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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함께 걸으니 참 좋네
1.시작하며
아베 일본총리의 한국 수출규제조처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보수정당과 보수언론들은 정부의 무능을 질책하며 자존심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 고개를 숙이고 국익(기업의 이익)먼저 챙기라고 아우성이지만, 대중들은 이들의 행동을 친일적 행위로 규정하고 일본상품 불매와 보수언론에 광고를 제공하는 기업들의 불매운동을 전개하며 일본을 규탄하고 있다. 정치적 분위기와 부쩍 고조된 민족주의 탓으로 일본여행도 급감했고 유니클로 같은 일본기업의 매출이 급락했으며 롯데 등 일본과 관련 있는 기업들의 주식 값도 폭락했다.
일본여행은 지난여름부터 예정되었다. 지난여름 혼자 교토 배낭여행을 다녀온 뒤 미진한 것이 많아서 향후 몇 번은 더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일본의 고대문화인 다카마스고분이나 아스카, 나라문화도 보고 싶었다. 3월쯤 친구 장선생에게 동행을 제의했다. 장선생은 이번 여름에 해야 할 과제와 사모님의 동의문제를 거론하며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도 혼자가기보다는 맘에 맞는 친구와 동행하는 것이 나을 듯해서 교무실 옆자리 박선생에게 제의했다. 그런데 의외로 선뜻 대답한다. 박선생이 항공기와 열차편을 예약하고 나는 숙소와 여행일정을 알아봤다.
무리 없이 준비되던 여행은 내 개인적인 일로 어려움이 생겼다. 4월 말 포승읍 취재과정 중 뒷걸음을 치다 농수로에 쳐 박히는 바람에 머리 타박상과 갈비뼈 골절상을 당했고, 6월에는 넘어지면서 손을 잘못 짚어 왼손 중지가 부러졌다. 며칠 뒤에는 부러진 중지를 보호하려다 오른손 중지와 약지의 인대가 늘어나 고생했으며, 6월 중순에는 10년 동안 병석에 누워계셨던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한동안 장례를 치르느라 분주했다. 남들은 10년 동안 당할 일들을 한꺼번에 당하고 나니 정신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아베의 망언이 튀어나왔다. 참으로 난감한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 여행준비를 하고 있는 박선생을 실망시킬 수도 없었고 나도 마음의 짐을 털어버리고 싶어 숙고 끝에 결행을 결심했다.
2.여행은 인생이다
동행자가 있는 여행은 고려하고 배려할 것이 많다. 서로의 가치관과 취향을 고려해야 하고 여행의 목적도 배려해줘야 한다. 박선생은 문화유산답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다행히 걷고 부딪치며 문화와 풍물을 경험하는 것을 즐겨 일정수립에 어려움이 없었다. 여행기간은 4박 5일. 우리는 방학식을 마친 뒤 곧바로 떠나기로 했다. 교직원 연수가 맘에 걸리기는 했지만 딱히 가고 싶지도 가야할 이유도 없어서 외면했다. 첫날은 오사카에서 숙박하고 둘째 날부터 교토여행을 하는 것으로 계획했다. 숙소와 비행시간을 알아보고 며칠 동안 끙끙거리며 일정표를 짰다. 그렇게 마련한 일정표를 박선생에게 보여주고 일부 수정했다. 여행일정은 다음과 같다.
