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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9,13-35
21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은 자들은 제 종들과 집짐승들을 그대로 들에 내버려 두었다.
모세가 전하는 야훼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갈리는 것입니다.
조금 직역해 본다면,
야훼의 말씀을(את דבר יהוה 에트 다바르 야흐훼) 두려워하여(ירא 야레) 그에 종들과 가축들을 집들로 피하게 한다.( נוס 누스)라는 것과
두번 째는,
그 심장이 (לבו 리보) 야훼의 말씀에 자리 잡지않은 이들은 그에 종들과 가축들을 들판에 남겨 두었다.(עזב 아잡)
여기서 남겨 두었다는 것은, 조금 강한 의미로 버려 두었다.라는 영어로 표현하면 abandon, 내깔려 두었다.는 죽든지 말든지 그냥 내버려 두었다. 라는 말을 의미하는 동사가 쓰였습니다.
22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을 하늘로 뻗어라. 그리하여 우박이 이집트 온 땅에, 이집트 땅에 있는 사람과 짐승과 모든 풀 위에 내리게 하여라."
야훼는 이제 다시 모세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재앙인 탈출기 7장, 8장에서는 아론으로 하여금 지팡이를 잡고 손을 뻗게 하지만,
여기서는 모세에게
그에 손을(את ידך 애트 야덱하)하늘 위로, 또는 하늘을 향해 (על השמים 알 하샤마임)
손을 뻗으라 합니다.
아론은 정체가 나타나지 않고 어디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또 우박(ברד 바라다)이 내리게 되는데, 우박이 향하는 방향, 손은 하늘을 향해서 뻗고, 우박은 사람 위로, 짐승들 위로, 들판에 모든 풀위로 내리 떨어집니다.
23 모세가 지팡이를 하늘로 뻗자, 주님께서 우레와 함께 우박을 내리셨다.번갯불이 땅으로 떨어졌다.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 우박을 쏟으셨다.
이 부분을 자세히 뜯어서 읽어보면 왜 이렇게 썻지? 라고 생각해 볼만한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론의 경우와 유사하게 손과 지팡이가 일단 문학적으로 동일하게 생각됩니다. 야훼의 명령은 그에 손을 뻗으라는 것이지만,
모세는 “그의 지팡이를”( את מטהו 에트 마테우)
하늘 위로 뻗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야훼가 자신이 직접 주체가 되어 등장합니다.
모세가 손을 뻗자, 주님께서 우뢰와 함께 우박을 내리셨다. 따라서 이게 주객이 전도된 경우입니다.
모세가 손을 뻗으니까 하느님이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나중에도 갈대 바다에서도 모세가 손을 뻗자, 하느님이 바람을 불어 넣는데 밤새 바람을 불어 넣어서 바다가 갈라지게 합니다.
따라서 이 부분을 일반적으로 정한다면 하느님하겠습니까? 모세하겠습니까? 모세가 더 편합니다. 손만 뻗으면 되니까
나중에 아말렉과 싸움에서도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있으면 이기고 아니면 지는, 야훼가 이스라엘과 함께 아말렉족을 거슬러 싸우게되는,
그리고 편하긴 하지만, 모세가 하루 종일 드는 것도 어려우니까 아론이 양쪽에서 와서 받치는 그런 상황, 그런데 야훼는 우박 뿐만 아니라 우레라고 번역이 되어있는데요.
하지만 본래 쓰여진 단어는 우레가 아닌,
소리들(קלת 칼랕)입니다.
복수가 쓰여졌습니다. 소리가 아니라 소리들.. 그냥 큰소리라는 것도 아닌 소리들, 따라서 우뢰가 한번 친게 아니라 우르르 쾅쾅! 우르르 쾅쾅!!하고 여러번 연속해서 쳤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소리들만 있는게 아니라 ,
번갯불이라고 했는데 그냥 불입니다.
불( אש 에쉬)이 땅으로 왔습니다.
소리와 불, 불과 소리...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이 사도들한테 내릴 때, 어떤 모양으로 성령이 내리죠?
엄격히 얘기하면 혀 모양의 불입니다.
