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과학] 한반도의 공룡 발자국
1초에 10m 가는 공룡 '랩터', 앞발로 날갯짓하며 달렸대요
한반도의 공룡 발자국
이윤선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윤상진 기자 입력 2024.11.19. 00:30 조선일보
지난달 경남 거제시 해안가에서 스테고사우루스 공룡의 발자국이 발견됐어요. 스테고사우루스는 약 1억5000만년 전인 쥐라기 후기에 살았던 초식 공룡으로, 오늘날 북아메리카에 주로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공룡이에요. 우리나라에서 이 공룡의 화석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다른 초식 공룡인 하드로사우루스류로 추정되는 공룡 발자국도 함께 발견됐죠.
티라노사우루스, 브라키오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 책에서만 보던 공룡들의 실제 모습은 어떨까요? 과학자들은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화석을 찾아 연구합니다. 공룡과 관련된 모든 증거는 공룡 시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죠. 최근엔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 화석을 통해 공룡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도 밝혀지고 있다고 해요. 오늘은 한반도에 남겨진 공룡의 흔적들을 알아볼게요.
그래픽=유재일
우리나라 최초 스테고사우루스 발자국 발견
공룡이 활동하며 땅에 남긴 발자국을 ‘흔적 화석’이라고 해요. 공룡이 진흙을 걸어가면서 찍힌 발자국이 화석이 돼 발견되는 거죠. 발자국 크기와 모양을 통해 공룡이 얼마나 컸는지, 신체적으론 어떤 특징을 갖고 있었는지 알 수 있지요. 발자국 화석 여러 개가 한 줄로 이어진 경우가 있는데, 이건 공룡이 걸은 흔적이 그대로 화석으로 남은 거예요. 이를 ‘보행렬’이라고 해요. 발자국 사이 간격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재보면 공룡의 크기와 걷는 모습도 추측해볼 수 있답니다. 오늘날 공룡 이미지는 모두 공룡의 뼈와 발자국 화석을 바탕으로 추측해 재현한 거예요.
이번에 공룡 화석이 발견된 거제 해안가에는 찰흙을 손가락으로 누른 듯 움푹 들어간 발자국 모양 13개가 있었어요. 공룡이 이곳을 걸으며 남긴 보행렬이었습니다. 김경수 진주교대 교수 연구팀은 이 발자국 화석의 주인이 스테고사우루스라고 봤어요. 발자국 일부는 역삼각형, 일부는 반달 모양으로 스테고사우루스의 특징과 일치했거든요. 또 뒷발이 앞발보다 두 배 이상 크고, 앞발 발톱이 5개, 뒷발 발톱은 3개라는 점도 결정적인 단서가 됐습니다.
스테고사우루스는 몸길이 9m, 무게는 2~5t 정도로 매우 커요. 가장 큰 특징은 골판이에요. 부채 모양의 단단한 골판이 두 개씩 한 쌍을 이뤄 머리부터 꼬리까지 등 전체에 나 있어요. 꼬리 끝에는 이쑤시개처럼 끝이 뾰족한 골침이 하늘을 향해 나 있죠. 과학자들은 골판과 골침이 다른 공룡들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거라고 해요.
그동안 스테고사우루스의 화석은 주로 북미나 유럽에서 발견됐어요.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해요. 특히 발바닥의 족문이 보일 정도로 매우 선명한 상태로 보존돼 세계적으로도 가치 있는 화석으로 평가받고 있지요.
스테고사우루스를 비롯한 ‘검룡류’ 공룡은 원래 약 1억4500만년 전부터 6600만년 전까지 시기인 ‘백악기’ 초기까지만 살았을 것으로 추정됐어요. 스테고사우루스처럼 등쪽에 큰 골판이 있는 공룡들을 검룡류라고 한답니다. 그런데 이번에 스테고사우루스 발자국이 발견된 지층은 백악기 후기에 만들어진 퇴적층이에요. 아직은 추정 단계지만, 검룡류의 활동 시기가 더 길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거예요.
연구팀은 이번에 발견된 발자국 화석의 주인공이 새로운 종류의 스테고사우루스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했어요. 핵심은 걸음걸이예요. 기존에 밝혀진 스테고사우루스는 앞발과 뒷발 발자국이 다른 곳에 찍히는 반면, 이번에 발견된 발자국은 앞뒷발의 발자국이 서로 겹쳐서 나타나기 때문이에요.
그래픽=유재일
공룡이 새의 조상이라는 근거도 나와
최근엔 공룡이 새의 조상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나왔어요. 2010년 진주층에서 발견된 공룡 화석을 연구해 얻은 결과랍니다. 진주층은 경남 진주시를 지나는 지층으로, 1억1000만년 전 백악기 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래서 그 시기에 살았던 공룡들의 화석이 많이 발견된답니다. 진주교대가 포함된 국제 공동 연구팀은 이 진주층에 주목했어요.
당시 발견된 공룡 발자국 화석은 ‘랩터’의 보행렬 화석이었어요. 랩터는 몸집은 매우 작지만 무리지어 다니며 다른 공룡을 사냥하는 육식공룡이에요. 랩터 발자국은 길이 1cm, 폭 0.4cm였는데, 발자국 크기로 봤을 때 참새 크기의 공룡으로 추정됐지요. 이 랩터는 지금까지 세상에 밝혀진 랩터 중 가장 작아요.
랩터의 발자국 화석은 간격이 매우 넓은 것이 특징이었어요. 발자국 길이는 1cm인데, 발자국 사이 간격은 56cm나 됐거든요. 발바닥보다 50배 이상 긴 거리를 한 번에 디딘 거예요. 이를 근거로 속도를 계산해봤더니, 1초에 10.5m를 달리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랩터가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과학자들은 랩터가 새처럼 앞발로 날갯짓을 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어요. 살짝 날아오른 채로 달려서 원래 디딜 수 있는 보폭보다 더 멀리 달렸다는 것이죠.
과학자들은 그동안 공룡이 새의 조상이라고 봤어요. 하지만 공룡과 새 사이 연결고리를 확실하게 증명할 화석이 부족했지요. 이번에 발견한 발자국 화석은 두 발로 땅 위를 걷는 공룡이 비행 능력을 갖췄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 때문에 ‘조류 비행의 기원’을 보여주는 세계 최초의 보행렬이 된 거죠.
다양한 공룡 살았던 백악기 한반도
이처럼 우리나라 남쪽 지역에선 공룡 발자국 화석이 많이 발견돼요. 전남 해남군 우항리에선 익룡 발자국이 발견됐고, 전남 보성군에선 백악기에 한반도에 살았던 ‘토종 공룡’ 코리아노사우루스 화석이 발견됐죠.
이번에 스테고사우루스가 발견된 거제 지역에서도 여러 종류의 공룡 발자국 화석이 함께 발견됐지요. 발자국 크기가 20cm부터 40cm까지 다양해요. 과학자들이 분석한 결과 몸집이 크고 목이 기다란 용각류 공룡과 익룡, 그리고 거북 발자국도 있었어요. 백악기 시대 한반도 지역에 다양한 생물이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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