7월 17일(수)
박선생 차로 공항 출발(11시 30분)→3시 30분 비행기 탑승→간사이공항 도착→오사카 도톤보리로 이동(전철)→도톤보리 일대 관광→사라사호텔 도톤보리 1박
7월 18일(목)
아침식사(편의점 토스트 및 우유)→오사카성→오사카 시립박물관→점심식사(규가츠)→교토 이동(시외버스)→국립교토박물관→산주산겐도→도요쿠니 신사 및 호겐지→귀무덤→이마노 교토 키요미즈 호스텔 체크인 –저녁식사 및 주변관광
7월 19일(금)
산넨자카 및 청수사(기요미즈테라) 산책→아침식사(게스트하우스)→법관사 오중탑→야사카신사→건인사→점심식사→교토현대미술관→교토대학교→도시샤대학교(선택)→그리즈교토시조가와라마치 호스텔 체크인→니시키시장에서 저녁식사 후 가와라마치와 기온 밤거리 배회
7월 20일(토)
아침식사(게스트하우스)→철학의 길과 은각사, 남선사→수학원 이궁→점심식사→우즈마사 광륭사 →지쿠닌(선택)→천룡사→도게교→마츠오 신사→피스호스텔 교토 체크인
7월 21일(일)
아침식사→동복사(도후쿠지)→동사(도지)→점심식사 및 쇼핑→교토역에서 하루카 특급 탑승→간사이공항→인천국제공항
여행은 인생과도 같다. 우리는 무수한 계획을 세우지만 인생은 계획대로만 전개되지 않는다. 인천공항에서 자동발매기로 티켓을 발매하여 간사이공항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간사이공항에서 돌아올 때 사용할 하루카특급 티켓을 교환하고 고속전철로 오사카 난바역으로 향했다. 도톤보리 골목에서 저녁을 먹고 운하가 흐르는 강변에서 맥주까지 한 잔 마셨다. 다음 날 아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건축한 오사카성과 오사카박물관, 히데요시의 신사까지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점심을 먹고 직행버스로 교토로 이동하면서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걷기를 좋아하는 박선생과 우산을 쓰고 터벅터벅 국립교토박물관 근처까지 이동했더니 오후 4시, 박물관과 산주산겐도 답사는 아무래도 무리일 듯싶었다. 아무려면 어떨까 싶어 박물관 답사는 다음 날로 미루고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제사하는 도요쿠니 신사와 호겐지 터 그리고 조선인들의 원혼이 서린 ‘귀무덤(이총)’을 답사했다. 나름 바쁜 일정이었지만 무난한 하루였다. 숙소에 짐을 풀은 뒤 저녁밥을 먹으러 비가 내리는 산넨자카를 올랐다. 내심 지난해에 먹은 법관사 오중탑 옆의 덮밥집이 생각나서 그 쪽으로 갔지만 식당은 일찍 문을 닫아 버렸다.
셋째 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비가내리는 기요미즈테라(청수사)를 답사하고 산주산겐도로 내려와 아침식사 뒤 어제 못다 한 박물관과 산주산겐도를 답사했다. 유홍준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를 읽고 잔뜩 기대를 했던 박선생은 막상 박물관과 산주산겐도를 보고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1,000분의 천수관음에서 어떤 특별함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기야 미스코리아 1,000명을 한꺼번에 본 것과 같으니 그 마음 십분 이해되었다. 유홍준 교수의 감동이 박선생에게까지 전달되지 못한 듯해서 좀 미안했다.
오후에는 은각사와 남선사를 거쳐 철학의 길을 걷고 교토대학교를 답사하는 일정. 비가 추적거리는 거리를 버스와 도보로 이동했다. 후지와라의 별장을 개조했다는 은각사는 내심 기대했지만 실망 백배. 식견이 부족해서인지 유교수가 극찬했던 일본식 정원도 보면 볼수록 별로다. 철학의 길도 스토리텔링은 뛰어날지 모르지만 풍광은 그저 그랬다. 둘이서 터벅터벅 국립교토현대미술관까지 걸었다. 도중에 차도 한 잔 마시고 쉬엄쉬엄 걸었지만 전날 잠을 설쳐서인지 몸도 무겁고 마음도 쳐진다. 박선생 컨디션도 좋아 보이지 않아서 어떠냐고 물었더니 온 몸이 굳어서 목욕탕에 몸 좀 담그고 싶다고 한다. 교토대 답사와 미술관 답사도 시큰둥해서 근처 헤이안신궁만 답사하고 택시로 숙소까지 이동했다. 숙소에 짐을 풀은 뒤 니시키시장을 돌아봤다. 관광상품화 된 시장이지만 다시 보니 나름 생기가 넘친다. 저녁밥은 가와라마치에서 이치란 라멘을 먹었다. 일본식 짠 음식을 힘들어했던 박선생도 맥주와 곁들여 한 그릇을 거뜬하게 해치운다.
