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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가장 힘든 경사로 감안거리 36키로.
하지만 도착하면 성체기적이 일어난 성당이 있는 오세브레이로.
밖이 시끄러워 나와보니 15명이 배낭을 모두 싸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 게 아닌가?
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들, 그리고 인솔자가 뭐라 훈시.
이게 웬 떡
이들 쫓아가면 4시 반 출발할 수 있어 얼른 배낭 꾸리고, 오세브레이로 가냐 물으니 자기들 순례길 안 간다고...
할 수없이 쌀쌀한 야외 식탁에 앉아 카톡.
이 시간 와이파이 엄청 빠르네.
이것도 은총으로 생각
오늘도 출발하고 15분 후,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두갈래의 길이 나타났다.
오른쪽 길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는 말이 생각나서 오른쪽 길을 선택했다(지도에서 노란선).
알고보니 왼쪽길은 평평한 아스팔트 도로길이었고 오른쪽은 가파른 오르막길이었다.
주변에 보이는건 온통 나무뿐이었고 저 아래 도로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로길을 택한 것 같았다.
왜냐하면 산길은 사람들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것에 왠지 모를 자부심을 느꼈다.
가파른 언덕을 30분쯤 오르니 떠나온 마을 불빛과 하늘에 떠있는 달이 보임
밑을 쳐다보니 자동차가 굉음을 내며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
다른 길을 선택한 이들은 저 길옆 좁은 길을 걷고 있겠지
오늘도 탁월한 선택.
사람이 선택하지 않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 실감
지금부터 오늘의 진짜 이야기(천사 이야기)
언덕에 올라 능선을 따라 걷는데 아직 어스름하고 사람도 하나 없는 산길
이 길이 까미노 맞나? 의구심과 함께 두려움.
그때 갑자기 나타난 한 마리 개
내 앞을 앞질러 가더니 나를 기다리듯 서있다, 내가 오는 것 보고는 또 앞장서 걸어가다
내가 안보이면 기다렸다 가는 것을 반복.
아 이 개가 나의 길을 안내하는 천사인가 보다 생각하고 엔젤이라 이름 붙임.
안보이면 사라졌겠지 생각하고 걸으면 되돌아와 나를 확인하고는 또 앞서감
갈림길 화살표 2개 있는 곳에서는 한쪽에 앉아 그리로 오도록 안내.
2시간 후 아침 먹으러 레스토랑에 가자 밖에서 기다림.
내 음식 조금 주었으나 먹지 않음.
이런 식으로 내 앞에 가기를 5시간.
20킬로 넘게 함께 순례함
다른 사람들이 아는 체 불러도 대꾸없이 앞장서서 오로지 나만 기다리고 보면서 앞으로 전진.
내가 엔젤! 하며 부르면, 멈춰 기다리자
순례자들은 내 개로 인정.
자동차 도로를 따라 걸을 땐 사고 날까 아슬아슬.
동네 지날 땐 동네 개들이 텃세를 하고 달려들지만 나에게 붙어 무사통과.
가장 난코스 대부분을 천사 엔젤과 하며 즐겁게 순례
목이 마른 지 계속 무엇을 찾는데.
이곳은 강이 흐르지만 계곡이 깊어 물소리는 나는데 먹을 순 없는 현실
안타까운 심정으로 걷기 1시간
드디어 물 먹을 수 있는 곳에 다다르자 쏜살같이 내려가 물을 허겁지겁 먹고는 나를 쳐다봐
더 먹으라 손짓하면 또 먹기를 여러 번.
몇 분 동안 먹고는 뛰어 올라와 또 앞장
한 마을에선 아예 도랑에 4발을 담고 물에 잠기기도
오늘 저녁엔 엔젤을 어떻허나? 또 내일은? 하고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
모든 것 주님이 알아서 해 주시겠지 하며 걷다보니,
자동차 도로에서 샛길로 빠지는 지점에서 앞서가던 엔젤 없어짐.
몇 번 불렀으나 나타나지 않음.
나의 걱정을 주님께서 아시고 해결해 주신 듯
하지만 말없이 헤어지니 아쉽고 그리움.
그 천사는 내가 그의 천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혹은 산속에서 외롭게 떠돌다 나와 함께한 시간이 즐거웠는지.
