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리마을 한 바퀴 돌며
최의상
옛날 버드나무가 많아 유리(柳里)마을
돌담 당집이 있어 돌담거리 저수지
앞산은 봉황이 서식하였다 하여 서봉산
뒷산은 석다소목(石多小木)하고 건달 같아 건달산
청둥오리 자맥질하면 서서히 부는 바람에 은파 일고
월척 잉어 낚은 낚시꾼 ‘심봤다’ 소리치네
저수지 물속 알 길 없으나 달이 머물다 가고
아침이면 어김없이 안개는 해 뜨면 사라지는 곳
삼월 말 벚꽃 가로수 그늘 아래 걷던 꽃길
시간이 흘러간 자리에 녹음만 짙어가네
덕산대 돌탑을 돌아 마을 길로 든다
태국사찰 모습에서 여기가 방콕인가 의심한다
기와 일주문에 ‘안인재(安人齋)’ 주인은 시인인듯
마을 회관을 지나 텃밭에 마늘잎이 나란히 자라고
마당 넓은 산장(山莊) 같은 집 석축에 봄꽃이 환하게 피어
지나가던 길손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갈담초교 울타리에 애기씨꽃 붉게 핀 틈으로
도란거리는 초동들의 정겨운 소리 들리니
옛날 풍금으로 ‘고향의 봄’을 가르치던 내 모습
꿈같이 흘러간 세월이 무심하구나
월세로 이사를 29회나 옮겨 다니던 주변머리 없는 내가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거쳐 망구(望九)의 퇴물이 되어
병든 아내가 기다리는 아파트 현관을 들어서면
그래도 감사한 귀거래사(歸去來辭)라도 짓고 싶다
2. 망각의 강
최의상
흰구름 흐르는 저 하늘 어디에
망각의 강이 흐르고 있겠지
치매 예방약을 먹고 있으나
어제의 일을 잊은 아내
나는 치매라고 이름하지 않는다.
잠시 망각의 강이 흐르는 것이라고...
새로운 태양이 호수 위로 지나가는데
태양보다 앞서 달려가는 아내
어제의 일은 망각의 강에 흘려보냈으나
내일로 앞서 달려가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영혼의 질주를 본다
아직은 치매 이전의 그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