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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갑자
1971년
7대 대선에서 박정희 김대중에게 승리
8월 20일 - 남북적십자 대표, 분단후 판문점에서 회의.8월 23일 - 실미도 사건: 실미도에서 훈련받던 특수부대원들이 서울로 진입하여 군경과 교전.9월 8일 - 대한민국 정부, 국토종합개발계획 발표
60년전 경성직뉴회사는 1911년 5월 '회사령'에 따라 조선총독부의 허가를 받은 후 그해 6월 신문에 주식모집 광고를 내는 등 실제적인 설립에 착수하였다. 이때의 발기인은 안태영(安泰瑩)·김성기(金聖基)·김용태(金溶泰)·이정규(李正珪) 등 8명이었다
통화현에 이회영일가 신흥무관학교 설립
손문 혁명동지들 광조우 12인 봉기.
반년후 무창봉기.13개주 독립
1611년 부산항에 대마도 무역선이 입항한 건 1611년 9월. 1611년 양전을 실시하였으며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한성부의 질서를 회복하고 궁궐 조성공사에 힘을 다하여 창덕궁을 중건
60년전 오스만 제국이 합스부르크 측으로부터 트리폴리를 탈환하였다.
50년전 에리크 14세가 스웨덴의 왕이 되었다.
- 일본에서 제 4차 카와나카지마 전투가 벌어졌다.
40년전 신성 동맹과 오스만 제국 사이에서 레판토 해전이 발발하여 오스만 해군이 패배한다.
필리핀에 마닐라가 건설된다.
30년전 일본의 무장 오다 노부나가가 이가 국을 공격하였다.
20년전 스페인 산페르민 축제 시작.
잉글랜드 해군주도
1591년에는 건저 문제로 정철이 파면되면서 동인이 집권하게 되었으나, 정철의 처벌을 둘러싸고 온건파는 남인(南人)으로, 강경파는 북인(北人)으로 다시 나뉘었다.
10년후 펠리페 3세 : 스페인의 국왕 겸 포르투갈의 국왕사망.펠리페 4세 즉위
11년후 유형원 탄생
20년후 김장생사망.박세채 탄생
타지마할 건축시작
30년후 송산 전투에서 명나라 군이 청군에게 대패하였다.
네덜란드가 포르투갈로부터 말루쿠 향료 제도를 빼앗고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40년후엔 수구파 김자점이 화를 당함
독일의 해변에 대홍수가 몰아닥쳐 수천명이 익사하였다.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이 항해법을 공포하였다
50년후 정성공이 네덜란드 세력을 몰아내고 타이완 남부를 점령하였다.
숙종탄생
60년후 이탈리아 출신의 프랑스 천문학자 조반니 도메니코 카시니가 토성의 위성인 이아페투스를 발견하였다.
1251년 10월 11일(음력 9월 25일) -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 제작 공식 완료.
1251년 툴루이계의 몽케가 대칸에 선출되자 시레문(失烈門)을 비롯한 우구데이계 왕자들은 대칸의 자리를 되찾으려는 음모를 꾸몄다. 하지만 음모는 금세 발각되어 음모의 주동자인 시레문을 비롯한 여러 우구데이계 왕자들과 귀위크 칸의 미망인인 오굴 카이미쉬 등이 숙청당했다.
루이 9세를 돕기 위해 프랑스 북부에서 셰퍼드 십자군이 결성되었으나 각지로 흩어졌다- 팔만대장경이 완성되었다.
독일의 왕 콘라트 3세가 이탈리아를 침공하였으나 교황 인노첸시오 4세의 동맹군에게 패배하였다
60년전 베른이 건설되었다.
신성 로마 제국이 이탈리아로 진격하였다.
50년전 보니파스가 4차 십자군의 지도자로 선정되었다.
자다란의 자무카가 구르 칸으로 즉위하였다.
쿠이텐 전투에서 칭기즈 칸이 자다란 부족의 자무카를 격파하였다.
칭기즈 칸이 타우치우트 족을 정복하고 제베를 부하로 삼았다.
40년전 몽골 제국의 금나라 침공이 시작되었다. (~ 1234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이 완공되었다.
- 옹구트 부족이 금나라를 배신하고 몽골 제국과 동맹하였다.
쿠출룩이 구르 칸을 기습하여 체포하고 서요는 신나이만으로 개편되었다. 곧이어 그는 카슈가르를 함락시켜 동 카라한 왕조를 멸망시켰다.