잘살기를 바라며 아쉬운 마음 달램
정말 신기한 체험.
까미노엔 정말 천사가 많은 듯
엔젤을 만나다(프라델라봉 오르는 산길)
이 마을은 Pradela.
생장에서 크레덴샬을 받을 때
마을 사이 사이의 간격과 등고선, 마을에 카페나 바, 알베르게가 있는지 없는지가 적힌 종이를 함께 받았었는데
그 종이에도 나와있지 않은 오지마을이었다.(순례자들이 거의 오지 않음)
가정집 같은 알베르게에서 아침 식사 후 세요(스탬프)를 직접 그려주었다.
엔젤이 동네 개에게서 구박을 받으면서 나를 따라왔고
나의 식사 중 일부를 나누어 주었으나 먹지 않았다.
뜨라바델로에서는,
검고 넓적한 돌로 지붕을 올린 전통 가옥 만날 수 있습니다.
뜨라바델로는 바위투성이의 좁은 절벽이 있는 계곡에 있습니다.
이러한 지형 때문에 부패한 귀족들이 순례자들을 강탈했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귀족들은 순례자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통행료를 걷었고,
이를 거부하는 순례자들에게는 강도로 돌변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순례자의 발길이 뜸해졌습니다.
도둑떼와 귀족에게 사주 받은 강도들 때문에 순례자들이 두려워하던 뜨라바델로에는
현재는 찾아볼 수 없는 아욱따레스 성에 도둑과 강도들의 은신처가 있었는데,
알폰소 6세와 템플 기사단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이들을 토벌하여 오랜 악습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엘 푸엔테 페레그리노라는 바르 겸 오스딸
입구 우측 게시판에 태극문양과 신라면, 그리고 '한국 까미노 친구들 연합(까친연)'표지가 있습니다.
신라면과 공기밥, 김치반찬으로 오세브레이로를 오르기 전에 원기를 보충합니다.
산 니꼴라스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ial de San Nicolas)
종탑이 있는 전원풍의 성당. 13~1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성모자상이 있는 파사드와
바로크 양식의 봉헌화가 있습니다.
발까르세 계곡 근처의 작은 마을인 라 뽀르뗄라의 이름은,
‘작은 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발까르세 계곡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작은 문과 같은 좁은 길을 지나야만 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마을을 떠나는 길에 도로를 벗어나면 밤나무 그늘과 지저귀는 새소리가 자연을 갈망하는 순례자를 반깁니다.
암바스메스따스는,
발보아 강과 발까르세 강이 합류하는 곳에 자리 잡은 마을로,
울창하고 그늘진 숲이 있어 더위로 고생하는 순례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마을입니다.
발까르세 계곡에서 가장 큰 마을인 베가 데 발까르세는,
편의시설이 더 많이 갖춰져 있습니다.
이 마을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대부분은 오 세브레이로까지 가는 가파른 길을 힘차게 출발하기 위해
이곳에서 묵기로 결정한 순례자들입니다.
두 개의 요새 유적과 성 때문에 전설이 가득한 중세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마을입니다.
▼ Parroquia Santa Maria Magdalena
사라신 성 (Castillo de Sarracín)
사라신 성은 마을의 남쪽, 밤나무 숲 사이 경사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현재에는 모두 형체를 알기 힘든 석재와 검은 돌기와만 남았습니다.
사라신 성은 10세기 아스또르가의 영주였던 사라신 백작의 성이었습니다.
한편 베이가 성은 11세기에 돈 네사노 구데스떼이스라는 봉건 영주의 소유였습니다.
그는 주민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고, 순례자들에게 보호비로 통행료를 요구했습니다.
이 영주는 알폰소 6세에 의해 처벌을 받았습니다.
작은 마을 루이뗄란은,
밤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몇 채 없는 집과 오래된 성당이 고풍스러운 마을의 분위기를 풍기고,
동굴 위에 세워진 성 프로일란 성당 때문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성 프로일란은 이 성당에서 기도와 명상으로 여생을 보냈습니다.
세례자 요한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ial de San Juan Bautista)
12세기경에 지어진 작은 성당으로 내진은 직사각형이고 궁륭은 석재로 만들어졌습니다.
