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독서 ≪레 미제라블≫ 빅토르 위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공감
나는 열네댓살 때쯤 빅토르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처음 읽었다.
구로이와 루이코가 ≪오, 무정함이여≫라는 제목으로 발췌하여 번역한 책과 도요시마 요시오가 번역한 완역본이 나왔었는데, 나는 도요시마의 완역본을 골랐다. 총3권, 원고지 4000장에 달한다는 대작이다.
≪레 미제라블≫은 일반적으로는 원제보다 주인공의 이름인 ‘장발장’으로 더 유명했다. 또는 구로이와 루이코가 붙인 ≪오, 무정함이여≫이라는 책 제목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내 기억으로는 분명 세 번 반복해서 읽은 것 같다. ‘일기장’을 보니, 1950년 8월 30일 일기에 ‘≪레 미제라블≫을 다 읽었다’고 말미에 한줄 적혀 있다.
이것이 세 번째 완독이었는데, 한여름 어느 날 밤이었던가 자쓰시가야에 있는 묘지에 가서 돗자리 위에 앉아 달빛 아래 손전등을 켜놓고 읽은 적도 있었다. 인기척 없는 묘지의 고요함이 절호의 독서공간을 제공했다.
“두 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한번 읽을 가치도 없다”는 명저(名著)에 관한 정의(定義)가 있는데, 나는 ≪레 미제라블≫을 세 번 읽으면서도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로부터 2개월쯤 지났을까, ≪레 미제라블≫이 영화로 상영되었다. 나도 곧바로 신바시에 있는 영화관에 보러 갔는데, 이 일도 ‘일기’에 씌어있다.
≪레 미제라블≫은 19세기 초, 프랑스를 무대로 한 대하소설이다.
루이 16세가 처형되어 왕정이 붕괴되고 나폴레옹이 등장한다. 전 유럽을 석권하겠다고 꿈꾸던 이 영웅은 러시아 원정에 실패하고 재기한 보람도 없이 워털루전투에서 웰링턴이 이끄는 영국군에 패한다.
이러한 18세기 말의 격동기 역사가 작품 요소요소에 극명하게 묘사되어 있다.
시대는 왕정에서 제정(帝政)으로 더 나아가 공화제로, 고동소리를 세차게 울리며 전개된다.
그렇지만 여기서 생각해야 할 점은 시대가 어떻게 전개되든, 정치체제가 아무리 이상(理想)에 가까워지든 어떤 세상에도 사회 한구석으로 떠밀려 계속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비참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레 미제라블≫은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의미이다.
위고의 날카로운 펜촉은 이러한 가난한 사람들의 심정에 공감하면서 비참함을 꼼짝 않고 응시했다. 그리고 ‘문명의 한복판에 인위적인 지옥을 만들어내는’ 온갖 사회악을 규탄해 마지않았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단지 빵 한 조각을 훔쳤다는 이유로 감옥에 들어가고, 거기에 탈주와 반항죄가 추가되어 19년의 감옥생활을 강요당한 주인공 장발장. 형기를 마치고 출옥한 그에게 인간정신의 숭고함을 몸소 가르친 미리엘 주교.
사냥개처럼 장발장을 끊임없이 뒤쫓는 경찰 자베르. 불행한 처지에서도 엄청난 모성애를 보이는 팡틴. 그녀가 죽은 후 장발장에게 맡겨져 아름답게 성장하는 딸 코제트. 그리고 코제트의 연인 마리우스 청년.
무뢰한과 같은 성격을 몹시 밉살스러울 만큼 연기하는 여관주인 테나르디에. 그리고 장발장을 숨겨주는 수도원 정원지기 포슐르방 노인.
위고 특유의 뛰어난 이원적(二元的) 필치로 등장인물은 저마다 선명한 개성을 뽐낸다. 그리고 인간 내면의 선성(善性)과 마성(魔性)을 백일하에 드러낸다.
미리엘 주교의 도움으로 신앙에 눈뜬 장발장은 이름을 마들린으로 바꾼다. 그리고 몽트뢰유쉬르메르라는 작은 도시에서 사업에 성공한다. 자기 자신은 검소함을 지키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사랑의 도움을 최대한 아끼지 않는다.
이 덕행으로 그는 시장으로 선출되었고, 사랑과 선행으로 일관하는 나날은 눈부시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들린 시장은 자베르에게서 ‘장발장’이 이웃 도시에서 체포되었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는 자기 대신 잘못 체포된 샹마티유라는 사람의 원죄를 풀고자 한밤중에 마차를 급히 몰고 법원에 간다.
샹마티유의 원죄는 풀렸다. 대신 장발장이 또 다시 감옥에 들어간다.
그의 죄라는 것은 이렇다.
일찍이 미리엘 주교의 집에서 일하다 그만두고 떠난 장발장.
그 후, 장발장은 가난한 소년 프티 제르베가 떨어뜨린 40닢짜리 은화가 발밑으로 굴러오자 밟아서 빼앗아버린다. 완전히 무의식적이고 악마의 소행으로밖에 볼 수 없는 한순간이었다.
이윽고 제정신을 차린 장발장은 자신이 범한 죄가 중대하다는 사실을 알고,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소년의 뒤를 쫓았지만 찾아내지 못한다.
그는 이 죄로 평생 도망자의 인생을 보내야만 했다.
재범을 저지르면 그 죄가 무겁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죗값을 치르게 할 수는 없었다. 장발장은 사람들을 기만하며 사는 일이 견딜 수 없었다.