따라서 '혀'라는 것은 소리를 얘기하고 '혀와 불' 그리고 여기서도 '소리와 불' 서로 공통점을 생각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자연적으로 얘기한다면 벼락일 것입니다.
그리고 뒤이은 텍스트에서, 야훼가 우박을 땅으로 내리게 하였다.
23절 보면, 모세가 지팡이를 하늘로 뻗자, 주님께서 우레와 함께 우박을 내리셨다.로 한번 얘기해 놓고 ,
번갯불이 땅으로 떨어졌다.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 우박을 쏟으셨다.
라는 표현으로 같은 얘기를 경제적이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무언가 다른 이야기들을 섞여 있어서 반복된 것이 아닌가? 라고 주석가들이 추측합니다.
24 번갯불이 잇달아 번쩍이면서 우박이 내렸다. 이처럼 엄청난 우박은, 이집트에 나라가 선 뒤로 이집트 온 땅에 한번도 내린 적이 없었다.
다시 한번 우박과 불이 언급됩니다. 직역한다면,
그리고 우박이 있었다. 그리고 불이 우박사이에서 반짝였다.
따라서 우박이 있고, 불이 있고, 불이 있고, 다시 우박이 있고, 그 다음에 우박 사이에서 불이 번쩍이는, 번개와 벼락이 모두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앞의 18절에서 언급한 유래가 없는 재앙의 규모가 다시 확인됩니다.
18절에서는 이집트의 수립의 날부터 지금까지라고 표현했지만, 여기 24절에서는 이집트가 나라가 된 때부터, 라는 같은 의미에 조금은 다른 표현이 등장합니다.
25 이렇게 우박이 이집트 온 땅에서,
사람을 비롯하여 짐승에 이르기까지 들에 있는 모든 것을 쳤다.
들에 있는 모든 것, 사람부터 짐승까지 따라서 그 우박은 풀을 치고 그리고 모든 나무를 부러뜨립니다. 그 우박에 대한 언급이 이사야서 또는 시편같은 데서도 역시 등장합니다.
우박(현현과 심판)
º 이사 28,2: 보라, 주님께서 보내신 힘세고 굳센 이를. 그는 우박 섞인 폭우처럼, 들부수는 폭풍처럼 엄청나게 밀려와 물을 쏟아 붓는 폭우처럼 그것을 집어 땅으로 내동댕이치리라.
º 이사 28,17 : 그리고 나는 공정을 줄자로, 정의를 저울로 삼으리라. 우박이 거짓의 피신처를 쓸어가고 물이 은신처를 씻어 가리라.
우박
º 이사 30,30 : 또 주님께서는 격분과 집어 삼키는 불길과 호우와 폭우와 우박덩이를 퍼부으시며 당신의 우렁찬 소리를 듣게 하시고 내리치시는 당신의 팔을 보게 하시리라.
º 시편 18,13 : 그분 앞의 빛에서 뿜어 나오는 것, 우박과 불타는 숯덩이들이었네.
여기서 우박은 꼭 하느님의 무기처럼, 어떤 심판에서 도구처럼 그렇게 사용됩니다. 따라서 우박은 하느님 현현에 표지이고 동시에 신적 심판에 표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26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사는 고센 땅에만은 우박이 내리지 않았다.
앞선 8장에서도 이스라엘 자손들이 살고 있는 고센 지역은 재앙의 예외 지역으로 분리됩니다. 여섯 째 재앙의 예고에서는 고센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지만, 넷째와 다섯째 재앙에 흐름을 이어받아, 저자는 일곱 째 재앙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야훼의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표의 맨 마직막 줄에서
이스라엘 x는 그때에는 재앙이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등에 떼, 가축병, 우박, 어둠의 재앙일 때 이스라엘은 제외 됩니다.
그런데 이미 일어난 종기와 메뚜기 떼 재앙에서는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닙니다.
왜 그럴까? 이때에도 이스라엘을 좀 봐주었으면 좋았을 텐데...신부님도 오랫동안 생각을 해보셨는데 아직까지 특별한 설명으로 말씀해 주시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전반부에 재앙에서는 이스라엘이 예외가 아니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이스라엘이 예외가 됩니다.