라스 에레리아스에는,
발까르세 강이 울창한 숲 사이로 흐르면서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낸다.
순례자들은 계절에 따라 푸른 초원과 길가로 목동들이 몰고 나온 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라스 에레리아스에서는 오래된 전통 가옥들과
물레방아와 같이 오래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마음껏 느낄 수 있기도 합니다.
마을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이 마을은 중세부터 대장간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17세기에 만들어진 대장간은 지금도 완전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간혹 15세기에 지어진 대장간 터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7세기에 이 지역을 지나가던 라피라는 이름의 이탈리아 순례자는
대장간에서 사용되는 커다란 망치와 불꽃에 매료되어 순례를 포기하고 이 마을에 정착하였다 합니다.
이 대장간은 지난 세기까지 운영되었기 때문에 현재에도 대장간의 큰 건물을 볼 수 있습니다.
▼ 엔젤과 헤어진 장소: 화살표 숲길이 도보 순례길, 오른쪽 길은 자전거 순례길, 이곳으로 엔젤이 가버림.
엔젤! 하고 부르자 한 번 뒤돌아 본 후 사라짐.
라 파바는,
삐에드라피따 골짜기를 오르는 숲 속의 오르막길에 아늑하게 위치한 작은 마을입니다.
과거 이 언덕은 소들을 방목하던 초원이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초목이 덮인 산으로 변하여 마을의 모습을 더욱 비밀스럽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산 안드레스 성당 (Iglesia de San Andres)
18세기에 종탑을 세우면서 재건된 성당. 내부에는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봉헌화가 있습니다.
라구나 데 까스띠야
라구나 데 까스띠야 를 지나면 순례의 마지막 지역인,
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라구나 데 가스띠야는 해발 1000미터 이상 되는 초원 위에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있는 마을입니다.
이 마을에서 순례자는 갈리시아 지방의 전통 건축물인 오레오 또는 빠요사 Palloza(사진 초가집 모양)를 처음 볼 수 있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산꼭대기와 그늘진 계곡이 물결처럼 펼쳐지는 라구나 데 가스띠야는
언덕을 오르는 순례자들에게 편안한 휴식처럼 느껴집니다.
오 세브레이로
라구나 데 까스띠야를 지나면 순례의 마지막 지역인, 갈리시아 지방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오 세브레이로는
성체와 성배의 기적으로 유명한 마을입니다.
또한 까미노를 걷는 순례자에게 오 세브레이로는 한 명의 인간이 만들어낸 드라마틱한 기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오 세브레이로에서는 까미노 데 산띠아고를 부활시킨 선구자 돈 엘리아스 발리냐의 흉상을 볼 수 있는데
그는 오 세브레이로의 교구 신부로 까미노 데 산띠아고를 부활시키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바친 사람이었습니다.
노란색의 페인트로 칠한 화살표 표시를 처음 만들었으며, 까미노에 대한 연구를 체계적으로 조직하여
‘까미노의 친구 협회’를 설립하고 강화한 인물입니다.
실로 그의 이러한 노력이 없었더라면 현재의 까미노 데 산띠아고는 소수의 신앙인의 순례길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단 한 명의 노력으로 까미노 부활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작지만 매년 수많은 순례자들이 반드시 들린다는 이 마을은 로마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소박한 전통을 보여주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오 세브레이로 근교에는 오스 안까레스 산맥이 펼쳐져 있습니다.
울창한 숲을 가로지며 시원하게 흐르는 개울이 있고,
2000미터에 달하는 고지엔 대뇌조, 곰 같은 동물들이 삽니다.
가벼운 등산로가 여러 개 조성되어 있어 등산을 좋아하는 순례자들이 행복해 질 수도 있습니다.
오 세브레이로의 기적
오 세브레이로에서 일어난 기적은 까미노 순례자들 사이에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날이 궂은 어느 날 한 순례자가 마을에 도착하여 성당에 미사를 보러 갔습니다.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며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고,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할 것이라고 하자
순례자는 기도를 올리며 성체의 신비가 실제로 일어나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미사를 집전하던 사제가 하늘에 성체를 바친 후 경배하고 눈을 뜨자 성체는 고기 한 조각으로 변해있었고,
성배에는 포도주가 피로 변하여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 기적은 유럽 전체에 널리 알려졌고 수많은 참배객이 이 성당을 찾아와서
크리스털로 장식한 주전자와 은으로 만든 유물함을 봉헌했습니다.