몸이 좋지 않은 박선생을 배려해서 다음 날은 느즈막히 일어났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먹고 곧바로 우즈마사의 광륭사와 천룡사, 도게교와 마츠오신사를 답사하기로 했다. 지난해에 묵었던 가와라마치의 게스트하우스 아침밥은 소박하면서도 맛있다. 한큐전철을 갈아타고 아라시마로 향했다. 푸른 산과 아름다운 가쓰라강이 흐르는 아라시야마는 일본인들도 즐겨 찾는 관광지다. 한큐 아라시야마역에서 내려 도게교 쪽으로 가려다 마쓰오신사를 먼저 답사하기로 했다. 박선생의 제의로 뒷골목을 걸어 마쓰오신사까지 갔다. 골목 안의 집들은 정갈하고 소박하다. 어느 골목길 어귀에서 자신이 직접 재배한 오이, 토마토 등을 파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당연히 영어를 못할 줄 알고 말도 안 되는 일본어로 소통하려 애쓰는데 돌연 유창한 영어로 우리에게 물어온다. 교토에서는 이런 일이 흔하다. 수박을 시식하고 2천 엔짜리 토마토 한 봉지를 샀다. 길을 걸으며 먹는 토마토 맛, 시쳇말로 ‘죽인다’.
마쓰오신사는 답사하지 않았더라면 오랫동안 서운했을 법하다. 박선생도 매우 좋아했다. 마침 마쓰리가 가까워서인지 신사 안에는 참배객도 많고 각종 의례도 행해지고 있었다. 마쓰오신사에는 신라 도래인 진하승을 주존으로 모셨다. 신라에서 건너와 가쓰라강에 제방을 쌓아 논농사를 시작했고 비단 짜는 기술과 술 빚는 기술로 명성을 얻어 일본 고대국가 성립의 주역 쇼토쿠태자의 최측근이 되었던 인물. 그래서일까, 신사 안의 풍경은 여느 일본 신사보다 한국적이다. 신사 한쪽에 여러 양조회사에서 바친 술통들이 그득해서 이유를 물었더니 진하승이 술의 신(新)으로도 추앙받는다고 한다.
일본의 절과 신사에서는 좀 볼만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입장료를 받는다. 마쓰오 신사에서도 입장료를 받는 곳이 있어 무심코 들어갔더니 볼거리가 천지다. 자그만 정원을 지나 보물전에 들어서니 진하승 부부의 목상을 위시해서 술 빚는 비법을 전수받아 대대로 명성을 떨쳤던 후손들의 목상이 차례로 서 있다. 선진국 신라의 도래인이라는 자긍심으로 살았을 이들에게서 오늘날 재일 조선인들의 처지를 떠올린다.
저녁에 다른 일행과 일본여행을 온 우리학교 선생님들을 만나 함께 저녁을 먹었다. 공교롭게도 분위기가 험악한 시기 함께 오사카와 교토 여행을 하겠다고 해서 한번쯤 만나 저녁이라도 사줘야겠다고 생각해 성사된 모임이다. 소고기 덮밥 집에서 줄을 섰다가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근처 샤브샤브집으로 들어갔다. 요리도 맛있고 분위기도 좋았지만 밥값 술값이 만만치 않게 나왔다. 속은 쓰렸지만 어른 노릇을 한 것 같아 기분은 좋다. 저녁을 먹고는 근처 가모강가에 나가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바람도 시원하고 마음도 푸근하다.