프랑스의 랭스 대성당 건축이 시작되었다.
30년전 주치가 이끄는 몽골군이 호라즘의 우르겐치를 함락시키고 거주민들을 모두 죽였다.
- 메르브가 툴루이의 몽골군에게 함락당하였다. 무슬림 역사가는 백만이 학살되었다고 기록하였다
십자군이 아이유브 왕조의 술탄 알 카밀에게 항복하였다. 8년간의 휴전 협정이 맺어졌고 십자군은 이집트에서 철수하여 5차 십자군이 종결되었다
20년전 남송이 몽골 제국군에게 금나라 침공을 위한 길을 빌려주었다. (한중 일대)
살리타가 이끄는 몽골 제국군이 고려를 공격하였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시칠리아 왕국의 법을 집대성한 멜피 헌법과 의사와 약사의 직업분화를 명시한 살레르노 칙령을 반포하였다.
10년전 헝가리의 모히 전투에서 몽골 제국군이 헝가리 왕국, 크로아티아 왕국, 성전기사단의 연합군을 격파하였다.
한자동맹결성
폴란드 발슈타트에서의 레그니차 전투에서 바투가 지휘하는 몽골 제국군이 폴란드와 보헤미아의 연합군을 전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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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 1261년 동로마제국의 미카엘 8세(팔라에올로구스) 콘스탄티노플을 회복하고 라틴제국을 멸함. 팔라에올로구스왕조의 시작(~1453)
20년후 원 건국.
여몽 연합군이 삼별초의 진도를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배중손과 승화후 온을 죽임.
30년후 태풍으로 히라도에 정박 중이던 여몽연합군의 상당수가 사망하며 제 2차 일본 원정이 실패하였다.
- 2차 홈스 전투에서 일 칸국 - 소 아르메니아 - 조지아 왕국 - 성당기사단의 연합군이 칼라운이 지휘한 맘루크 왕조 군대에 패하였다.
오스만 1세가 룸 셀주크의 쇠위트의 베이가 되었다.
40년후 십자군 국가의 소멸과 스위스의 성립
봄 - 제노바의 반디노와 우글리노 형제가 인도 제국를 향한 항해를 시작하였다. (대항해시대의 시초) 그들은 다시 기록되지 못하였다.
치악성 전투에서 원충갑이 이끈 고려 군민이 카다안의 침입을 격퇴하였다.
맘루크 왕조 군대가 아크레 함락 이후 십자군의 중심지가 된 시리아의 토르토사를 함락하였다.
맘루크 왕조 군에게 샤토 펠라린이 함락되며 레반트의 십자군 거점이 소멸되었다.
50년후 일 칸국 군대가 시리아로 진입, 알레포 일대를 약탈하였으나 곧 회군하였고 아르메니아 - 키프로스 군대도 곧 철군하였다.
AD 1301년, 카이두는 성종이 파견한 하이샨에게 패하고 사망했다
이로서 오고타이칸국은 쇠락.
프랑스 피렌체점령, 단테추방
60년후 원인종이 4대 황제로 즉위하였다.
- 할미로스 전투에서 카탈로니아 용병단이 아테네 공작인 브리엔느 드 월터를 전사시키고 아테네 공국을 정복하였다.
891년 궁예가 처음 일어나 도적에 투신하다서기 891년 죽주(竹州:경기 용인과 안성) 의도적인 기훤 箕萱의 수하에 들어갔다가, 그 다음해에 빠져나와 다시 북원北原의 양길 梁 吉에게 몸을 의탁하였습니다.
귀도 3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아르눌프 폰 케른텐이 이끄는 프랑크족 군대가 바이킹들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60년전 모라비아 왕국(현 체코)의 군주 모이미르 1세가 바이에른의 파사우로부터 그리스도교를 수용하였다
50년전 - 퐁트누아 전투에서 샤를 2세와 루트비히 2세가 이끄는 군이 로타르 1세가 이끄는 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40년전 굴산사가 창건되었다.
팜플로나 공국, 나바라 왕국으로 독립.
30년전 경문왕이 신라 제 48대 왕이 되었다
20년전 애설레드 1세가 이끄는 웨식스군이 데인족바이킹들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비잔틴 제국군이 사라센 세력의 무슬림 토후국이 지배하고 있던 이탈리아의 바리를 회복하였다.
