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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범어사 설법전에서 열린 성도재일 전야 철야정진에 앞서 수불스님이 법문하고 있다 |
“깨달음은 이해가 아니다. 이해는 공부에 방해만 될 뿐.”
‘깨달음은 이해며 현실의 문제’라는 현응스님의 주장에 대해 ‘깨달음은 사유의 영역을 초월한 마음’이라는 반론을 펼쳐 새해벽두부터 깨달음 논쟁을 촉발한 범어사 주지 수불스님이 공개석상에서 다시 한번 이와관련된 입장을 밝혔다.
16일 밤 7시 범어사 설법전에서 열린 성도재일 전야 철야정진 법회에서 수불스님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깨달음 논쟁에 관해 다시 한번 깨달음은 이해의 영역이 아니며 현응스님의 공개토론 제안에 대해서는 종단에서 마련하면 나가겠는 입장을 피력했다. 현응스님은 지난 14일 교계의 한 단체가 주관한 ‘지금 여기에서 깨달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의 성도재일 기념 세미나에서 수불스님과 공개토론회를 제안했다.
수불스님은 “불교신문 기자가 와 있길래 내 입장을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알려지겠다 싶어 이 자리에서 밝힌다”며 현응스님이 깨달음에 대해 논쟁을 펼칠 기회를 제공한데 대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토론 제안에 대해서는 종단 차원의 공식적인 논쟁이면 언제든지 환영지만 비공식적인 자리는 거부한다고 밝혔다. 깨달음에 대해서는 ‘이해’라는 용어는 설령 ‘깨달음 이후’라 해도 선종의 종지나 수행법과 맞지 않으며 이유가 무엇이든 깨달음에 방해가 될 뿐이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교진여를 비롯한 최초의 5비구도 대화와 설득을 통해 깨닫게 했다는 현응스님의 입장도 다시 반박했다. 스님은 “교진여는 부처님을 만나기 전부터 오랫동안 수행을 한 노 수행자다. 물론 이해의 과정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부처님의 설득으로 깨달음을 얻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스님은 또 이번 논쟁이 공부하는 종단의 모습을 보여줘 바람직한 현상이며 수행은 인과를 피할 수는 없다해도 완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제시하며 수행만이 불교와 종단이 가야할 길임을 강조했다. 스님은 종단에 대해서도 “모처럼 공부하는 분위기가 일어나서 기쁘다”며 “종도들이 안심하고 신도들이 열심히 부처님 믿고 살 수 있도록, 불교 믿는 신도들 자존심 살려서 신심 꺾이지 않도록 종단 기능을 바로 잡아서 올바로 보여줄 수 있어야한다”고 말했다.
법을 청하다 |
스님은 기자와 주지실로 자리를 옮긴 자리에서는 현응스님의 주장이 ‘깨달음 이후’에 대한 입장일 수 도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스님은 “현응스님은 깨달음이 무엇인가 보다는 깨달음 그 이후의 실천에 대해 말한 것 같다. 현응스님은 ‘깨달음을 이루고 난 뒤에는 이렇다, 깨달음을 이루고 난 뒤에는 이렇게 사고하고 행동해야한다 그것은 이해다. 깨달음에 눈 뜨기 전에는 이해는 안되지만 그 이후에는 상대방을 이렇게 설득시킬 수 있지 않느냐’는 뜻으로 했을 수 있고, 너무 깨달음에 매몰돼 그 이외 것들을 놓쳐서는 안되겠다는 입장에서 주장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스님은 “스님은 깨달음에 대해 정리했다고 해도 깨달음을 맛보지 못한 학자들이 이를 언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스님은 또 “내 글만 실으면 현응스님의 정확한 뜻이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어서 현응스님도 올바로 평가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책자를 만들면서 스님의 이전 글도 다 찾아서 넣었다”고 밝혔다.
이번 논쟁은 지난해 교육원장 현응스님이 수불스님에게 깨달음에 관한 논지를 펼친 ‘깨달음과 역사, 그 이후’에 대한 글을 수불스님에게 보내 답을 청하면서 벌어졌다. 2개월간 고민한 수불스님이 ‘조계종지의 현대적 구현-현응스님의 발제문을 읽고’라는 자료집을 만들어 배포하고 이를 언론에서 보도하면서 불교계를 넘어 사회로 까지 확산되고 있다. 수불스님은 이 과정과 관련, “그냥 재미가 있어서 글을 썼는데 소임자 스님들이 책자로 만들어 돌리자고 해서 일부러 <불교신문>이 발간되지 않는 날짜를 택했다”며 “언론에서 먼저 가닥을 치면 본래 뜻이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어서 불교신문이 12월28일 제작하고 며칠 쉰다고 하길래 그 후 제방에 보냈다”고 밝혔다.
이날 성도재일 법회에는 신도 1000여명이 발디딜 틈없이 들어찼다. 1시간에 걸친 법문동안 수불스님은 평소와 달리 출가부터 고달팠던 행자생활, 강원생활, 노스님과의 인연, 제방을 다니며 가행 용맹정진하던 이야기 등을 들려주어 눈길을 끌었다. 스님이 강조하는 ‘7일간의 선체험’에 대한 입장도 밝혔는데 공개 석상에서 당신 개인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처음이라고 측근들도 놀라워 했다.
1000여명이 모인 법회에서 스님은 최근의 깨달음과 관련한 논쟁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