여행 5일째, 도후쿠지와 도지(동사)를 답사하고 쇼핑을 한 뒤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도후쿠지로 갔다. 지난 해 답사했던 사찰 가운데 가장 분위기가 좋았던 곳. 그 분위기를 박선생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사찰 경내로 들어서니 루문 앞에 연꽃이 만발하다. 풍경이 아름다워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도후쿠지에는 눈여겨 볼만한 것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목욕탕과 화장실은 역사적, 문화적 스토리가 많은 유적이다. 우선 장방 건물에 들어갔다. 장방에서 나와서는 통천문도 들어가 볼 요량이었다. 답사객이 제법 많았지만 장방건물 안은 고요하다. 여행자들은 대부분 장방 앞의 가레이산수 정원을 바라보며 마루에 걸터앉는다. 가레이산수는 저절로 마음이 차분해지게 하는 마법을 부리지만 우리 정서에는 정형화되고 인공적인 풍광이 익숙치 못하다. 우리는 호젓한 툇마루로 물러나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오랫동안 마음의 피로를 풀었다.
도후쿠지에서 버스를 타고 동사로 향했다. 동사는 헤이안시대 일본 선불교의 비조 공해스님이 창건한 사찰이다. 삼중탑도 멋지고 법당 안의 구품만다라도 볼만한 사찰이다. 지난해는 혼자 감상하며 중세와 근세 일본 불교문화의 저력에 감탄했는데 이번 함께 동행한 박선생은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벼룩시장에만 집중한다. 버스에서 내려 동사 남문으로 향했다. 거리와 절 마당에는 벌써 장사꾼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물건들은 골동품도 있었지만 유상골동품과 기성품도 많다. 장사꾼들이 내미는 물건을 하나하나 살피며 마당을 한 바퀴 도는데도 1시간이 걸린다. 이번 여행에서는 동사 법당은 답사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열차를 타기 전 쇼핑시간이 필요했고 박선생도 크게 호기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3.교통과 숙박
여행준비에서 중요한 것이 교통편과 숙박이다. 우리는 비용을 60, 70만 원선으로 정했기에 비싼 항공기를 이용할 수 없었다. 항공편을 저렴하게 구입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최소 두세 달 전에 예약하는 것, 다른 하나는 저가항공을 이용하는 것이다. 오사카까지는 저가항공을 이용해도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서 가급적 저가항공사만 알아봤다. 하지만 준비과정에서 변수가 발생했다. 6월 들어 아버지 병세가 급속히 나빠졌고 17일에 임종하시는 바람에 선뜻 여행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 최소 1년쯤은 자숙해야 했지만 큰 기대를 하며 준비한 박선생이 눈에 밟혔다. 그렇게 이런저런 일로 고민하다 보니 항공편 예약이 늦어졌다. 항공편은 시간이 돈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비싼 티켓을 발매했다.
일본에서의 교통편은 전철과 기차, 시외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는 한국에서 예매해두었던 교토→간사이공항 하루카 특급 기차표와 도톤보리까지 가는 전철표를 구입해야 했다. 하루카 특급 창구는 여행객들이 길게 늘어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박선생이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나보고 전철표를 구입해오라고 한다. 영어와 일본어 모두 어눌한 나를 놀리려는 속셈인 것은 알았지만 이런 일에 꿀릴 내가 아니다. 일본에서는 전철표도 종류가 다양해서 안내원에게 물었더니 한국말로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전철표를 사들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더니 아직도 줄서 있던 박선생이 깜작 놀란다.
오사카 난바역에 내려 도톤보리까지 걸었다. 인터넷에서 사전 학습을 할 때는 우회전 한 뒤 쭉 직진하라고 했는데 막상 걸으려니 방향감각이 없다. 도톤보리 쪽 방향만 확인하고 무작정 걸었다. 수로가 나타나고 복잡한 골목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니 도톤보리가 분명해보였다. 거리구경을 하며 걷다가 타코야끼를 파는 가게 앞에 멈춰 섰다. 두 개를 주문했는데 한국에서와 달리 크기가 주먹만 하다. 타코야끼 좋아하는 아들 녀석 사다주면 좋아할 텐데. 나는 아들 덕분에 금방 구워낸 타코야끼가 얼마나 뜨거운지 안다. 하지만 박선생은 그렇지 못했다. 타코야끼를 사들고 겉을 살짝 베어 물은 뒤 입안에서 살살 식히고 있는데 갑자기 박선생이 비명을 질렀다. 용감하게도 뜨거운 타코야끼를 덥석 베어 문 것이다. 그런 상황이면 금방 뱉어내면 그만인데 예의바른 박선생 소리만 지를 뿐 뱉어낼 생각을 안 한다. 결국 그 사건으로 박선생은 입안 전체를 데어 여행 내내 큰 고생을 했다.