10년전 루이 3세가 군을 이끌고 바이킹군을 격퇴하였다
황소가 이극용에게 패하다
10년후 궁예가 후고구려를 건국하였다.
루트비히 3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20년후 프랑스의 왕 샤를 3세이 바이킹의 우두머리인 롤로와 생클레르쉬레프트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에서 샤를 3세는 바이킹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바이킹들이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 정착하는 것을 허가하는 대신 바이킹의 약탈행위를 금지하였다. 이후 롤로는 노르망디 백작에 임명되어졌다.
- 콘라트 1세가 동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30년후 함보가 고려 혹은 신라를 떠나 두만강 지역의 완안부로 들어간 921년 전후 시기는 신라가 멸망을 길을 걷고 후삼국이 할거하던 상황으로 짐작된다.?
40년후 라미로 2세가 레온 왕국의 왕이 되었다.
에릭 블러드액스가 노르웨이의 왕이 되었다
후우마이야 왕조, 탕헤르와 세우타 일대 점령, 지브롤터 해협 통제권을 얻게 되었다.
50년후 콘스탄티노플에서 비잔티움 제국과 키예프 대공국간에 전쟁이 발발하였다
60년후
곽위가 카이펑에서 후주를 건국하였다.
오대십국시대의 북한이 건국되었다.
오대십국시대의 초나라가 남당의 공격으로 멸망하였다
531년 중국요서를 공략했던 고구려(高句麗) 안장왕(安臧王) 13년사망 / 안원왕(安原王) 원년
북위(北魏) 장광왕(長廣王) 2년 / 절민제(節閔帝) 원년 / 폐제(廢帝) 원년
531년 4월에 이찬 철부(哲夫)를 상대등(上大等)으로 임명했는데 이 또한 신라 역사상 처음 등장하는 관직명이다. 귀족의 대표를 상대등에 임명했다는 것이 되는데 이는 귀족을 관료제 체계에 포함시켰다는 의미가 된다
국가 경제의 기초인 농업에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18년(531년) 제방을 수리하라는 명을 내렸다
북부 시리아에서 사산조 페르시아군이 벨리사리우스가 이끄는 비잔티움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호스로 1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서기 531년 사이에 안라국은 백제, 신라, 왜를 초청하여 회의를 연다(일본서기). 이것을 현대 역사가들은 '안라회의'라고 부른다
고구려확장기도 종료되고 백제성왕이 왜왕이 되었다고도 하는 해이다.이듬해 구야국이 망하니 중요한 싯점인 듯
60년전 효문제가 북위 7대 황제가 되었다.
50년전 프랑크 왕국이 건국되고 클로비스 1세가 프랑크족의 왕이 되었다.
40년전 아나스타시우스 1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문자명왕이 고구려 21대 왕이 되었다.
30년전 소보융이 남제 제 7대 황제가 되었다.
20년전 - 프랑크 왕국의 군주 클로비스 1세가 사망한 이후 프랑크 왕국의 영토가 살리카 법에 입각하여 그의 네 아들들에게 분할 상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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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 토틸라가 동고트 왕국 제 6대 국왕이 되었고 비잔틴 제국의 이탈리아 지배를 거부하고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후 동고트 군이 이탈리아를 유린하였다
20년후 소동을 황제 자리에서 몰아내고 양나라의 황제를 자칭하였다. 이에 국호도 한(漢)으로 고쳤으며 죽은 소강의 딸 율양공주 소씨를 황후로 삼았다.
돌궐 제국이 성립되었다.
30년후 프랑크 왕국을 통일하였던 클로타르 1세가 사망하자 그의 네 아들들에 의해 프랑크 왕국이 다시 분할되었다.
고담(북제)이 북제 4대 황제가 되었다.
신라가 561년에 안라국을 정벌하였다
40년후 베네벤토가 랑고바르드 공작령의 수도가 되었다
50년후 양견이 그에게 대항하는 반대 세력을 제거한 뒤 9세인 정제에게 선양을 받아 수나라를 건국하고 황제의 자리에 즉위하면서 북주가 멸망하였다
60년후 호스로 2세는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마우리키우스에게 의지하여 사산조 페르시아의 왕위를 되찾기 위한 협력을 받아내었고, 이후 비잔티움 제국군과 함께 크테시폰으로 진격하여 바흐람 추빈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고 왕위를 되찾게 되었다. 이 때 간신히 달아난 바흐람 추빈은 투르크로 망명하여 카한 밑에서 우대를 받았으나, 호스로 2세가 보낸 자객에 의해서 암살당하였다.