그 다음, 마지막 이스라엘이 예외가 되는 절정의 사건이 바로 '파스카 사건'에서 이스라엘이 양을 잡아서 피를 문설주에 바르니 이스라엘은 예외가 되었다. 라는 그와 같은 대목을 우리가 미리 알고 있습니다.
27 파라오은 사람을 보내어, 모세와 아론을 불러다 말하였다. "이번에는 내가 죄를 지었다. 주님께서는 옳으시고 나와 내 백성은 그르다.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을 부르는데, 이미 앞선 대목에서도 파라오가 모세와 아론을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탈출 8,4;8,21) 그런데 그 부분에서는 단순히 파라오가 모세와 아론을 불렀다고 진술되는 반면,
여기 27절에서 만큼은 파라오가 누군가를 보내서 모세와 아론을 불러오게 했다. 라는 표현이 훨씬 더 세밀하고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색다르게 시작된 장면은 놀라웁게도 파라오의 뉘우침으로 연결이 됩니다.
9,27 직역한다면,
이번에는 내가 잘못했다(= 죄졌다)
야훼가 옳은 이이다
그리고 나와 내 백성은 그른 이들이다
이렇게 자기 잘못을 시인하는 파라오의 언사는 법정에서 죄인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듯한 어감을 지니고 있습니다.(예: 내가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문장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번에는" 내가 잘못했다..따라서 지난번에는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 수사를 보면은 묘한 그러한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들어 서로 아웅다웅 하는 상황에 "그건 내가 잘못했어." 그렇다면 이 말을 한 이가 전하는 또 다른 의미는 "다른 것은 네가 잘못한 거야." 입니다.
파라오도 자신의 잘못을 조금은 제한합니다. 탈출 9,14에서도 '이번에는' 라는 이야기가 사용이 됩니다.
9,14 이번에는 내가 온갖 재앙을 너 자신과 너의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내려, 온 세상에 나와 같은 신이 없음을 네가 알게 하겠다.
이 문장 표현에서 파라오는 야훼를 흉내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내가(야훼가) 이렇게 하겠다~~, 이번에는 내가(파라오가) 잘못했다. 라는 표현으로 파라오가 야훼와 대결 구도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여기서 파라오가 자신과 자기 백성의 죄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추측해 보면,
º 좁게 해석할 때 - 야훼의 말씀을 듣지 않고 들판에 종들과 집짐승들을 피신시키지 않고 내버려 둔것입니다.
º 넓게 해석할 때 - 야훼의 요청을 거슬러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를 떠나게 하지 않는 부분.
28 주님께 기도해 다오. 우레와 우박이 너무 심하구나. 내가 너희를 내보내겠다. 더 이상 여기에 머무르지 않아도 된다."
파라오는 야훼께 빌어 줄것(עתר 아탈)명령합니다. 아주 일관성 있게, 파라오 본인이 하지 않고 모세를 시킵니다. 스스로 야훼께 빌면 되잖아요??
하지만 자신은 야훼에게 빌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담긴 두 가지 의미로, 파라오가 스스로를 신으로 생각하는 것(신이 신에게 빌수없다.) 또는 파라오가 이집트 왕으로서, 이집트가 섬기는 신이 아닌 야훼에게 빌수 없다.는 것입니다.
직역하면
엘로힘의 소리들(קלת אלהים)과
우박이 너무 많구나.( 많이, רב 랍)
그 문맥에서 이해한다면, 이제 우레와 우박을 멈추어 달라고 비는 것입니다. 재앙을 그치게 하기 위해서 파라오는 약속을 합니다. 이 약속에는 하나의 긍정문과 하나의 부정문으로 그 긍정문은 "내가 너희를 내보내겠다."
부정문은 "너희는 여기에 더이상 머무르지 않아도 좋다." 따라서 한번은 긍정, 한번은 부정을 얘기했으니 이 약속은 굉장히 믿을만한 그와 같은 약속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29 그러자 모세가 그에게 말하였다. "제가 성읍을 나서는 대로 주님께 제 손을 펼치겠습니다. 그러면 우레가 멎고 우박이 더 이상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세상이 주님께 속한다는 것을 임금님께서 아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야훼를 향해서 양손을 펼치다.(פרש)라는 그와 같은 표현입니다.
