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코스(구룡포항~호미곶광장)15.3km
구룡포항~구룡포해변~호미곶광장을 따르는 해파랑길 14코스는 과메기의 고장 구룡포에서 시작하여 구룡포해안과 차도를 걷다가 동쪽 땅끝마을 석병리를 지나서 해안을 따라 북진하면 한반도의 꼬리에 해당하는 호미곶에 당도하여 호미곶의 명물 상상의 손과 악수하는 15.3km의 길이다.
2020년 12월13일 새벽에 일어나기가 심히 고달프다, 코로나로 인하여 테마여행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마지막 달력이 나올 때까지 무위도식 하면서 간혹 들어오는 일정에 겨우 사무실 운영비 일부를 충당하다 보니 집사람 눈치가 보이는 찰나, 평소 가깝게 지내는 선배님이 제안해 온 방역업체에 나가서 평소 해 보지 않은 알바를 며칠 하였더니 몸이 상당히 무겁게 느껴진다,
13코스의 마지막 종점에서의 방어회 추억을 더듬으며 최악의 인원으로 구룡포에 도착한다, 적자가 예상되지만 방어회 덕분에 기분좋아진 회원들께서 조금식 모아주신 귀중한 협찬금으로 부족금을 메우기로 하고 오늘의 출발점 구룡포 아라광장을 출발한다,
포항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구룡포’, ‘호미곶’, ‘포스코’이고 그 첫째는 구룡포로 1923년 일제가 구룡포항을 축항하고 동해의 어업을 점령한 침탈의 현장이다, 조선시대까지도 조용한 어촌마을 이었으나 일제강점기가 되자 최적의 어업기지로 떠오르고 ‘도가와 야시부로’라는 일본의 수산업자가 조선총독부를 설득하여 축항을 제안하여 큰 배가 접안할 곳이 생기자 일본의 수산업자가 대거 몰려오고 방파제를 쌓아 새로 생긴 땅에 일본가옥이 들어섰다, 현재의 일본인 가옥거리가 그것이다,
10여년전만해도 100여 채가 남았으나 지금은 몇십 채 되지 않는다, ‘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라는 일본가옥들이 줄지어 서있는 거리, ‘구룡포근대역사관’ ‘구룡포 100년을 걷다’라는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 관광지에 가면 으레 찾아보는 관광1번지가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주택지나 은행, 관공서 등의 일본식 건물들로 ‘00근대역사문화거리’라는 말만 들려도 일본식 건물이 있는 곳이다, 하고 알 것만 같은 영광의 상처들이 즐비하다,
낡은 지붕과 붉은 벽돌, 뻥 뚤린 나무창살 등 빛바랜 풍경사진 같은 구룡포 100년이 펼쳐진다, 1900년대 초 일본인들이 살았던 가옥들이 시간을 되돌려 놓고, 침략자들의 행복한 일상이 보인다,
구룡포 공원에 올라 구룡포 앞바다와 항구를 바라본다, 공원 한쪽에는 구룡포항을 축항한 도가와 야사부로의 공덕비가 있다, 일본인이 세운 공덕비와 신사가 있었지만 해방 후 구룡포 청년들로 구성된 대한청년단 30여명이 산사를 부수고 공덕비는 시멘트로 덧칠을 해 버렸다고 한다,
잔인한 이웃 일본인거리에서 나와 ‘다시보고 싶은 드라마 1위 촬영지’ 거리를 돌아 ‘과메기 문화거리’를 걸어간다, 아라광장 표지석에 적혀있는 과메기 이야기를 만난다. 과메기는 나무에 물고기 눈을 꿰어 말려 먹었다는 뜻에서 ‘관목’이 ‘관맥이’로 다시 ‘과메기’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영일만 토속식품 중 진상품으로 선정된 것은 영일과 장기 두곳에서 생산된 관목청어 뿐이었다고 한다,
구룡포 해안을 지나면서 주상절리를 감상하며 쾌적한 모래사장이 이어지는 삼정해변으로 간다, 잠시 해안가를 벗어나 925번 도로를 따라 걷다가 ‘마을 앞에 병풍처럼 생긴 바위가 있었다’ 하여 ‘석병리’라 불리는 마을을 지나간다, 오른쪽에 ‘한반도의 동쪽 땅끝마을’이라고 적힌 이정표가 눈길을 끈다,
경북 포항시 구룡포읍 석병리 산135번지, 경도 129도 35분, 위도 36도 02분 한반도의 최동단이다, 해남이 남쪽 끝 땅끝마을이면, 태안반도 서쪽 끝의 만대항이 땅끝마을이 있고, 이곳은 동쪽 땅끝마을이다, 동쪽 땅끝마을 표지석에서 끝없이 펼쳐진 동해의 푸른바다를 바라본다,
어디서 왔는지를 알기위한 자기 성찰의 여행이 아닌 여러 사람을 인솔하는 해파랑길에서 무념의 마음을 깨우면서 내 마음의 길을 따라간다, 어느덧 길은 빨간 포장길로 바뀌고 호미곶 동쪽 광장에 도착한다, 상사의 손이 보이고 갈매기가 날아가듯 여러번 다니던 길을 찾아 마지막 회포를 풀며 차에 오른다, 호미곶의 풍경은 담을 기약하면서.....
첫댓글 구룡포, 호미곳의 지나온 길이 새록 새록 다시 떠오릅니다. 함께해서 즐겁고 행복한 트레킹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