서기 171년 아달라 이사금에는 흉작으로 굶주리는 백성이 많이 발생했다.
20년전 151년단석괴, 선비의 대인으로 추대
30년후 조조군이 창정의 원소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40년후 카라칼라가 게타를 살해하고 단독 황제가 되었다.
한수가 마초 등 서량의 군벌들과 함께 거병하여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조조를 공격했다.
50년후 - 유비가 촉한을 건국하고 초대 황제가 되었다.
60년후 촉한의 제갈량이 위나라를 치는 4차 북벌에 나섰다.
북 메소포타미아에서 사산 제국과 로마 제국군이 대치하였다.
로도스의 마지막 해전은 기원전 190년경이었는데 로도스인들이 니케를 그들의 승리를 기념 사모트라케의 니케(Nike) 조각하다기원전 190년 마그네시아 전투에서 시리아가 패배하자 한니발은 아르메니아를 거쳐 비티니아에 정착했고 로마의 후원을 받는 페르가몬과의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기원전 190년에 페르가몬 왕국의 유메네스 2세가 세운 '성스러운 도시' 히에라폴리스기원전 550년, 이 전쟁에서 승리한 키루스 2세는 페르시아 제국(아케메네스 왕조)을 세웠다.B.C.552~550년 간에 일어난 진(晉)나라의 난씨(欒氏) 정변
기원전 910년(신해), 의왕이 세상을 떠났다. 작은아버지 희벽방(姬辟方)이 자리를 이으니 이 사람이 바로 효왕(孝王)이다
테베는 힉소스족 앞에 무릎을 꿇은 최초의 도시였고, BC1630년경 자유를 찾기 위한 이집트인들의 투쟁이 처음 불붙은 곳
이윤. 하말상초(夏末商初) 시기의 정치가이자 군사가, 사상가, 요리사이다
도시국가들은 BC 2350년경 아카드 군주인 사르곤의 통치를 받는 제국이 되었다가 아카드인들이 쇠퇴하면서 2개의 중심세력, 즉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로 나누어졌다
중원갑자
1791년
7월 20일 - 프랑스 혁명: 루이 16세 일가가 해외로 도망치려다 붙잡힘.
9월 30일 -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 피리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되다.이해 사망
프랑스서 미터법이 고안됨.한국은 1964
173년차이
신해박해 발생.
유럽최초로 프랑스에서 유대인평등 선언
60년전 청나라 중기의 건축서인 흠정공정주법칙례이 편찬되었다.
조선 기우제끝에 큰비가 이어짐.
홍대용 탄생
50년전 영국에서 총선이 열렸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부르크극장을 세웠다.
40년전 택리지가 저술되다.
균역법시행
프랑스에서 디드로와 달랑베르의 주도 하에 백과전서 1권이 출판되다
30년전 영국에서 조지 3세의 대관식이 거행되다.
- 7년 전쟁: 4달에 걸친 포위전끝에 러시아군이 프로이센의 요충지 콜베르크 요새를 함락시키다
20년전 스페인 제국이 대영제국에 포클랜드 제도를 양도하였다.
- 구스타브 3세가 스웨덴의 국왕으로 즉위하다.
- 제7차 러시아-튀르크 전쟁: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점령하다.
10년전 임마누엘 칸트가 순수 이성 비판을 출간하다.
미국 독립 전쟁: 버지니아 주의 주도 리치몬드가 영국군에 의해 방화되다. 영국군의 지휘관은 바로 베네딕트 아놀드(...) - 영국의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이 천왕성을 발견하다
스페인 개척자들이 로스엔젤레스를 건설.
- 조지 타운에 고립된 영국군이 요크타운에서 조지 워싱턴에게 항복하다
10년후 순조의 명령에 의거하여 공노비가 철폐되다.
정순왕후의 교지로 천주교 박해가 시작. 신유박해 발생
프로이센 왕국의 수학자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가 정수론연구를 저술하였다.
- 황사영 백서 사건 발생.
20년후 - 파라과이가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
아보가드로가 아보가드로의 법칙을 발표하다.
홍경래의 난 발생.
30년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사망.
