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제 1169편
* 불교(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祖師))
오도송(悟道頌) 및
선시(禪詩)
오도송(悟道頌)이란 무엇인가 ?
불교(佛敎)를
공부(功夫)하는
수행자(修行者)가
자신의 깨달음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가운데(中) 하나를
오도송(悟道頌)
이라고 한다.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게송(偈頌)의 하나로써
구체적으로
비교해서 설명하면
고승(高僧)이
자신만의 깨달음(覺)을
노래(歌, 句)한 것이
바로
오도송(悟道頌)이며
고승(高僧)이
자신의 임종(臨終) 전에
남겨놓고 가는 노래(歌, 句)를
열반송(涅槃訟이라고
한다.
게송(偈頌)이란
불교의 가르침(敎義)을
함축(含縮 집약)하여
표현(表現)하는
운문체(韻文體)의
짧은 시구(詩句 문자)를
말하는데
곧 선시(禪詩) 내지
또는 선어(禪語 문장)를
이르는 말이다.
본래(本來)
게(偈)와 송(頌)은
같은 의미로
《게(偈)》
라는 글자(字)는
산스크리트어(梵語)
《가타(gatha)》의
음을 빌려와(音借) 따서
만든 말이고
《송(頌)》
이라는 글자(字)는
《가타(gatha)》를
한문(漢文)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깨달음(正等覺)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게송(偈頌)
즉,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오랫동안
수련과정(修練過程)을
통해 함축된 의미로
세속(사바세계)의
사람(大衆)들에게
무엇인가를 전(傳)하고
말(說法 이야기)하고저
하는 것이며
후세(후학)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역사적(歷史的)
문헌 기록상(文獻記錄上)
오도송(悟道頌)을
가장 먼저 남긴 이(僧侶)는
조동종을 일으킨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 선사(禪師)
이다.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구분이 부질없는 일임에야
사람들은
태어남을 기뻐하고,
헤어짐은 슬퍼한다.
오랜 세월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선사(禪師) 스님들의
깨달음의 길(佛道行)이
매우 힘들고 어려우며
지난(至難)하듯이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남겨진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깨달음의 노래는
다시 한번
자신(수행자)의 삶(人生)을
돌이켜보게 하고
느슨해졌던 마음을
추스리게 한다.
여기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을
올려놓으니
그 깊은 뜻이야
어찌 우리가 모두 다 헤아려
알 수 있겠는가마는
행간(行間)의
곳곳(處處)에 숨겨져 있는
깊고 깊은 심오(深奧)한 뜻을
함께 발견(發見)하고
공부(功夫)하며
오늘을 사는
지혜(반야 보리 광명 智慧)를
찾아보시기 바램해 본다.
본론(本論)
불교(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 祖師)
선시(禪詩)와
임종게(臨終偈) 및
오도송(悟道頌) 설해(說解)
"
동자에게 물으니(松下問童子)
가도 무본(賈島 無本) 선사
송하문동자(松下問童子)
언사채약거(言師採藥去)
지재차산중(只在此山中)
운심부지처(雲深不知處)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었더니
말하기를 스승님은
약초를 캐러 갔다고
다만 여기 가까운
산 속에 계실 테지만
구름이 너무 깊어서
계신 곳 알 수 없습니다.
"
이러한
시(詩, 禪詩, 게송)를
산중 시(山中詩 산중문답시)
라고 한다.
산 속(山中)에 숨어서
은둔(隱遁)한
자취(自取, 발자취)를
나타내면서
자연(大自然)으로
돌아가는(廻歸, 만법귀일)
탈속(脫俗, 속세를 떠남)한
정취(情趣,
고요한 느낌이나 맛.
또는, 고요 속의 흥취,
내지, 깊은 정서를 자아내는
흥취))와
때로는
인생의 무상(人生無常)을
노래하였다.
위(上記)에
시(詩, 禪詩, 게송)의
내용을 살펴보면
깊고 깊은 산 속(山中)에
숨어서 은둔(隱遁)하고 사는
현자(賢者)가 있었다.
이 사람을 만나고자
오랜 시간 걸려서 찾아갔더니
시중을 드는
동자(童子)가 말하기를
스승님께서는
약초를 캐러 나갔다
전한다.
아마도
산 속 어디쯤 있을 테지만
구름이 너무 깊어서(雲深)
행방(行方)을 알 수 없다.
이 시(詩, 게송, 禪詩)는
마치
신선도(神仙圖) 한 폭의
그림이 연상될 정도로
도가풍(道家風)이
물씬 묻어나는 풍경과 묘사의
시(詩, 게송, 禪詩)이다.
