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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하나님 백성이었습니다. 삶은 하나님 백성답지 않았습니다.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불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수없이 많은 선지자를 보내 경고하셨음에도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이 하나님보다 위에 두고 우상들 가운데 하나같이 섬기던 성전이 불탔습니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예루살렘은 폐허처럼 변했습니다. 백성들 가운데 절대다수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여러 지역으로 사분오열 흩어졌습니다. 나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끝났다는 생각이 밀려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버리셨다는 생각이 밀려들었습니다.
뒤늦게 자신들이 저질러왔던 죄를 생각하며 하염없이 울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상황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희망은 어디서도, 그림자조차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현실은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웠습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출구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동서남북은 물론 동북, 동남, 서북, 서남 등 사방팔방을 둘러보아도 절대 절망뿐이었습니다.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는 완벽한 두려움까지 엄습했습니다. 바로 그때, 여호와께서 그들을 “야곱아! 이스라엘아!”라고 부르셨습니다. 야곱은 지극히 이기주의자였습니다. 사기꾼이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보다 앞섰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와는 씨름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주셨습니다. 이제까지 살아왔던 삶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제부터는 정체성이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는 의미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연약하고 부족했던 이스라엘을 불러주셨습니다. 선택해 주셨습니다. 거룩한 당신 백성으로 구별해 주셨습니다. 지금 그야말로 철저하게 실패한 상태에서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는 절대 절망과 두려움에 완벽하게 사로잡혀 있던 그들을 기억해 주셨습니다.
다시 언약 백성으로 불러주셨습니다. 회복으로 초대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내가 모든 민족 가운데 가장 연약했던 너를 선택해 주었다, 내가 너와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로 깨지지 않을 반드시 이뤄질 언약을 맺어 주었다, 내가 너를 세상 그 무엇보다도 사랑해 주었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이제 내가 절대 절망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너를 완벽하게 회복시켜 주겠다.”라는 의미를 담아서 야곱과 이스라엘이라고 불러주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서도 희망을 찾을 수 없는 포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당신 백성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탕자는 자신은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시로서는 쓰임이 다하면 언제든지 폐기 처분 할 수 있었던 종들 가운데 하나로라도 써주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자신 곁에 있을 때도 아들이었습니다. 자신을 떠나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전히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아들이었습니다. 탕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은혜였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다르지 않습니다. 좋을 때는 물론 나쁠 때도 하나님 백성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어떤 상태에 있든지 전혀 상관없이 무조건 하나님 백성입니다. 철저하게 실패하고 넘어졌을 때도 여전히 하나님 백성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준과 자격과 조건과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 백성입니다. 세상 그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그야말로 크고 놀라운 은혜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있을 수 없습니다. ① 하나님께서는 친히 부르신 야곱과 이스라엘을 당신이 친히 창조해 주셨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야곱은 겉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실패한 이름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백성이라는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가진 놀라운 이름입니다. 어쩌다 보니 우연히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당장은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는 절대 절망과 두려움에 완벽하게 사로잡혀 있지만 그래서 내놓고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지만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 구원이라는 놀라운 목적을 위해서 창조해 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늘 이렇게 존재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목적을 가지고 창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② 하나님께서는 부르신 야곱과 이스라엘을 당신이 친히 구속해 주셨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구속גאל(가알)”은 성경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개념입니다. 가까운 친족이 가족을 위해서 대신 책임을 지거나 되찾아 준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값을 대신 치러주는 행위가 아닙니다. 친족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져 있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실제로,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까운 친족은 가난 때문에 팔린 친척의 땅을 되찾아 주었습니다. 종으로 팔린 친척을 합당한 값을 치르고 자유롭게 풀어 주었습니다. 자녀를 한 명도 남기지 못하고 죽은 친척의 가문을 이어 주었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친척의 권리를 끝까지 보호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구속이라는 단어에는 당신 백성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어떤 값이든 치르고서라도 반드시 회복시켜 주고야 말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 곧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통해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속은 저와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잘해서 받는 선물이 아닙니다. 은혜 안에서 값없이 허락해 주시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선물입니다. ③ 하나님께서는 부르신 그들이 물과 불을 지날 때 함께 해 주셨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물과 불은 은유적인 표현입니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혹독한 고난, 문제, 질병, 불행 등을 가리킵니다. 출애굽과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에서 당하는 혹독한 고난 속에 그들과 함께해 주셨습니다. 홍해와 요단강을 앞에 두었을 때도 그들과 함께해 주셨습니다. 불순종 때문에 광야에서 사십 년을 방황할 때도 그들과 함께해 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당했던 무수히 많은 고난 속에도 함께해 주셨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함께해 주고 계시고, 이후로도 영원히 함께해 주실 것입니다. 절대로 간과하지 말고 반드시 마음에 새기고 기억해야 할 너무나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아예 찾아볼 수 없는 평탄한 삶을 약속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고난당 할 때 절대로 포기하거나 버려두거나 떠나지 않고 고난을 얼마든지 참고 견디며 마침내 이길 수 있도록 함께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친히 허락하신 고난 속에 숨겨놓은 목적을 완벽하게 이루어낼 수 있도록 함께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그렇지만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주지는 않으십니다. 해결해 주시기는커녕 오히려 문제 속에 집어넣거나 아예 내버려두셨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문제를 통해서 반드시 이루어야 할 선하고 아름다운 목적이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함께 하시든 믿음으로 받고 살아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④ 하나님께서는 이집트를 성민 이스라엘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성민 이스라엘 대신 주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너를 구원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을 대가로 내주었다.”라고 의역할 수 있습니다. 난해 구절입니다. “속량물כֹּפֶר(코페르)”는 “몸값, 배상금, 대가, 속전” 등의 뜻입니다. 어떤 사람을 자유롭게 풀어 주기 위해서 대신 치르는 값을 가리킵니다. 당시 이집트는 대제국이었습니다.