- 베네수엘라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 미국이 스페인으로부터 플로리다 매입
조지 4세 즉위.
39년후마지막 오스트리아 제국 황제프란츠 요제프 1세탄생
40년후 브라질 제국의 황제 페드로 1세가 폐위되고 5살 아들 페드로 2세 마그나니머스가 즉위하다.
-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의 레오폴드 공이 레오폴드 1세로 벨기에의 국왕에 선출되다
찰스 다윈이 비글호와 함께 여정을 시작하다. - 마이클 패러데이가 전자유도의 법칙을 발견하다.
50년후 아편전쟁: 영국군이 홍콩을 점령한다. 이후 1997년 반환까지 156년 동안 홍콩은 영국의 영토가 된다.
60년후 홍수전이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키다. 이 때부터 14년간 지속된 이 난은 무려 2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가게 된다.푸코의 진자 실험이 레옹 푸코에 의해 진행되다.
지구의 자전이 증명되다.런던 세계 박람회가 개최되다. 이 런던 박람회는 역대 최초의 세계박람회. 이 박람회를 위해 수정궁이 지어졌다.
뉴욕 타임즈가 창간되다
프랑스 제2공화국의 대통령 루이 나폴레옹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다. 이로써 프랑스 제2공화국은 사실상 끝장나고 루이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하는 길이 열리다.18년간유지
1431년 프랑스의 영웅 잔 다르크.사망
1431년 태국의 시암족인 아유타야 왕조가 앙코르를 함락시킨 이후부터는 지금처럼 앙코르(Angkor)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세종께서 1431년 글과 그림을 넣은 <삼강행실도>라는 책을 편찹합니다
60년전 동로마 제국의 황제 요안니스 5세가 오스만 제국의 술탄 무라드 1세에게 충성을 서약하였다.
명 홍무제가 장강 유역 일대에 이갑제를 실시하였다
50년전 흑사병으로 인한 민중의 동요와 백년 전쟁으로 인한 과도한 세금 징수 등에 의하여 영국 농민들이 들고 일어난 사건인 와트 타일러의 난이 일어났다
- 리투아니아 내전의 시작 : 케스티우스가 조카 요가일라를 패배시키고 대공 직위를 차지하였다. 요가일라는 동부에서 세력을 유지하였다.
티무르가 사르바다르 왕조를 멸망시키고 호라산을 평정하였다.
40년전 마누엘 2세가 동로마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과전법시행
-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요가일라가 튜튼 기사단을 공격하였으나 격퇴되었다.
- 카스티야 왕국의 세비야에서 유대인에 의한 범죄가 발생하자 이를 빌미로 부주교 에르난 마르티네즈의 선동과 함께 4천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학살되었다
30년전 티무르가 바그다드를 점령하였다.
- 마흐무드 2세가 델리술탄왕조의 군주로 복위하였다.
마자파히트 제국의 내전이 시작되었다.
베트남에서 호꾸이리가 양위한 후 태상황이 되고 아들 호한뜨엉이 대우의 황제가 되었다.
일본 무로마치 막부가 명에 조공하기 시작
20년전 프랑스 슈농소 성의 영주 장 마르케가 영국군에 동조한 죄로 고발당했고, 슈농소 성은 프랑스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10년전 명나라 제 3대 황제 영락제가 명나라의 수도를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천도하였다.
-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1세가 죽고 그의 아들 무라트 2세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10년후 - 장영실과 이천이 서운관에 측우기를 설치하였다.
질 에아네스 함대가 블랑코 곶 (흰 곶) 을 발견하였다
20년후 고려시대 역사서인 고려사가 완성되었다.
사창(社倉)이 실시되었다.
30년후 명나라 전역과 주변 조공국들의 지리를 서술한 대명일통지가 편찬되었다.
40년후 세조실록이 완성되었다
50년후 오스만 제국과 나폴리 왕국 사이에서 일어난 오트란토 전투가 많은 사상자를 남기고 끝났다
비잔틴 멸망시킨 메흐메트 2세 사망.