양 손을 펼치다
º 1열왕 8,22 :솔로몬은 이스라엘 온 회중이 보는 가운데 주님의 제단 앞에 서서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펼치고...
º 에즈 9,5 : 저녁 제사 때에 나는 단식을 그치고 일어나서, 의복과 겉옷은 찢어진 채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펼치고...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조금은 특이 합니다. 우리는 손을 모으고 기도합니다.
여기서는 손을 펼치고 기도합니다. 요즈음 미사때 신부님들은 손을 펼치면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손을 모으면서 기도하는지에 대해서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손을 모으면서 기도하는 정확한 자세는 합장한 다음에, 합장한 손이 정 가운데에 오는 것이 아니라 약간 심장쪽으로 갑니다.
따라서 마음을 모은다는 첫번째 의미가 있고,
손을 모은다는 것은 내 손에 무기가 없다는것으로, 나는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는 약한자로 있습니다.는 두번째 의미.
제일 중요한 세번째는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었을 때, 우리들의 몸이 가장 작아지는 모습입니다. 따라서 가장 작은 사람으로, 당신은 크고 나는 작습니다. 라는 뜻입닌다.
반면에 신부님들이 손을 펼치면서 미사를 할 때 신자분들이 보시기에는 똑같아 보이는데 그 사이에 서로 다른 두 동작이 있다고 하십니다.
첫째는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고 손을 펼칠 때는 넓게 펼쳐도 됩니다. 그때는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성찬 기도에 들어가서 우리가 감사 기도할때
우리가 손을 펼칠 때는 옛날 전례 규정은 어깨 넓이 이상 손을 펼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어깨 넓이까지만 펼쳐라. 왜냐하면 여기서 손을 펼치는 것은 일종의 깔대기 모양을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은총을 받아와서 그곳의 성체와 성혈 그곳에 축복에 모으고, 그리고 그것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라는 사제가 은총을 받아 들이는 하는님의 은총을 받는 일종에 그릇의 역할을 하는 )
따라서 예전에는 넓게 벌리지 못하게 하였다.
신학교에서 미사 시험을 보시는데 너무 넓게 벌리면 떨어진다고 합니다. 요즘은 규정이 넓어지고.....특히 원로 신부님들의 경우에는 정확기 어깨 넓이 만큼 벌리신다고 합니다.
양손을 벌리고, 라는 이 부분을 보게되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제가 제사를 드릴 때에 하늘을 우러러 손을 펼치고 기도하는 듯한 그와 같은 대목을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에즈라의 경우 너무나 간절하니까 무릎을 꿇고 양손을 벌리는 모습입니다.
그 기도는 모세가 성읍을 나가는 대로 이루어 질 것이다.
'성읍을 나가는 대로' 라는 표현은 시간적인 정보와 공간적인 정보가 함께 있습니다. 먼저 시간적으로 이해한다면은 앞선 경우와 조금 다릅니다.
앞선 경우에는 재앙을 거두어 달라고 하면 모세가 항상 언제 해드릴까요? 라고 물으면 파라오는 항상 '내일' 해달라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한데 여기 부분에서는 다소 급박해진 상황입니다. 파라오가 급한 상황에서 모세와 아론을 불러 얘기하자, 모세도 역시 자신이 '성읍을 나가는 대로' 라고 말하며 시간적인 표현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성읍을 나간다는 의미에서 모세는 우박이 떨어지는 들판에 나서게 된다는 말로 공간적인 장소도 알려 줍니다.
29 이는 세상이 주님께 속한다는 것을, 임금님께서 아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할 수 도 있고, '이는' 이라는 장소가 가리키는 곳이 '이집트 땅' 일수도 있겠습니다.
이 이집트이 땅이(땅도) 이집트 신들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야훼에게 속한다는 것을 임금님께서 아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라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겠다.라고 설명하셨습니다.
