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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인에서 내려와 낚시로 시름을 덜다] “우리 일이 눈이 빨리 상해요. 특히 하바나 갠트리 운행하면 더 그래요. 높은 곳에서 아래 유리를 통해 컨테이너를 응시하는 작업을 집중적으로 하다 보니 눈이 과로에 시달리나 봐요. 특히 야간작업에는 더더욱 집중하게 되니까. 젊었을 때는 시력 좋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는데, 지금은 너무 나빠졌어요. 최근에는 눈이 더 나빠져서 어림짐작으로 작업을 하기도 해서 그만둬야 하나 고민스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워낙 오랜 기간 숙련을 해서 큰 어려움은 없지만 혹시나 사고로 이어질까 걱정이 됩니다. 크레인 타는 사람 중에 고혈압도 많아요. 모르죠, 젊었을 때 술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도. 우리 일이 혈압을 곧잘 상승시키거든요. 계속 아래쪽을 응시하면서 작업을 하니 어깨 통증도 장난 아닙니다. 사실 내가 레바 작동 때문에 어깨가 굳어서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나이가 먹으면서 그 부위가 더 아프기도 하고. 뭐 이제는 만성이라 다양한 질병과 같이 가는 수밖에요. 야간작업으로 수면 시간이 불규칙해서 잠을 잘 못자요. 그것도 좀 고통스럽고, 모르죠, 그것도 술 때문인지.” 전 기사는 국제통운 다닐 때 하숙집 아주머니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였다. 신혼집은 당시 회사에서 가까운 남구 감만동에서 전세로 시작하였다. 슬하에 자녀는 딸 셋을 두었다. 삼덕사 다닐 때 내 집 마련을 했는데 지금 우암동에 있는 집은 20년이 조금 넘었다. 우암동 집은 땅을 사서 기존 집을 헐고 새로 지었다. 그래도 하바 크레인 운전하던 한진해운에서 학자금이 나와서 자녀들 공부를 다 시킬 수 있었다. 물론 전 기사처럼 무난한 가정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크레인 기사들의 대부분이 야간 근무를 하면 집으로 곧장 들어가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감만동 회사 다닐 때 부두 근처에는 술집이 많았고, 식당도 많았다. 가정집을 개조해서 술집이나 식당을 차리는 사람들도 있어 간판도 없이 영업을 하였다. 그때 동료들 중에는 화투나 마작에 손을 대어 가진 돈을 잃고 빚을 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 일이 회사나 집에 알려져 퇴직을 강요당하거나 파혼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기사 친구는 다단계 판매에 손을 대 패가망신하고 급료를 모두 압류당하기도 하고, 지금은 신용 불량자가 된 친구들도 있다. 급료가 압류당해 회사 취직도 못하거나 이혼을 한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전 기사 자신도 다단계 판매를 할 뻔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우리 기사들이 순진하면서 단순한 사람들이에요. 밤새 일하고 술이나 먹고 집에서 잠이나 자고 그러니 세상 물정에 어둡고요. 신문이나 뉴스도 잘 안보죠. 그런 거는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러다 보니 누가 솔깃한 건수 있다고 하면 쉽게 빠져드는 거 같아요. 나도 한두 번 그런 유혹에 시달리다가 낚시를 우연히 안 뒤부터는 다른 생각을 안 하게 된 거 같아요. 고향 진해에 가서 배타고 봄에는 도다리, 가을에는 아나고[붕장어]나 게르치를 낚으러 가요. 몇 시간 찌 담그고 크레인 타느라 피곤해진 눈도 바다 속을 응시하고 있으면 그 속에 나만의 딴 세상이 있더라고요. 근데 아, 이놈도 중독성이 있어서 우리 마누라가 낚싯대 몇 개를 감추기도 했어요.” 남해 연안과 동해 연안에서 실행되고 있는 고기잡이 방법 중에 문어 단지가 있다. 150~300m의 줄에 30~100개 정도의 단지를 달아서 수심 20~50m 되는 곳에 주낙을 놓듯이 놓았다가 1~2일 경과한 후에 소형 어선을 사용하여 끌어올려 단지 안에 들어 있는 문어, 낙지 등을 잡는 방법이다. 이 원리는 숨어 있기 좋아하는 문어의 속성을 이용한 것이다. 문어는 이 단지 안에서 안락함을 느낀다. 최소한 끌어올려지기 전까지는 그렇다. 전씨에게 낚시는 이런 문어 단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음날 힘든 노역(勞役)이 기다리고 있지만 낚시가 안락한 소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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