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9-28 20:59
한해 수확을 갈무리하는 가을 한가위가 다가오는데 더운 날씨로 아직 반팔차림이다
결혼전 추석날을 잡아 처음 시댁 어른께 인사를 갔었다
그날은 긴 벽돌색의 스웨터에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스커트를 입고 갔다는 기억이 뚜렷이 남아있는 나는 요즘 날씨가 비교해 훨씬 덥다는것을 느낀다
인사드리러 갔는데 다른 식구 들은 모두 선산에 갔고
시어머님 될 어른이 수돗가에서 빨래를 하시는 중이셨다
나이 어린 난 어디서 그런것을 배웠는지 모르지만 얼른
어머님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빨래를 척척 노련한 솜씨로 같이 헹구었다
아마도 그렇게 시원스레 걷어부치고 한것은 처음일것이다
물론 친정에서 그렇게 솔선수범해 많은 빨래를 해본일이 없었다
나중에 그 빨래 도운일로 해서 어머님이 내내 날 칭찬하셨다고 들었다
여자들은 친정과 달리 시댁에서는 집안일을 해야한다는 의무감이 있다
추석은 그런 여자들의 애쓴 결과로 풍성하게 차려진다
결혼해 얼마동안은 시댁에만 가면
그사람은 부엌에 있는 나에게 도와주기는 커녕
지나가며 눈도 안 마주치려했다
민망하기도하고 그러는것은 흉이라 생각한 모양였다
나는 추석 음식 준비하느라 부엌데기 처지인데 정작 그집 아들인
그사람은 할일 없어 친구들과 놀러 나가고..
망둥이같이 뛰어 놀 나이에 나는
부럽기도 하고 약오르기도하고 당연한것 같기도하고 복잡한 심정이었다
어머님을 비롯해 집안에 부엌일을 잘하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에도 요령 피우지 않고 추석이면 쌀가루 준비해
둘러 앉아 송편빚고 동그랑뗑 전 부치고 식혜에
닭 삶고 토란국에 차례상을 마련하고 손님상도 차려야했다
생각없는 나이에는 그렇게 해야하는것이 부담스럽고 힘만 들었다
추석 지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승용차안에서 그사람이
당신 몸에서 설겆이 냄새나는것 같다고 할 정도로 절어있었고
어느땐 내가 화풀이 짜증내어 다투며 올라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나도 어머님 마음을 조금 헤아릴수 있는 나이가 되었는지
손님같은 자식들 추석에 맞이하려면
노구를 이끌고 미리 준비하신다고 애쓰시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집안에 어려운 마음 고생 할때에도
한번도 거르지 않고 지낸 조상님께 인사하는 차례상의 음식들은 우리들이 모여 추석을 풍성하게 지내게도 해주었다
우직하도록 지킨 그 모습들이 있어 한 집안에 절도와 전통이 이어지고 세워지는것 같다는 생각이다
내가 사는 이곳 서울 아파트촌은 인구수에 비해 내 어릴적에 보던
떡방앗간이 귀하다고 생각해왔는데
며칠전 나는 따끈한 송편을 멀리 목포에서 부쳐서 배달 받아 사먹는다는것을 알았다
솜씨좋은 집에서 만든것이고 구수한 맛이 기막히게 좋았다
세상은 여러모로 편리해진다
딸아이에게 송편 만드는것 가르치다 시집 보내야하는데
직장에서 늦게 오는애가 안스럽다
이제 내가 어머님처럼 어른이 되면 우리집은
절충해서 추석 음식을 다 만들기보다
간소히 몇가지 줄여 재미로나 만들고
일하느라 힘에 부쳐 입이 나오는 여자들 없게 하고 싶다는
꾀를 생각도 해보다가
어머님같이 모든것을 우직하게 한결같이 지켜가는것도 힘겹지만 가치 있다는것을 간과해서도 안 되고
편하자고 들면 한이 없는것이니
여자들이 고생해서 그 뒤에 기쁨을 아이들에게 주어 고독하지 않게 해주고 싶다
단순히 먹고 노는것이 아니라
귀한 의미가 숨어 있는 추석의 향수를 간직하게 해줘야한다는 소중한 책임감을 생각해본다
어느 지인이 이혼후에 혼자 지내는 동안 견딜수 없었던일 중 하나가 추석 명절때 친정 시댁 그 어디도 갈곳이 없더라는 것이었다
그 소외감이 얼마나 큰지 다시 재혼한 이유가 거기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가족과 이웃이 한데 모여 정을 다지는 풍습에 많은 뜻이 담겨 있다
즐겁고 풍성하게 빚어내려고
여자들이 정성과 인내를 바치는 한가위다
그녀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