강력한 나라였습니다. 주변 국가들이 감히 넘볼 수 없었습니다. 이집트 남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구스 역시 강대국이었습니다. 스바는 대단히 부유한 왕국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민 이스라엘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이 나라들을 대가로 내놓을 수 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원한다면 실제로 얼마든지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허물과 죄로 죽은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역시 허물과 죄로 죽은 누군가를 대신 희생시키는 것은 의미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에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실 수 있어도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성민 이스라엘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어떤 대가라도 기꺼이 치르겠다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다릅니다.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라는 증거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 곧 저와 여러분의 구원을 위해서 당신 자신을 거룩한 속량물, 대속물 곧 희생제물로 대신 내놓으셨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다 주고도 절대로 갚을 수 없는 그야말로 엄청난 값을 대신 치러주셨습니다.
또 당신 백성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인류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역사의 주인은 이집트, 바벨론, 페르시아 등 강력했던 제국들이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귀히 여기십니다.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큰 대가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치르십니다. 역사까지도 주관하십니다. ⑤ 하나님께서는 부르신 그들이 보배롭고 존귀하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들이 의롭기 때문이 아닙니다. 훌륭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포로였습니다. 철저히 실패했습니다.
그럼에도 보배롭고 존귀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세상 무엇보다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당장 처한 상황과 환경과 조건과 전혀 상관없이 보배롭고 존귀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스럽게 여겨주시기 때문입니다.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엄청난 사랑, 세상 무엇도 절대로 끊어놓을 수 없는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⑥ 하나님께서는 부르신 그들에게 당장 처해 있는 상황이 아무리 엄중해도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으로 시작해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으로 마무리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אַל־תִּירָא(알 티라)”는 단순한 금지 명령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과 보호 등의 언약을 근거로 한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뜻의 계획과 목적대로 그들을 창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당신 백성으로 지명하여 불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구속해 주셨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지키고 보호해 주시는 거룩한 소유 삼아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상 그 무엇보다도 귀하게 여겨주셨습니다. 그들의 회복을 위해서 인류 역사까지 주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주셨습니다.
사랑스럽게 여겨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그들 가운데 친히 임하셔서 한순간도 떠나지 않고 함께 하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십자가 죽음을 앞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에서는 너희가 고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16:33b)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세상κόσμος”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의 질서, 불신앙, 악의 세력을 이겼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이기셨습니다. 죄가 하나도 없는 삶을 사셨습니다.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사탄의 시험을 당당하게 받으시고 악의 권세를 꺾으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영원한 죽음과 저주와 지옥 불구덩이를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세상의 미움과 핍박을 이기셨습니다. 당신을 향한 하나님 뜻의 계획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부활하신 다음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도 전에 이미 승리를 선포하셨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창세 전 작정은 당신의 온전한 순종을 통해서 반드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야말로 완벽하게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요일5:4-5)라는 약속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희생을 통해 하나님 자녀로 거듭난 저와 여러분의 삶은 현재 처해 있는 상황과 상관없이 무조건, 반드시, 그야말로 완벽하게 이길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미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로 완벽하게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고해와 같은 힘겨운 인생을 사는 동안 실패할 수 있습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희망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상황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그때, 환난과 시험을 당할 때 두려워하지 말라는 하나님 명령을 믿음으로 끄집어낼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승리를 선포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것을 통해 견디기 힘든 환난과 시험 중에도 당당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든든한 파수꾼처럼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평안을 누리는 복된 삶은 물론 세상을 이길 수밖에 없도록 역사해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까지 경험하는 복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