그런데 욕심 많고 고집 센 이사벨 여왕은 기적의 성배와 성체를 담은 접시를 탐냈습니다.
여왕의 명령으로 군인들은 성배를 바쳐야 했는데,
성배를 등에 실은 노새가 라 파바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성배는 다시 오 세브레이로의 성당 안에서 현재까지 보관되고 있습니다.
해발 1310M에 위치한, 일명 산타 마리아 왕립성당은
연대가 9세기 까지 올라가는 순례 길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성당입니다.
오세이브레이로의 기적과 관계있는 성반과, 성작이 전시되어있습니다
기본적으로 3개의 공간이 있었슴.
가족들이 거주하는 공간, 짐승들이 거주하는 공간, 작업을 하는 공간
밀집을 계속 갈아야하기 때문에 작업공간이 있고 주방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공간에 있었슴.
난방도 되고 식사도 하고 연기가 밀집에 자동 흡수되어 굴뚝은 없었슴
노란 화살표를 고안한 샴페드로 신부
14세기 어느 추운 겨울날, 계곡 아래 마을 Barzamaior에 사는 신앙심 깊은 가난한 농부가
험한 눈보라 속에서 미사에 참석하려고 성당을 찾았다
신앙심이 깊지 않은 사제가 멸시의 눈초리로 이 추운 날
이 것을 받아 먹고, 마시려고 올라왔느냐는 생각으로 밀떡과 포도주를 내밀자
그 순간 밀 밀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하고
또한 성당 안의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상도
이 기적적인 광경에 고개를 앞으로 기울여 내려보았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성모상이 앞으로 기울어짐.
1486년 카톨릭 군주가 순례 중 독실함과 찬미의 표시로 은제 성유물 함을 두고 갔는데,
이 함에는 성체 유사품을 보관해 두었는데
그것이 성찬식에서 실제로 그리스도가 임하였음을 표시한 것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그후 O'Cebreiro는 순례자들의 헌신의 중심지가 되고
매년 9월8~9일에 열리는 성모와 기적을 기리는 축제가 열리는 곳이 되었고,
이 축제는 Richard Wagner의 오페라 'Parsifal'의 주제가 되었다
이 성당에 모셔진 교구사제 돈 엘리아스 발리냐 샴 페드로(Don Elias Vaina Sam Pedro)는
순례자의 길을 보존하고 복구하는데 많은 공헌을 했으며
우리와 친숙한 노란색 화살표로 길을 표시하는 것이 바로 그의 생각이었으며
그 노력의 결과로 우리가 이 순례길을 안전하게 걷고 있다고 하며,
1486년에는 이사벨라 여왕이 산티아고 순례 여행 중에 이곳에 머물렀다고 전해 진다
오세브레이로 성당
까미노 데 산티아고에 있는 건물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건물중 하나인 산타마리아 왕립성당은 9세기에 지어진 것
순례길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으면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당
산타마리아 레알은 이 지역의 후원자였고 12세기 만들어진 그녀의 조각상이
오세브레이로의 기적과 관계가 있는 성반,성배와 잘 전시됨 .
이 성당은 교구사제 돈 엘리아스 발리냐 삼페드로(1929-1989)가 담들어 있는 장소이기도 함
그는 루트를 완전하게 보전하고 복구하기위해 일생동안 많은 일을 함
친숙한 노란색 화살표로 루트를 표시하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의 흉상이 교회 광장에 있음
교회 맞은편 개보수된 파요사(갈리시아 특유의 초가집)안에 박물관이 있음
작은 마을로 예쁘고 내려다 보는 경치는 일품.
좌우의 경치가 다름
눈보라 속을 뚫고 이 험난 한 곳에 미사 드리러 온 소작농에게
성체의 기적을 베풀 만도 하다는 스테파노 생각
A Love Until The End Of Time 일생에 단 한번의 사랑/ Placido Domingo & Maureen McGovern
첫댓글 형제 님 발길 따라 순례 잘 합니다.
자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