중국
당(唐) 나라 시대
당시(唐詩)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고문진보(古文眞寶)』에 올려져 수록(收錄)되어져 있는
명시(名詩)이기도 하다.
시(詩, 禪詩)를
짓은 이(인물, 作者)
가도(賈島, 779~843)는
한 때 스님(僧尼, 沙門)이었던
사람으로
법명(法名)은 무본(無本)
법호(法號)는 무책(無柵)
이라고 불렀다
속세(俗世)로
환속(還俗)한 후(後)
유랑시인(流浪 詩人)으로
생애(生涯) 삶(人生)을 마친
그(賈島 無本)는
바로 이 한편의
시(詩, 게송, 禪詩)를
남김으로서
불후(不朽, 전무후무)의
명성(名聲)을 얻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시(詩)를 좋아한 그가
어느 날
싯구(詩句)의
글자를 맞추는데 골몰하며
길을 걷다가
정승 한퇴지의 행차에
무례(無禮)를 범해
낭패를 당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는데
“
시상(詩想)에 사로잡혀
글자에 골몰하다 그랬다.
”
변명하자
한퇴지가
쾌히 용서하고
글자를 정해주었다는
고사가 있다.
“
새는 못가의 나무에서 자고
스님은 달 아래 문을 밀친다
鳥宿池邊樹 僧推月下門
”
라는 글귀를 짓는데
두 번째 구(句)의
《밀칠 퇴(推)》자(字)를
《 두드릴 고(鼓)》자(字)와
비교하여, 어느 자(字)가 좋을까
고민하고 생각하다가
한퇴지의 행차를
미처 몰랐던 것이다.
한퇴지가
《밀칠 퇴(推)》자(字)를
정해주면서
가도 무본(賈島 無本)의
시재(詩才, 싯적 재능)를 인정
이로 인해
환속(還俗)하여 미관말직을
얻었으나
천성(天性)이
유랑(流浪)을 좋아하여
자호를 낭선(浪仙)이라 했듯이
유랑생활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시(詩)를 지을 때
글자 하나를 선택하는데
무척 고심(考心)을 하여
고음(苦吟) 시인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
두 시구를
삼년 만에 얻어
한번 읊으매
두 줄기 눈물이 흐른다
二句三年得
一吟雙淚流
”
하였다 .
당시의
은둔자들의
탈속적 생활이
일부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그도
은둔자들을 찾아
심방하기 좋아했는지
이 시(詩)의 원제목도
“
은자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했다
심은자불우
(尋隱者不遇)
”
로 되어 있다.
※
가도 무본(賈島 無本) 선사
가도(賈島,
779-843)는
당(唐) 나라의
시인(詩人, 墨客)으로
자(字)는 양선(浪仙)
또는 낭선(閬仙)이다.
범양(范陽,
현 베이징 시) 출신으로
처음에는
진사 시험에 성공하지만
관직을 그만 두고
불교(佛敎)
승려(僧侶, 수행자)가 되어
법명(法名)은 무본(無本)
법호(法號)는 무책(無柵)
이라고 불렀다.
이 후(以後)에
낙양(洛陽)에 나와
한유(韓愈)에게
문장(文章)을 배웠고
그 재주(藝氣, 才能)와
학식(學識)을 인정(認定)받아
환속(還俗)한 후에
진사로 뽑혔다.
835년
장강 현(쓰촨성)의
주부(州付, 부사)가 되었으며
841년
보주사창참사가 되어
사호에 부임(咐任)하라는
명(命)을 받고
부임 전에
쇠고기를 과식(跨食)해
향년 65세의 나이로 운명을
달리하여 끝마쳤다.
송(宋) 나라
시인(詩人) 소동파(東坡居士,
소식(蘇軾) 1037~1101))는
맹교(孟郊)와 함께
가도(賈島, 779-843)를
《교한도수(郊寒島瘦) 》
라고 칭송하여 불렀으며
또한
문학적(文學的)으로
《퇴고(堆敲)》라는 말을
낳기도 하였다.
특히
오언 율시(五言律詩,
다섯글자의 한문 율격시)에
능(能)했으며
저서(著書)로는
《정강집》외 3권(3卷)이
남아서 전하고 있다.
※
ㅡㅡㅡㅡㅡㅡㅡㅡ
※
원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見解)와
해석(解釋)으로
오역(誤譯)
오판(誤判)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언제든지
글 내용 가운데
잘못 된 부분은 옳고 바르게
지적(指摘)해 주시고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램해 본다.
- 마음그릇 心椀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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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 다음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