 로마누스 3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 크누트 대왕이 노르웨이의 왕이 되었다
30년전 서하 (미냑)의 이원호가 스스로 황제국임을 칭했다.
사라고사 토후국을 통치하던 투지비 가문이 쫓겨나고 후드 왕조가 세워졌다.
20년전 서하의 경종 이원호가 피살되고 의종 이양조가 즉위하였다.
잉글랜드를 침략한 바이킹 군대가 격퇴당하였고, 생존자들은 플랑드르로 달아났다. (잉글랜드에 대한 최후의 바이킹 침공)
잉글랜드 국왕 참회왕 에드워드가 켄트 지역의 샌드위치 기반의 함대로 도버 해협을 봉쇄하며 플랑드르 백작과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노르웨이 국왕 해럴드 할드랄다에 의해 오슬로가 건설되었다
10년후 무라비트 왕조가 세우타를 포위하였다. 도시는 해상 지원을 받으며 1083년까지 저항하게 된다.
송나라의 철강산업이 연간 12만 5천 톤을 생산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영국은 19세기에 달성)
런던탑 건설이 시작되었다.
20년후 노르망디 공작(Duke) 윌리엄은 1088년 영국을 정복한 후 봉신국으로 취급했다
30년후 1차 십자군 비잔틴 제국이 룸 셀주크로부터 스미르나, 에페수스, 사르디스를 탈환하였다.
- 십자군이 알레포의 리드완을 패배시켰다.
보두앵 1세가 우투르메르 (레반트/샴) 의 첫 십자군 국가인 에데사 백작국을 설립하였다.
- 안티오키아 공방전에서 십자군이 안티오크를 함락했다. 안티오크 공국의 수립
40년후 헝가리 왕국의 콜로만이 슬로바키아의 니트라 공국을 멸하고 합병하였다.
윤관의 고려군이 동북9성을 개척하였다.
루이 6세가 프랑스의 왕이 되었다.
- 데볼 조약 : 안티오키아 공국의 보에몽 1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알렉시오스 1세에게 충성 서약을 하였다.
50년후 보두앵 2세가 예루살렘 왕국의 왕이 되었다.
- 그레고리오 8세가 대립교황으로 선출되었다
- 알 무스타르시드가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로 즉위하였다.
- 요한네스 2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금나라 군대가 거란의 동경 요양부를 함락, 요동을 정복하였다.
송나라와 금나라가 해상의 맹약을 맺고 요나라에 대한 연합 전선 구축을 합의하였다
60년후금나라 군이 회북 지방을 평정하였다.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요한네스 2세가 도나우 강 근처에서 헝가리인들을 격퇴하였다.
모술의 아타베그인 아미드 앗 딘 장기가 아르투크 왕조로부터 알레포를 인계받았다. 장기 왕조의 시리아 - 이라크 경영이 시작되었다.
포르투갈이 실질적인 독립을 얻었다.
대월 리 왕조의 신종이 즉위하였다.
참파가 베트남을 공격하였다.
708년
이세신궁 등에 아직 보관되어 있다. 일본 이세신궁에 소장된 신대문자의 기록은 서기 708년의 유물이다
60년전 648년에는 당나라에 사신 파견된다.
당태종은 감질허를 사신으로 보낼 때만 해도 까칠했지만, 그래도 신라와 적극적으로 동맹을 체결하여 나당 동맹의 기초가 이뤄졌다. 당 태종이 나당 동맹에 적극적으로 임한다
51년전 657년 당고종이 소정방, 임아상, 소사업 등을 시켜 보낸 원정군에 서돌궐의 수도 수야브가 함락당하고 마지막 왕 사발라가한은 생포당해 장안으로 압송당해 멸망했다.
40년전 고구려멸망
30년전신라의 승려 의상이 범어사 운암사, 한천사를 창건하였다
10년후 펠라기우스가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아스투리아스 지방에서 우마이야 왕조의 이베리아 총독이던 무누자의 군대를 몰아내고 기독교 왕국인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세우면서 아스투리아스의 초대 왕이 되었다. (코바동가 전투)
30년후 롬바르드 인들이 동로마의 이탈리아 총독부가 위치한 라벤나를 점령하였으나 동로마-교황 군에게 쫓겨났다.