30 그래도 임금님과 임금님의 신하들이 아직 주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으실 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무서운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모세가 파라오의 마음을 훤히 드러다 보고 있는 듯한,
일반적으로 사람만 보면 심리분석하려는 분들이 계시는데, 신부님은 그러한 모습은 상대방에 대한 결례일 것 같다고 하시면서 특히나 과학적이지도 않은 혈액형을 가지고 "너는 **형이지?" 라고 묻는 또는 대화 중에 "너 어릴 때에 상처 받은 기억이 있었어?" 라는 모습은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조금은 피해야 할 태도일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애니어 그램, mbti 와 같은 것을 하는 의도도 또한 자신을 알고, 나의 부족한 면을 깨닫고 다른이들을 조금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서 일 것인데, 그것을 알고 나서 마치 상대방에 대해 도사처럼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은 우리들이 피해야 할 모습같다고 하셨습니다.
덧붙여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가장 좋은 자세는 우리들이 하느님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고, 인간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신비로움을 갖고 상대방을 대하는 것이, 심지어 한 가족으로 살아가는 부모와 자식, 배우자 사이에서도 상대방에 관한 신비로움을 갖고 같이 살아가지만 알면 알 수록 더 신비롭고 더 새롭다. 라는 자세가 제일 좋은 모습일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그애랑 십년을 알고 지냈는데, 그 애는 그런얘야." 라는 표현보다는 " 내가 그애을 안지 십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걔를 만나면 무언가 새롭고 기뻐. "라는 말들이 사람과 사람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 일 것 같다는 ......
그리고 이 문장이 조금 재밌다는 말과 함께
30 그래도 임금님과 임금님의 신하들이 아직 주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으실 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을 직역한다면,
그래도 당신과 당신 신하들에 대해서 나는 알고 있다. 당신들은 아직 야훼 엘로힘 앞에서 두려워 하지 않는다. 여기서 특징 적인 것은,
야훼 엘로힘 이라는 표현이 이 부분과 탈출기 2장과 3장을 제외 하고는 모세오경에서 등장하지 않다고 설명하셨습니다.(야훼엘로힘, יהוה אלהים이라고 붙어서 말하는 것은)
보통 야훼 우리들의 엘로힘, 야훼 너희들의 엘로힘, 야훼 이스라엘의 엘로힘, 야훼 히브리인들의 엘로힘이라는 표현은 많이 ㅡ 등장합니다.
우리말로 번역한다면,야훼엘로힘은 야훼라는 신 정도의 의미라고 하셨고 이런 표현은 굉장히 드물게 등장합니다.
그리고 재밌는 것은,
그래도 당신과 당신의 신하들, 라는 말이 주어로 쓰여졌습니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당신들은 야훼엘로힘 앞에서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기서 문장의 주어가 문법적으로 본다면 2개 입니다.
이 부분을 가지고 주석학자들이 매우 복잡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해결 해야 될지...그리고 대부분 결론을 못내립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왜냐하면 우리 말에는 이미 이런 현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 사람은 마음이 아름다워! 라는 문장에서 주어는 '마음이' 이고 '그 사람은' 우리말 현상에서 '주제화' 현상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따라서 그 문장을 풀어서 얘기하면, '그 사람에 대해서 말하자면, 마음이 아름다워.' 라는 표현을 우리말에서 건너 뛰어 주어처럼 애기한 것입니다. '그 사람은 마음이 아름다워.' 또는 '나는 신앙심이 깊어.' 여기서 깊은 것은 '신앙심' 으로 주어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 문장도 풀어쓰면,
'나에 관해서 얘기 한다면, 신앙심이 깊어.'
전세계 언어 중에서 이런 주제화 현상을 갖고 있는 언어가 몇가지가 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히브리 말에서도 그런 현상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말에서도 나타나는데, 인도 게르마니어 에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이 학생 신부로 공부하실 때 교수님들과 세미나 하면서 '주제화 현상'에 관해 얘기했더니 굉장히 신기해 하셨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우리와 이스라엘 민족과 뭔가 적어도 언어적으로 비슷한 뿌리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자랑스러운 우리말로 여겨졌다고 하셨습니다.
31 마침 보리는 이삭이 패고, 아마는 꽃이 피었으므로, 아마와 보리는 못 쓰게 되고 말았다.
32 그러나 밀과 귀리는 늦게 나오는 것들이 있었으므로, 못 쓰게 되지는 않았다.