우리가 첫날 숙소로 정한 사라사호텔 도톤보리는 중심가에서 그리 멀지 않으면서도 시설이 깨끗하고 좋았다. 아쉬운 점이라면 아침식사를 제공하지 않는 것인데 그 문제는 일본의 편의점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전철역을 향해 걷다가 길가의 편의점에 들어갔다. 샌드위치와 우유를 사서 먹을 곳을 둘러봤지만 일본편의점은 한국처럼 앉아 먹을 곳이 없다. ‘역시 편의점은 한국이 최고’라고 중얼거리며 쓰레기가 잔뜩 쌓인 편의점 밖에서 아침을 때웠다.
박선생의 방향감각은 매우 예리했다. 그 감각만 믿고 전철을 타고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하지만 좋았던 것은 거기까지다. 박선생이 내리자는 곳에서 하차한 뒤 전철역 2층, 3층을 헤맸지만 시외버스터미널은 보이지 않는다. 구글지도에서 분명 전철역과 함께 있는 것을 봤다는 확신에 찬 말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미안하다. 박선생은 자신의 판단에 확신을 갖고 이리저리 헤맸다. 난감한 상황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는 것이다. 불친절한 몇몇 사람을 거쳐 어슬렁거리는 젊은 청년에게 물었다. ‘시외버스터미널이 어디에 있죠?’ 물론 손짓발짓 영어다. 그런데 그 청년 한국말로 대답한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연변유학생이란다. 이 뜨거운 동포애!
청년은 우리를 데리고 전철역에서 나와 좁은 골목길을 요리조리 걸었다. 전철역에 터미널이 있다고 굳게 믿었던 박선생은 무척 불안했던 가보다. 그렇게 10분쯤 걸었을까, 터미널은 우리가 알고 있던 곳보다 훨씬 먼 곳에 있었다. 친절한 청년에게 너무 고마워 어떻게 감사의 표시라도 하려는데 이 청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휭 하니 가버린다. ‘고마운 청년, 복 받을 겨.’
교토터미널에 내리니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우리 첫 번째 목표는 국립교토박물관. 지도를 검색한 박선생은 무조건 걸어가잖다. 투덜거리며 비오는 교토 뒷골목을 휘적휘적 걸었다. 교토에서는 버스보다는 전철을 이용했다. 버스 기본요금이 우리나라 돈으로 2천원이 넘어서 차라리 거미줄처럼 연결된 전철을 타는 것이 나았다. 두 번째 여행하는 교토는 모든 사물이 낫 익었다. 혼자 조마조마하며 기다렸던 시내버스도 박선생과 함께 가니 아무 걱정이 없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박선생, 내릴 곳에서 내리고 탈 곳에서 잘 탄다.
교토에서 2박을 책임져줄 게스트하우스는 이마노 교토 키요미즈호스텔. 비용을 아끼려 2만원 이하의 디미트리실을 조식제공으로 예약했다. 2018년 경험했지만 일본의 게스트하우스는 깨끗해서 디미트리라고 해서 불편한 점은 없다. 예상대로 숙소는 만족스러웠다. 공동샤워장과 세탁실 사용도 경험이 있어서인지 불편하지 않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청수사(기요미즈테라)로 올라갔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졌지만 덕분에 관광객이 거의 없어서 오히려 호젓하고 낭만적이다. 2018년에는 감히(?) 먹어보지 못했던 생명약수도 맘껏 마셨다. 게스트하우스의 아침식사는 소박하면서도 깔끔하고 맛있었다. 박선생도 좋아하는 스타일이라며 대단히 만족스러워했다.
3박을 했던 니시키시장 근처의 그리드교토 가와라마치호스텔이나 4박을 했던 교토역 뒤편의 피스호스텔도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사실 그리드교토 가와라미치호스텔은 2018년 여행 때 4박을 모두 했던 곳이라 정겨웠다. 주변 지리도 익숙해서 박선생을 데리고 골목길을 헤집었는데 그만 저녁밥으로 이치란 라멘을 먹고는 방향을 잃어서 오랫동안 헤매는 수모를 겪었다.