세바르가 불가리아의 칸이 되었다
50년후 당나라의 하남 절도사 최광의 휘하의 병력이 사사명이 이끄는 반란군에게 격파당하였다.
아랍인 해적과 페르시아인 해적들이 당나라의 광저우를 약탈하고 파괴했다.
이바디 세력이 카이로완에 이맘국을 세웠다
60년후 프랑크 왕국의 왕 피핀 3세가 죽은 이후 그의 두 아들인 카롤루스와 샤를이 왕국의 영토를 분할 상속하였다.
카롤루스 대제가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아우렐리우스가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왕이 되었다
모용황(慕容?, 297년 ~ 348년, 재위: 337년 ~ 348년)은 오호십육국시대 전연(前燕)의 초대 왕 사망
50년전 기림 이사금이 신라 15대 왕이 되었다.
백제의 책계왕이 백제를 공격하던 낙랑군과 맥인에 맞서 분전하다가 적병에게 살해당하였다. 이후 분서왕이 백제 10대 왕이 되었다.
갈레리우스가 사산조 페르시아를 다시 쳐서 수도 크테시폰을 점령했다.
40년전 유연이 전조의 황제로 즉위하고 연호를 영봉으로 개원하였다.
로마 제국의 황제 갈레리우스는 전,현직 황제들을 소집한 후, 그의 주도로 막센티우스의 무단 쿠데타와 발레리우스 세베루스에 대한 임의적 처형을 단죄, 그 아버지 전 황제 막시미아누스의 재퇴임, 리키니우스의 서방 정제 취임 등을 결정하여 공포했다. 그 결과로 11월 11일 리키니우스가 취임했다.
30년전 전조 제 3대 황제인 유총이 사망하고 유찬이 제위를 이어받았으나, 주색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하였다가 외척인 근준에게 살해당하였다. 이후 유요가 전조 제 5대 황제가 된다. 유요는 석륵을 조공으로 임명하여 근준을 공격하게 하였다. 근준은 패배한 뒤 얼마 안 가 내분으로 인해 살해당하였다
20년전 석호가 후조군을 이끌고 전조를 공격하였고, 전조 제5대 황제 유요가 이에 반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유요는 이 여세를 몰라 낙양을 포위하였으나 곧 석륵의 군대에 반격을 당해 크게 패배하여 포로가 된 뒤 처형당하였다. 이후 유희가 전조 6대 황제가 된다
10년전 전연 건국
1년전 성한나라는 여전히 막장이었으며 그틈을 타고 동진의 환온이 정벌하여 347년에 멸망했다
6년후 김씨내물왕이 즉위.
10년후 내물왕시조묘에 제사지내다
30년후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 하드리아노폴리스 근처에서 고트족 군대가 황제 발렌스가 이끄는 로마 제국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발렌스는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40년후 마그누스 막시무스가 테오도시우스 1세의 부하들에 의해 처형당했다.
걸복건귀가 서진 제2대 군주가 되었다.
바흐람 4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50년후 손자인 모용보는 단속골과 난한의 반란으로 죽음
60년후 테오도시우스 2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 파비아에서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여 스틸리코파 군인과 관료들이 대거 살해당하였다.
- 서로마 제국의 황제 호노리우스가 스틸리코를 처형하였다.
bc13년 레피두스(Marcus Aemilius Lepidus, ? ~ 기원전 13년)는 로마의 정치가 사망
이니오호스 (전차를 모는 전사,
BC474년 작품으로 추정) 청동상이 1896년에 발굴된다. BC373년 지진으로 땅에 묻혔던 것으로 추정
BC733년 이스라엘과 아람의 연합군은 유다를 침공한다.디글랏 빌레셀이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다
앗수르에 의해 아람의 이듬해 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