화재가 빈번해지자 1481년(성종 12) 수성금화사로 설립됐다
60년후 이언적탄생
1071년 8월 26일 -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비잔티움 제국군이 셀주크 제국군에게 대패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 1080년대 에게 해와 아나톨리아 전역에서 지속되었던 이민족의 영구적인 정착과 습격은 그만큼 사회 전반에 강렬한 충격과 인상을 끼쳤던 것입니다
비잔티움 제국과 로베르 기스카르가 이끄는 노르만족 간에 벌어진 바리의 공성전에서 노르만족이 바리를 함락시킴으로써 노르만족의 최종 승리로 끝났다. 이로써 로마는 원래의 발상지였던 이탈리아를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베네치아 통령 도메니코 콘타리니(1043~1071년)는 비잔틴 건축가들의 도움을 받아 훗날 성 마르코 대성당으로 불리게 되는 건축물을 증축 및 재건하도록 명했다
60년전 이베리아 동남 해안의 무르시아, 알메이라와 남쪽의 카디스마저 독립하며 1차 타이파 분열은 가속화된다
50년전 발렌시아 토후국마저 후우마이야 왕조로부터 독립하며, 1차 타이파 분열이 확실해지고, 칼리파 국의 운명이 결정된다.
마흐무드가 가즈니 제국의 수도를 라호르로 정하였다
40년전 후우마이야 왕조가 멸망하였다. 코르도바 토후국이 세워지고, 지브롤터 해협 일대는 세비아의 월경지가 돤다.
- 앙리 1세가 프랑스의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이원호가 탕구트 족의 수장이 되었다.
프랑스에서 대기근이 발생하였다.
30년전 남부 이탈리아의 올리벤토 전투에서 노르만족과 랑고바르드족의 연합군이 비잔티움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 오판토 강에서 노르만족과 랑고바르드족의 연합군이 비잔티움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몬테 마기오레 전투)
호수천 전투에서 서하 군대가 송나라를 대파하였다
20년전 노르망디 공 기욤 (윌리엄 1세)이 앙주 공 지오프리와 싸워 이겼다.
- 프랑스의 카페 왕조의 앙리 1세가 키예프의 안네와 랭스 성당에서 결혼하였다.
이스파한이 셀주크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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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 비잔티움 제국의 전임 황제 니케포루스 3세가 폐위되고 알렉시오스 1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새 황제가 되었다.
- 디라키움에서 로베르 기스카르가 이끄는 노르만군이 비잔티움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로써 알바니아는 1100년까지 노르만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때가 지명 알바니아의 첫 언급임)
20년후 잉글랜드의 윌리엄 2세가 노르망디를 공격하였다.
웨일즈에 카디프 성이 지어졌다.
노르만 왕조의 로버트와 루푸스가 화해하였다.
30년후 십자군이 아나톨리아를 넘어 예루살렘 왕국으로 가려고 했으나 헤라클레아 전투에서 킬리지 아르슬란 1세가 이끄는 셀주크 제국군에게 크게 패배하였다.
- 천조제가 거란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 잉글랜드의 왕 헨리 1세의 형인 노르망디 공국의 공작 로베르가 포츠머스에 상륙하여 자신이 잉글랜드의 정당한 왕위 계승자임을 주장하였다
40년후 알폰소 7세가 갈리시아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보두앵 7세가 플랑드르의 백작이 되었다.
시리아에서 예루살렘 왕국의 왕 보두앵 1세가 지휘하는 십자군이 부리 왕조와 모술의 아타베그의 군대가 주축이 된 셀주크 제국군과 싸웠다. (샤이자르 전투)
하인리히 5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50년후 금나라가 요서 지방을 점령하고 요나라의 중경 대정부를 함락시켰다. 천조제가 몽골로 피신하자 한인 신하 이처온과 황족 야율대석은 남경 석진부에서 천조제의 숙부 아율순을 옹립, 북요 정권을 수립한다.
노구교 전투에서 요나라 (북요) 군대가 송의 환관 동관이 이끄는 20만 송나라 군대를 격파하였다.
60년후 셀주크 제국에서 마흐무드 2세 사후에 그의 동생 토그릴, 아들 다우드, 조카 마수드 간의 내전이 발발하였다. 우선 다우드가 셀주크 술탄이 되었다.
진회가 남송의 재상이 되었다.