여행 마지막 날, 교토역 근처 피노키오라는 상점에서 쇼핑을 했다. 박선생은 아이들에게 선물할 곤약젤리 등을 샀고 나는 아내가 부탁한 파스를 10만원 넘게 구입했다. 마지막 점심은 큰 맘 먹고 장어덮밥을 먹었다. 커다란 선물보따리를 안고 낑낑거리며 식당을 찾아 밥을 먹은 뒤 하루카 특급 출발시간에 맞춰 이동했다. 빠른 걸음으로 개찰구로 향하는데 박선생이 ‘선생님, 아까 쇼핑했던 물건 어딨어요?’라고 말한다. 화들짝 놀라 내려다 봤더니 한 손에는 분명 선물보따리가 들려 있는데 다른 손에 있어야할 보따리가 보이지 않는다. 머리속이 하얘졌다. 점심 먹은 식당은 개찰구 반대편 건물. 역무원에게 손짓 발짓으로 사정을 말하고 비밀통로(?)를 통해 반대편으로 달렸다. 물건은 찾았으나 문제는 하루카 특급을 탈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들어올 때 봐뒀던 이정표를 머릿속에 그리며 허겁지겁 달렸다. 그리고 출발 3분 전, 우리는 무사히 하루카 특급에 올랐다. 단전에서부터 긴 한숨이 나왔다.
4.일본음식, 기대할 것 없어!
일본여행자들이 가장 기대하는 것은 아마도 음식일 것이다. 일본음식은 전통 있고 깔끔하며 양은 적지만 맛은 기가 막힐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텔레비전 여행프로그램을 봐도 어느 지역에나 몇 대를 거쳐 가업을 전승하는 요리사와 깔끔한 레스토랑이 비춰지곤 한다.
음식은 종합문화이며 예술이라지만 박선생과 나의 공통점은 맛집에 대한 신뢰가 적고 음식에 대한 기대치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사실이다. 다만 로컬 음식이나 술에 대해서만큼은 나름 집착이 있어서 비싼 음식보다 지역적 특색을 담은 음식만큼은 맛보려 노력한다.
이번 오사카-교토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음식은 게스트하우스의 간단한 아침식사와 첫날 도톤보리에서 먹었던 ‘타코야키’와 ‘규카츠’, 그리고 여행 마지막 날 교토역에서 먹었던 ‘장어덮밥’이다. 게스트하우스음식 가운데 가장 좋았던 곳은 기요미즈테라 입구의 이마노 교토 키요미즈 호스텔의 조식이다. 이 호스텔은 유럽의 호텔들처럼 가족끼리 운영하는 듯했다. 큰 길 뒤편에 있어 조용했고 로비도 크지 않았지만 차분하고 정갈했다. 역할분담도 잘 되어 있어서 젊은 아들과 딸은 투숙객들의 체크인과 방을 안내했으며, 로비 겸 카페에는 엄마와 딸로 보이는 여성이 번갈아 음식을 만들고 주문한 차를 내고 있었다. 둘째 날 저녁밥은 비 내리는 산넨자카 근처 선술집에서 일본식 빈대떡이라고 할 수 있는 오코노미야키에 청주 한 도꾸리를 시켜 먹느라 숙소 음식을 맛보지 못했다. 우리를 감동케 했던 것은 조식이었다. 게스트하우스 조식은 큰 접시에 간단한 샌드위치와 우유 한 컵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조화로워 감탄을 자아냈다. 셋째 날 투숙한 가와라마치역 근처의 그리드교토 가와라마치 호스텔과 마지막날의 피스 호스텔 조식도 다양성과 맛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오사카의 규카츠와 교토역의 장어덮밥은 허탈감만을 남겼다. 오사카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에 여행자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규카츠’집이 있다기에 한 번 먹어보기로 했다. ‘그래도 일본 여행을 왔는데 로컬음식 한 개쯤은 먹어줘야 예의가 아니겠냐’는 내 주장에 박선생도 선선히 동의했다. 물어물어 찾아간 식당은 지하에 있었다. 일본 여행지의 유명 음식점 앞에는 시도 때도 없이 긴 줄이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식당은 근처에 다가갔을 때까지만 해도 줄을 선 사람들이 없었다. 앗싸! 쾌재를 불렀지만 환호는 오래가지 못했다. 우리는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섞여 30분 동안 길게 서 있었다. 