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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수학을 박살 내는 은혜의 공식: 카타 바두스 프토케이아 (κατὰ βάθους πτωχεία, 극심한 가난)
고린도는 부유한 상업 도시였으나, 마게도냐(빌립보, 데살로니가) 교회는 로마의 착취와 핍박으로 찢어지게 가난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가난을 **'카타 바두스 프토케이아(밑바닥까지 뚫고 내려간 절대적 빈곤, 극심한 가난)'**라고 묘사합니다.
그러나 **머레이 해리스(Murray Harris)**가 이 구절의 신성한 화학작용을 터뜨립니다! [환난의 시련] + [극심한 가난] = [절망과 인색함]이 되어야 맞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개입하시자, 그 바닥난 빈곤 속에서 십자가 구원의 **'넘치는 기쁨(Perisseia tēs charas)'**이 폭발하여, 결론적으로 **'풍성한 연보(Ploutos tēs haplotētos: 순전함과 관대함의 거대한 부요함)'**를 미친 듯이 쏟아내게 만들었습니다!
존 칼빈(John Calvin)의 헌금론: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5절)
마게도냐 교인들은 돈을 내기 전, 자신들의 목숨(존재 자체)을 제단 위에 통째로 올려놓았습니다! 존 칼빈이 포효합니다. "내 지갑이 열리지 않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내 영혼이 아직 십자가에 온전히 드려지지(항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를 주님께 온전히 드린 자에게 돈은 먼지 한 톨에 불과하다!"
II. 기독교 최고의 기독론적 역설: 은혜의 위대한 맞교환 (8:9)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십자가 경제학의 최고봉: 카리스 (χάρις, 은혜)
8장의 웅장한 에베레스트이자, 헌금을 촉구하는 본문 한복판에서 벼락같이 터져 나오는 기독론(Christology)의 핵폭탄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돈을 내라!"고 윽박지르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의 대주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Charis)를 똑똑히 보라!"**고 소리칩니다!
D.A. 카슨(D.A. Carson)과 R. 켄트 휴즈(R. Kent Hughes)의 십자가 해부:
"부요하신 이로서!"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은하계를 창조하시고 천군 천사의 찬양을 받으시며, 온 우주의 모든 영광과 부를 소유하신 만물의 통치자이십니다!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Eptōcheusen)!" 그러나 그분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벌레만도 못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 찬란한 보좌의 부요함을 다 쓰레기통에 내버리셨습니다! 말구유에 태어나, 머리 둘 곳조차 없이 사시다가,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입고 있던 단 한 벌의 속옷마저 발가벗겨진 채 가장 극심한 파산자요 가난한 자(Ptōchos)가 되어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이 왜 이토록 찢어지게 가난해지셨습니까? 죄와 지옥의 빚더미에 눌려 영원히 파산해야 할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과 영원한 천국의 거대한 상속권(영원한 부요함)을 100% 통째로 물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우주 만물의 주인이 나를 위해 발가벗겨진 채 십자가에서 파산하셨는데, 네가 어찌 그 알량한 돈 몇 푼을 형제를 위해 움켜쥐고 내놓지 못한단 말인가!" 이 십자가의 피 묻은 은혜를 깨달은 자의 지갑은 터져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III. 억지가 아닌 자발성과 광야의 만나 원리 (8:10-15)
(고후 8:12, 14-15)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기록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자발성의 철칙: 프로뒤미아 (προθυμία, 할 마음/준비된 마음)
헌금은 강제 징수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액수를 보지 않으시고, 심장에서 터져 나오는 **'할 마음(Prothymia: 기꺼이 자원하여 드리고자 하는 맹렬한 열망)'**을 보십니다. 없는 것을 빚을 내서 하라는 이단적 착취를 바울은 단호히 거부합니다.
만나의 기적과 십자가의 균등: 이소테스 (ἰσότης,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예루살렘의 흉년을 돕는 이 연보의 목적이 결코 고린도 교회를 가난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이 연보의 목적은 우주적 **'균등(Isotēs)'**입니다!
바울은 출애굽기 16장의 '만나'를 소환합니다! 광야에서 욕심을 부려 만나를 산더미처럼 긁어모은 자의 텐트에는 다음 날 구더기가 끓어 악취가 진동했습니다. 내게 넉넉하게 주신 재물은 내 창고에 쌓아두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굶주리고 찢어진 형제의 빈 구석을 향해 '흘려보내어' 그리스도의 몸 전체가 생명으로 박동하게 만드는 거룩한 수혈(Blood Transfusion) 작업입니다!
IV. 재정의 완벽한 투명성: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8:16-24)
(고후 8:20-21)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뿐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거액의 연보와 십자가의 관리: 하드로테티 (ἁδρότητι, 거액의 연보/풍성한 선물)
바울은 각 교회에서 모인 엄청난 금액의 **'거액의 연보(Hadrotēti)'**를 직접 운반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영적 아들 '디도'와 또 다른 훌륭한 형제들(교회의 사도들)을 파송하여 그 돈을 투명하게 관리하게 합니다.
폴 바네트(Paul Barnett)의 목회 윤리 폭발 (21절):
8장의 서슬 퍼런 실천적 결론입니다! "목회자가 '나는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니 인간의 감사는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은 십자가의 길이 아니다! 재정 문제에 있어서 사역자는 '주 앞에서(Coram Deo)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눈앞에서도(Coram Hominibus)' 단 1원의 의혹도 남기지 않도록 완벽하게 투명하고 선하게 행동해야 한다!"
재정에 무너진 사역자는 복음의 문을 영원히 닫아버리는 사탄의 앞잡이가 됩니다. 그러므로 투명하고 질서 있는 재정 관리는 교회의 생명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