야율대석이 에밀에 도착하였으나 동 카라한 왕조의 공격으로 서쪽으로 더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711년 .동로마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2세죽고 레온티우스즉위
다고베르트 3세가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서기 711년 다마스커스에 있던 회교세력의 일부인 무어인들이 지브로알타해협를 건너 이베리아반도로 들어와서 세운 이슬람 옴미아트왕조의 수도.그라나다
이베리아 반도의 서고트 왕국이 멸망하다
과달레테 전투에서 타리크 이븐 지야드가 이끄는 우마이야 왕조군이 서고트 왕국의 왕 로데릭이 이끄는 약 3만 3천명의 서고트 왕국군을 섬멸하였다. 이 전투에서 로데릭은 전사하였다
60년전 압둘라 이븐 아미르가 이끄는 무슬림 군대가 아프가니스탄 지방을 공격하였다.
야즈데게르드 3세가 살해당하면서 사산조 페르시아가 멸망하였다.
50년전 태종 무열왕이 죽고 문무왕이 신라 제30대 왕이 되었다.
- 예루살렘의 성전산에서 무아위야가 칼리파로 즉위하며 우마이야 왕조가 수립되었다.
- 당의 2차 침입으로 인해 평양성 전투(661년)가 발발했다.
40년전 신라의 승려인 의상이 낙산사, 동악사를 창건하였다.
신라가 나당전쟁중에 당나라로 부터 사비성을 탈환하여 소부리주를 설치하다
30년전 김흠돌의 난 : 잡찬 김흠돌이 파진찬 흥원, 대아찬 진공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여 죽임을 당하였다.신문왕이 신라의 왕이 되었다.
20년전 바위 사원이 완공되었다.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 아브드 알 말리크가 이끄는 우마이야 왕조군이 메소포타미아의 반란을 진압하고 아라비아 반도를 재정복하였다.
클로비스 4세가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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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 테우데리히 4세가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 툴루즈에서 아키텐의 공작 오도가 이끄는 가톨릭 세력 (아키텐 - 프랑크 연합군) 이 툴루즈를 공격하던 우마이야 왕조군의 이슬람 세력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툴루즈 전투)
20년후 세르다냐 (피레네 동부) 의 베르베르 인들이 아키텐의 오도와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프랑크 왕국, 남 프랑스 해안 일시 수복 (vs 우마이야)
30년후 베르베르인 반란군이 우마이야 왕조군을 격퇴하였다.
콘스탄티누스 5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40년후 불국사 3층 석탑과 다보탑이 제작되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 해에 석굴암이 건설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탈라스 전투 : 아바스 왕조군이 탈라스에서 당나라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 전쟁 이후 제지술이 이슬람 문명으로 전파되고 실크로드 교역로를 포함한 중앙아시아가 이슬람 세력권에 넘어가게 된다.
라벤나가 랑고바르드족에게 함락되어서 동로마 제국의 라벤나 총독부가 폐지되었다
로마 교황 자카리아의 지원으로 카롤루스 마르텔의 아들 피핀 3세가 메로빙거 왕조의 마지막 왕 힐데리히 3세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면서 카롤링거 왕조가 시작되었다.
50년후 아바스 왕조군이 카이르완을 재정복하였다
사사명의 아들 사조의가 사사명을 살해하고 칭제하였다
60년후 이탈리아 카를로만 1세 : 페펭 3세의 아들사망
흉노일파인 후조 갈족인 석륵이 319년 나라를 세우고 351년까지 존속했던 십육국 시대였다
전진- 서기 351년 오호의 하나인 저족의 부견이라는 인물이 세운 국가이다
AD 350년에 콘스탄스를 죽이고 황제를 참칭한 마그넨티우스를 토벌하기 위해, 콘스탄티우스는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서방 제국을 침략하였다.
이 내전으로 로마 군단병이 도합 55000명이나 죽고, 특히 마그넨티우스의 편에 섰던 서방 군대의 장교 조직에 일대 숙청이 벌어진 것이었다. 다시 말해, 콘스탄티우스가 직접 내전을 통해 서방의 방위력을 통째로 날려먹은 것이었다. 당연히 라인강 유역의 프랑크 족은 좋다고 갈리아 동부를 유린하였다. 이후 게르만에게 하염없이 밀린다.
60년전 거질미왕이 가락국 4대 왕이 되었다.
사마염이 죽은 이후 팔왕의 난이 발발하였다
50년전 산마리노 공화국이 건국되었다.
로마 제국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상품 가격을 고정토록 하는 칙령을 발표하였다. 이 칙령에서는 모든 재화와 용역의 상한선을 정하였고 이것을 어길 경우엔 엄벌에 처했다.