머릿속으로 규카츠의 사이즈와 맛을 연상하며 면벽수도를 하고 있는데 종업원이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그리 크지 않은 식당을 꽉 메운 사람들은 저마다 작은 접시를 앞에 놓고 조심스레 포크질을 하고 있었다. 중국 식당들처럼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도 없다. 일본 특유의 식당분위기가 지겨워질 때쯤 음식이 배달되었다. 종업원이 내려놓고 간 접시에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1/3정도밖에 안 되는 규카츠가 살포시 담겨 있었다. 입에서는 ‘에이~’ 소리가 나오려했지만 박선생은 더 실망한 것 같아서 간신히 참았다. 친절하게도 8토막으로 잘려진 규카츠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할 때는 분명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고 했는데 녹기는커녕 단순 심심하다. 잘못 먹었나 싶어 두 번째 고기를 소스에 듬뿍 찍어 먹었지만 역시 신통찮았다. 신통찮은 음식을 놓고 폼 재며 먹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서둘러 입안에 우겨 넣고는 밖으로 나왔다.
규카츠의 기억이 별로여서 분위기도 바꿀 겸 절대 실망하지 않을 메뉴를 고심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장어덮밥.’ 그래도 본토인데 ‘장어덮밥’만큼은 최소한 배신하지 않으리라 믿었다. 검색창에 뜬 여러 맛집 중에 우리 일정에 맞는 집을 찾았더니 교토역 구내에 제법 이름난 장어덮밥집이 있다는 정보가 있었다. 오전 답사를 하고 쇼핑을 마친 뒤 교토역으로 향했다. 장어덮밥집은 역 구내에서도 서쪽 끄트머리에 있었다.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헉헉대며 걷다가 발견한 장어덮밥집. 지글지글 장어 익는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식당 구석에 앉아 우리는 기대와 감격으로 음식을 맞았다. 덮밥의 모양은 한국에서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맛은 다르겠지’ 라고 생각하며 밥 위에 큼지막한 장어를 올려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런데 맛도 그저 그런 수준이다. 한국에서도 2만 5천 원짜리 장어덮밥이면 이 정도는 나오겠다 싶은 딱 그 수준의 맛.
4.에필로그
두 번째 교토-오사카여행이어서인지 간사이공항이 낮 익다. 비행기에 올라 창밖을 내다본다. 1만 미터 상공에서 바라본 일본열도는 섬과 섬 그리고 그 섬들을 연결한 다리뿐이다. 여행은 환상을 현실로 돌려놓는 마법을 부린다. 그것이 이해(理解)로 연결되면 다행이겠으나 오해(誤解)이면 낭패다. 오랫동안 일본여행을 꿈꿨던 내가 교토 두 번, 큐슈 한 번 여행하고는 이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무심한 눈으로 일본열도를 내려다본다.
박선생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미안하다는 말에 박선생은 화들짝 놀라며 ‘뭐가요?’라고 반문한다. ‘아버님 장례 치르고 얼마 안 돼 마음이 닫혀 있는 상황에서 여행하느라 여러 가지로 미흡해서’라고 말했더니 자기는 참 좋았다며 손사례를 친다. 그런 넉넉함이 고맙다.
박선생에게 다음에는 중국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도 북경에서 낙양과 장안을 거쳐 윈깡, 룽먼까지 다녀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때 함께 갈 거냐고 물었더니 ‘티벳’도 추가한다면 동행하겠단다. 티벳 좋지, 맞장구를 쳤더니 그저 빙그레 웃는다. 박선생은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소득이다. (20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