아직 이삭이 나오지 않았으니까...
따라서 보리와 아마는 농사를 실패했고, 보리와 아마가 추수하는 것은 언제일까요? 이집트 기후에서 늦겨울, 초봄이라고 합니다. 3-4월 정도의 겨울이 끝나가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보리에 이삭이 패다'(השערה אביב)라는 말, '패다' 라는 말을 히브리 말로 '아빕(אבי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달의 이름이 됩니다. 구약 성경을 읽다가 아빕달이 뜻하는 아빕이 이삭을 패는 달이다. 라는 의미로...
신부님은 이삭이 패다. 라는 의미를 모르시겠다고.....저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아빕달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 '니산달' 입니다. 나중에 다시 한번 장황하게 설명해 주시겠지만 히브리어에서 달을 명칭하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숫자로 명칭하여 첫째 달, 둘째 달, 셋째 달... 열두번 째 달, 그리고 윤달이 끼면 열세번 째 달까지 얘기하는
두번째 유배 전에는 가나안 식 명칭을 사용하였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열두개의 달의 이름이 다 확인되지는 않습니다.( 아빕달을 포함한 4개의 달이 확인되는데, 아빕달은 가나안식 전통에 달력에서 따온 말입니다.)
유배 후에는 바빌론식 달에 이름을 배워 옵니다.( 열두개 달의 이름이 거의 있고, 그 중에 첫번째 달의 이름이 니산달이고, 3월 중순부터 부활 시기에 맞는 춘분 즈음해서 한해가 시작하는 달력에 개념입니다)
반대로 이제 부터 복잡해 지는데요, 구약 성경을 쭈욱 읽다보면 한 해의 시작을 춘분으로 보는 경우도 있고, 추분으로 보는 경우도 나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역사를 지나오면서 하나의 달력뿐만 아니라, 주변 세계의 여러 달력들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하루에 시작도 구약 성경을 읽다 보면, 우리의 경우에는 자정, 정오로 보는데요, 옛날에 시계가 없을 땐 자정이 언제인지 정확히 알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고대 세계에서는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그 두가지 다 구약성경에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시작을 일몰부터 보는 경우도 있고, 또는 일출부터 하루에 시작을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그때 그때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33 모세는 파라오에게서 물러나 성읍을 나와서, 주님께 손을 펼쳤다.
그러자 우레와 우박이 멎고, 땅에는 비가 더 이상 쏟아지지 않았다.
직역한다면,
그리고 비가 땅으로 퍼붓지 않았다. 앞선 이야기에서는 '비' 라는 얘기가 없었습니다. 비까지 언급이 됩니다.
여기서 비가 '퍼붓다' 또는 '쏟아지다' 라는 표현인,
히브리어(מטר 마타르)는 세상을 향한 하느님에 분노와도 연결이 된다고 하셨습니다.(하느님의 진노, 분노가 세상을 향해서 쏟아졌다) 이는 예언서 예레미야서나 나훔서에서 등장하는 표현들입니다.
34 파라오는 비와 우박과 우레가 멎는 것을 보고 다시 죄를 지었다. 그와 그의 신하들의 마음이 또 완강해진 것이다.
또는 계속해서 죄(חטא 하타아)를 지었다. 라고 이해할 수 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완강해졌다. 라는 말은 무거워 졌다는 말이고 여기서는 파라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그의 신하들까지도, 라는 표현은 다음 번 재앙을 준비하기 위해 쓰인 내용이고,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이 공범인 모습입니다.
이미 둘째 재앙에서 부터 파라오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약속을 파기하였습니다. 재앙에 진행에 따라 그 정도는 점점 악화되고 있습니다.
일곱째 재앙에서는 결국 잘못, 죄에 차원까지도 언급되는 지경에 이릅니다.( 힘싸움에 진것이 아니라 죄를 지었다...라는 표현으로 전체적인 균형이 파라오쪽으로, 파라오가 무너지고 있는 모습)
35 파라오는 마음이 완고해져(חזק 하자끄)이스라엘 자손들을 내보내지 않았다. 주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였다.