아르메니아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였다
40년전 고구려가 요동 서안평을 정복하였다.
유총이 군대를 이끌고 서진의 도읍 낙양을 공격하여 함락시킨 뒤 서진의 황제 사마치를 사로잡았다. 황태자인 사마전을 포함한 3만명이 살해되었고, 낙양은 약탈과 방화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30년전 사마보가 동진의 황제인 사마예를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를 진왕이라 칭하였다.
모용준탄생
10년후 사마비가 동진 제 6대 황제가 되었다.
- 율리아누스가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15년후 김씨내물왕 즉위.
20년후 백제군이 고구려의 군대를 패하(浿河)에서 군사를 매복시켜 물리쳤다. 그리고 그 해 겨울, 3만 명의 백제군이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였고 이 때 고구려 왕 고국원왕이 전투 도중 전사하였다. 이후 소수림왕이 고구려 제 17대 국왕이 되었다.
탁발규 탄생
30년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콘스탄티노플에서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40년후 광개토대왕이 고구려 19대 왕이 되었다.
로마 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인정하였다
50년후 후연 4대 황제 모용성이 용성 내에서 단기가 일으킨 반란으로 습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이후 모용희가 후연 제 5대 황제가 되었다.
60년후 콘스탄티누스 3세 : 서로마 제국의 장군사망.
410년 고구려의 동북방에 위치한 부여(동부여)가 고구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왕이 직접 토벌했다. 고구려군이 동부여의 수도에 이르자 동부여가 항복했다. 이때에 동부여를 떠받드는 5압로(5부)가 고구려에 투항했고 64개의 성과 1400개의 마을을 공파했다. 바로 전에 고구려가 상대한 후연은 서방인데 동부여는 그 정반대인 동북방이다. 광개토대왕은 동서남북 사방을 가로질러가며 정복 전쟁을 벌인 것이다.
412년엔 실성마립간 내물왕 2남 복호를 고구려에 인질로 보내 외교관계를 개선하려 했다.
BC 10년경 로마제국의 장군 아그리파가 세운 건축물
60년전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가 시노프를 함락시켰다.
프라아테스 3세가 파르티아의 왕이 되었다
50년전
로마에서 제1차 삼두정치가 시작되다.흉노의 일축왕이 전한에 투항함
40년전 기원전50년율리우스 카이사르, 북이탈리아로 돌아오다
30년전 bc40년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브린디시 협정으로 세력권을 동부와 서부로 나누다
10년후 사파드비제스 : 쿠샨 왕조의 왕사망
20년후 아르타바누스 3세가 파르티아의 왕이 되었다.
30년후 동부여의 대소왕이 대무신왕이 이끄는 고구려군과의 전투에서 전사
40년후 31년 - 세야누스가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에 의해 국가반역죄로 처형당하였다
50년후 로마 황제 칼리굴라가 암살당했다. 이후 클라우디우스가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60년후 신약 성서에 많은 글을 남겼으며 성 베드로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초기 기독교 전도자였던 사도 바울은 서기 51년 처음으로 코린토스를 방문했다. 그는 6년 후 도시를 다시 찾았고, 두 편의 서간을 썼다. 바로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로,신약 성서에 포함되어 있다
BC 370년 메갈로폴리스를 중심으로 하여 마침내 아르카디아 동맹이 결성되었고, 이것은 내분으로 기능이 무기력해질 때까지 수십 년 간 이어졌다.
원자론자: 데모크리토스(기원전 460년경--370년경)했다
BC 730년경
BC 1090년경 상,하(下)이집트로 분리되다 BC,1450년경. 레위기 율법과 성막의 5대 제사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의 유전
크레타 문명은 BC 3650년 경부터 흥성했지만 BC 1450년경 미노아 문명이 사라진다
BC 1450년경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도리아인들이 침입하자 이들에게 여러 왕궁들이 파괴되고 지중해의 패자(覇者)자리마저 내주게 된다.동이와 夏 殷 周의 기나긴 투쟁과 화해
하나라 3대 太康왕 19년(BC 2170년)의 기록에 “하후씨 태강이 덕을 잃자 夷人이 처음으로 반기를 들었다”
기원전 2170년 경에 세계 최초의 제국(메소포타미아의 아카디안 제국)의 몰락
bc2530년 - 밀수확량 기록 , 조세르 1세의 계단 피라미드 기원전 2530년에 지어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무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