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무
권 순 경
엄마는 나무 밑 평상에 앉아있다. 거기 앉아서 보면 아랫동네가 훤히 보이고 먼 데 산도 보이고 기찻길도 보이고 강둑도 아슴아슴 보인다. 나무 밑에서 나물도 다듬고 땀도 식히고 먼저 돌아가신 아버지와 만나기도 하리라. 가끔씩 왔다가는 자식들의 자동차 꽁무니를 쫓으며 오래오래 앉아 있기도 한다.
나는 그 나무를 엄마나무라고 했다. 수령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내 나이보다는 훨씬 많으며 어쩌면 엄마보다 더 오래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짐작을 한다. 고욤나무다. 우리는 깨앙나무라고 불렀다. 괴앙이라고도 한다는데 발음이 어려워 부르다 보니 깨앙이 되었나보다.
원래 이 나무는 뒷집 연이네 장독대 옆에 있었다. 유년의 기억 시발점부터 나무는 깨앙을 달고 있었다. 여름이면 매미가 얼마나 많이 붙어 있는지 손바닥에 침을 탁탁 뱉고 나무를 기어오르는 아이들이 줄을 섰다. 가을이면 익은 깨앙을 연이 아버지가 멍석에 장대로 털어 내렸다. 작은 구슬만한 흑청색을 띤 깨앙 알맹이는 멍석위에 수북이 쌓였다. 행여 밟힐까봐 조심조심 다니며 잘 익은 놈을 주인 몰래 골라먹었다. 작은 열매 안에 씨가 얼마나 많은지 씨를 골라 뱉느라 한 움큼 먹고 나면 입술이 얼얼하다.
연이네는 오래전에 이사를 갔고 집도 헐려버려 깨앙나무는 온전히 엄마 차지가 되었다. 봄이면 감꽃보다 몇 배나 작은 꽃이 오종종 맺혀 피고 여름 내내 초록색 열매가 익어간다. 우리는 깨앙을 좋아하지 않아 가을이 되면 바닥에 즐비하게 떨어져 절로 말라가고, 이듬해는 또 꽃이 피기를 반복하며 둥치가 굵어지고 그늘이 넓어져 엄마나무가 되었다.
우리 사남매가 모두 제 갈 길로 가고 아버지마저 떠났다. 홀로 된 엄마는 나무 밑에 평상을 놓고 꽃구경을 하고 농사짓는 이웃을 참견하고 텃밭을 가꾸며 나무와 동무해 해를 보냈다. 가끔씩 엄마한테 갈 때마다 제일 먼저 나를 맞이하는 것이 엄마나무다. 왠지 든든하게 서 있으면 마음이 놓이고 평상에 놓인 엄마의 흔적이 눈에 띄면 안심이 된다. 엄마의 머릿수건이나 비닐봉지, 손잡이가 부서진 호미나 갈퀴 따위가 평상위에나 주변에 흩어져 있으면 그렇게 반갑다. 나무둥치를 한번 쓱 쓰다듬으며 ‘엄마’ 부르면 어김없이 엄마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마중을 나왔다.
며칠 전에 코로나에 갇혀 꼼짝 않다가 그 동네에 갔다. 엄마는 3년 전에 아들 곁으로 이사를 나왔고 이후로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었다. 집은 그대로 있는데 깨앙나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무 밑에 있던 평상도 사라지고 길도 없어지고, 엄마가 시래기를 걸어두던 감나무도 자취를 감추었다. 꼼짝 않고 서서 엄마나무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멍하니 서 있다 발길을 돌렸다. 슬펐다. 나이가 들면서 슬픈 감정보다는 안타깝고 두려운 생각이 많았는데 오랜만에 슬펐다. 내 속에 꼭꼭 감추어둔, 아무도 모르는 비밀스런 소중한 내 것을 쥐도 새도 모르게 강탈당한 기분이다. 이제는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이 더욱더 슬프게 한다.
나무는 어떻게 없어졌을까. 그 덩치 큰 나무를, 믿음직한 밑동이며 하늘을 덮은 넓은 가지와 잎들을 어떻게 사라지게 했을까. 저녁 내내 사라진 것들이 생각났다. 엄마의 낡은 일바지와 머릿수건과 귀퉁이가 찌그러진 광주리, 상추와 열무를 심었던 텃밭이 가물거렸다.
“엄마, 깨앙나무 없어졌는데.”
“쓸데없으니 베어버린 모양이네.”
엄마는 오히려 덤덤했다. 엄마가 슬퍼할까봐 조바심이 났는데 내 가슴이 허해졌다. 엄마한테는 그냥 쉼터였고 내게는 엄마의 분신 같았다. 엄마는 평상에 앉아서 금방이라도 달려올 것 같은 자식들을 기다리느라 나무는 안중에도 없었나보다.
“엄마, 자주 못 가서 죄송하네.”
“너희들만 편하면 되지 뭐.”
엄마는 자식만 챙기느라 늘 당신은 뒷전이었다.
나무가 어느 순간에 자취를 감추고 만 것처럼 엄마도 어느 때 쯤 너희들만 잘 살면 된다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까봐 겁이 난다.
세월은 가끔씩 엄마대신 나를 평상에 앉힌다. 그것이 또 슬퍼서 오늘 밤에는 엄마나무 대신 슬픔이 가슴에서 자라고 있다.
첫댓글 엄마나무가 생각나 가슴인지 마음인지 먹먹해져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