여기서도 재미있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우리말 번역에서는 '주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였다.' 라고 하는데 원문을 보면 본문에는,
야훼가 모세의 손을 통해 말한 것처럼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모세에 손을 통해, 이와 같은 표현이 여러 곳에서 등장합니다.
탈출 35,29
º 남녀 할 것 없이 모두가 마음에서 우러나와, 주님께서 모세를 통하여,(모세의 손, ביד משה바야드 모세) 만들라고 명령하신 온갖 직업에 필요한 것을 가져왔다.
레위 (모세를 통하여 = 모세의 손으로)
º 8,36 : 그래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주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시는 것을 모두 실행하였다.
º 10,11 : 이는 주님이 모세를 통하여 말한 모든 규정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치게 하려는 것이다.
º 26,46 : 이것이 주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당신과 이스라엘 자손들 사이에 세우신 규정과 법규와 법이다.
민수 ( 모세를 통하여 = 모세의 손으로)
º 4,37 : 모세와 아론은 주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내리신 분부에 따라 그들을 사열하였다.
º 9,23 : 그들은 주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내리신 분부에 따라 주님의 명령을 지켰다.
º 10,13 : 그들이 주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내리신 분부에 따라 길을 떠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독 신명기에서는 모세의 손이라는 표현이 전혀 등장하지 않지만 그 외에 여호수아기, 판관기, 열왕기, 역대기, 느헤미야, 시편 등에서 모세의 손이라는 그와 같은 표현이 등장합니다.
여기서는 단지 손이라는 문학적 표상이 지니는 힘, 능력의 의미와 함께 모세의 어떤 중재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볼수 있을 것같다고 하셨습니다.
9절과 정확히 연결된 것은 아니지만 신부님께서 많이 공감하셨다는 정호승 시인의 '손에 관한 예의' 를 읽어 주면서 오늘 시간을 마무리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히브리어를 최승정신부님 탈출기l 늘 참조합니다. 참조하면서 특히 350-351쪽을 함께 보시면 더 좋더라구요 ^^
손에 대한 예의
정호승
가장 먼저 어머니의 손등에 입을 맞출 것
하늘 나는 새를 향해 손을 흔들 것
일 년에 한번쯤은 흰 눈송이를
두 손에 고이 받을 것
들녘에 어리는 봄의 햇살은
손안에 살며시 쥐어볼 것
손바닥으로 풀잎의 뺨은 절대 때리지 말 것
장미의 목을 꺾지 말고 때로는 장미 가시에
손가락을 찔릴 것
남을 향하거나 나을 향해서도
더 이상 손바닥을 비비지 말 것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지폐를 헤아리지 말고
눈물은 손등으로 훔치지 말 것
손이 멀리 여행가방을 끌고 갈때는 깊이 감사할 것
더이상 손바닥에 못 박히지 말고
손에 피묻히지 말고
손에 쥔 칼은 항상 바다에 버릴 것
손에 많은 것을 쥐고 있어도
한 손은 늘 비워둘 것
내 손이 먼저 빈 손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손을 자주 잡을 것
하루에 한번씩은 꼭 책을 쓰다듬고
어둠속에서도
노동의 굳은 살이 박힌 두 손을 모아
홀로 기도할 것
첫댓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신부님 성서백주간 2 강의가 앞으로 대략 몇편정도 남아있을까요?^^
수고에 늘 감사드리며..
성서 백주간 2 는 대략 24편 정도 남아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성서 백주간 3도 있구요.
본 카페에도 올려져 있습니다^^
가톨릭 평화방송에서도 가능합니다.
@빗방울 아 네 그렇군요 ^^
그럼 백주간2가 24개 정도 있으니까 앞으로 6개월정도 걸리겠군요.. 백주간3도 있구요 분량이 엄청 방대하네요 😄
그쵸? 카페에 올려있는것과 Cpbc에 있는것이
요즘 유튜브에 나오는것과
같은 건데 제목이 좀바뀌어 나오나봐요..^^
네.
한번만으로 끝내기에도 너무 아쉬울 정도로
신부님 강의는 그 깊이도 또한 방대한 것 같습니다.
들을 때 마다 새롭게 다가옵니다… 말씀들 안에 숨겨있는 또 다른 의미를 찾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