장발장에게 사람으로서 가야 할 길의 극치를 가르쳐준 사람은 미리엘 주교였다. 덕망 높은 미리엘 주교는 생활비를 최소한으로 줄여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주교는 장발장이 은식기를 훔쳐서 체포됐을 때, 그 은식기는 자신이 선물한 것이라고 감싸고는 은촛대도 가져가라며 건네준다.
주교 자신은 허름한 옷과 소박한 음식에 만족했다.
그리고 가난 때문에 죄를 저지르는 사람에게는 관용정신을 잊지 않았다.
미리엘 주교의 이런 한없는 자애에 장발장은 사랑과 동정으로 가득 찬 인생행로를 발견하게 된다.
하늘보다도 큰 전망은 인간의 혼
이들과 대극되는 사람이 ‘테나르디에’다.
가난한 팡틴은 어린 딸 코제트를 테나르디에에게 맡기고 일하러 나가야만 했다. 테나르디에에게 보내는 양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팡틴은 몸까지 팔았다.
그런데 테나르디에는 팡틴이 보낸 돈을 모두 자기 주머니에 넣는다.
자기 딸에게는 인형도 사 주지만, 코제트에게는 먹는 것조차 차별대우를 한다. 어린 여자아이라면 누구나 인형을 갖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인형이 없는 코제트는 샤벨(검)을 천으로 싸서 인형삼아 논다.
교활한 테나르디에는 세상이 혼란해지자 더욱더 마성에 홀려 무뢰한으로 전락한다.
장발장과 테나르디에, 이 두 혼은 완전히 이질적인 빛을 발한다. 한쪽은 한낮의 태양과 같고, 다른 한쪽은 나락의 어둠이다.
보들레르는 이러한 위고의 비범한 상상력이 낳은 등장인물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그 소설에 나오는 자들은 인간이 아니다.”
단순한 비판이라고 보면 안 될 것이다. 이 평의 근저에 오히려 나는 위고의 인간통찰의 깊이를 본다.
≪레 미제라블≫의 등장인물은 그의 내면에 있는 심상(心象)을 그린 풍경의 투영이리라. 장발장은 위고가 지닌 양심의 결정체이고, 테나르디에는 마성이 현현(顯現)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위고 자신이 “이 책은 무한함을 주인공으로 삼은 한편의 드라마다. 인간은 단역이다”라고 쓴 점에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무한함이라는 성스러운 혼이 장발장이라는 유한한 인격에 깃들고, 그의 사심 없는 행동 속에 무한함이 유한함으로 어른거리면서 눈앞에 불쑥 나타나는 것처럼 여겨진다.
“바다보다도 장대한 전망이 있다. 그것은 하늘이다. 하늘보다도 큰 전망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 지닌 혼의 내부다.”
이는 내용 중의 한 구절인데, ≪레 미제라블≫은 인간의 혼 내부로 헤치고 들어간 작품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작가가 스스로 토로하듯 실로 ‘종교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은사는 조례시간에 장발장의 인물상을 자주 이야기하면서, 불법자(佛法者)의 바람직한 인생을 가르치셨다.
나도 불법(佛法)을 실천하는 사람으로서, 동지의 인생을 본다는 마음으로 ≪레 미제라블≫을 읽었다. 이와 동시에 ‘인간 내면을 진지하게 응시하고 그 속에 선(善)의 광명을 끊임없이 탐구’한 위고라는 작가가 어쩐지 친근하기까지 했다.
비참을 위에서 내려다보듯 하지는 않는다.
≪레 미제라블≫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공감으로 묘사했다. 인물을 묘사하거나 역사를 더듬어 살피거나, 또 도시의 상황을 쓰거나 하더라도 위고가 사물을 보는 자세는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는 늘 밑바닥에서 사실과 꼭 같이 관찰을 계속한다.
예를 들어, 워털루전투의 진정한 승리자는 웰링턴이 아니라 캄브로느라는 이름 없는 병사라고 말하듯이.
또, 파리라는 도시를 묘사할 때에도 그는 “귀족의 호화저택에는 눈도 돌리지 않고 하수도를 보고 걷는다”고 말했듯이.
≪레 미제라블≫에는 역사를 기술한 부분이 많다. 이는 얼핏 내용과는 무관한, 기분에 따른 적당한 배합인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역사라는 큰 상황과 레 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이라는 작은 상황이 뚜렷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역사를 묘사함으로써 미제라블(비참)한 상황이 더욱 선명해진다고 철저하게 계산한 작가의 의도가 성공한 셈이다.
위고는 ≪레 미제라블≫에 10여년의 세월을 들였다.
장발장은 피에르 모랑이라는 실존 인물이고, 그 사건은 1801년에 일어났다. 그러므로 이로부터 헤아리면 60년간의 세월을 들인 역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장발장의 기구한 인생은 위고의 일면과 닮았다.
위고는 1845년에 귀족원 의원이 되었지만, 나중에 공화주의자가 되었다. 그러나 루이 나폴레옹이 1851년 2월에 일으킨 쿠데타에는 반대했다.
루이 나폴레옹이 저항자를 학살하기 시작하자, 신변의 위험을 느낀 그는 영국해협의 건지섬으로 망명했다. 이후, 건지섬에 칩거하면서 ≪레 미제라블≫을 서둘러 완성했다.
위고는 자신의 인생과 몽트뢰유쉬르메르의 시장이 된 장발장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일체화한 것은 아닐까.
장발장은 죽을 때, 무덤에 이름을 새기지 말라고 했다. 위고도 자신의 유해를 허름한 영구차에 싣기를,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죽기를 생전에 희망했다.
휴머니즘을 체현한 장발장이야말로 위고의 이상적인 모습이었으리라.
위고는 죽음 직전까지도,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의 주인공과 일체화되기를 원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레 미제라블≫ 빅토르 위고.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